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교설은 권교방편(權方便)이고 다섯번째 교설은 원교로써 실교(實敎)이다.
만약 원교를 실(實)이라 정하면 전자의 네 가지 교설은 부족함을 뜻하고 또 원교가 될수 없다.
만약 오교(五敎)를 다 갖추어 전한다면 원교(圓敎)가 두루 함께 편재함이다

근기에 맞춘 방편이기에 원교 밑에 전자의 네 가지 교행문(敎行門)을 함축하고 있는것이다.

원교 수행을 두 가지로 분석할수 있다.
하나는 비로법계를  깨달음이요, 다른 하나는 보현행해이다.

  비로법계의 깨달음

비로법계란 화엄경에서 나온 말이며 일진무장애법계  혹은 일심(一心) 이라 한다.

일심[一心] 가운데
본래 삼세간(三世間)과 사법계(四法界) 그리고 일체 현상계의 오염과 청정
혹은 현실과 이상의 존재들을 다 갖추고 있다.

세간의 한 가지 법도 이 법계를 떠나서 존재할수는 없는것이다.
일심법계일체 범부 성인의 근본진심(根本眞心)  혹은 근본진신(根本眞身)이기도 하다.
 
대체로 진심(眞心)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동교진심(同敎眞心)이요,  다른 하나는 별교진심(別敎眞心)이다.
그리고 동교진심에 또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종교진심(終敎眞心)이고  다른 하나는 돈교진심(頓敎眞心)이다.


 1. 동교진심(同敎眞心)
 
  종교진심(終敎眞心)

우리들 본래의 진심은 허공보다도 크고 일체 세계를 다 함축하고 있음이다.
또한 경에 이르기를 공(空)은 대각(大覺) 가운데 있다. 라고 했다.
마치 바닷물이 파도를 일으키듯 티끌의 세계가 다 허공 내에 있는것이다
대각은 진심의 다른 이름이다.
진심은 광대 무변하여 마치 바닷물과 같고 허공의 크기를 비유하면 파도의 물거품과 같은것이다.
그러나 모든 국토가 허공 내에 있다.
만약 이 (허공) 를 진심에 비유해 본다면 작고도 작은것이다.
 
또한 경에 이르기를 진심이 시방세계를 다 머금고 편재해 있다 고 했다.
일체 세상의 모든 물건들이 모두 보리 진심이다.
 
그대의 사대의 몸과 생각의 마음을 요달할것 같으면
인과 연으로 말미암아 생멸하는 현상적 존재는 본래 무자성이고 모두가 진심(眞心)이다.
이는 마치 파도의 물거품처럼 그 모두가 다 해수(海水)인것이다.


 돈교진심(頓敎眞心)

돈교진심을 절대 일심(一心) 이라고도 한다.
이 일심은 청정하여 타(他)가 없으므로 일체 망상은 본래 없는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절대 진심을 본래 청정한것이다
 
화엄경에서 이르길
법성을 원래 공하고 적정하여 취하는 바도 없고 또한 집착하는 바도 없다 고 했다.

즉 자성은 공(空)이요, 공은 무자성(無自性)이라 이를 성공(性空)이라 한다.
성공은 즉 불(佛)이라 이는 생각의 사량으로 헤아려 얻는것이 아니다.
<기신론>에 이르길
일체 모든 현상(法)은 원래 말을 여의고 문자를 여의고
생각의 상을 여의었고 절대평등하고 변화가 없고 파괴되고 무너지는것이 아니다.
오직 일심[一心]인 고로 이름이 진여(眞如)이다라고 했다.


 2. 별교진심[別敎眞心]

별교진심은 일진무장애법계심(一眞無障애 法界心)을 말하고 삼세간과 사법계를 구비하고 있다.
일체 모든 자타(自他)에 걸림이 없어 시방의 법계를 다 융섭하고 있다.
모두가 일진대법계심(一眞大法界心)이고 이 일진대법계심 내에 있는것이다.
일체 모든 범부, 성인, 진리세계[理] 현상계[事]가 하나의 법에 있고
또한 모든것이 다 일진대법계심이고

더 나아가 하나의 미진한 현상계 엮시 모두 다 이 법계심 인것이다

화엄경에서 이르길 화장세계에 모든 현상계가 들어 있다고 했다.
하나 하나의 작은 세계가 법계에 있고
       또 하나의 작은 세계가 대법계심이고 이 작은 세계가 대법계 내에 있다.

