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잠

 

 

 

 

 

 

 

"

 

잠들어 모두 잊었다.

 

그 안에서 영원을 보았고, 사랑을 보았다.

 

영원안에서 사랑으로 다시 시작한다.

 

"

 

 

 

 

"

실체라는 것은 진실로 흐름안에 있다.

"

 

 

 

 

 

 

 

 

 

 

"

인식도, 의지도, 생각도, 마음도, 가슴도, 어떠한 멈춤도 움직임도 사라져버린날.

 

그 무엇도 인식할 수 있는 나가 사라졌다.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지 혼돈으로 보이는 그 모든 것의 흐름의 덩어리들.

 

 

 

그러나 그 흐름조차 나라고 할수도 인식할 수도 없다.

 

내가 지금 나를 통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류일 수 있으나, 그것은 언제나 진실이다.

 

언제나 진실인 이유는 그 안에 "나"라고 하여도 아무 문제 될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그 "무엇"이라 불러도 아무 문제 될것이 없다.

 

 

나라는 중심이 둥근 빛으로 처음으로 태어날때는

 

어렴풋 그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곳에서 순간 태어난 것.

 

 

그 태어난 순간에 인식한 것이 그 흐름의 덩어리들이다.

 

그러나 그 흐름의 덩어리는 혼돈이라 할 수도 질서라 할 수도 없다.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와 모든 면에서 일치한다.

 

 

내가 "나"라는 중심으로 존재하게 된 원동력은 "나"라는 것의 뜻이다.

 

"나의 존재이유"는  존재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것과 모든 것이 일치한다.

 

그러나 나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고, 내가 그렇게 "나"라고 이름을 붙인것이다.

 

그 이름이 바로 "상"이 되어진다.

 

 

 

내가 "나"라고 처음으로 이름붙인것은 모든 것이 일치하는 나이다.

 

모든 꿈이 일치하는 나이며,

 

모든 바램이 일치하는 나이며,

 

모든 사랑이 일치하는 나이며,

 

모든 그 무엇이 일치하는 나이다.

 

 

그 "나"의 목표는 나와 나라 이름붙이기 전의 나 그리고 나가 변화하기 태어나기 전의 그 무엇과

 

의 모든 일치이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일치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바램들이 일치한다.

 

모든 마음들이 일치한다. 모든 감정 모든 흐름이 일치한다.

 

 

그 나는 홀로 존재한다. 홀로란 말을 썼다는 것은 홀로란 말을 알고 난 후이지만,

 

홀로란 말로 표현하기로 한다.

 

 

나의 모든 일치를 이룬 후의 나는 나안에서 또다른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졌는데,

 

저절로라는 것에는 내가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나로 비롯되었다고 하여도 아니라고 하여도

 

일치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모든 것이 이루어진 세계안에서 자신이 창조한다는 사실이다. 즉 그것은 창조가 아니라

 

자신이 바램을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창조한다는 그 순간에 드러난 다는 것이다."

 

 

그냥 이루어지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나의 중심이 태어났듯이 그대도 그대의 중심이 태어난것이다.

 

그대와 나의 중심은 그 당시에는 홀로 존재했다고 표현하였지만,

 

서로 교차하지만 않았을뿐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여기서 교차하지 않았다는 것은 교차해도 안해도 의미가 존재에 대한 이유가 될 수 없다.

 

단지 교차하지 않았다고 표현한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교차하지만 영향력이 제로라는 의미이다.

 

 

또한 내가 존재함에 있어 당신이 존재하는 이유도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의미를 찾아갔다는 말로는 부족하지만, 나가 존재하기 전의 그 모든것의 여정으로,

 

우리는 각각이 서로가 알면서 몰랐다.

 

 

서로를 몰랐으므로 우리는 만나는 과정을 따른다. 내가 존재하기 전의

 

그 무엇안에서 이미 함께였고 또 이미 그 무엇이었다.

 

그것은 이름도 없고 그 무엇도 어떤 방법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세계.

