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소리
라마스 : 신앙[信仰] 이란 무엇입니까?
예수 : 그것은 인간이 신[神] 이되는 생활에 이르기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구원이란 인간의 마음에서 신의 마음에 이르는 사다리로
구원에는 3 단계가 있습니다.
* 첫째는 신념 [信念]으로, 이 것은 아마 그것이 진리일 것이다 생각하는 것
* 둘째는 신앙[信仰]으로, 그것은 진리를 아는 것
* 셋째는 완성[完成], 즉 진리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신념은 신앙속에서 사라지고 신앙은 완성속에서 사라지며 , 그럼으로써
자기와 신[神]이 하나될 때 구원을 받습니다.
ㅡ 성약 성서
♡ ♤ ♡ ♡ ♡ ♡ ♡ ♡ ♡ ♡ ♤ ♡
믿음이란 평범한 사람이 성현들의 말씀이나 지혜를 처음 들었을 때
그분들은 깨달음의 세계를 체험했고 알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평범한 사람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그분들의 말씀을 우선 믿는것입니다.
그렇다고 사이비 교주가 한 말을 무턱대고 믿을수는 없겠지요
자신이 그동안 구도활동이나 정보활동을 한것을 바탕으로 어느정도 나름 진리일것이라고
생각하는것을 선택하겠지요
예수님은 이 단계에 대해서 아마도 그것이 진리일것이다 라고 생각하는것이라고 하였읍니다.
어쨋든 이 단계는 자신으로서는 아직 알수없고 체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선배들의 말씀을 믿고 따라가는 단계입니다.
농부가 봄에 땅에 씨앗을 뿌리면 수확을 할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씨앗을 뿌릴수 없을것이고
그러면 엮시 가을에 풍성한 수확도 없겠지요
불교에서 신해수증( 信解修證)이라 하여 엮시 믿음의 단계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사다리중 두번째 즉 신앙 - 진리를 아는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신해수증의 해[解] 에 속합니다.
천수경의 원해여래 진실의[부처님의 뜻을 진실되게 해석하여 알기를 원하나이다] 하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단계에서 신념은 신앙 속에서 사라진다고 하셨읍니다.
우리가 어떤것을 바르게 알면 그것은 더 이상 믿을 필요나 믿고 자시고 할것이 없읍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 가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구상에 존재할수 있는 나라라고 믿을수 있지만
미국에 다녀온 사람은 더 이상 미국을 믿고 자시고 할 필요나 이유가 없는것입니다.
그저 그것은 그러한 나라가 있다고 자연히 아는것이 되어 버립니다.
이것이 구원에 이르는 사다리중 두번째 단계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세번째 단계를 예수님은 진리 그 자체가 되는것 - 완성 이라고 하셨읍니다.
불교는 수증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읍니다.
우리가 진리를 더 이상 믿고 자시고 할것없이 바르게 알아서
그것을 수행하는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옳바른 실천 수행을 통해 증득
성현 선배들이 체험하셨던것을 우리가 직접 체험하고 증득하는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외에 믿음을 다른 차원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할수 있읍니다.
그것은 양자의 알갱이는 우리가 믿음 - 인식이 없이는 튀어나오거나 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우리가 믿을 때 그것은 존재합니다.
이것은 진리나 영성 하느님을 추구한다면 기본적인 요구사항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기본인식 믿음
- 그것에 대한 인정 - 인식이 없다면
적어도 그 사람에게만큼은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을것이기 때문입니다.
기공을 연마하려면 적어도 기의 세계를 인정해야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에게는 기 란 존재하지 않을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기공을 연마할수 없을것입니다.
그러지까 이것은 단순한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의 원리와도 같은것입니다.
요가의 문파 중에는 믿음의 요가나 순수 학문을 통한 지혜 요가 가 있읍니다.
믿음요가란 말 그대로 하나님에 대해 깨달음의 상태에 대해 내 자신이 깨달았다고
믿어 버리는것입니다. 그것을 정말로 그럴수만 있다면
내가 깨달았다고 정말 순수 100% 믿을수만 있다면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러한 믿음을 쉽게 가질수 없기 때문에
수행을 통해 단계적으로 접근하게 되고 다양한 수행법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지혜요가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것 은 우리가 생각하는것대로 창조되어지기에
하나님이란 어떤것이다!
