(예전에 영성연합에 올린 글입니다. 진실을 찾는 구도자 여러분을 위하여 올립니다!)
요즘은 여러가지 채널을 통한, 이른바 다양한 차원(?)으로부터의 메세지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은 그러한 다양한 메세지 앞에서 혼란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고, 그가운데 자신은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좀처럼 알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오늘은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메세지는 필요에 따라 주어지고 있습니다. 즉 읽어야할 사람에 있기에, 그 사람에 적절한, 그 사람의 성장에 필요한 어드바이스가 주어지는 것이겠지요.
현재 지구상에는 60억명의 인간이 있습니다. 그들마다의 다양한 경험이나 성장에 대한 욕구가 있으며, 그들마다에 맞는 메세지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때문에 좀 과장되게 말하면 60억명에게 필요한, 60억개의 메세지가 주어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자신 앞에 정말로 수많은 메세지가 난무하는 것처럼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중에서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지금의 시점에서는 타인에게는 맞는 메세지가 나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공통의 답이라는 것이 점차 의미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어떤 메세지 자체가 진실이고 거짓인가? 어떤 메세지가 보다 높은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그 메세지가 나에게 적절한 것인지, 나의 성장에 필요한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를 위해서는 자신의 현주소를 정확히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많은 경우 메세지를 전하는 영적 존재들조차도 배움의 과정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관점과 깨달음의 수준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자신이 어떤 메세지에 강하게 끌린다면, 자신은 그 메세지를 전하는 배후의 존재들과 동료가 되어(유유상종의 원리), 지상에서 함께 배움을 하며 성장하고 있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설령 어떤 메시지가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픽션이나 '희망사항'일지라도 이는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그것은 그대로 아무런 문제가 없고, 한사람 한사람의 선택이며, 또한 각자가 선택한 경험이므로, 누구라도 왈가왈부할 수 없으며,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사람 한사람의 자유의지는 반드시 존중될 필요가 있으며, 또 스스로 깨달아가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이러이러하게 하라,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니, 당신은 이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큰 맥락에서 하나의 방향성, 가이드라인은 제시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간단하고 단순한 상식, 인간에게 내재하는 悟性에서 출발합니다.
어떤 메세지를 취사선택하실 경우에는 다음을 고려해 보도록 하십시오.
1. 이 메시지는 과연 나의 성장에 필요한 것인가?
=> 가장 핵심이 됩니다.
나에게 필요한 음식이나 나에게 필요한 약이 있듯이, 사람마다, 또 그때 그때의 흐름마다 자신에게 필요한 메세지가 다릅니다. 어떤 메세지라도 남들이 좋다고 한다고, 모두 꿀꺽 짚어삼키면, 소화불량이나 치명적인 독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에는 자기에게 맞는 것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고유의 문제입니다. 본래 메세지는 자신의 내면에서 오는 것이고, 밖의 메세지는 그것의 상징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2. 이 메세지는 나를 구속(CONTROL)하는가, 자립하게 하는가? (종교의 에너지/컨트롤의 에너지)
=> 진리의 에너지는 나를 자유케하고, 나를 스스로 일어서게 합니다.
종교의 에너지는 나를 매달리게 하고 의존하게 합니다.
본래 종교의 에너지들은 '위대하고 매력적인 대상을 만들어 사람들이 그것을 신봉하게 함으로써, 그를 통해 사람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이른바 종교의 신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나약해지고, 의존적이 되었을 때, 이러한 메세지에 끌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종교의 에너지라는 것은 비단 "일반종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을 신봉하는 것, 우주인을 신봉하는 것,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것, 마스터나 스승을 신봉하는 것.... 종교의 대상도 지상의 인간의 수만큼 다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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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가르침은 내가 나의 삶의 주인으로서 현실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가?
(창조주(神)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는지....)=>
'하늘이 만들어준다, 무엇인가 신기한 일이 일어나서 세상이 변한다, 누군가가 바꾸어준다, 저절로 된다'
이러한 에너지들은 '인간이 스스로의 현실을 만들고 바꾸어가는 것을 이해 혹은 인정할 수 없으며, 자신들이 그 사람들을 바꾸어야 한다' 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때문에 "뭔가 내가 다른 사람들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경우, 이러한 달콤한 메세지에 끌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른바 "개벽"이나 '차원상승'이라는 것, 그러한 것이 실제로 일어날지라도 지금 내가 여기에서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상태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지금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지금 자신을 삶을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 개벽이 일어나고 '차원이 상승'했다고 해서 갑자기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고, 자신의 삶이 훌륭하게 바뀔 수는 없습니다. 자신은 삶은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기본적인 진리를 언제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4. 이 가르침은 영성과 더불어 현실에서의 엄격한 실천(피드백)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뉴에이지의 안이한 풍조, 현실을 회피하는 풍조가 흐르고 있지는 않은가...)
