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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영성연합에 올린 글입니다. 진실한 구도자 여러분을 위해 올립니다)
<창조주> 라는 말은 대부분의 종파에서 <가장 최고의 존재, 가장 높은 존재> 와 같은, 무엇인가 우월이나 종교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말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 혹은 외계인이 만든 창조주의 개념입니다. 본래의 창조주는 그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본래의 <창조주>란 인간 한사람 한사람안에, 모든 생명의 내면 안에 내재하고 있는 근원의 근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실은 이것은 많은 정신세계 책에 나와있는 내용이고, 영성계에 발을 내딛은 분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만약 그러고자 한다면 갓 태어난 어린아기에게서도 神을 느낄 수 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자녀에게서도 신을 바라볼 수 있으며,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애인을 통해서도 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로 돌아오면, 힘있는 누군가, 목소리 큰 누군가, 능력자라 불리는 누군가가, 신비한 것을 말하는 누군가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서, "창조주" "신" 등을 말하면 왠지 혼란스럽게 되고,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이것이 우리들의 냉정한 현주소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진정한 창조주(神)의 파동을 내고 있는지, 가짜(似而非) 창조주의 파동을 내고 있는지 구별하는데에는 다음과 같은 공식을 적용해 보십시오.
공식 1
"창조주의 파동"을 가지고 온 사람은 실은 사람들에게 "창조주"나 "신"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자신이 창조주다"라는 말은 더더욱 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동안의 지구인류의 의식수준에서 누군가에게 '나 자신은 창조주'라고 말하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은 그 자신은 창조주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자신이 바라지 않는 일입니다. 때문에 자신의 창조적인 권능을 깨닫고 그것을 표현할 때라도 항상 이와 같이 말합니다, "나는 신과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러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여러분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한 일은 여러분도 또한 할 수 있으며, 오히려 그보다 더욱 위대한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창조주나 신, 깨달음을 전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붙잡고, 자신에게 의존하게 하는 것은 이른바 '사명자'로서는 낙제점에 해당합니다. 언제나 역할을 하는 사람은 겸손해야 하고, 항상 사람들의 의식을 그들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메세지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어떠한 메시지가,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메세지에만 의존하고, 메시지만 붙들게 만든다면, '고차원의 메시지'로서는 낙제점에 해당됩니다. 언제나 메시지는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라져야' 하고, 하나의 씨앗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메시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 사람 자신에게, 자신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공식 2
"창조주의 파동"을 가지고 온 사람은 결코 종파나 추종자를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동안의 지구의 장구한 역사에서 그런 흐름으로 성장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내면의 "神"을 깨달은 것처럼, 한사람 한사람 또한 자신의 마음 속에서 스스로 神을 깨닫는 것이, "유일한 방법"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식 3
"창조주의 파동"을 가지고 온 사람은 결코 "이것을 따르라" "내 말을 믿으라" "내가 가르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각 사람이 스스로의 현실의 창조주로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진리를 또한 만들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말한다면, "당신의 믿음이 당신 자신을 치유했습니다" "당신 자신의 진리를 찾으십시오" "내가 그랬듯이 당신도 당신 자신을 알기를 바랍니다" 와 같이 말합니다.