다시 이 하나의 작은 세계 엮시 모두 대법계심인것이다.
공간과 시간이 모두 중중무진(重重無盡)이고 중중무진 엮시 모두 대법계심이다.

고로 청량대사는 화엄십지품소에서 제망무진(帝網無盡)  일심(一心) 이라 말했다.
일체 중생이 무시이래로부터 미혹되어 무진법계가 자신의 몸인 줄을 모르고 있다.
자신의 몸에 제망무진의 색심(色心)의 공덕을 구비하고 있는것이다
즉 비로자나신심 등이 자신의 무장무애불의 신심(身心)인데 전도되어 잡스러운 중생이 된것이다.

이러한고로 구경의 불과(佛果)를 얻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이 비로법계를 깨달아야 한다
만약 이 법계를 깨닫지 못하면
다생의 겁을 통한 만행을 닦았다 해도 수고로움만 있을 뿐
진실한 보살이 될수 없고 또한 여래의 집에 태어날수도 없느니라
.

 
고로 화엄경에서 이르길 자신의 마음도 모르면서 어찌 정도(正道)를 알꼬?
중생은 지혜가 전도됨으로 말미암아 일체 악을 증장시킨다고 했다.
청량대사는 이 깨달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하는 행은
모두 진리가 아니고 그 자신이 닦는 수행이 원래 번뇌의 업이다
라고 했다.

무진법계일심을 아는 자는 아주 적다.
설사 안다 해도 또한 믿음이 적고 또 믿음으로 이를 안다 해도
이 경지의 구경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고로 다생의 겁을 닦은 보살도
믿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상수 제자 성문승도 맹인같고 벙어리와 같다.

숙세에 원근을 닦았다면 이것을 주의해 알라!
만약 능히 믿고 깨닫고 이해한다면 그는 물론 불가(佛家)에 태어나리라.

                                                 ㅡ어떻게 성불할것인가   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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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 파라 깊이 파라. 얕이 파면 다 죽는다!

잘못하다가는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란 말이다!  알겠느냐? 도로 본자리에 떨어진단 말이다!
 
닦고 또 닦으며 파고 또 파거라!
얕은것이 가장 큰 한(恨)이 되리라.
세상에 생이지지(生而知之)란 없느니라.
천지도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는데에는 큰 공부를 들이느니라!

일심[一心]을 가진 자는
한 손가락을 퉁겨 능히 만리 밖에 있는 군함을 깨뜨리느니라! 
 

心外無理하고 理外無事라. 一心之理로 盡貫衆理호대
學者는 進德修業에 必以天地聖人을 爲法焉하라.
 
마음 밖에 도가 없고, 도 밖에 일이 없다.
그러므로 일심[一心]의 도로써 여러 도리(道理)를 관통함을 다해야 한다.

배우는 사람은 진덕(進德)을 수양함에 있어서 반드시 천지와 성인을 법도로 삼아라!
 
 
이 일은 남조선 배질이라.
혈식천추 도덕군자의 신명이 모두 이 배 안에 탔느니 전명숙(全明淑)으로 도사공을 삼았느니라.
한 종도가 여쭙기를 증산님이시여
어떻게하면 여러 신명으로부터 가장 존귀한 경모를 받고 사람으로부터는 만세의 혈식을 받는
도덕군자가 될수 있으리이까?

      하니 증산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심[一心]하나에 있느니라.
일심[一心]지고지순한 자리이며
맑고 고요하여 눈부신 빛과 천지를 함께하는 기쁨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자리
이니,

이 자리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어려운 신산고초가 따르리요
수심으로 일심에 이르기도 어려우려니와 나를 믿으며 나의 가르침에 쫓아 일심을 지키기는
또 얼마나 힘든일이겠느냐?