=> 이것은 조금 미묘합니다. '원하면 이루어진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라.. 사랑과 허용, 평화...'를 말합니다. 주로 뉴에이지 풍조가 그렇습니다. 일면 타당합니다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응시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가르침을 그대로 적용하면, 자신의 에고를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하는 수준으로 왜곡됩니다. 필연적으로 접지(Grounding:정확한 현실인식과 생존능력)의 능력이 떨어지게 되고, 자신의 눈 앞의 현실을 회피하고,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부정하게 만듭니다. (특히 현재의 영성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는 바로 이러한 측면을 짚어줄 수 있는 메시지입니다. 많은 영성인들이 공중에 떠 있고, 아직은 생생한 현장이 아니라 이론이나 생각의 차원에 머물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뭔가 이루었고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6. 이 가르침은 자신만이 유일하고 뛰어난 것임을 이야기하거나 다른 사람의 진리관을 심판하고 있지는 않은가?
(경쟁과 비교/양극대립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지는 않은가...)
=> 이것은 그 가르침이 에고에서 오는지, 사랑에서 오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이것만이....이것을 해야만....'로 '나'를 강조하는 경우입니다.
7. 이 가르침은 인간 의식의 영원성과 그 본질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가?
(육체나 물질적인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은가....)
=> 이것은 4 번과는 반대되는 케이스라 할 수 있겠습니다. 대중들의 관념은 이러한 물질주의에 은연 중에 지배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영적인 분야에도 이러한 사조를 표방하는 케이스를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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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기준은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메세지를 식별할 때에는 '내면의 느낌으로, 가슴으로 하라....
혹은 허용하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현재의 파동에 부합되는 것에 끌릴 수 밖에 없습니다..(유유상종의 원리)
자신의 마음이 안이한 상태에 있으면, 환상적인 메세지에 끌리 수 밖에 없고....
자신의 마음이 의존적이 되어 있으면, 자신을 강하게 휘어잡는(컨트롤하는) 메세지에 끌릴 수 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이 경우, 이성과 지성의 힘은 하나의 나침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성과 지성의 힘을 사용하여,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고, 현실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것은 인간만의 특권입니다..
'판단하지 말라..모든 것을 허용하라'는 말이 유행인 시대이지만....
저는 오히려 '더 생각하고, 더 판단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의 삶의 방식과 진리관에 대해서는 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본래 창조주는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스스로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삶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해야 함을 이해할 때...
비로서 "다른 사람을 허용한다"는 참다운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神이나 창조주를 말하는 사람의 진정성을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까요?
이희석
예전에 영성연합에 올린 글입니다. 진실한 구도자 여러분을 위해 올립니다)
<창조주> 라는 말은 대부분의 종파에서 <가장 최고의 존재, 가장 높은 존재> 와 같은,
무엇인가 우월이나 종교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말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 혹은 외계인이 만든 창조주의 개념입니다. 본래의 창조주는 그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본래의 <창조주>란 인간 한사람 한사람안에, 모든 생명의 내면 안에 내재하고 있는 근원의 근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실은 이것은 많은 정신세계 책에 나와있는 내용이고, 영성계에 발을 내딛은 분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만약 그러고자 한다면 갓 태어난 어린아기에게서도 神을 느낄 수 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자녀에게서도 신을 바라볼 수 있으며,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애인을 통해서도 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로 돌아오면, 힘있는 누군가, 목소리 큰 누군가, 능력자라 불리는 누군가가,
신비한 것을 말하는 누군가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서, "창조주" "신" 등을 말하면
왠지 혼란스럽게 되고,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이것이 우리들의 냉정한 현주소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진정한 창조주(神)의 파동을 내고 있는지,
가짜(似而非) 창조주의 파동을 내고 있는지 구별하는데에는 다음과 같은 공식을 적용해 보십시오.
