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신-우주-의 씨앗
모든 영혼은 우주의 마음, 곧 신으로부터 나왔다.
신은 보이는 세계로부터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이르기까지 온갖 차원의 모든 양상으로 살아 흐르고 있는 거대한 의식이다. 우리의 영혼은 전체성과 동일성으로 온 우주를 품고 있는 거대한 의식이 ‘씨앗’을 낳은 것으로, 하나하나의 영혼은 모두가 다 무궁무진한 신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
이 씨앗들이 발아하여 다시금 찬란한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잠시 육의 옷을 입고 들어와 있는 것이 우리들 인간의 삶이다. 씨앗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처음엔 어두컴컴하고 답답한 흙 속에 묻히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언젠가 장엄한 모습으로 활짝 피어날 때를 그리며, 감각과 관념으로 이루어진 육신의 무지 속에서 성숙을 위한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전체적이고 무한한 성품을 지닌 영혼이, 모든 사물을 따로따로인 것으로 밖에는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육신 속에 들어와 있는 묘한 존재가 된 것이다. 전체가 부분 속에, 무한한 것이 유한한 속에, 실상이 허상 속에 들어와 있는 것, 이것이 인간이다.
우리는 부분적이고, 유한하고, 허상으로 둘러싸인 속에서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끊임없이 번민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영혼이 본래 신성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목말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육신의 기능이나 관리하는 것이라면, 이토록 고독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인간은 본래 무한한 존재이기에 육신에 구속되어 있는 이러한 상황을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이런 처지를 극복하기 위해 권능을 행사하고 싶어 하며, 많은 사물들을 가지려 하고, 타인과 합하여 하나가 되고 싶어 애를 쓰게 된다. 이것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 권력이고, 소유이며, 타인에 대한 집착이다.
권력이란 자기 아닌 다른 것들을 자신의 권능 아래 합치게 하려는 것이고, 소유 또한 사물들을 자신의 한 부분으로 만들려는 행위에 다름이 아니며, 타인에 대한 집착도 모든 사람들이 따로따로 존재하고 있다는 고독과 공허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동기에서 비롯된다.
욕망은 감각과 관념으로 이루어진 육적 자아가, 존재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 속에서, 원래 무한하고 전체적인 자신의 본성에 대해 간절한 동경의 마음을 품음으로 인해 발생한다. 인간은 이미 우주만물과 더불어 하나를 이루고 있는 풍요롭고 위대한 존재임에도, 육신의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못나고, 가난하고, 고독한 처지로 여기면서 그러한 상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깊은 갈망에 빠져 있는 것이다.
다른 동물들은 힘에 따라 질서를 유지하고, 배고픈 만큼만 먹으며, 자연의 법칙에 따라 관계할 뿐, 그들에게는 그 이상의 욕망은 없다. 하지만 사람의 욕망은 무한히 계속된다. 세상을 육의 눈으로만 보고 그런 차원에서 모든 것과 하나가 되고자 노력하지만, 그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램이다.
아무리 큰 권력도 대우주를 움직이는 신의 권능은 털끝만큼도 흉내 낼 수 없고,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사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것이며,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난다 해도 실제로는 단 한 사람도 제대로 만나지 않은 것과 같다.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그 다음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며, 이런 식으로 악순환은 끝이 없는 것이다. 매일 매일이 하나가 되고 싶고, 또 그것을 넓혀 가고자 하는 엄청난 노력들로 채워지지만, 그것은 모두 헛된 고생일 뿐이다.
욕망을 달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욕망은 끝없는 헛발질과 같다. 헛발질에 지나지 않는 것을 두고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투고, 속이고, 배신하고, 죽이기까지 한다. 개인 간에도 그렇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욕망은 온갖 혼란과 모순과 불합리와 좌절과 분노와 슬픔과 지상의 모든 고통들을 만들어 내는 도가니인 것이다.
그러기에 되풀이되는 삶을 통해 스스로의 처지를 느끼게 된 소수의 사람들은 드디어 세상을 등지려고 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아예 목숨을 버리는 일까지도 생긴다. 하지만 삶은 결코 부정하거나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 삶에는 그 무게만큼이나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신성을 배태한 ‘신의 씨앗’들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나왔으며, 만물은 각각의 차원과 모습으로 신을 나타내고 있다.
토끼의 씨앗에는 토끼가 담겨 있고, 소나무의 씨앗에는 소나무가 들어 있다. 나비의 씨앗은 나비를 드러내며, 진달래의 씨앗은 진달래를 꽃피운다. 하지만 사람의 씨앗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토끼도 소나무도 나비도 진달래도 다 포함하는 전체성이 들어 있다. 사람은 신이 스스로를 낳고자 하여 생긴 존재다. 우주가 자신의 전 면모를 담아내기 위해 육의 형상으로 출현시킨 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육신은 존재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고 다만 그림자를 보고서 그것을 실재하는 것으로 믿게 한다. 이러한 어리석음은 욕망을 낳고 욕망은 고통을 낳아서, 세상은 깊은 어둠에 잠기고 우리는 오랜 세월 어둠 속에서 성숙을 위한 고된 단련을 받는다.
사람들은 재산과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도전하며, 아이디어를 도출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반영하며 갖가지 사연들을 겪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자라나게 된다. 지식과 경험의 축적은 사고의 폭과 깊이를 더해 주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준다. 희망과 성취, 실패와 절망은 다 같이 그 지혜와 의지력을 풍부하고 강인해지게 만든다.
욕망은 우리로 하여금 배우고 경험하게 하며, 고통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성장과 진보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스스로 욕망과 고통의 이치를 발견하게 되고, 진정한 행복을 모색하며 무지로부터 깨어나고자 애쓰게 된다. 언젠가는 어둠을 타파하고 육적인 한계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신성을 자각할 때가 오는 것이다.
전체성을 깨달은 개별성, 신성이 하나의 점에 응결하여 작용하는 중심점이 되어 ‘본래신’을 그대로 닮은 또 하나의 신이 탄생하는 것이다. 신의 ‘아들’이라고 할까, 아니면 ‘대리인’이라고 할까, 신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들이고 대리인인 존재로, 사람과 자연 만물의 흐름을 관리하고 진보시키는 사명을 부여받는다.
인간은 이렇게 캄캄한 무지로부터 출발하여 결국에는 무한한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로 되어 있는 장엄한 존재다. 토끼는 토끼로서 소나무는 소나무로서 그 한정된 사명을 다하지만, 사람은 전체성을 향한 오랜 여정을 통해 그 씨앗이 발아하고 성장하여, 태양계와 은하계의 일꾼이 되고 나아가 대우주의 경영에까지 참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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