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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북소리

몇일 전 지난 시절 출간했던 책 2권을 요약정리 하고

이어서 무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나

시작하고 보니  정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당신도 神입니다"  "지구별 졸업여행"을 다시 한 권의 내용으로 자료를 정리하여

이번 추석에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후 다시 살펴보니 2009년에 '지구별 졸업여행'의 후속편을 쓰기 시작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지금까지 그것을 잊고 지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지금 시점에 매듭을 지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듯 합니다.

그래서 지금 다시 그것들을 모아 세번째 책으로 하여 3권의 선물set로  하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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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2009년] 5월 무언가  하고 싶던 남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코스의 여정을 거쳐왔고,
나 또한 조금은 색다른 삶의 여정을 거쳐 지금 이곳까지 왔다.

우리가 이 곳에서 구하거나 찾고자 하는 것들이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매우 비슷한 측면이 있으리라 믿는다.

오늘부터 올리려는 글들은
나의 삶의 여정에서 언젠가 쓰게 되리라고 느껴왔던 이야기..
금년5월 약간 한가하던 봄날 스스로 정리하고 싶었던... 나의 여행 이야기다.


아마도 내가 세번째로 출간하게 될 책의 원고가 되리라 예상되는 것을..

'빛의지구' 가족님들께 작은 참고자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래에 옮겨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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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말

이번 생!  50여 년 동안  꿈에도 책을  쓴다는 생각을 가져보지 않았던 사람이..
다시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神은 있는가?”
“사후(死後)에 또 다른 삶은 있는가?!”에 대하여
18세 청소년 시기에 진지한 의문을 가졌고, 어느 누구도 만족할만한 답을 주지 못하였기에
스스로 그 답을 찾겠다고 결심하고 살아왔던 40여 년..

드디어 무언가 가슴을 울리는 답을 찾았다는 기쁨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2004년과 2005년 펜을 든 후
지금 2009년 5월5일. 무언가 남아있던!  언젠가 다시 한번 글을 쓰게 되리라는 예감과 함께 가지고 왔던 것을 나누기 위하여 펜을 들었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속담이 있습니다.
지금 이 책을 접하시는 분들과 저는 분명 큰 인연으로 만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70억에 달하는 현재의 지구인류 모든 분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작은 모래알 하나, 작은 풀 하나 하나가 어우러져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장대한 우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모든 사람은 각각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무한한 우주를 구성하는 장엄하고 고귀한 생명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은 고통과 두려움을 좋아하지 않으며
삶의 모든 순간이 기쁨과 행복함으로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저 역시 한 인간으로서 기쁨과 평화 가득한 삶을 찾아왔으며, 저 자신이 모든 인류와 더불어 존재하는 모든 것과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가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저에게 가장 무거운 짐이었으며, 또한 모든 사람에게 가장 큰 삶의 신비이며 난제일 수 있는 문제에 대하여..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확고한 앎과 기쁨을 함께 이야기 하고 서로 나누기 위해서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오늘날 인류 대부분은 각각 개인이 태어난 지역과 문화권에 따라 다양한 종교관과 내세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류사(人類史)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된 전쟁의 주된 원인은 탐욕과 두려움, 그리고 서로 다른 종교적 견해였습니다.

時, 空間的으로 무한한 우주(宇宙), 그 안에서 100년도 안되는 삶을 살고 있는 인간.
무한(無限)을 느끼고 있는 인간에게, 어느 한순간에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은 참으로 두렵고 심오한 신비의 영역입니다.

모든 것을 원인과 결과, 시작과 끝으로 인식하는 인간에게 출생 이전의, 죽음 이후의 세계는 가장 큰 의문과 관심의 대상이며, 인류의 모든 종교 토속신앙 등은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다양한 이해와 결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무한한 실재(實在)와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 대한 실상을 명확히 아는 것을 우리는 해탈이라고도,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라고도 표현해 왔으며..  人類史上 여러 종교의 발단이 되었던 성현(聖賢)들은 바로 그러한 궁극적 문제에 대한 깨달음과 지혜를 가르쳐 온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저 역시 이번 생의 제1의 화두로 삼아왔으며
지금 혼란이 없는 온전한 기쁨과 평화 속에 존재하고 있는 지점에서..
아직 명확한 이해와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한 분들!
생존이란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정신없이 살아오신 분들!
믿어왔던 믿음에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시며, 알 수 없는 불안함과 두려움, 영적인 갈증과 온갖 삶의 고뇌로 밤잠 못 이루시는 분들과..
비록 이제 겨우 두드려왔던 문을 열었으나.. 생사를 넘어선 기쁨과 환희로 충만한 저의 삶의 단면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살아온 삶의 여정에 대하여!
제가 두드려 온 문을 여는데 지대한 도움을 주었던 자료와 정보에 대하여!
그리고 지구를 우주적 축제의 한마당으로 만들기 위해 협력하고 동참해야할  이 시대의 여러 형제,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이번 생! 저의 삶에서 제가 하기로 선택했던 역할을 하기 위해 지금 저는 다시 무대 위에 섰습니다.

지금 저와 마주 앉은 여러분은 70억 인류의 1% 안에 들어가는 분들로 알고 있습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큰 산을 태우듯, 1%도 안 되는 불씨는 나머지 모든 인류를 지금까지 창조 이래 없었던 우주적 축제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한순간에 이끌 것입니다!
그렇게 됩니다!
바로 지금이 그 때입니다!


                            2009.  5.  5.     崔  正  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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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1.  내가 선택했던 여정旅程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의 생활

    또 다른 나의 일면  

    대학과 軍생활 이후의 사회생활

    한 우물 파기  

    전화위복 轉禍爲福  

    열릴 때까지 두드린 문



2.  여행을 시작할 시기의 일기와 수필 몇 편


    가)  1966년 ~ 1970년 사이의 일기  

         1966년 (고 1)
         1967년 (고 2)  
         1968년 (고 3)
         1969년


    나)  1969년 ~ 1971년 시기에 쓴 수필

         1969년

        우리가 사는 것 그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다.  [6.27.]
        불요불굴(不撓不屈)의 의지는 인간의 최대 가치이다.  [7.28.]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까?  [8월]
        나는 인간일 뿐이다.  나는 신이 아니다.  [8월]
        인간은 지구상의 지능이 뛰어난 동물의 하나이다.  [11월]
        인간이 알 수 있는 것  [11.5.]
        나는 무한한 우주 속의 유한한 생물  [11.25.]
        우주 그리고 인간은 너무나 거대한 모순이다.  [12월]
        그들도 웃고 나 역시 웃는다.  [12.31.]  


        1970년

        大學 [1.7.]
        내가 원하는 것은 한 인간의 완성이다. [1.7.]
        새로운 길 [1.14.]
        우주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2.4.]
        목적과 수단 [2.6.]
        지혜로운 자의 웃음 [2.15, 16.]
        미래를 상실한 인간 [3.4.]
        큰 것과 작은 것 [3.8.]
        정신의 자유 [3.14.]
        인생과 그림 [4.6.]
        인간의 한계 [7.18.]
        밝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우리의 生을 가꾸자 [8.15.]
        인류의 역사는 이기적 의지 위에서 변천하여 왔다. [11.14.]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제 나는 그저 웃을 뿐이다. [11.30.]


       1971년 - 나의 현재


       가.  나의 우주관, 세계관, 인간관에 대하여
          
          1.  가장 중요한 것
          2.  우주와 인간
          3.  인간능력의 한계와 가정假定
          4.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가
          5.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6.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
          7.  하나의 독립된 개체인 내가 누릴 生
          8.  나의 세계관
          9.  세계의 평화를 위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

      나.  내가 나의 우주 - 세계 - 인간관을 어떠한 자세로 갖고 있을 것이며,
           타인의 신념을 어떠한 눈으로 볼 것인가에 대하여.

          1.  나는 나 자신의 판단 -신념에 의해 살 것이다.  
          2.  모든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의 세계 -가치관을 창조할 뿐이다.


      다.  어떠한 자세로 나는 살아갈 것인가?  

          1.  내가 나아가야 할 목표를 찾아 전진하는 내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2.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우리가 해야 할 일’



3.  ‘역사철학(歷史哲學)과 현대문명(現代文明)에 대한 일고(一考)  [1978.10.20.]  [대학졸업논문]



4.  내가 발견한 진실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직접 확인하라

    진리는 매우 단순하다

    자신의 체험만을 가지고 비판하지 말라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

    지구는 우주의 핵과 같다

  
5.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
  
   1)  나와 같은 보통사람들에게

   2)  정신계와 종교계의 지도자들에게  

   3)  정치가에게

   4)  언론, 방송인, 교육자, 판-검사, 군-경찰들에게      

   5)  교육자와 역사학자들에게    


6.  지구별 졸업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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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선택했던 여정旅程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의 생활

내게 초등학교와 중, 고등학교를 마치기까지의 삶은 지루하고 답답한 생활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학교 가는 것이 괴롭고 힘든 일이었으며, 지금 남아 있는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이라곤 서울역 근처에서 약장사꾼들이 약을 팔기 위해 펼치던 쇼를 종종 구경하던 기억과, 남산의 이승만박사 동상 앞쪽의 수 백 개가 넘는 화강석 계단에 판자를 깔고 앉아 썰매를 타던 기억 정도다.
특별한 사고를 친 기억도 없고,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학교가기 싫으면 아프다는 핑계로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 30일이 넘는 결석일 수를 기록했던 기억은 남아 있다.