공식 1
"창조주의 파동"을 가지고 온 사람은 실은 사람들에게 "창조주"나 "신"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자신이 창조주다"라는 말은 더더욱 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동안의 지구인류의 의식수준에서 누군가에게 '나 자신은 창조주'라고 말하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은 그 자신은 창조주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자신이 바라지 않는 일입니다.
때문에 자신의 창조적인 권능을 깨닫고 그것을 표현할 때라도 항상 이와 같이 말합니다,
"나는 신과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러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여러분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한 일은 여러분도 또한 할 수 있으며, 오히려 그보다 더욱 위대한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창조주나 신, 깨달음을 전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붙잡고, 자신에게 의존하게 하는 것은 이른바 '사명자'로서는 낙제점에 해당합니다.
언제나 역할을 하는 사람은 겸손해야 하고, 항상 사람들의 의식을 그들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메세지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어떠한 메시지가,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메세지에만 의존하고, 메시지만 붙들게 만든다면,
'고차원의 메시지'로서는 낙제점에 해당됩니다.
언제나 메시지는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라져야' 하고, 하나의 씨앗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메시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 사람 자신에게, 자신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공식 2
"창조주의 파동"을 가지고 온 사람은 결코 종파나 추종자를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동안의 지구의 장구한 역사에서 그런 흐름으로 성장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내면의 "神"을 깨달은 것처럼, 한사람 한사람 또한 자신의 마음 속에서 스스로 神을 깨닫는 것이,
"유일한 방법"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식 3
"창조주의 파동"을 가지고 온 사람은 결코 "이것을 따르라" "내 말을 믿으라"
"내가 가르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각 사람이 스스로의 현실의 창조주로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진리를 또한 만들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말한다면, "당신의 믿음이 당신 자신을 치유했습니다" "당신 자신의 진리를 찾으십시오"
"내가 그랬듯이 당신도 당신 자신을 알기를 바랍니다" 와 같이 말합니다.
공식 4
"창조주의 파동"을 가지고 온 사람은 결코 예언과 같은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있는,권위있는 사람이 자신을 위안해 주거나,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너는 이러이러하게 해야한다"고 말해 주기를 바라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인가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한 예언적인 말을 하나라도 던지게 되면,
그 사람은 곧 그것에 끌려가 버리고, 진정한 자신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음을 나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본질적으로 한사람 한사람의 미래란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또한 한사람 한사람이 모인 인류의 미래도 결정되어 있지 않고,
그것은 모두 각 사람들의 '지금여기'에서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식 5
"창조주의 파동"을 가지고 온 사람은 결코 사람을 끌어모으거나, 이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각자는 자신의 길을 가고 있고, 그것은 어찌됐든 그 사람의 선택으로 존중해야 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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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지구 가족 여러분, 반갑습니다.
"아침의 태양(http://cafe.daum.net/centralsun)"을 운영하며, 센트럴선의 메시지를 소개하고 있는 이희석이라고 합니다.
99년 PAG초기 멤버이며, 번역조정자로서 활동한 적도 있습니다.
다음부터는 하나의 견해로서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계시겠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외계인의 개입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센트럴선의 메세지에서는 그것을 이미 97년도부터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당시에 그렇게 합의가 있었습니다.
지구 인류의 미래는 지구 인류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창조주의 뜻이기도 합니다.
외계로부터의 수많은 채널링 메시지들, 그것은 힌트가 될 순 있지만,
최종적으로 인간이 스스로 판단해서, 스스로 행동해야 합니다.
은하연맹(Galactic Federation)과 많은 스페이스 커맨드(시리우스,플레아데스,오리온 등...) 등이
지구에 대한 컨트롤을 중지하기로 결정한 것이 벌써 오랜전의 일입니다.
다만 그들이 중단하려 해도, 지구인류가 계속 그것을 바라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은하연맹은 지구라는 행성시스템의 진화와 보호 및 조정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인류의식의 성장은 인류 자신의 몫이고,
지구인류가 새로운 차원에서 생존하느냐도 역시 인류 자신이 결정할 부분입니다.
외계문명을 탐구하신 분들이 많은 경우, 기존 종교의 한계에 직면한 후 새로운 전환점이 되셨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바뀐 것은 거의 없습니다.