 

그것을 갇혔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너머에 나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의 집이 존재하지 않으며 내가 그 무엇으로 부터 나올때 이미 나는 존재이며, 그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것은 그 당시 존재하지 않았으며, 내가 그 모든 일치하는 나였다.

 

환경이 존재하지 않았고 바탕도 존재하지 않았고 핵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을 아직 경험하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하며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 더 정확하지만,

 

나는 지금 이렇게 비유적으로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은 이미 드러난 나에서의 관점이다.

 

 

 

내가 나이기 전의 나는

 

모든 것이 사라진 상태라 부를 수 있으며, 영원한 죽음이라 부릴수도 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을 그 당시에는 말할수가 없었다. 단지 지금 현실에서의 나의 관점으로 영원한 죽음

 

영원한 파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변화또는 탄생하였고 또한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진 한 순간이며 영원함이다.

 

그리고 내가 태어났듯이 그대와 이미 함께 존재하였지만 서로를 전혀 인식할 수 없음으로 하여서

 

"함께 존재함"을 위한 또다른 변화를 하게되었다.

 

 

 

그 처음태어난 나와 그대는 모든 면에서 일치하지만, 서로가 결코 합체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수가 궁극적으로 일치함을 말한다. 0은 1이며 2이며 3이며 무한수 이며 존재하지 않는 모든

 

수이다.

 

 

결코 합체하지 않는 이유는 보이는 것은 각 각 "자신이라는 나"라고 이름 붙였지만,

 

그 중심은 그 최초로 인식했던 흐름의 덩어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미 존재한 과정이 다르다. 그것은 무의미하게 보이는 모든 흐름의 뒤섞임인데

 

그것이 질서를 가진것처럼 하나 하나 풀려진 세상이 지금 세상이다.

 

또한 그 무의미하게 보이는 모든 흐름의 덩어리또한 각 각 확실한 존재성이 있으며,

 

그것은 " 내가 나라 불리워도 되고 내가 나라 불리우지 않아도 되는 상태이나 그것은

 

중심이 되고 안되고 를 이미 떠난 상태이므로 독보적으로 영원한 상태이다.

 

그것은 그 상태로 영원하다는 말이다."

 

 

내가 나라고 불리는 것은  나에겐 최초의 근원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근원은 없다. 상대성 안에서의 근원도 내 자신안의 근원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이유는 파괴하기 위한 모든 것의 사라짐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단지 나의 하나의 눈으로 보았을때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기억하여야 할 것은 하나이다.

 

"내가 나라는 최초의 중심으로 변화또는 탄생했을때 이미 그것을 시작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식했다는 것은 그 대상은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즉 그 사라짐이라는 것은 이미 나를 포함하고 있

 

는 것이므로 그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나"라는 의미나 "너"라는 의미나 "하늘"이라는 의미나 "대지"라는 의미나 모든 것이 일치하기 때문에

 

중심이라고도 그 무엇이라고도 말하는 것도 맞고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니컬 한 것은 이미 존재했다고는 하나 그것은 인식할 수 있는 나라

 

는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식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인식은 나라는 중심이 최초로 사용한 나의

 

또 다른 나의 모습이며, 내안의 나라고 불리워도 된다. "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진 후의 나라는 선택에 의한 받아들인 도구라 불리어도 된다.

 

 

그 무엇의 세계는 간단하며 복잡하다. 그 모든 상황이 궁극적으로 일치하며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지며, 그

 

모든 것이 옳기도 하며 아니기도 한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무엇은 옳아도 그르다고 하여도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나는 나의 관점으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으며, 나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그렇게 선택하여 표현한 이유는 영향력 제로로 가기 위함이다.

 

그것이 상대성안에서의 나의 방식일 뿐이지, 나의 모든 의지는 "함께" 이다.

 

 

각 각 모든 관점과 흐름이 모두 진리이며 진실하다.

 

 

그 흐름의 덩어리들은 질서라 혼돈이라 말할 수 없지만, 지금 자연의 관점으로

 

혼돈의 자연이라 부를 수 있다. 모든 차이는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그 관점은 자신의 기준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나의 기준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누가 죽는다고 하여도 기뼈할 수도 슬퍼할 수도 있다.