가끔씩 미소 짓게 하는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 한 가지는, 중3때 키 순서로 52번(약 60명 중)하던 번호가, 고1때 41번, 고2때 19번 정도로 계속 앞자리로 나가게 되자, 고3때 번호를 정하던 날 고의적으로 결석하여, 그 다음날 맨 끝번인 62번으로 정해지고 맨 뒷줄에서 덩치 큰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 약해진 시력에도 불구하고 안경을 끼지 않고 멍하니 보이지도 않던 칠판을 바라보던 모습이다.
그래도 아주 돌머리는 아니었는지?!  초등학교 시절은 10등 내외의 상위권을 유지했으나,
계속 하향곡선을 그려나가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는 겨우 중하위권을 유지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시험 전날 밤새기 외에는 예습, 복습이란 용어 자체를 몰랐던 것 같고, 어디서 생긴 자신감인지 몰라도 고3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무렵에는, 대학입시 일주일 전까지도 집중적으로 파고들면 통할 수 도 있다는 배짱으로 서울 상대(당시 수재들이 지원하던 곳)에 입시원서를 넣고 버티다, 시험 당일 날 아침 출신 고등학교 망신시키겠다는 판단에.. 집을 나서서는 시험장소가 아닌 인천으로 놀러가서 “왕중왕” 영화 한 편을 보고 돌아왔으며, 2차는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또 다른 나의 일면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학교 가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고 싫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10대 청소년기 때부터 나는 단순하게 사회가 요구하는 여러 가지 학습의 목적과 목표를 찾았던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生과 死의 앞과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神은 있는가?”  그러한 질문이 내 안에서 솟아올랐다!
내가 하는 일! 내가 해야 할 일들의 의미와 목적지는 어디인가?!에 대한 답을 알고자 하는 의지가 내게는 중요했다.
그러한 여러 가지 존재와 삶이 가지는 본질적인 가치와 의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모습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그 당시의 일기와 수필 속에서 확인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는 실력이 모자라 대학입학을 포기했으나, 그 다음 해에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대학을 갈 것인지?!”  내 인생의 의미와 최종적인 목적을 스스로 확인하기 전에는, 남들이 모두 대학에 간다고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지는 않겠다는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남산 도서관에 다니며 여러 가지 관심 가는 책들을 찾아 읽었다.  
2년 정도 도서관 생활을 하던 중 마음에 변화가 찾아왔는데, 그것은 “20년 정도 살아오며 배워 온 지식과 지혜로 우주와 인생에 관련된 궁극적인 답을 구하는 것이 너무 성급한 생각이다!”라는 것이었고. “그러한 답은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배워가면서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3년째 되던 해 나 자신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인간이 살아온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사학과(史學科)를 선택하여 진학하였고, 그 후의 생활은 전과는 달리 매우 즐거운 생활이 되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청소년기 고민하며 썼던 일기와 수필, 그리고 대학졸업논문 등을 볼 때 하나의 초점으로 맞추어진 일관된 관심사가 있었고, 그 때 가지고 있었던 내 삶의 최대 과제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계속 가져왔던 것임을 알 수 있고, 그 결과로 지금 내가 이러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대학과 軍생활 이후의 사회생활

군대 3년과 대학 4년을 마친 후 나는 건축 관련 회사에 취업하여 4-5년 직장생활을 하였으며, 그사이 1년간 사우디아라비아 건축현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귀국한 후에는 주로 주문주택 시공에 관련된 일로 세월을 보내다가, 1990년 초에 물탱크 청소사업을 시작했었고 1993년 후반기부터 7-8년간은 전원주택 시공 개인사업을 운영했었다.
사업을 하는 동안 매우 바쁜 나날을 보냈었으나 큰 소득은 없었으며, 2001년 정도의 시기에 내 천직이 집을 짓는 일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그동안 해오던 사업에서 손을 떼고,  청소년시기 이후 항상 그 답을 구해왔던 “나는 누구인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실상은 무엇인가?!”에 대한 궁극적인 답을 얻기 위한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업을 하면서도 나는 항상 인간과 우주, 신 등과 관련한 궁극적 문제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였었고,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홍수처럼 쏟아진 많은 귀한 책들을 꾸준히 살펴보면서 대화가 통하는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도 계속 가져왔는데, 아마도 사업보다 진리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컸던 것 같다.
2001년 이후에는 오로지 나 자신과 우주의 궁극적 실상에 대한 진실 확인에 몰두하였고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하루하루의 귀하고 새로운 정보를 통해 시야를 넓혀왔으며, 2004년에 이르러서는 내가 구하던 답에 관한 전체 그림이 파악되고 이해되는 지점에 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때 가지게 된 큰 기쁨을 주변 분들과 나누기 위해 평생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책(‘당신도 신입니다! You are God also!)을 쓰게 되었으며, 이어서 2005년에는 “지구별 졸업여행”을 쓰고 출간하게 되었다.



    한 우물 파기  

지금 이 순간 내가 이번 생에 살아온 전체 여정을 되돌아보면 오로지 한 길을 걸어왔던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유년기 때부터 암기식으로 주입시켜온 제도권의 교육과 종교적 신념!  그러한 것이 편치 않아  학교 가는 것이 그렇게도 싫었던 20세 이전의 시절..
스스로 궁극적인 답을 찾겠다고 결심한 후 그렇게도 후련했던 가슴!  남들처럼 가정을 가지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사업을 하면서도 일과시간이 끝나면 그날 상황 끝!
그 후론 내게 관심 있는 책을 읽거나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 등에 쫒아 다니던 생활.

그러한 모든 생활태도를 보거나, 청소년 시기에 썼던 일기나 수필!
“내가 누구인지?!” 알기위해 선택했던 역사학과!  그리고 대학에서 썼던 졸업논문!
지금 내가 나의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고, 오랜 시간 두드려서 문을 열고 보게 된 진실을 많은 분들과 나누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모습!
이 모든 것을 보면, 태어나서 엄청나게 울어대서 어머니가 함께 울 수밖에 없었다는 옛 이야기를 시작으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한 우물을 팠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결실이 지금 쓰여 지고 있는 이 책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하며..
그동안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어 온 베일 저편의 모든 가족 형제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다.



    전화위복 轉禍爲福  

여담삼아 내게 9세 전 후로 있었던 물리적 충격(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겠는데,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 유사한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리라 본다.

초등학교 시절.. 대략 9세 전 후로 기억되는데, 동네 친구들과 눈을 가리고 술래잡기 놀이를 하던 중  내가 수건으로 눈을 가린 상태에서 골목 안으로부터 바깥쪽으로 향하던 중 2-3개의 계단이 있었는데, 발을 헛딛게 되어 넘어지는 것도 모르고 앞으로 넘어져 머리 우측 앞부분을 맨땅에 크게 부딪친 사고가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피는 나지 않았고 속으로 멍이 든 상태에서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가던 기억이 나는데..
그 사고가 있은 후 정신집중이 잘 되지 않는 상태에서 초점을 잃고 멍하니 앞만 바라보는 경우가 그 후 학교를 다니는 과정에서 자주 있었으며, 그런 현상은 군에 입대하기까지 계속되었고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던 시기를 전 후 하여 회복된 것으로 기억된다.
군대생활 중 2년 정도 병원부대의 행정과에서 근무했었는데, 그동안에 머리 부분에 어떤 흔적이 있을까 궁금하여 X-ray 사진을 촬영하여 보았고, 다쳤던 부분에 지름 3~4cm 정도의 희게 석화石化된 부분이 남아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 사고가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이라는 것은 천상의 가족인 토비아스(Tobias)가 2000년 전해준 “그리스도의 길 잃은 아이들”이란 메시지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은 2000년을 전 후한 시기에 지구가 멸망하거나 상승할 수 있는 두 개의 가능한 시나리오가 있음을 알고 육화한 영혼들이, 자신이 가지고 온 강력한 ‘그리스도의 빛’ 에너지를 숨기기 위해 보통 10세 이전에 정신적이거나 물리적인 충격을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그리스도의 에너지를 이해할 수 없는 부모나 사회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정신병원으로 보내질 수 있는 위험성을 피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길 잃은 아이들”[새지구시리즈8장, 2000.1.15.]을 읽는 순간, 그것이 내가 겪은 체험과 일치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나는 이미 그러한 사고가 내게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좋은 경험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나의 어린 시절 머리에 가해졌던 물리적 충격으로 인해 사고기능과 집중력에 부분적인 장애를 가지게 된 것은, 어린시기에 입력되고 고정관념화 되는 현실적 교육제도와 신념체계로부터 나 자신을 차단하는 보호막으로 작용했었다고 느끼고 있었고, 그 결과로 지금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번 생에서 내가 하려고 계획했던 일들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글을 접하시는 많은 분들이 이와 유사한 과정을 통해 부분적인 기능저하의 체험을 가지고 계실 것으로 추측된다.