종교의 神에게 기원하던 것이, 우주인들에게 기원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외계문명을 깊이 이해하는 분들이라면, 우주인들이 지구인류를 해방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구인류가 우주인들을 해방시켜줄 필요가 있음을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모두 이전에는 우주인이었으며, 지구의 역사에는 우주의 역사가 모두 담겨 있으며,
우주의 모든 문제와 테마를 푸는 열쇠가 바로, 지구 그리고 지구 인류에 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 인류가 내는 상념, 에너지, 행동력이 얼마나 우주 전체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모르실 겁니다.
왜 그토록 많은 우주인과 우주선들이 지구로 찾아왔고, 지구에 관심을 가지는지....
여러분은 이제 식별력을 발휘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채널링 메시지라고 무턱태고 받아들일 때는 지났습니다.
이미 지구 인류 개개로의 채널링 메시지는 우주에서 중단된지 오래되었습니다.
그것이 개인의 성장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스터나 대천사, 창조주의 이름을 가지고 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말로 그러한 파동을 가지고 있는지는,
정말로 나 자신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 있는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현실은 여러분 스스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뜬구름잡는 이야기들, 사탕발림의 이야기들, 언제나 붕뜨게 하는 이야기들만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요?
정말로 현실을 제대로 살고, 현실 가운데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가요?
정말로 사람을 보다 사랑하고, 허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지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기쁨과 만족감을 느끼도록 도와주는지요?
저는 오래전부터 이런 말씀을 이곳에 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또한 외계문명과 뉴에이지를 졸업하는 힘든 과정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자신 안에 神이 있다는 것을,
우리 자신이 지구에 온 목적은 바로 神이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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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많은 때묻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솔직함이나 순수함, 정직함, 신념, 이러한 여러가지 훌륭한 정신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라는 공간에서 함께 부대끼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려 할때,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들을 이용하고, 우리들을 자신들의 형편에 좋게 이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솔직함이나 순수함은 그 자체만으로는 때때로 이용되기 쉬운 파동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의 사정에 편하도록 속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훌륭하다고 믿고 있는 솔직함이나 순수함이 진정한 솔직함이나 순수함으로는 아직 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이고, 어떤 의미로는 우리 자신의 형편에 좋게 만들어진 솔직함이나 순수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 자신의 공간안에서, 우리 자신의 에너지만으로 통용되는 솔직함이나 순수함일 뿐이며, 다른 일반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보았을 경우에는 통용되지 않고, 이용되어 버리고 마는 솔직함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우리들이 몸에 익혀왔고, 진실이라고 느껴온, 솔직함이나 순수함을 밖에서 그대로 사용하려 해도, 실제로는 이용 당하는 것만을 경험하게 되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마음은 차례차례 끔찍하게 부수어져 버리고 말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들이 지금까지 몸에 익히고 있었던 솔직함이나 순수함을 진정한 강함을 겸비한 솔직함이나 순수함으로 완성해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우리들이 오랫동안 길러오고, 몸에 익혀 온 솔직함이나 순수함은, 우리들 자신의 공간안에서는, 또 정직하고, 성실한 순수성을 존경하고 공감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통용되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감각이 전혀 통용되지 않는 많은 일반 사람들 속에서는, 솔직함은 단지 이용되어 버리고, 차례차례 그들의 뜻대로 속아 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우선 그러한 상황에 직면하기 위한 강함이 필요하고, 판단력이 필요하며, 현명함이 필요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는 솔직함이나 순수함을 보았을 때, 그것은 얼마만큼 강한 것이고, 얼마만큼 자신의 신념을 수반하고 있는 것일까요? 다만 솔직하면 모든 것이 좋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많은 사람들쪽에서 우리들을 보았을 때, 우리들은 죄다 이용되어버리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좋은 먹이감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들은 지금부터 강함을 겸비한 정직함을 몸으로 익혀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 강함을 겸비한 솔직함이나 순수함, 그것을 어떻게 하여 스스로 전개시켜 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은 자신의 공간에서 떠나, 자신과는 다른 장소나 환경에서 자신의 마음을 소중히 간직하면서도, 성장을 위하여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길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각자 순수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인생을 걸어가고자 자신의 흐름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사회라는 척박한 환경속에서 여러가지 불안을 느끼고, 우려나 걱정도 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활히 진행되어, 우리 자신의 흐름을 완성한다면, 그것은 상당한 강함을 몸에 익히고 있다는 증명이고, 그 강함이 우리들의 흐름을 제대로 만들어가게 됩니다.