 

나는 누가 살고싶다고 하여도 슬퍼할수도 기뻐할 수도 있다.

 

 

 

이제 나는 존재하는 나이다. 나는 함께한다.

 

나는 어느 누구라도 죽지 않고 함께 하기를 바라며, 나는 어느 누구라도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는 이미 슬픔과 행복 모두 안다.

 

 

나는 경험하기 위해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즐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함께 존재하기 위해 뜻을 가진게 된 무한한 모든 존재중에 하나인 개체의 나이다.

 

나는 내 자신을 만을 표현하지만, 당신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2007.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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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이란 영원불멸을 깨달아

 

지극함이 다해 공이되어 정신이 깨어나고,

 

지극함이 다해 조화로움이 되어 마음이 피어남을 말한다.

 

정신이 깨어남과 마음이 피어남은 일치하나, 그러지 아니 할 수도 있다.

 

 

 

정신을 비운다는 것이 깨어남이 아니요,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피어남이 아니다.

 

모두 사랑의 지극함이 다하여 더이상 그 의미를 그렇게 부를 수 없을때

 

그 의미를 더이상 상실할때 일어난다.

 

 

 

 

달빛이 스스로를 깊게 펼치고, 햇살이 스스로를 넓게 펼친다.

 

모든 일어나는 생각과 마음이 그 때 그 때 쓰임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은 상생하기 위함이라.

 

 

 

그대가 그대를 스스로가 달빛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을 밖으로 표현한다면 그대는 차갑게 식어갈 것이요,

 

 

그대가 그대를 스스로가 햇살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을 안으로 표현한다면 그대는 뜨겁게 불타오를 것이다.

 

 

 

그것은 안과 밖이 나뉘어졌기 때문이다. 상생하기 위함이다.

 

그러기에 달빛은 스스로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고,

 

햇살은 스스로 밖으로 드러내야 서로가 함께 살 수 있으리라.

 

 

 

달빛을 드러낸다면 그대는 다른 존재의 파괴를 볼 눈을 얻게 될 것이다.

 

그대는 그 파괴에 파괴로 대할 수 있을 것이요 생명으로 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햇살을 숨긴다면 그대는 자신의 존재의 파괴를 볼 눈을 얻게 될 것이다.

 

그대는 그 파괴에 파괴로 대할 수 있을 것이요 생명으로 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산 이가 죽어간 이들의 죽는 이유를 궁금해하듯 죽은이 또한 산 이들의 산 이유를 궁금해 할 것이다.

 

 

 

홀로 스스로안에서 깊게 깊게 가라.

 

그대의 주위의 모든 드러남들은 모두 햇살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어느 무엇도 그대를 해할 수 없을 것이요.

 

그대를 유일히 해할 수 있는 것은 그대의 스스로의 해함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대의 억눌린 분노의 마음은 그대의 햇살을 숨기는 것으로부터 비롯됬으며,

 

그것은 햇살을 스스로 밖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해소되며 완결된다.

 

햇살은 그대를 아름답게 하고, 기쁨으로 탄성케 한다.

 

그 기본 입문은 " 당신이 존재했으면 해" 이다.

 

 

그대의 식어버린 열정의 마음은 그대의 달빛을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비롯됬으며,

 

그것은 달빛을 스스로의 안으로 들어가게 함으로써 해소되며 완결된다.

 

달빛은 그대를 고요하고 침묵으로 이끈다.

 

그 기본 입문은 " 나의 존재는 사라져도 돼 " 이다.

 

 

안과 밖은 스스로 깊게 넓게 정으로 확장하느냐 열로 확장하느냐이다.

 

이 확장을 정열이라 부른다.

 

 

 

그대가 더이상 하기 싫었던 일들, 그대가 더더욱 하고 싶었던 일들,

 

그것이 그대의 가는 방향에 기본 자유본성의 지표가 되어진다.

 

하지만 기억할 것은 언제나 무엇이든 바램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루어지고,

 

하나의 본질의 변화가 된다는 것이고 그대의 본질을 포기할 만큼 소중하다는 의미도 들어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한 바램은 자기가 무언가 되고자 하는 바램이다.