    열릴 때까지 두드린 문

다행히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던 청소년 시절의 일기와 수필!
역사학과를 선택하고, 썼던 졸업논문의 내용!
사업을 하면서도 끈질기게 잡고 놓지 않았던 ‘나 자신과 존재하는 모든 것에 작용하는 우주적 원리’에 대한 탐구!
사업이 내 천직이 아님을 확인하고, 궁극적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생활전선에서의 이탈!
2001년 이후 집중했던 인터넷 등을 통한 탐색!
한평생 두드려 온 문을 열고,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썼던 2권의 책!

이것은 열릴 때까지 문을 두드렸던 결과이며, “두드리면 열린다! 구하면 얻는다!”는 격언을 확인하는 예라고 본다!

아래에 내가 어느 문을 두드렸는지?!를 보여주는 10대 후반 시기에 썼던 일기 일부와 수필 몇 편.  그리고 대학졸업논문의 목차와 결론 부분을 참고를 위해 옮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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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행을 시작할 시기의 일기와 수필 몇 편



    1966년 ~ 1970년 사이의 일기    


1966년 (고 1)

1.1.  :  ....  하나님- 아버지 저의 오늘 하루의 실수를 모두 용서하옵시고 오늘부터  
          맞은 1966년도 새해를 주님 뜻 가운데서 살게 하여 주십시오.

2.2.  :  ....  왜 인간들은 장단長短을 모두 가져야 하나?  왜 장점만을 가지지 못할까?    왜 인간은 사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이 원망스러워진다.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이 너무하시는 걸까?  아니겠지, 내가 부족한 탓이리라.

4.13.  :  ....  도무지 인생이란 것이 허무한 것 같았고, 하나님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 같음을 느꼈다.  아! 하나님!  정말로 하나님은 계신가요?

7.31.  :  아! 주여 제가 짧은 생애이나마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도록 이끌어 주시고 갈 길을  밝히십시오 ...

      
1967년 (고 2)

2.12.  :  나는 국가를 위해서나, 민족을 위해서나, 세계 인류를 위해서나 최대한의 필요성을 가지게 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3.26.  :  .... 적어도 나는 앞으로 나 자신의 안일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나는 내 능력 한도 내에서 공공을 위하여 희생 봉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할 것이다.

2.18.  :  ....  나는 벌거벗은 인간이 되리라. 아무도 그 어느 누구도 벌거벗지 않으려 한다 해도 나만은 벌거벗으리라. 그리고 보여주리라. 나의 모든 것을.  나는 비밀 없는 인간이 되고 싶다.  .....

4.14.  :  모든 것은 피와 땀의 결과이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일의 완성에 있는 것이 아니고, 완성을 향한 노력에 있는 것이다.  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7.30.  :  ....  그래 이제는 나 자신에게만 모든 것을 의지한다.  누구의 간섭도 불허하고  모든 것을 나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극복하겠다.  나를 위해 줄 사람은 나 자신 밖에 없는 것이다.  남을 도와준다는 것은 나를 완성시킨 후에 하여야 할 것이다.  ....

8.15.  :  최선을 다한 후에 쓰러지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파괴일 뿐이며 파괴는  더욱 더 큰 승리를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다.

11.16.  :  인생이란 무엇인가?  ....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살라는 말인가?!  내가 지금까지  배워온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장장 12년에 걸쳐 배워온 모든 것이 이렇듯 쓸모 없는 것이었나?!  우리 교회의 교육은 이렇게도 형식적인 것이었단 말인가?!  우리 사회의 교육은 이렇게도 무가치한 성질의 것인가?
           아!  지금의 나는 망망대해茫茫大海의 길 잃은 조각배보다도 외롭고 갈 길 모르는 존재이다.  이 지금의 나에게 멀리 등대로 나타날 목표는 무엇인가?  무엇이 나를 이 절망 가운데서 건져낼 것인가 말이다.  하루 속히 이것을 발견해야만  한다.  ....
           현명한 인간은 인간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런데 나는 아직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것을 알고 싶은 것이다.


1968년 (고 3)

1.8.  :  ....  내가 노력해야 할 이유는 단지 나 자신을 완성하고 내가 현존現存하는 사회, 민족 인류를 위하여 그들의 삶의 목표를 찾아주고, 그들을 좀 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인간으로서 좀 더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 위함이다.

1.14.  :  ....  지금의 내게 있어서 인생이란 문제는 너무도 거대하다.  아마도 지금 내가  취할 수 있는  아니 언제나 취해야 할 태도는 모든 일에 성실하는 것이다.

2.21.  :  ....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이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즉 나는 하나의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고, 또 그렇기에 살아야만 된다는 분명한 사실 말이다.  이 사실을 분명히 느끼고 나의 앞길을 밝히 보지 않으면 안된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부디 정신이 이상해지진 않게 해 주십시오.  분명코  제 자신만은 진실된 제 자신만은 떠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3.1.  :  ....  나는 내게 가로막힌 아주 작은 장애물을 넘지 못하고 내가 왜 이것을 넘어야  하나 하고 생각하며 그것을 피하려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아무튼 아무튼 복잡하다.  우선 나 자신을 알고 봐야겠다.  정말 나는 나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무능력한 인간이구나.  

3.16.  :  ....  나는 내가 왜 존재되고 있는지?!  내가 무엇인지?!  우리의 인생, 생활이란 것이 모두 단순하고 맹목적이라는 생각 밖에 없다.  죽음이란 것이 그리 먼 거리에서 느껴지지는 않는다.  살아야겠다는 살아야만 한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다는 말이다.  그저 죽지 않았으니까 살고 있다는 그 정도다.  ....

3.18.  :  끊임없는 내적 싸움에서 순간순간에 계속 승리를 얻어 나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
          무엇을 위하여 나는 사는가?  나에겐 아무런 목적도 없다.  어떻게 이런 상태로 생활할 수 있단 말인가?

5.18.  :  나는 도무지 산다는 것이 무엇인줄 모르겠다.  즐겁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무의미한 삶이다.  도무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지?!
    

1969년

1.5.  :  인간의 교육을 위하여 대학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지구상의 생물, 두뇌가 발달한 생물일 뿐이다.  지구 그리고 태양계, 그리고 수많은 별들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신비이다.  인간은 그 무한한.. 영원한 신비 가운데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60여년을 사는 아무런 의미도 갖고 있지 않은 思考하는 동물일 뿐이다.

1.18.  :  나는 인생의 목적 그것을 찾으려 했다.  인간의 생명은 무엇을 뜻하며,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즉 나는 인간과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1.20.  :  우습다. 나 스스로를 비웃고 싶어지는지도 모른다.  나는 우스운 사람이다.  어쩌면 쓸 곳 없는 존재일런지도 모른다.   그렇다!  기껏 나빠 봐야 자신을 자기가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일 뿐이다.  ....
          나는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특수하다고.  내가 남과 다른 것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 보아선 안되겠고, 단지 남의 것과 나의 것을 비교해야 할 뿐이다.
          복잡하다. 복잡하다. 너무 복잡하다.  언젠가 지금의 내 심리상태를 평가하고 반성할 수 있는 때가 있겠지.  그때까지 나는 결코 쓰러져서는 안된다.  나는 기필코 승리할 것이다.  ....  우선 나 스스로에 승리를 거두고, 다음에는 모든 사회에 대하여 승리를 쟁취하여야 하겠다.

2.2.  :  요사이 나는 자주 생각한다.  왜 이렇게 실없는 인간이 되었는가고.  그러나 나는 왜 그러한 함정-- 암흑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무엇이 나를 얽어매고 있는가?  그만두자 원인이야 무엇이든 나는 새롭게 일어서지 않으면 안된다.  어떠한 역경도 나를 쓰러뜨릴 수 는 없다.  ....  
         나는 나 홀로 있고 싶다.  나는 사회에 동화 하려고는 않는다.  나는 사회를 내가 뜻하는 데로 이끌어 가려고 한다.  나는 우선 나 스스로를 다스리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것을 떠나 홀로 모든 것을 맞고 싶다.  

2.6.  :  나는 깨끗하고 밝게 나의 미래를 계획했다.  그러나 모두들 반대한다.  심지어는  돌았다고 한다.  왜 내가 돌았나?  우습다 못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로 가려 한다고 해서 돌았어?  우습다. 눈물이 날 지경으로.  모든 인간이 가는 길. 그것이 절대적 진리의 길은 아니다.  모든 길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 진다.

2.24.  :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대단히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이제 안정을 찾기 위해 한번의 격동기를 맞을 때에 그것을 나의 손에 의해 안정시킬 수 있게끔 조용히 묵묵히 그 준비 만에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2.29.  :  나는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살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그들은 모든 사회구조는 인간의 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그러한 것을 깨닫고 새로운 환경을 개척하는 인간의 뒤를 따를 뿐이다.  나는 결코 초조해서는 안 된다.  표면적으로는 2년을 뒤져 있으나, 그것은 받아들이기에 달린 것이다.  
          그들은 2년을 앞선 줄로 생각하겠으나, 실제적으로 수 십 년이나.. 아니 결코 만회하지 못할만한 거리를 뒤져 있는지도 모른다.  