크도다 일심[一心]의 위대한 덕이여 사람이 일심[一心]이 없다면 이 배에 탈수는 없는것이니라!
 

오직 일심(一心)을 가지라
일심(一心)이라 하는것은 능득능광(能得能光)한 것이니라.
 
날아 가는 반딧불 빛도 반드시 그 몸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것이니
너희들도 한 마음(一心)을 찾아라.
한 마음(一心)이 없으면  너도 없고 또한 나도 없느니라!
 
세간에 나를 살려줄것은 삼인일석(三人一夕)이다.
라는 말이 있사온데 과연 그러하오이까 하니
증산님께서
마음을 일심(一心)으로 닦고 덕을 닦아라!  하고 말씀하시니라.

 
마음닦는 일이 더 급하니라.
마음 닦는 공부를 조금도 하지 아니하고 때가 오기만 기다려서 무엇을 할것이더냐
한 종도가 간곡한 목소리로
수심(修心)이라 하오면 무엇을 이르심이오이까?  하고 여쭈니
 
망심(妄心)을 버리고 청정(淸淨)을 얻음이니 청정을 얻은 뒤라야 진도(眞道)에 드는것이니라.
진도에 이르러서 비로소 일심(一心)을 얻었다 할것이니
일심(一心)이 아니고서야 어찌 천청(天聽)에 나아가겠느냐?

망녕되이 허령(虛靈)에 사로잡혀서 도인(道人)을 오도(誤導)한다면
그도 불행이요 따르는 자들도 불행이니라.

 
큰 운수를 받으려는 자는 서전서문(書傳序文)을 많이 읽으라!

                                                                        ㅡ 마스터 증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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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제 3왕의 다스림은 도(道)에서 비롯하고 2제 3왕의 도는 마음에 근본을 둔것이니
바로 그 마음을 체득하면 도와 다스림을 진실로 얻었다고 말할수 있으리라.
무슨 까닭인가? 
오직 일심(一心)을 갖고 중용의 도를 취함은 요, 순, 우가 서로 전한 심법(心法)이요
중정(中正)의 도를 세워 만민의 삶의 푯대를 세움은 상의 탕과 주의 무왕이 서로 전한 심법이니
무릇 덕과 인과 경과 성은 비록 말이 비록 서로 다를지라도 이치는 곧 하나이니,
다 이 마음의 신묘함을 밝히지 않은바가 없느니라!            [서전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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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今爲遣此二種疑  立一心法  開二種門  立一心法者 遣彼初疑  
明大乘法唯有一心  
一心之外更無別法   但有無明迷自一心   起諸波浪流轉六道  雖起六道之浪  不出一心之海  良由一心動作六道  
故得發弘濟之願  六道不出一心  故能起同體大悲  如是遣疑  得發大心也  

그러므로 이제 이 두 가지 의심을 제거하기 위해서 일심법을 세워서 두 가지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일심법(一心法)을 세운다는 것은 그것은 처음의 의심을 견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승법은 오직 일심(一心)만이 있는 것이며,
 
일심을 제외한 그밖에는 다시 다른 법이 없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다만 무명(無明)이 자신의 일심(一心)을 미혹하고 모든 번뇌현상(波浪)을 야기해서
육도(六道)에 유전하도록 한 것이 있을 뿐이다.
비록 육도의 번뇌현상을 일으켰다고 하더라도 일심의 바다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진실로 일심(一心)이 움직여서 육도(六道)를 만들었기 때문에
널리 구제하는 서원을 발생할 수 있고
육도(六道)는 일심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능히 동체대비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심을 제거하면 대승적인 마음(大心)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대승기신론]

[經] “일각(一覺)의 뚜렷한 뜻은 이해하기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렵다.
         모든 2승(乘)들은 알거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부처님과 보살만이 이를 알 수 있다.”
[論] 여기서부터는 두 번째인 소관법(所觀法)을 표시한 것인데 두 구절로 나뉜다.
             나는 소관법의 심오함을 직접 표시한 것이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이 심오한 법을 설하신 것이다.

