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대천사라고도 불리며 집단의식의 근원이며 집단의식을 운영 관리합니다.
이 집단의식이라는 개념은 독립(절대성의 부처들의 자유의지를 갖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개체성으로 인한 독립을 뜻함)한 생명체들이 그 영역안에서 서로 뜻을 모아 가족이라면 가족, 친구라면친구, 사회, 나라, 지구, 태양계, 은하계, 우주계 등등
단지 영역이 넓은 그리고 더욱 자신과 닮은 이들의 집단적 선택을 하는 단계를 뜻합니다.
그곳에서의 최종선택은 대표가 하든지 아니면 전 생명체가 다수결로 하든지 상관없습니다.
즉 대변할 수가 있고 그 모인 이들의 뜻이 그 최종선택에 수렴하여 무조건 나아가게 되는 방향이 집단의식의 성질입니다.
여기서 소수의 의견은 완전히 묵살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지구 인류가 하나님이라는 의식을 수용한다면 하나님이라는 의식이 실존하는 것이 아닌 허상입니다.
즉 인류의 집단의식의 합집합이 하나님이라는 의식이고, 그 하나님이라 불리는 집단 의식은 가브리엘 대천사의 영역에서는 한명의 아이에 불과합니다. 즉 새로 인류에 의해 태어난 집단의식이라는 뜻이죠.
지구 인류가 쓰는 하나님은 가브리엘 대천산의 아이입니다.
아주 분별하기도 단순합니다. 자신 스스로가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으면 이 흐름은 언제나 옳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인지 주위에 물어볼 필요도 없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상대성안에서 가장 큰 힘을 작용하는 것이 집단의식이지만 절대성안에서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대부분 가브리엘 의식은 머리에서 이해하고 분석하는 단계입니다.
즉 자신이 분별하는 것은 자신이 속한 영역의 집단의식을 분석하는 것이죠. 실체를 찾는 부처나 그리스도들의 방향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짜찝고, 어떻게 분리하고, 어떻게 완전한 하나인 상태로 발전하는 가에 그 목표가 있습니다.
여기서 완전한 하나인 상태로 발전하는 것은 가브리엘의 비전이고, 실질적으로 그 아이들이 사용하는 것은 이미 그것을 짜집고 분석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향성에만 촛점이 맞혀있습니다. 절대로 이런 집단의식안에서는 하나를 이룩하지 못합니다. 왜냐면 집단의식 내부에 있는 이들이 이미 너는 무엇이다 너는 무엇이다 너는 무엇이다 라며 자신의 내부가 아닌 외부로 경계를 만들고 그것은 결코 그 집단의식을 자신은 빠져 나갈 수 없음을 뜻합니다.
이 집단의식을 잘 들여다 보면 집단의식은 허상입니다.
어차피 개인 개인이 모여 이루어진 집단도 어차피 개인 개인은 집단의식과 상관없이 고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생명체들이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그냥 자연스럽게 함께 살면 되는데
그것이 이미 어떤 다민족이나, 다국가, 다지구, 다은하, 어떤 여러 소속에 매여서 함게 살게 되는 상황이 되면
그 상황에서의 집단의식이 탄생하는 것은 그 집단의식자체가 하나성을 뛰는 것이 아닌 분열성을 뛰게 됩니다.
그 상황이 정확하게 시간이 흘러 집단의식이 커지게 되면 이 새롭게 성장한 집단의식 생명체 내부의 생명체들은
똑같이 분열성을 겪게 됩니다.
이 집단의식을 잘쓰면 약이고 못쓰면 완전한 독이 됩니다.
독이 된다는 것은 당신이 이 집단의식에 갇혀 어떤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도 없는 상황까지 초래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독이 깊이 잠식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무언가 자신이 앗! 이것이다 라는 느낌을 순수하게 다른 사람에게 표현했을때 아마 무조건적인 분석과 이미 있는 자료를 토대로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비교할때면 이미 소통불가라는 것을 아십시요.