3.1.  :    .... 나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간다.  나는 나 자신 스스로 권태를 느끼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걷는 길에 만족한다.  나는 나를 비웃는 인간이 많을수록 더욱  용기가 솟을 것이다. ....  
          나는 약해졌는가?  모든 것을 가장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이에게 묻고 싶다.  나는 약해졌는가고?!

3.6.  :   나는 괴롭다.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를 아직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목적과 삶의 의의를 찾게 된다면,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한 인간이 될 것이다.

3.18.  :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건방진 물음이다.  인간은 본능에 의해 사는 천한 동물의 일종이다.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인 것뿐이다.  나는 너무나 약해졌다.  

3.19.  :  근래 며칠동안의 나는 너무나 어리석었다.  나는 목숨을 걸고 투쟁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내 심신의 안락을 구치 않는다.  

6.29.  :  나는 최근에 비로소 실제적인 감각으로서 내가 향하는 목표에 이르는 길이 얼마 만큼 험난한 것인지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것은 좋은 현상이다.  이상은 이상 자체로 존재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것은 현실화됨으로써 더욱 귀한 것이 될 것이다.

7.13.  :  ....  이러한 문제에 있어선 신에게 간청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구나.  신이여!  저는 아무것도 신에게 청하고 싶지 않을 만큼 거만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이여 당신이 존재하고 계신다면 들어주시기를 바라고 싶군요.  

8.9.  :   인간은 어느 한 가지 일에 전념함으로서 성공할 수 있다.  일생 일을 할 수 있는 약 30여 년 간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정하고 그 일에 집착할 때만이 모든 인간은 뜻을 이룰 수 있다.




    1969년 ~ 1970년 시기에 쓴 수필



    1969년


    우리가 사는 것 그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다.  [6.27.]


우리가 사는 것  그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다.  정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말로 너무나 허무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명확한 진리가 아닌가?  그것도 너무나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것! 그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존재인 것이 참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인 것이다.  그렇다 지금 나는 내 의지에 의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살고자 하기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니 하긴 죽고자 하지 않기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즉 내가 아무리 살고자 하여도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존재라는 것 --나의 생명은 최소한도 나 자신의 것일 수는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 즉 나의 생명은 나와 그 어느 누구의 것이거나, 아니면 전혀 내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불요불굴(不撓不屈)의 의지는 인간의 최대 가치이다.  [7.28.]


삶과 죽음에 대하여는 오직 믿음만이 해결의 열쇠이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다른 문제점을 정복해야 하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투쟁하는 의지다.  그 불굴의 의지가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그것을 가지지 못할 때 우리는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의지, 굴복하지 않고 전진하는 의지,  그 불굴의 의지가 있을 때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세계가 전개될 것이다.
그 불요불굴의 의지는 인간의 최대 가치다.  그것이 완전히 실현되지 않는 한, 죽음이 항상 삶의 가치를 앞서 있는 것이다.  결코 한번이라도 굴복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려야만 한다.  죽자 죽자!  아니면 모든 것을 정복하자.
이 세상에는 두가지 종류의 인간이 있다.  하니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인간이요.  다른 하나는 가능을 불가능으로 만드는 인간이다.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까?  [8월]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까?  그것을 알고 싶다는 말이다.
내가 있고 인간의 사회가 있다.  지금 내가 알 수 있는 전부는 오직 그 것 뿐이다.  그러나 나는 사라질 것이다.  지금 갖고 있는 생각도 육체도 모두 사라질 것이다.  한갓 왔다 가는 일장춘몽과 같은 생활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직접적이고 중요한 것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지!  전혀 알지 못하면서 살아야 하는 인생.  만일 그것이 전부라면 우리는 사는 것이 아니다.  만약 시작도 끝도, 자신의 의미도 인생의 의미도 알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은 하나의 병이요 고통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인간일 뿐이다.  나는 신이 아니다.  [8월]


결국 나는 하나의 인간일 뿐인가?  강아지가 아무리 애써 봐야 그는 강아지일 뿐 결코 새나 인간이 되지 못하듯이, 나는 아무리 애써 봐야 바로 그 인간일 뿐 결코 신이 되지 못한단 말인가?  할 수 없다. 나는 인간일 뿐이다.  단지 나는 가장 가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인가 보다.  나는 인간이다. 인간일 뿐이다.  나는 신이 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역시 인간일 뿐이다.  그럼 이제 나는 신이 되려고 노력해서는 안되겠구나.  
나는 인간이다.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다.
수 억 만리 먼 곳을 날아도, 수억 만리 땅을 뚫고 나간다 해도, 울어 봐도 웃어 봐도 뛰어 보아도 기어 보아도, 앉아도 서도 나는 인간일 뿐이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우선 나는 신이 되지 않아야 하겠다.  내가 신이 되려 한다면, 그것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기 때문에 나는 완전히 패배하는 인간이 된다.  그러나 신에 가까운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충분히 보람 있는 일이다.
나는 오직 가장 가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왜 나는 죽는가?를 따지기 보다는 인간인 이상 나는 죽어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인간인 나로서 해결 할 수 있는 일을 우선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나는 무엇보다도 하나의 인간인 나 자신을 위하여, 우선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여러모로 관찰할 수 있어야 하겠다.
나는 인간 이상의 혹은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발버둥 치고 뛰어보아도 역시 나는 인간일 뿐이다.
나는 인간이다.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산다.  앞으로도 죽기까지 살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생활을 계획할 필요가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할까?



    인간은 지구상의 지능이 뛰어난 동물의 하나이다.  [11월]


인간은 일종의 생물. 인간은 영원히 살지 못한다.  기껏 살아야 100년 내외. 인간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지 못한다.   아주 조그마한 것이라도 오랜 동안의 계속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 물론 그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것들은 극히 한정된 것이다.
인간들은 스스로 자신을 마치 우주의 중심인물처럼 착각하기를 잘한다.  인간은 단지 지상의 모든 생물보다는 뛰어난 지혜를 가진 하나의 생물일 뿐이다.  다른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번식하며  자신의, 가족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기꺼이 제거한다.  오직 두뇌가 발달됐을 뿐  그들의 주위에 위험이 닥아오면 그것을 제거하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오직 그들에게 안전이 보장될 때만 양순해 질 수 있고, 나아가서 그들의 힘이 타 생물-인간에 비해 월등하다고 판단되면 그것으로 타인의 재산, 나아가 생명까지도 강탈해 버리는 것이다.  적이 조그마한 틈만 보여도 돌연 험악한 표정을 짓는 인간사회 그리고 국가들..  이것이 인간 역사를 지배해 왔다.

너무나 경솔하고 무가치한 인간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
혹 자신의 무능을 모르기에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나, 그것으로 암흑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게다!



    인간이 알 수 있는 것  [11.5.]


나는 하나의 인간이다.  지상에 인간이 모여 이룬 하나의 사회가 있다.  나는 한 인간으로서 이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고 있다.  인간은 수 십 만 년 전부터 이 지상에 살아왔다.  생물학자들은 인간의 기원을 우연한 것으로,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이론일 뿐 결코 명확한 진리일 수는 없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창조주에 의한 피동적인 기원을 주장한다.  그러나 역시 다른 모든 종교와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가정(假定)을 세우고 그것을 믿으므로 만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극소 부분의 자연 현상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 인간이 자신의 가치와 위치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나는 무한한 우주 속의 유한한 생물  [11.25.]


나는 무엇인가?  무한한 우주 속의 유한한 생물.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생물.  발전하고 스스로 개선할 줄 안다.  그러나 나는 오직 지구란 하나의 혹성 위에 살고 있는 하나의 생물.  왔다 가는 수 백, 수 천 억 인간중의 하나.  나는 결코 이 우주, 아니 지구의 주인조차 되지 못한다.
내가 태어나고 사라질 것이 결코 이 지구에  그리고 태양계에, 나아가서 우주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얼마간 살다가 사라진다는 사실은..  봄에 싹이 돋고 가을에 한 장의 낙엽이 되어 흩날리는 저 나뭇잎 하나보다 결코 많지도 적지도 깊지도 못한 의미를 내포할 뿐이다.
한이 없는 우주. 그 끝이 없는 우주.  그 영원 - 무한 속의 단 몇 십년간 계속되는 유한한 생명!  얼마나 미미한.. 초라한 존재인가?!



    우주 그리고 인간은 너무나 거대한 모순이다.  [12월]  


인생!  인간의 일생.  하나의 인간은 어디에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 그 ‘어디’라고 하는 그 말 자체가 도무지 허무맹랑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 “인간은 무엇인가?! 영원한 존재일 것.”이라고 단정하고 그것을 믿으려 한다.  그러나 인간 역시 하나의 단순한 생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어머니의 뱃속에 태어나기 전 까지는 완전한 無였고, 또 죽음을 맞으므로 다시 완전한 無로 사라질 것이라고 가정해 볼 필요도 없지 않다.
인간이 죽음과 함께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무로 돌아간다 해도 이 우주안의 모든 사물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 이 우주 그리고 인간은 너무나 거대한 모순이다. -
만일 인간에게 영원한 영이 있다면 그것은 원래 있었던 것이거나, 아니면 다른 존재 즉 신으로부터 모태에서 떨어져 나올 때 창조되어진 영일 것이다.
- 이 우주 그리고 인간은 너무나도 거대한 영원히 끝이 없는 모순이다. -

나는 하나의 인간. 왔다 사라지는 한 줌의 흙.  히틀러는 힘이 약했기에 세계 인류의 최대의 적이 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이 인간사회의 현실이 아닌가?  힘과 힘의 대결, 그리고 자연히 또 사고로 사라져 가는 인간들.  그것이 하나의 생물 인간의 현실이다.
나 역시 잠시 이 지상에 태어났다 사라지는 한줌의 흙.  영원한 신비 속에 태어나 그 위에서 살다가 그 속으로 사라져 가는 외로운 생물.