          '일각의 뚜렷한 뜻[一覺了義]'이란,
           일심(一心) · 본각(本覺) · 여래장(如來藏)을 뜻한다.  이보다 더 심오한 법은 없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어려움[難解]'이란
                     그 뜻이 매우 심오하여 2승(乘)들은 알거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들어가기 어려움[難人]'이란 그 바탕이 매우 심오하여
       부처님과 보살이라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뒤의 구절로써 앞 구절을 풀이하건대, 첫부분에서
      '부처님의 지혜는 진실한 법상에 들어가 있다'고 말한 것이 바로
                         일심·본각·여래장법임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능가경(楞伽經)}에서 "적멸(寂滅)일심(一心)이라고 하고, 
                                                     일심(一心)여래장(如來藏)이라고 한다"고 하였는데,

       지금 이 글에서 진실한 법상[實法相]이라고 한 것은 적멸을 의미하는 것이요, 
       일각의 뚜렷한 뜻이라고 한 것은 일심여래장(一心如來藏)을 뜻한다.

      {법화론(法華論)}에서는
       "모든 불·여래께서는 그 법(法)의 궁극적인 실상[究竟實相]을 알고 있다.
       실상이란 여래장 법신(法身)의 체를 말하니, 변하지 않는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이 경에서 '일각(一覺)'이라고 한 것은 모든 법이 오직 일심(一心)이요,
       모든 중생이 곧 하나인 본각이므로 이러한 의미에서 일각이라고 한 것이다.     [금강삼매경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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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교진심은 깨달음을 얻었을 때의 진심이다.
다 같은 마음이고 진심인것 같지만 또한 종교 진심의 세계가  있다.
이것은 교 - 즉 종교를  마쳤다 는 의미로 종교에서는 더 이상 배울것이 없는
말 그대로 종교를 졸업한 상태를 의미한다.
동교 진심 - 가르침 - 교를 통해 갈수 있는 경지이다.

그리고  별교 진심이 있다.
동교 진심이 교과서를 통해서 갈수 있는 경지라면
별교 진심은 교과서를 넘은 가르침을 통해 갈수 있는 경지이다.
교외 별전이라고 하면 가르침이나 교를 버려야 하는것으로 오해하는데서
오늘날 한국선의 오류가 있다.
그것은 교학을 버려야 하는것이 아니라 교내의 교과서적 가르침을 다 배우고 나서
또다른 별도의 가르침이 있다는것이지 교와 학을 버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교의 안과 밖이 모두 중요하며 현밀이 쌍수되어야 하며
이렇게 될때 비로서 진실된 수행[여실수행(如實修行)]이라 할수 있다.

석가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교외 별전이 있어
이 비밀한 가르침을 통해 얻을수 있는 마음 이 별교 진심이다.

여기가 진실한 가르침이고 등정각 - 정각[正覺 ] - 무등등 - 위없는 깨달음[무상각]
진실되고 바른 깨달음이 있는곳이다.
이때의 상태를 비밀 장엄심 - 무상 비밀승심이라고도 한다.
이와같이 불교의 맨 마지막 공부에는 비밀이란 말이 붙는다.

우리는 한평생 선행과 이웃에 봉사를 실천한 어느 수녀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그와같이 헌신과 사랑을 한 평생 실천했음에도
그는 신의 존재를 놓고 내적 고통과 고뇌 회의를 품고 있었다.

청량대사가 말한것을 다시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 이 깨달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하는 행은
                   모두 진리가 아니고 그 자신이 닦는 수행이 원래 번뇌의 업이다. 
           구경의 불과(佛果)를 얻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이 비로법계를 깨달아야 한다
           만약 이 법계를 깨닫지 못하면
           다생의 겁을 통한 만행을 닦았다 해도 수고로움만 있을 뿐
           진실한 보살이 될수 없고 또한 여래의 집에 태어날수도 없느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