(본래 앗! 이것이다 라는 것이 나오면 앗! 정말로 이런것은 바라지도 않고 그냥 자신이 판단하기 앞서서 먼저 느껴보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 상황에 더 최악으로 치닫게 되면 시간적인 순서를 들 수 있는데 "내가 먼저야 내가 먼저 했어 내가 먼저 말했어" 라는 쓰잘데 없는 우물안 개구리방식의 대화나 또 지구상의 나이로 내가 먼저태어났으니 내가 너보다 이미 더 잘알고 알것도 더 많다라는 어떤 자신의 소속에서의 입지를 완고히 하려는 아주 미약한 권위의식까지 들어가게 되면 집단의식이 이미 돌처럼 꽉막힌 상태라는 것임을 인식하십시요. 아마 자기 자신이 숨이 막힐 겁니다.
안좋은 권위로써의 나이라는 것도 지금 인류가 착각하고 쓰고 있는 것인데 나이 앞에 나이가 아닌 "지구나이" 를 붙이면 간단히 해결됩니다. 지구에 와서 얼마큼 살았다 딱 그정도면 그 숫자는 순수해집니다. 서로 존중해 줄수도 있게 되구요.
다시 돌아가 이 집단의식의 흐름은 가브리엘 이 창조했는데.
그것은 스스로 내부 분열을 통한 그 내부분열에 대한 내맡김 그리고 그 내부생명체의 진화와 전체성의 새로운 변화를 이룩하는 과정속에서 하나라는 실체보다는 하나라는 의식을 만들기 위한 흐름입니다. 의식이니 보통 머리에서 작용이 됩니다.
머리에서 어떤 새롭게 인식한 대상을 포함하려는 의지가 나오면 그것은 다 가브리엘 흐름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한국이라면 한국의 집단의식의 가브리엘의 자식이 있고 다른 나라들도 모두 다 집단의식이 에너지적형태로 다 존재합니다.
이것들은 모두 가브리엘의 자식들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어느 영역에 있든지 스스로라는 것이 스스로에게 있다면,
가브리엘의 자식이 아닌 자신은 고유의 생명체가 됩니다.
이 고유의 생명체들이 만드는 것은 고유의 별자리입니다. 가브리엘은 별자리를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것과 비슷하게 구현은 하더라도 항상 내부에서 분열되기에 항상 그 형태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고유의 생명체들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한 별자리들은 진정한 하나를 이룩하게 되고,
그 진정한 하나는 어떤 형상을 만들게 되고, 사자자리면 그 내부에 사자형태의 생명들이, 곰자리면 그 내부에 곰의 생명들이 태어나게 됩니다. 즉 고유한 생명체들은 개인적이면서도 완전한 뜻과 마음의 일치를 이룸으로써 그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지구에 사람형태로 살고 있는 것은 지구를 포함한 우리 태양계가 에너지적으로 사람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지구 수성 금성 ..모두 사람형태입니다.
가브리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없앨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약이 되는 경우는 스스로 가지 않는 상태에서도 여러 다른 존재와의 만남을 강제적이라도 강요할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즉 해외에서 같은 한국사람이면 더욱더 반가운 느낌등입니다.
또 다른경우는 2002년도 월드컵때의 한민족을 보시면 됩니다. 한순간에 단합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가브리엘은 자신 내부에서 부분으로 잘 쓰십시요. 좋게 쓰면 좋고, 나쁘게 쓰면 나쁩니다.
항상 무엇이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흐름이 중요한데, 어떻게 자신 스스로를 돕고, 다른 이들에게도 스스로 도울 수 있는 흐름일까가 중요할듯 하군요.
자신이 주인공이 되십시요.
(현재 기독교나 불교를 비롯한 모든 기성 종교는 어떤 그 내부적인 실체보다는 각 종교의 집단의식의 가브리엘 아이들이 존재하고 그 목사나 보살이나 모두 그리스도나 부처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닌 가브리엘의 자식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것도 판별하기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 영역에 가서 항상 배워야만 하며, 또 어떤 좋은 방법으로 어떤 성경이나 법문등의 방향보다 더 좋은 인류의 방향제시를 하는 것을 용납 안합니다. 서로 좋은것은 더욱 발전시켜야 무언가 이루어져도 이루어지는데 이런 집단의식안의 기계가 된 자식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집단의식의 독이된 자식들이죠. 그 종교의 시조의 실체와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다시 말합니다. 이런 종류는 모두 다 가브리엘의 자식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