    그들도 웃고 나 역시 웃는다.  [12.31.]  


남들은 웃는다.  나 역시 웃는다.
그들은 말 할 것이다.  “너는 두렵기에 회피하려 한다고.”
그러나 나 역시 말 할 것이다.  “나는 창조하려 한다고.”

그들도 웃고,  나 역시 웃는다.
그러나 얼마 후 둘 중의 하나만이 계속 웃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전부 일반적 사실에 거스르는 본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여 승리를 거두는 인간은 결코 많지 않다.
우리는 이미 다져진 평탄한 길을 떠나,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는 인간들을 천재 혹은 영웅이라고 한다.  스스로 창조하는 생활,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이리라.

우주는 무한한 신비.  인간은 그 영원한 불가능 속의 의지할 곳 없는 하나의 생물.
우리는 판단의 기준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인간은 오직 하나의 생물일 뿐이다.  영원을 갈망하는....

결사적이다.  인간의 생존에 대한 열의는.  그러나 결국 그들 모든 인간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살고 있는 것  그 자체로 만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인가?        
아무튼 우리 인간은 인생에 대해 아무런 목적도 의의도 발견할 수 없을 것 같다.



    1970년


    大學 [1.7.]


대학이란 무엇이었나?  
대학이란 인간사회의 모든 자연과 사회적 현상의 전문적 연구를 위한 기관이었다.
지금의 대학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나?
사회와 국가의 유익과 번영을 위한 각 분야의 전문가를 배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대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대학은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인간이 자신의 존재 의의와, 사회적 역사적인 거시적 관점에서의 인간 가치를 확립하기 위한 연구기관이어야 하지 않을까?

** 어떤 개인은 다른 인격자의 인생관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마다의 타고난 개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한 인간의 완성이다. [1.7.]


내가 원하는 것은 한 인간의 완성이다.  인간은 잠시 왔다가 사라진다.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사라질 것인지 그것을 알고 싶다. 이 무한히 넓은 우주 그것은 무엇인지?!
우주는 무한히 존재할 것이고, 한 인간은 잠시 왔다 사라진다.  그가 죽고 난 후 그가 생전에 누리던 권력 명예 영광 그것이 가지는 가치는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쾌락, 즐거움, 명예, 권력이 아니라  그러한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의 가치, 생존 그 자체의 의의, 영원한 진리!  그러한 것이다.



    새로운 길 [1.14.]


그것은 창조하는 생활이 아니다.
남이 닦아 놓은 길을 밟는 것일 뿐이다.

나는 싫다.  다져진 길을 가는 것은.
나는 원한다.  새로운 전혀 새로운 길을.

나는 원한다.  평범한 행복보다는 창조 개척의 고통을.
나는 달리고 싶다.  미지의 거친 황야를.  홀로 - 영원히 끝까지.

남의 인도에 의한 성공.  그보다 나 스스로의 실패
거기에는 괴로움이 있을지언정  후회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주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2.4.]


산다. 나는 살고 있다.  그러나 내게는 목표가 없다.
돈도 권력도 명예도 지금의 내게는 아무런 의의도 없다.  인간은 살다가 죽는다.  단지 살다가 죽을 뿐이다.  그들의 생존은 어떠한 필연적인 목적이나 가치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누구나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몸부림친다.  그러나 그들 인간 중, 그 수없이 많은 인간 중 어느 하나도 그들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지는 못한다.

그들은 믿는다는 것으로 그들 자신에 관한 의문을 끝맺으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믿는 것이지 모든 인간에게 공통-보편적인 진리는 아니다.  인간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이다.  절망하기에는 너무나 투지가 강하고, 뜻을 이루기에는 너무나 무능한 존재이다.

한번 인간의 존재, 생존의 의미, 가치, 그것에 대하여 절망해 보자.  그러면 그때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내가 왜 사는지, 산다는 것이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지, 나는 결코 찾지 못할 것이다.  아니 온 인간에게 그것은 결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일 것이다.
우리 모든 인간은 우리 안에 갇힌 일개의 동물 이상으로 비유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인간은 스스로 그들 자신의 존재, 그리고 생활을 위대한 것으로 상상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착각하고 있거나 사물을 판단하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인간의 생활, 그리고 능력, 그것의 한 가지 만을 보았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무한한 신비, 비밀의 세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결국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인간 -즉 생각하는 자신 스스로가 너무나 초라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곳일 뿐이다.  모든 인간은 결코 아무런 해결도 보지 못한 채 사라진다.  나는 그리고 우리 모든 인간은 우리 스스로를 지나치게 과대평가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모든 환상에서 돌아서서 우리 자신을 바로 볼 수 있게끔.

나는 한갓 지능이 뛰어난,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갈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가련한 동물에 불과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그렇다! 결코 중대한 가치를 갖고 있지 못한 일종의 생물일 뿐이다.  나 하나가 죽는다고 해서 그리고 온 인류가 죽는다고 해서, 결코 이렇다 할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우주다. ....  우리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은.


자 생각해 보자!    
시저가 죽으므로 인류사회는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나?  알렉산더가, 나폴레옹이 죽으므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  자, 그리고 내가 죽는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변화가 이 인간의 사회에 일어나겠는가?  그리고 온 인류가 멸종 된다 하면 어떠한 변화가 이 지구상에 그리고 태양계에 일어나겠는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  나라는 한 인간은, 그리고 인류라는 수많은 일종의 생물은 결코 이 무한한 존재 - 우주에 대하여 전혀 비할 여지가 없다.  나는 사라지지만 우주는 존재한다.  모든 인류는 사라져도 우주의 질서에는 아무런 변화도 있을 수 없다.  너무나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이다 이 우주는!
자 그럼 이제는 우주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목적과 수단 [2.6.]    


내게 대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회의 일부일 뿐이다.
나는 우선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어야 하고, 그 다음 그러한 인생을 기반으로 어떤 한 가지 목적을 정해야 한다.
나는 먹을 것, 입을 것, 살 곳을 위하여 살지는 않는다.  
나는 어떠한 목적 하에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먹을 것, 입을 것, 살 곳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인간은 목적과 수단을 구별치 못한다.



    지혜로운 자의 웃음 [2.15, 16.]


나는 결코 초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는 내가 가려는 길이 대다수의 인간, 95% 이상의 인간들이 가는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남들 거의 모두가 나를 비웃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로서 그러한 비웃음은 단지 가능성에 의한 것일 뿐, 그 비웃음이 지혜로운 자의 웃음이었는지, 혹은 어리석은 자의 웃음이었는지는 앞으로의 나의 생활의 결과에 의해 분명히 구별 될 것이다. [2.15.]

꿈이 크면 클수록 그것에 요구되는 고통과 눈물은 더욱 큰 법이다.  새로운 길을 찾아 개척해 나가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다.  다수의 인간이 걷는 길은 외롭지는 않다. 그러나 그곳에는 창조가 있을 수 없으며, 단지 모방과 거듭되는 평범한 생활, 습관의 반복이 있을 뿐이다. [2.16.]



    미래를 상실한 인간 [3.4.]


지금 세대의 대다수의 인간은 오직 ‘돈’만을 위해 산다.  인간으로서의 정신적 德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수 십 억의 인간들이 매일같이 분주히 활동한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 ‘돈’ 그리고 ‘性’ 혹은 권력 명예 그런 것 들이다.  

그들은 영원한 것을 버리고 순간적인 것을 취한다.  
도대체 무엇이 원인이 되어 이러한 사회가 형성되었을까?  인구에 대한 물자의 부족인가?  아니면 급격한 자연과학의 발전인가?  그 원인이 규명되어야 하고, 새로운 사회개혁이 일어나야만 한다.  
지금의 인간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내달리고 있다.  그들에겐 그들이 도달하게 될 목적지는 문제가 아니다.  오직 순간에 살려 할 뿐이다.

그들에게 미래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큰 것과 작은 것 [3.8.]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기꺼이 버린다.
인간은 한번은 꼭 죽어야 한다.  죽는다는 것은 평범한 사실이지만, 수치스런 生을 산다는 것은 영원히 잊혀질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없어질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추행이다.

생명을 결코 아깝게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언젠가 떠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너를 버린다.  그러나 너를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 있다.  그것은 네가 남긴 정신적 육체적 추행의 행적이다.
너는 결코 없어질 것을 귀하게 여기지 말라.
결코 작은 것을 위해 큰 것을 더럽히지 말아라.



    정신의 자유 [3.14.]