깨달음의 세계란 어떤것이다 를 철저히 학문을 통해 정밀하게 접근해들어가면
그 앎 - 인식 - 생각대로 무엇인가가 창조되어지기에 그것 엮시
깨달음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편문이 됩니다.
보통은 지혜 요가 하나만 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창조 원리에 의해서
자신의 수련에 있어 어떤 반응을 보이거나 체험을 하기 때문에
공의 세계나 깨달음의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는 바르게 알고 수행하는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더욱이 중요한것은 잘못된 앎이나 영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수행하면서 그러한 잘못된 세계가 창조되어 나타나지거나 체험되기 때문에 영적세계에 대해
옳바른 체계를 잡고 바른 지식을 사전에 포석해 놓는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초기 단계에 실재 수련에 앞서 이러한 공부 과정은 반듯이 포함하게 됩니다.
♡ ♤ ♡ ♡ ♡ ♡ ♡ ♡ ♡ ♡ ♡ ♤ ♡
신앙이란 성리[이치]와 더불어 해야지 분리된즉 미신이 되느니라!
ㅡ 마스터 증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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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스 : 신앙[信仰] 이란 무엇입니까?
예수 : 그것은 인간이 신[神] 이되는 생활에 이르기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구원이란 인간의 마음에서 신의 마음에 이르는 사다리로
구원에는 3 단계가 있습니다.
* 첫째는 신념 [信念]으로, 이 것은 아마 그것이 진리일 것이다 생각하는 것
* 둘째는 신앙[信仰]으로, 그것은 진리를 아는 것
* 셋째는 완성[完成], 즉 진리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신념은 신앙속에서 사라지고 신앙은 완성속에서 사라지며 , 그럼으로써
자기와 신[神]이 하나될 때 구원을 받습니다.
ㅡ 성약 성서
♡ ♤ ♡ ♡ ♡ ♡ ♡ ♡ ♡ ♡ ♤ ♡
믿음이란 평범한 사람이 성현들의 말씀이나 지혜를 처음 들었을 때
그분들은 깨달음의 세계를 체험했고 알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평범한 사람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그분들의 말씀을 우선 믿는것입니다.
그렇다고 사이비 교주가 한 말을 무턱대고 믿을수는 없겠지요
자신이 그동안 구도활동이나 정보활동을 한것을 바탕으로 어느정도 나름 진리일것이라고
생각하는것을 선택하겠지요
예수님은 이 단계에 대해서 아마도 그것이 진리일것이다 라고 생각하는것이라고 하였읍니다.
어쨋든 이 단계는 자신으로서는 아직 알수없고 체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선배들의 말씀을 믿고 따라가는 단계입니다.
농부가 봄에 땅에 씨앗을 뿌리면 수확을 할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씨앗을 뿌릴수 없을것이고
그러면 엮시 가을에 풍성한 수확도 없겠지요
불교에서 신해수증( 信解修證)이라 하여 엮시 믿음의 단계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사다리중 두번째 즉 신앙 - 진리를 아는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신해수증의 해[解] 에 속합니다.
천수경의 원해여래 진실의[부처님의 뜻을 진실되게 해석하여 알기를 원하나이다] 하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단계에서 신념은 신앙 속에서 사라진다고 하셨읍니다.
우리가 어떤것을 바르게 알면 그것은 더 이상 믿을 필요나 믿고 자시고 할것이 없읍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 가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구상에 존재할수 있는 나라라고 믿을수 있지만
미국에 다녀온 사람은 더 이상 미국을 믿고 자시고 할 필요나 이유가 없는것입니다.
그저 그것은 그러한 나라가 있다고 자연히 아는것이 되어 버립니다.
이것이 구원에 이르는 사다리중 두번째 단계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세번째 단계를 예수님은 진리 그 자체가 되는것 - 완성 이라고 하셨읍니다.
불교는 수증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읍니다.
우리가 진리를 더 이상 믿고 자시고 할것없이 바르게 알아서
그것을 수행하는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옳바른 실천 수행을 통해 증득
성현 선배들이 체험하셨던것을 우리가 직접 체험하고 증득하는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외에 믿음을 다른 차원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할수 있읍니다.
그것은 양자의 알갱이는 우리가 믿음 - 인식이 없이는 튀어나오거나 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우리가 믿을 때 그것은 존재합니다.