공식 4
"창조주의 파동"을 가지고 온 사람은 결코 예언과 같은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있는,권위있는 사람이 자신을 위안해 주거나,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너는 이러이러하게 해야한다"고 말해 주기를 바라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인가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한 예언적인 말을 하나라도 던지게 되면, 그 사람은 곧 그것에 끌려가 버리고, 진정한 자신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음을 나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본질적으로 한사람 한사람의 미래란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또한 한사람 한사람이 모인 인류의 미래도 결정되어 있지 않고, 그것은 모두 각 사람들의 '지금여기'에서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식 5
"창조주의 파동"을 가지고 온 사람은 결코 사람을 끌어모으거나, 이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각자는 자신의 길을 가고 있고, 그것은 어찌됐든 그 사람의 선택으로 존중해야 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라는 말은 대부분의 종파에서 <가장 최고의 존재, 가장 높은 존재> 와 같은, 무엇인가 우월이나 종교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말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 혹은 외계인이 만든 창조주의 개념입니다. 본래의 창조주는 그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본래의 <창조주>란 인간 한사람 한사람안에, 모든 생명의 내면 안에 내재하고 있는 근원의 근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실은 이것은 많은 정신세계 책에 나와있는 내용이고, 영성계에 발을 내딛은 분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만약 그러고자 한다면 갓 태어난 어린아기에게서도 神을 느낄 수 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자녀에게서도 신을 바라볼 수 있으며,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애인을 통해서도 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로 돌아오면, 힘있는 누군가, 목소리 큰 누군가, 능력자라 불리는 누군가가, 신비한 것을 말하는 누군가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서, "창조주" "신" 등을 말하면 왠지 혼란스럽게 되고,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이것이 우리들의 냉정한 현주소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진정한 창조주(神)의 파동을 내고 있는지, 가짜(似而非) 창조주의 파동을 내고 있는지 구별하는데에는 다음과 같은 공식을 적용해 보십시오.
공식 1
"창조주의 파동"을 가지고 온 사람은 실은 사람들에게 "창조주"나 "신"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자신이 창조주다"라는 말은 더더욱 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동안의 지구인류의 의식수준에서 누군가에게 '나 자신은 창조주'라고 말하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은 그 자신은 창조주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자신이 바라지 않는 일입니다. 때문에 자신의 창조적인 권능을 깨닫고 그것을 표현할 때라도 항상 이와 같이 말합니다, "나는 신과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러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여러분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한 일은 여러분도 또한 할 수 있으며, 오히려 그보다 더욱 위대한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창조주나 신, 깨달음을 전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붙잡고, 자신에게 의존하게 하는 것은 이른바 '사명자'로서는 낙제점에 해당합니다. 언제나 역할을 하는 사람은 겸손해야 하고, 항상 사람들의 의식을 그들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메세지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어떠한 메시지가,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메세지에만 의존하고, 메시지만 붙들게 만든다면, '고차원의 메시지'로서는 낙제점에 해당됩니다. 언제나 메시지는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라져야' 하고, 하나의 씨앗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메시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 사람 자신에게, 자신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공식 2
"창조주의 파동"을 가지고 온 사람은 결코 종파나 추종자를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동안의 지구의 장구한 역사에서 그런 흐름으로 성장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내면의 "神"을 깨달은 것처럼, 한사람 한사람 또한 자신의 마음 속에서 스스로 神을 깨닫는 것이, "유일한 방법"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식 3
"창조주의 파동"을 가지고 온 사람은 결코 "이것을 따르라" "내 말을 믿으라" "내가 가르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각 사람이 스스로의 현실의 창조주로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진리를 또한 만들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말한다면, "당신의 믿음이 당신 자신을 치유했습니다" "당신 자신의 진리를 찾으십시오" "내가 그랬듯이 당신도 당신 자신을 알기를 바랍니다" 와 같이 말합니다.
공식 4
"창조주의 파동"을 가지고 온 사람은 결코 예언과 같은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있는,권위있는 사람이 자신을 위안해 주거나,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너는 이러이러하게 해야한다"고 말해 주기를 바라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인가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한 예언적인 말을 하나라도 던지게 되면, 그 사람은 곧 그것에 끌려가 버리고, 진정한 자신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음을 나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본질적으로 한사람 한사람의 미래란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또한 한사람 한사람이 모인 인류의 미래도 결정되어 있지 않고, 그것은 모두 각 사람들의 '지금여기'에서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식 5
"창조주의 파동"을 가지고 온 사람은 결코 사람을 끌어모으거나, 이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각자는 자신의 길을 가고 있고, 그것은 어찌됐든 그 사람의 선택으로 존중해야 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