다른 모든 인간이 짐승과 같이 살기를 원해도, 나는 하나의 인간으로 죽기를 원한다.
인간은 정신과 함께 육체를 갖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의로운 정신을 팔아서까지 육체를 위할 수는 없다.  나는 하나의 선한 인간으로서 죽는 것을 최대의 기쁨으로 생각한다.  정신은 육체보다 고귀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인간들은 육체를 더욱 귀하게 여긴다.
그러나 나는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인간이 육체만의 안락을 추구해도, 그 반면에는 정신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 있으리란 것을 믿기 때문에...



    인생과 그림 [4.6.]


나는 하나의 인생을 산다.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나 ....
나는 한 폭의 그림을 그린다. -- 그러나 결코 붓 가는대로 그릴 수는 없다.

대부분의 인간은 모든 것을 붓 가는대로 그린다.
그리고 소수의 인간은 그리고자 하는 이상이 있다.
그리고 극소수의 안간 만이 그리고자 하는 것 외에 왜 그림을 그리는가? 하는 것에 대한 결론까지 가지고 있다.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인간.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인간.
왜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아는 인간.
그러한 세 종류의 인간으로 사회는 구성된다.
그러나 이상을 실현하는 인간은 극히 드물다.  



    인간의 한계 [7.18.]


우주 자연은 너무나 광대하다.  그리고 나는 너무 작다.
우주는 너무 거대하고, 나는 너무나 조그만 존재이다.
나는 하나의 인간으로 거대한, 무한히 넓은 우주의 극미한 일부로서 존재할 뿐이다.
얼마나 공허한가,  얼마나 두려운가,  그리고 얼마나 갑갑한가?!

예리하게 경쾌하게 우주를 꿰뚫으며 날고 싶다.
끝에서 끝까지...  그러나 나는 너무나 약한 존재이다.
내가 아무리 우주를 품에 안고 싶어도, 그것은 결코 불가능 하리라.
단지 내가 이를 수 있는 최대의 한계점은, 자연을 무한한 우주를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자연과 순수한 마음의 대화를 통하여 현실을 힘껏 포옹하는 것일 뿐이리라.

자꾸 날으려는 꿈을, 뛰려는 마음을 스스로 안정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나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때, 나는 비로소 온 우주를 느끼고 사랑할 수 있다.  분명코 우주는 너무나 거대하고, 나는 잠시 존재하는 하나의 생물일 뿐이다.



    밝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우리의 生을 가꾸자 [8.15.]


이제 여름도 서서히 물러가기 시작했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그 다음엔 다시 봄이, 그리고 다시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그렇게 계절은 변화하고 시간은 흐르고, 인간은 성장하고 쇠퇴하고 새 생명이 창조되고 노쇠한 생명은 잠이 든다.  
인간은 잠시 무대에 등장하였다 사라진다.  언제나 활기 있게 약동하는 자연은 변함없는 그의 위력을 과시할 것이나, 인간은 쓸쓸히 사라져 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인간이 갈 수 있는 최대의 한계는 묵묵히 깊은 마음에서 솟아나는 미소로 자신을 살펴보고, 아름답고 여유 있게 그들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사랑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것일 뿐이다.

얼마나 자랑스러울 수 있는 것인가?!  우리와 같이 무능한 인간이 우주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그런데 왜 인간들은 욕심스럽게도 그 우주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 왜 그들이 가질 수 있는 것 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하나의 조각품, 한 폭의 그림  한 편의 시와 같은 것으로 우리는 우리의 일생을 가꾸어야 할 것이다.  밝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    



    인류의 역사는 이기적 의지 위에서 변천하여 왔다. [11.14.]


인류의 역사상 처음은 개인의 힘이 眞理(正義)였다.
그 다음은 부족사회의 힘이 진리였고
그 다음에는 도시국가의 힘이 진리였으며
그 다음으로 대규모 국가의 힘이 진리였던 것이다.

힘이 진리다. - 즉 강한 자가, 민족이, 국가가 약한 개인과 민족과 국가의 자유와 재산과 처자를 약탈하여 지배하고 노예화 한 사실을 말한다.  누기 이 엄연한 사실을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또한 어느 누구가 현대의 인간은 이미 과거의 인간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넓게 멀리를 내다보고 관찰 할 때, 인류의 사회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 역시 각 개인과 민족과 국가가 각자 그들의 이기적인 본능, 의지에 의해서 견제하며 투쟁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투쟁의 표현 방식은 양상을 달리 할 수 있으나 결국 모든 인류의 문화와 사회는 이기적 의지에 근거를 두고 변천하여 나갈 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제 나는 그저 웃을 뿐이다. [11.30.]


인생이란 무엇인가?!  너무나 많이 들어왔고, 말하고 생각했던 제목이다.  
그러나 이젠 그저  웃는다.  씁쓸하니 묘한 웃음을..  
그리곤 이제는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를 찾는다.  어떻게 살아갈까 고.
무엇이냐에 대한 결말은 영원, 무한 앞에 굴복하여,  無知 無能 - 그것을 자각 함이었다.
그러므로 지금의 나는 자만심과 허영에서 깨어 현실에 눈뜨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우스꽝스런 존재였는가?!
감히 영원한 것에 도전하였던 나라는 존재가!
그러므로 이제 내가 나갈 방향은 하나의 유한한 시간적 공간적 존재인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살피고 알아서,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만을 가지고 내게 존재하는 생명을 아름답게 가꾸며 창조하는 생활을 통하여..
하나의 예술적인 생.  한 폭의 위대한 그림.  한편의 영원히 빛날 시와 같은 것으로 승화시키는 길 뿐이다.

인간은 영원함 가운데 존재하는 순간적 존재로,
무한함 가운데의 유한함, 극히 보잘 것 없이 작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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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사철학(歷史哲學)과 현대문명(現代文明)에 대한 일고(一考) [대학졸업논문]


          서언(序言)

Ⅰ  역사철학의 의미와 목적에 대하여

    1)  역사철학의 의미(정의)
    2)  역사철학의 목적

Ⅱ  우주와 역사에 대한 순환론(循環論)

    G. E. Cairns의 Philosophies of History

    1)  우주순환론(宇宙循環論)
    2)  대일환론(大一環論)
    3)  문화순환론(文化循環論)
    4)  결론 : G. E. Cairns의 견해

Ⅲ  현대문명의 위기(危機)

    1)  위기의 몇 가지 원인
    2)  로마클럽의 견해

결론 (結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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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언(緖言)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다. 자연(우주)의 의미, 사회의 의미, 인간존재의 의미 등 우리 인간이 보고 느끼는 본질을 깨우쳐 알려고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특이한 본성이다.  또한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가는 순간순간에 끊임없는 행동의 선택, 도덕적 선택을 행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은 인간이 자연의 위협을 어느 정도 극복하게 된 이후에 구체화된 성질이나 일단 인간이 자연에 능동적, 능률적으로 적응할 수 있게 된 이후, 인간은 끊임없이 그들의 인식대상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갖고, 그 대상의 배후에 있을 어떤 초인간적 의지나 그것을 지배하는 보편적 진리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여 왔던 것이다.  그것은 처음에는 원시적 종교로서 형성되었다가 이어 논리적-직관적 인식에 의한 철학적 사유(思惟)의 과정과 다양한 고차원적 종교의식의 과정을 거쳐 확대 되었으며, 근대에 이르러서는 과학적 인식원리와 역사적 인식원리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인간의 모든 정신적, 학문적 노력은 반드시 어떤 목적의식 하에 진행된다. 목적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의식할 수 있는 인간의 지적 특성 특히 미래에 대한 방향감각을 확립하려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미래를 의식하는 인간은 그들의 모든 행위와 생활의 방향을 확정짓기 위해 어떠한 목표를 설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고(本稿)의 취지는 역사적으로 인간의 지적 탐구의 최대 관심사가 되어온 우주(자연), 사회 그리고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인간의 여러 가지 해결책- 인식체계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현재 인류가 처한 위치를 확인해 보고, 미래의 방향 설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의 이상적인 원칙을 생각해 보려는 것이며, 현재 심각한 위기의식 하에서 평가되고 있는 현대문명의 여러 가지 난제를 밝혀보고 그 해결을 위한 방안을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 하에 나는 먼저 오늘날 큰 관심 하에 논의되고 있는 역사철학에 대하여 그 의미, 가치 및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고, 다음으로 인류역사상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던 몇 가지의 세계에 대한 역사철학적 인식을 생각해 볼 것이며, 이어 흔히 위기로서 평가되는 현대문명의 몇 가지 난제와 그것의 해결에 필요하다 생각되는 원칙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인류의 역사상 많은 가치기준에 대한 결정적 단안(斷案)이 행해져 왔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결단은 상대적인 것이었다고 믿어지며, 인간의 모든 행위는 아직 완성을 향한 과정에 있다는 믿음에서, 또한 모든 사유에는 항상 종합적 판단이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는 이와 같은 구상을 하게 되었던 바, 이하에 서술하는 모든 논의는 단지 참을 향한, 보다 밝고 맑은 미래를 향한 조그마한 의지로서 평가되어지기 바란다.