이것은 진리나 영성 하느님을 추구한다면 기본적인 요구사항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기본인식 믿음
- 그것에 대한 인정 - 인식이 없다면
적어도 그 사람에게만큼은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을것이기 때문입니다.
기공을 연마하려면 적어도 기의 세계를 인정해야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에게는 기 란 존재하지 않을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기공을 연마할수 없을것입니다.
그러지까 이것은 단순한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의 원리와도 같은것입니다.
요가의 문파 중에는 믿음의 요가나 순수 학문을 통한 지혜 요가 가 있읍니다.
믿음요가란 말 그대로 하나님에 대해 깨달음의 상태에 대해 내 자신이 깨달았다고
믿어 버리는것입니다. 그것을 정말로 그럴수만 있다면
내가 깨달았다고 정말 순수 100% 믿을수만 있다면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러한 믿음을 쉽게 가질수 없기 때문에
수행을 통해 단계적으로 접근하게 되고 다양한 수행법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지혜요가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것 은 우리가 생각하는것대로 창조되어지기에
하나님이란 어떤것이다!
깨달음의 세계란 어떤것이다 를 철저히 학문을 통해 정밀하게 접근해들어가면
그 앎 - 인식 - 생각대로 무엇인가가 창조되어지기에 그것 엮시
깨달음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편문이 됩니다.
보통은 지혜 요가 하나만 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창조 원리에 의해서
자신의 수련에 있어 어떤 반응을 보이거나 체험을 하기 때문에
공의 세계나 깨달음의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는 바르게 알고 수행하는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더욱이 중요한것은 잘못된 앎이나 영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수행하면서 그러한 잘못된 세계가 창조되어 나타나지거나 체험되기 때문에 영적세계에 대해
옳바른 체계를 잡고 바른 지식을 사전에 포석해 놓는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초기 단계에 실재 수련에 앞서 이러한 공부 과정은 반듯이 포함하게 됩니다.
♡ ♤ ♡ ♡ ♡ ♡ ♡ ♡ ♡ ♡ ♡ ♤ ♡
신앙이란 성리[이치]와 더불어 해야지 분리된즉 미신이 되느니라!
ㅡ 마스터 증 산
2008.06.15 17:19:04 (*.251.6.69)
흔히 사람들은 종교하면 믿음을 떠올리며 종교와 과학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종교란 알수 없는 미지의 것을 그저 믿는것의 대명사가 되었고
과학이란 철저히 실험이나 실험적 도구를 통해 현실 증명 가능한 그 무엇으로
되었읍니다.
그러나 종교와 과학은 둘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은 종교가 없는 과학 또는 과학이 없는 종교
어느 하나만으로는 절름발이와 같다고 하였읍니다.
그와같이 종교적으로 단순히 믿어야 할 진실들이 아직 과학기술이 증명할만큼
충분히 발전되지 못했을 뿐
언젠가는 과학으로도 증명 가능한 때가 올것이기 때문입니다.
불교를 예를 들자면
3차원 물질계에 속박되어 꼼짝할수 없는 마음과 정신을
어떻게 하면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와 해탈을 얻을수 있느냐 하는
학문입니다.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이 반야 심경이듯이 말 그대로 불교는 마음의 학문입니다.
그러니까 불교란 소립자 이하의 세계와 이상의 세계를 어떻게 다룰것이냐 하는
고도의 초과학이기도 하며
그리고 그러한 세계가 마음과 연계되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느냐
그러므로 마음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냐 하는
말 그대로 심경 - 심법 - 고도의 마인드 컨트롤 기술에 다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진정으로 성불한 사람은 그러한 소립자 이하의 세계에 대해
과학의 세계가 원자 이하의 세계에 대해 발견하기 이전부터 그러한 세계를
알고 있는것은 물론
그것에 대해 설명할수 있어야 한다는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법맥이 끊겼다 함은 그러한 소립자 이하나 이상의 세계가 마음과 연동되어
어떻게 움직이냐를 밝혀 이 육체를 에너지화 하거나
물질과 에너지의 자유 전환 기술을 획득하고 그를 통해 진정한 영적 해방을
얻지 못했다면 그런 사람은 진정으로 삼계를 뛰어넘어 해탈한
자유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육안, 천안(天眼), 성혜안(聖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이 있어서
보살과 전륜성왕은 소립자 이하의 세계를 투시할수 있으며
부처는 진여의 세계를 관할수 있다!
대승이란 무엇이냐?