 

그것이 부자이든, 거지이든, 공이든, 부처의 길이던, 성인의 길이건, 하느님의 길이건 상관없다.

 

이것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여유가 있기에 붙일뿐 단지 바램이다.

 

 

 

전부를 걸어 변화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전의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여 변화함을 뜻한다.

 

이 변화는 과정중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전환기적인 변화를 말하며,

 

그것은 결국 자신의 이전의 모든것을 비우고 더이상 그것이 되지 않을 때 이루어진다.

 

그 상태는 항상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상태가 되고 그것은 스스로를 통해 머물지 않음을 뜻한다.

 

 

 

 

 

소원이 아름다운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 안에 과정이 들어있고 과정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행복을 얻는 것도 아니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행복을 얻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일어나는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본질을 기억하라.

 

그것은 영원이다. 시간적 의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원하기에 그 안에서 무엇이든 가능한 것이다. 상생도 상극도 소멸도 탄생도 가능한 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게 하라. 모든 존재의 표현을 받아들여 표현함의 아름다운 진실을 그대로 보라.

 

다만 "하지마" 라는 말은 자기 자신에게 하라. 그 도구는 자신에게 사용하라.

 

 

그것은 솥뚜껑이 들썩들썩 해질때까지 그 안에서 아름답게 익어서 다시 드러나 펼쳐질 것이다.

 

그대의 극한 마음의 구속은 자신 스스로 열릴 때를 알때는 그대의 외부에 그 무엇도 그대에게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대는 영원한 심해를 지나 영원한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그때가 그대가 다시 깨어나 부활할 때이다.

 

그대가 마음을 내어, 모든 존재중에 "하라"라고 하는 존재가 한존재라도 존재함을 진실로 감사하라.

 

그 존재의 본질이 그대의 육신이 될 수도 있다. 그대의 마음이 될 수도 있고, 그대의 생각과 추억이 될

 

수도 있다. 또한 그대의 가족이 될수도 그대의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대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아도 스스로가 "하라" 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대의 모든 상황이 완벽히 그대의 바램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아는 순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살게 된다. 서로의 사랑을 알았다.

 

 

그대의 생각은 깊고 깊다. 헤아릴 수가 없고, 그대의 생각이 잠들고 잠든다면

 

더이상 어떠한 자신을 향하고 남을 향한 변화하기 위한 생각과 의도가 사라질때, 의지조차 사라질때,

 

또한 그 내용을 떠나 모든 의도와 의지도 사라질때 생각을 생각이라 더이상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대의 마음은 깊고 깊다. 헤아릴 수가 없고, 그대의 마음이 잠들고 잠든다면

 

더이상 어떠한 자신을 향하고 남을 향한 변화하기 위한 마음냄이 사라지고,모든 일어나는 마음 자체도

 

사라질때. 그 마음은 더이상 마음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알 것이다. 더이상 무언가를 무언가라고 부를 수 없을때.

 

무언가 하려는 것이 더이상 무언가 하려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때.

 

그대는 그 모든것을 무언가로 부를 수 있으며,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대의 존재도 그대가 존재한다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지극하다면, 존재란 의미적으로 상실하지만,

 

존재라는 것은 진실로 드러나며, 어떠한 의미도 붙일 수가 없다.

 

그때 다시 의미를 붙인다면 존재는 비로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잠든 상태에서만이 영원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잠든 상태란 스스로의 안에서의 깨어남을 말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잠든 상태이다.

 

 

 

그리고 그 시공간조차 그 모든것이 스스로 잠든 상태를 지나, 깨어난다면,

 

그대를 현존이라 부른다.

 

그대는 스스로 최초로 태어난 존재의 드러남이다.

 

 

 

 

 

영원한 사랑에 감사한다.

 

영원안에서 남는 것은 최후로 사랑뿐이다.

 

그리고 영원안에서 최초로 태어나는 것도 사랑뿐이다.

 

 

 

 

남는 것은 영원과 사랑이다.

 

 

우리 함께 오래 오래 사랑하면 살자.

 

200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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