Ⅰ.  역사철학의 의미와 목적에 대하여

     1.  역사철학의 의미 (정의)

        1) 역사철학이란 용어의 기원과 개념의 변천

  역사철학이란 어떠한 학문인가를 밝혀 보기 위해서는 우선 그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와 그것이 사용되었을 때 가지고 있었던 의미를 파악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역사철학은 서양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학문의 일 분야로 콜링우드(R. G. Collingwood 1889-1943)의 분류에 따르면 역사철학이라는 명칭은  
  (1)  18세기 프랑스의 볼테르(Voltaire 1694-1778)에 의해서 창시 되었는데, 그의 역사철학이란 말은 비판적 또는 과학적 역사학을 의미하는데 불과하였다.  즉 역사가가 고서(古書)에서 발견한 모든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자신이 결단을 내려서 얻은 역사적 사고의 일형식(一形式)을 의미하는데 불과하였다.
  (2)  18세기 말 헤겔과 그 밖의 저술가들은 이 명칭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여 그것을 보편사(普遍史) 또는 세계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3)  19세기의 몇몇 실증주의자들에게 역사철학은 역사가가 상술(詳述)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제사건의 과정을  지배하고 있는 일반법칙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한편 제사건의 과정을 지배하고 있는 일반법칙을 발견한다는 실증주의자들의 견해는 ‘인류문명에 있어서의 견실한 진보의 가능성에 대한 신념과, 과학적 지식의 정밀성과 확실성에 대한 신념’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이러한 실증주의적 역사철학에 대하여 콜링우드는 ‘법칙과 가정의 복잡한 체계에 따라서, 자료를 해석한다는 과정을 거쳐 추리적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사실’에 대해 ‘역사학적 인식론에서는 이러한 제법칙과 제가정이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밝혀내야 하며  또 그 제법칙과 제가정이 어느 정도로 필연적인 것이며 정당한 것인가 하는 것을 문제로 삼아야’되는데도 불구하고 실증주의 역사가들은 이러한 것을 모두 무시하였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무의지적 인과법칙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자연과학의 대상으로서의 비역사적세계’와  ‘인간의 정신력의 발현인 유의지적 정신과학의 대상으로서의 역사적 세계’를 구별한 콜링우드의 견해의 일면으로서,  이러한 콜링우드의 견해는 서양의 철학적 전통이 중세의 신학 중심에서 16-19세기의 자연세계의 보편적 원칙에 대한 관심을 거쳐, 드디어 역사 전개의 중심으로서의 인간의지- 인간정신의 역할을 중시한 현대역사철학에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2)  역사철학에 대한 정의

  역사철학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선 우선 역사의 본질(대상, 방법, 가치)은 무엇이며, 철학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먼저 역사에 대해  역사란 무엇인가? (本質)/  그것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對象)/  그것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方法)/  그것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價値)/ 라는 네 가지 명제 하에 역사를 분석한 콜링우드의 견해를 통하여 역사에 관한 이해에 접근해 보겠다.

콜링우드는 먼저 사고(思考)의 한 특수형태로서의 역사에 대한 해석은 다음의 두 가지 자격을 가진 인물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첫째 그 해답자는 이와 같은 형태의 사고에 대해서 경험을 가진 자이어야 한다. 즉 그는 역사가이어야 한다.  제 2의 자격을 가진 사람이란 역사적 사고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경험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즉 그는 역사가일 뿐만 아니라 철학자이기도 해야 한다.’

  이상의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한 후에 콜링우드는 위의 네 가지 명제에 대해 논의하였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가) 역사학의 정의(定義) :  과학은 의문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하는 사고의 형태이며,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어떤 것에 집착해서 그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을 구성된다.  따라서 미지의 사물에 대한 일종의 조사 또는 연구인 역사학은 일종의 과학이다.

  나) 역사학의 대상 :  역사학이란 인간행동의 과학 즉 과거에 행하여진 인간행동에 대한 연구이다.

  다) 역사학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  역사적 과정 또는 방법은  현재 여기에 존재하고 있으며, 역사가가 이에 대해서 사고함으로써 그가 과거 사건에 대해서 묻고 있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기록문서, 즉 증거의 해석으로 진행한다.

  라) 역사학의 목적은 무엇인가?  :  역사학은 인간의 자아인식을 위한 것이다. 인간이 자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중요하다고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다. 여기서 자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기의 개인적 특성, 즉 타인과 자기를 구별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본성을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역사학의 가치는 그것이 인간이 무엇을 해 왔는가?  그리고 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는데 있다.  

  그러면 이어서 철학(哲學)의 본질에 대한 F. 그레고와르(Francois Gregoire)의 견해를 검토해 보겠다.

  그레고와르는 철학에 대하여  “철학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개인적인 기질이나 맛인데, 그렇다고 하여 증명할 수 있는 성질이거나 또는 교수(敎授)해서 전수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철학의 특성을 논하면서  ‘철학자로서 존재함이란 보편적인 것으로의 종합이나 통일을 위한 꺾을 수 없는 근본적 경향에 의하여 지배되는 존재임을 뜻한다. 그리하여 세계의 여러 가지 국면들에 대한 통일되고 동질적인 비전으로 나아가려는 열망과, 좀 더 깊게 말하면 세계관에서 연역(演繹)된 인생관과 규범(規範)에 대한 전체적인 연관성에 이르려는 열망에 의하여 철학자의 존재가 압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그는 계속해서 ‘철학이란 낱말의 중심개념은 전체적인 체계로 향하려는 노력의 개념, 통일적이고 반성적인 인식 같다.’는 ‘파로디’의 견해와  ‘철학 속에는 두개의 상이한 요소가 하나의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 즉 참에 대한 사변적(思辨的) 인식과, 인간 운명의 문제에 대한 견고한 실천적 해결, 한마디로 철학은 사유된 확실성 위에 근거한 성격과 삶의 규칙이다.’라고 말한 ‘브롱델’의 견해를 서술했다.  그는 또 철학적 사유의 세 가지 과정으로서의  ㄱ) 과학철학  ㄴ) 일반철학으로서의 형이상학(形而上學)  ㄷ) 도덕철학의 세 문제에 대해 논했다.        

  이상 역사에 대한 콜링우드의 견해, 철학에 대한 그레고와르의 견해를 서술하였는데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역사와 철학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이루며 형성된, 역사철학(歷史哲學)에 대하여 보다 바른 이해에로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 지는 바, 본인의 비견(鄙見)으로는 역사철학이란 역사적의식(歷史的意識)과 세계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思惟)가 서로 밀접한 상호관계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서 형성된, 世界-自然과 인간의 현존(現存)을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각에서 통일시켜 인식하려고 노력하는 역사적 의식 하에 성립된 새로운 형태의 철학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끝으로 콜링우드의 역사철학에 대한 정의와 역사철학 연구의 진행과정에 있어서의 두 단계에 대한 논의를 기술(記述)한다.    콜링우드는 ‘유기화(有機化)되고 체계화 된 역사연구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생성되는 철학적 제 문제(諸問題)에 대한 연구’를 역사철학이라 정의 했으며,  그 연구의 진행과정의 두 단계로서  첫째 철학에 있어서 고립된 학문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역사철학도 철저한 고립적 상태에서 어떤 특수 문제에 대한 특수 연구로서 생각되어야 할 것과  둘째로 이 역사철학이라는 철학의 신 지파(新支派)와 구 전통적인 제 학설과를 연결시켜야 될 것이라는 것을 제시했다.


     2.  역사철학의 목적  
  
  ‘역사철학자는 과거에 일어난 것에 관한 그의 지식을 인간의 운명의 모든 신비를 푸는데 이용하려 한다.’고 크레인 브린톤(Crane Brinton)은 말했다.  또 최재희씨는  ‘철학으로서의 역사철학은 한갓 과학적 차원에 만족할 수 없고  초역사적(超歷史的), 초과학적(超科學的)으로 종합적, 통일적 인식을 갈구-모색하려고 하는 것이기에  그것은 역사과학, 사회학, 경제학, 인류학 등의 경험과학을 무시하지 않고 이런 과학들의 성과를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역사철학은 ‘미래의 인류사에 대해서 그 어떤 방향을 시사하고, 이로 인해서 현재의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주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크레인 브린톤은 역사철학의 목적에 대해 논하면서 ‘하나의 완결된 역사철학은 모든 큰 문제들, 즉 좋은 생활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인간은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앞으로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는 전망은 어떠한 것인가?  요컨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라고 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최종적인 답을 내리려 한다.’고 말하였다.
  이상의 논의를 검토하여 보면  역사철학은 과거에 있어서 종교, 철학이 수행하여 온 역할을 대신하려는 역사적 의식 하에서 진행되는 새로운 형태의 철학으로서 세계에 대한 통일적 인식의 완성과 인간의 위치와 본질에 대한 규명(糾明)을 통하여, 인류의 가치기준을 재정립하고 앞으로 인류가 추구해야할 목표를 발견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고 있다고 보인다.              