진정한 깨달음냐 아니냐 깨달음에 대한 시비 논란은 바로 이것으로써
가름할수가 있는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되었던 수피즘이 되었던 불교가 되었던 선도가 되었던
모든 진실된 가르침의 정수에는 바로 빛의 몸의 달성이라는 과제가
핵심으로써 놓여 있는것입니다.
어쨋든 과학이 충분히 발전되기
이전부터 이러한 문제들은 다루어져 왔고
그런것들을 사람들은 쉽게 믿을수 있는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므로 종교란 초보 단계에서는 보통 믿음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종교하면 믿음을 떠올리게 되었으나
단계가 성숙할수록 그것은 실재적 진실이 되고 자신의 현실이 되어
믿음을 넘어가 믿음을 요구하지 않게 되며
진실의 세계에서 그 진실들을 옳바르게 다루고 통제하는 단계를 넘어
진실과 하나 되는 때가 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과학으로도 증명 가능하고 과학기술로써 인류가
그것을 응용할 날이 올것입니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종교란 알수 없는 미지의 것을 그저 믿는것의 대명사가 되었고
과학이란 철저히 실험이나 실험적 도구를 통해 현실 증명 가능한 그 무엇으로
되었읍니다.
그러나 종교와 과학은 둘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은 종교가 없는 과학 또는 과학이 없는 종교
어느 하나만으로는 절름발이와 같다고 하였읍니다.
그와같이 종교적으로 단순히 믿어야 할 진실들이 아직 과학기술이 증명할만큼
충분히 발전되지 못했을 뿐
언젠가는 과학으로도 증명 가능한 때가 올것이기 때문입니다.
불교를 예를 들자면
3차원 물질계에 속박되어 꼼짝할수 없는 마음과 정신을
어떻게 하면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와 해탈을 얻을수 있느냐 하는
학문입니다.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이 반야 심경이듯이 말 그대로 불교는 마음의 학문입니다.
그러니까 불교란 소립자 이하의 세계와 이상의 세계를 어떻게 다룰것이냐 하는
고도의 초과학이기도 하며
그리고 그러한 세계가 마음과 연계되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느냐
그러므로 마음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냐 하는
말 그대로 심경 - 심법 - 고도의 마인드 컨트롤 기술에 다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진정으로 성불한 사람은 그러한 소립자 이하의 세계에 대해
과학의 세계가 원자 이하의 세계에 대해 발견하기 이전부터 그러한 세계를
알고 있는것은 물론
그것에 대해 설명할수 있어야 한다는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법맥이 끊겼다 함은 그러한 소립자 이하나 이상의 세계가 마음과 연동되어
어떻게 움직이냐를 밝혀 이 육체를 에너지화 하거나
물질과 에너지의 자유 전환 기술을 획득하고 그를 통해 진정한 영적 해방을
얻지 못했다면 그런 사람은 진정으로 삼계를 뛰어넘어 해탈한
자유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육안, 천안(天眼), 성혜안(聖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이 있어서
보살과 전륜성왕은 소립자 이하의 세계를 투시할수 있으며
부처는 진여의 세계를 관할수 있다!
대승이란 무엇이냐?
진정한 깨달음냐 아니냐 깨달음에 대한 시비 논란은 바로 이것으로써
가름할수가 있는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되었던 수피즘이 되었던 불교가 되었던 선도가 되었던
모든 진실된 가르침의 정수에는 바로 빛의 몸의 달성이라는 과제가
핵심으로써 놓여 있는것입니다.
어쨋든 과학이 충분히 발전되기
이전부터 이러한 문제들은 다루어져 왔고
그런것들을 사람들은 쉽게 믿을수 있는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므로 종교란 초보 단계에서는 보통 믿음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종교하면 믿음을 떠올리게 되었으나
단계가 성숙할수록 그것은 실재적 진실이 되고 자신의 현실이 되어
믿음을 넘어가 믿음을 요구하지 않게 되며
진실의 세계에서 그 진실들을 옳바르게 다루고 통제하는 단계를 넘어
진실과 하나 되는 때가 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과학으로도 증명 가능하고 과학기술로써 인류가
그것을 응용할 날이 올것입니다.
신성한 과학이었읍니다.
그것은 시대가 흐르면서 왜곡되었으나 진실된 종교에 있어
자연의
비밀적 힘의 지식에 기초한것이엇읍니다.
ㅡ 블라봐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