강함을 갖춘 솔직함이나 순수함.... 영성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솔직하지만, 강함을 잃고 있었던 이유는, 솔직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거나 다른 사람의 탓으로 하거나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태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판단할 수 없고, 스스로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판단시키고, 맡겨 버립니다. 다만 자신은 정직하고, 솔직하면 좋다... 이런 생각으로부터 강함을 잃은 정직함만이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에게는 강함을 겸비한 정직함이나 순수함이 필요하고, 그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단하여, 스스로 행동하는 솔직함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스스로 판단하여, 스스로 행동한다! 그것과 솔직함이나 순수함을 어떻게 잘 연결시켜 나갈 수 있을까요....?
때때로 판단력이 있어, 행동력이 있으면, 무심코 솔직함을 잃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스로 판단해, 스스로 행동해 나간다.... 그것이 올바른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일부러 과장하거나 강하게 말하거나 상대를 컨트롤해 버리게 됩니다. 그에 따라 정직함이나 솔직함, 순수함이 사라져 갑니다. 따라서 강함과 순수함은 양날의 검이고, 잘못 사용하면 서로를 손상시켜버리는 에너지가 됩니다.
강함을 몸에 익히려고 하면, 순수함이나 솔직함이 없어져 버린다. 순수함이나 솔직함을 유지하려고 하면 강함이 없어져 버린다. 이것이 지금까지 영적인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나기 쉬운 경향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강함을 겸비한 솔직함과 순수함을 길러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사회라는 낮선 환경에서, 홀로 결단하고, 홀로 판단하여, 스스로 행동해 나가는 상황을 반복하면서, 실제로 그렇게 실천해 가는 행동력을 몸으로 터득할 때 주어지는 능력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강함과 솔직함, 이 양자의 밸런스를 잘 잡으면서, 자신의 흐름을 진행시켜 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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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혼과의 일체화의 프로세스는 개개인이 다르다
정신적인 인생에 눈을 뜬 사람이 첫번째로 목표로 하는 것은 「영혼과의 일체화」일 것입니다.
단, 여기에서「영혼과의 일체화」란 「의식적으로 일체가 되는 것」이고,
「채널링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영혼과 순간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백년이 지나도 모두에게 생기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영혼과의 일체화는 「빙의」나 「가이드와의 텔레파시」등과 같은 저차원적인 현상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빛과의 일체화」, 「우주 의식과의 통합」, 「우주즉아」라고도 말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현상입니다. 대개의 경우, 「4차원적 가이드와의 통신」으로부터 시작되어, 「진정한(고차원의) 가이드로부터 사용되는 존재」, 「영혼의 동료로부터 사용되는 존재」, 「영혼의 동료」, 「영혼의 핵으로부터 사용되는 존재」, 「영혼의 핵」의 차례로 가이드나 영혼과의 교류를 진행시켜 갑니다만, 「영혼과의 일체화」는 언제나 최종적인 목표입니다. 보통 「빛의 존재로부터 매회 어드바이스를 받고 있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대개의 경우 영혼은 아닙니다. 영혼은 가슴 안에 있어, 우리와 함께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영혼의 차원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3 차원적 언어로 직접 대화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처음에는 꿈이나 비전 등으로 정보를 받아, 영혼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고, 점차 직접 교류할 수 있는 방식을 각자 나름대로 확립해 나가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제1 단계에서는 이와 같이 영혼의 존재를 믿고, 꿈이나 비전 등을 통해 영혼으로부터의 정보를 받아,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행하게 됩니다. 제2 단계는 자신의 역할을 행하면서도 영혼의 역할도 무의식적으로 행하며 그곳에서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제3 단계가 진정한 영혼과의 일체화로, 자신의 역할이 영혼의 역할이기도 하여, 의식적으로 영혼의 역할을 행하게 됩니다. 자신은 영혼과 일체인 것이 명확하게 자각되며, 우주와도 일체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영혼의 차원이나 에너지적인 특징은 사람마다 완전히 다릅니다. 지구에 올 때까지의 진화 과정이 한결같지 않기 때문이며, 그에 따라 지구에서의 성장의 프로세스나 과제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전혀 다릅니다.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봐도 거의 참고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는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영혼을 진심으로 믿고, 오로지 영혼과의 일체화를 요구하여 수련해 가는, 이것 밖에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센트럴선 뉴스레터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