Ⅱ.  우주와 역사에 대한 순환론(循環論)

     Grace E. Cairns의 'Philosophies of History'를 통한 접근

  과거의 인간들은 어떻게 세계를 이해했으며, 어떻게 그들 존재의 의미를 규정하였는가에 대하여 고찰(考察)하여 봄은, 오늘날 인간이 처한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데 있어서 매우 유익하며 동시에 필요불가결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인류의 문화는 인간이 언어를 발명하고 농업과 가축사육의 괄목할만한 기술적 진보를 이룩한 이래 급격한 성장을 이룩하여 왔으며, 지금까지 5,000여 년의 역사시대를 통하여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과 인간사회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여 왔다.  
  그러한 인간의 노력은 그들의 지적 기술적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매우 다양한 세계관을 형성하여 왔던 바, 그러한 여러 가지의 세계관에 대한 체계적, 종합적 인식은 현대의 사상가들 특히 역사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자들이 추구하는 극히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제 겨우 역사철학이라는 과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본인으로서는 이미 개척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마땅히 취해야 할 과정이라는 생각에서 케언즈가 지은 'Philosophies of History' ( 이성기 譯 ‘동양과 서양의 만남’)를 통하여 일차적 이해에로 접근해 보고자하며, 본고(本稿)의 구성상의 제한으로 인하여 단지 케언즈의 순환론의 분류와 그의 관점, 그의 순환론적 역사관에 대한 결론 부분을 중심으로 극히 간단한 서술에 그치려 한다.

  케언즈는 먼저 ‘인간의 역사 혹은 우주적인 역사의 의미’를 추구하는 방법을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자신의 연구가 그 중의 한가지인 순환적인 역사관에 대한 고찰임을 밝혔다.  다른 두 가지의 방법은  1) 진보사상과  2) 회의적(懷疑的)인 역사관으로  진보사상은 ‘인류가 끊임없이 규정되지 아니한 미래를 향해서 직선적으로 진보하고 있다’는 개념이며, 회의적인 역사관은 ‘역사라고 하는 것은 의미와 형태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 케언즈는 그의 순환적 역사개념의 유형(類型)을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하였는데 그것은 인간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1) 우주순환론  2) 일환론  3) 문화순환론 들이다.  이하에서 그의 순환론에 대한 이해를 간단히 검토한다.

    1)  우주순환론(宇宙循環論)

  우주순환론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문화에서 그 기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들의 기원은 인생의 생사의 주기와 뱀이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는 것과, 태양과 달의 주기를 관측하게 된 것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가설을 창안해 내는 사상가로서의 인간은 곧 철학적인 우주순환관을 발전시켰다.

  가) 인도인의 순환관  :  인도인의 사상은 더욱 신화적인 형식과 더불어 시작하는데, 그것은 힌두교의 시바(Shiva)의 우주적인 무용과 요가의 교리와 건축양식  그리고 화단의식(火壇儀式 -fire altaritual)과 같은 것이다.  불교와 자이나교의 사상에서도 유사한 상징적인 방법이 발견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만다라(曼茶羅 -mandala)와 보로부두르(Borobudur)인데  만다라의 가장 일반적이며 중요한 특징은  의미에 있어서, 전체 우주에 대한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철학이 도해형식(圖解形式)으로 풀이된 가시적인 표상이라는 점이며, 기능에 있어서 그것의 목적은 구도자를 이 우주적인 실재와 재수렴(再收斂)시키는 것이다.  불교의 건축 가운데 석조(石造) 만다라 즉 보로부두르는 인간과 우주적인 역사에 대한 가장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계시(啓示)하는 것 가운데 하나이며 기념비적인 증거이다.  만다라의 근본 주제는 다시 마야, 요가, 요가 철학의 순환적인 시간에서 나타나는데 이들 요가철학에서는  1) 자신을 사람과 우주적인 실재와 재수렴 하고자 하는 인간의 심층심리적인 요구에 대한 문제해결과  2) 인간으로 하여금 기본적인 형이상학적 실재와 더불어 해조(諧調)를 이루게 하고 총화를 이루게 하는 시간과 역사의 의미에 대한 철학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나)  중국의 유기적 순환사상  :  중국의 사상도 역시 토착적인 형식에 있어선 정신적인 자유에 크게 역점을 둔다. 이러한 사상은 전체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유기적인 관점으로부터 접근되었으며, 인간은 전체유기체 즉 자연 그 자체의 대우주에 대한 부분이 된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전체적인 유기체의 한 유기적인 부분으로서 인간은 조화를 이루는 역할을 해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자연의 균형은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계절적인 순환에 맞추어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또 계절적인 순환은 음양(陰陽)의 법칙과 우주내의 수많은 다른 제 현상과 관련을 가지고 있다.  자유란 개인이 인간사회와 자연과 조화 있는 총화를 이룰 때에 존재한다.  도교(道敎)에는 신비주의적인 요가 형식의 철학이 중심이 되어 있으며, 이 신비주의적인 철학에 있어서 구도자의 목적은 존재의 본래적인 근원에 복귀하는 것이며 그것은 자연과 신비적으로 연합하므로 서 가능한데 이것은 중국의 철학에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다)  희랍과 로마세계의 신화적인 순환관  :  희랍과 로마세계에 있어서는 영원히 회귀(回歸)하는 우주적인 순환이라는 것이 역사를 이해하는 친숙한 방법이었다. 그들 사상의 신화-상징적인 해석과 자연철학적인 해석은 종교적이며 동시에 과학적인 이중의 의미를 갖고 있기에 중요하며, 종교에 있어서 황금시대와 신동(神童-구세주)에 대한 사상은 배화교도와 히브리인들 사이에서 비슷한 사상의 형태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과학에 있어서 희랍인의 견해는 역사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 있어서 근대의 과학적인 방법들의 시조가 되며, 또한 현대의 우주와 인간역사에 대한 과학적인 순환사상의 시조가 되고 있다.


    2)  인간 역사의 대일환론(大一環論)

  가)  배화교도(拜火敎徒)   :  배화교도의 사상에 있어서 역사는 절대의 시원(始原)과 종말을 가진 한번의 유일한 대희년(大喜年)이다. 그것은 정복(淨福)의 황금시대로 시작하여 그 다음에 아리만과 그의 악령들이 의(義)와 순결과 질서 그리고 진리를 파괴시키려고 세상에 들어오며 악마의 세력과 전투를 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전환점은 인간을 돕고자 종교를 가져온 구속자 메시아 조로아스터가 출현함으로써 도래된다. 조로아스터의 3인의 아들들은 그 싸움에서 인간이 승리할 때 까지 인간을 계속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황금시대가 다시 존재하게 되며 오로지 이 시대만이 영원한 것이다.
  이와 같은 배화교도들의 사상은 에덴에서 시작하여 황금기와 신국(神國)에의 복귀로 끝나는 히브리-기독교도적인 대순환 사상과 많은 공통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나)  히브리-기독교의 일환관  :  히브리 -기독교의 사상은  1) 최초의 황금시대  2) 인간의 타락  3) 타락이후의 도덕적인 퇴보의 기간, 황금시대 - 지상과 천국 양편에 있어서의 신국에의 복귀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일환적인 역사관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Jeremiah의 보편주의(이방인을 포함한 세계적 사회)로 변형되었다가, 다시 미래에 대한 묵시적인 종말론으로 전개되는데  이들 사상에 있어 역사란 어떤 영혼들이 구원을 받아 신께 복귀하는 악몽과 같은 중간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히브리-기독교의 사상은 聖어거스틴에 의해 조직화되고 철학적인 형식이 부여된다.

  다)  聖어거스틴의 대세계순환  :  聖어거스틴(St. Augustinus, 354-430.AD)의 유명한 작품 신국(City of God)에서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묵시사상에 대하여 보다 분명한 유형과 보다 심오한 철학의 관념론적인 접근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聖어거스틴의 역사에 대한 핵심 이념은 여전히 성서의 묵시적인 어떤 것 즉 지상의 에덴, 타락으로 인하여 죽음이 인간에게 이르렀다는 사실, 구속, 천년왕국, 낙원에 복귀함으로써 끝나는 최후의 심판과 구원받은 자의 불사와 같은 것이다.  개체 인간의 생에 대한 의미와 마찬가지로 인간역사의 의미에 대한 어거스틴의 견해는 우리의 삶이 ‘죽음을 향한 경주’에 불과하다는 단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라)  회교사상(回敎思想)에 있어서의 대일환론  :   회교(Moslem Religion)와 회교도(Islam)는 유태교와 기독교의 경전을 알라(Allah)의 진정한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던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모하메드(Mohamed)에 계시된 코란(Koran)은 모든 계시들 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것이다.  정통 회교도들은 신의 섭리가 모든 역사와 인간과 자연을 지휘하며, 각 사람이 누리는 생은 그를 위하여 알라가 계획한 생이라는 견해를 대체로 받아들이며, 동시에 정의와 자비로운 신에 의한 보상과 응징이라는 사상도 받아들인다.
  모슬렘의 사상에 있어서 대다수 종파는 밀의적(密儀的)인 해석을 내리는 중에 묵시적이며 일환적인 역사관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모슬렘 사상과 정통 기독교의 사상은  일치하고 있다.

  마)  후대 서양사상에 미친 어거스틴의 일환적 역사철학의 영향  :   인간역사에 대한 聖 어거스틴의 철학은 중세기를 지나는 동안 유력한 것이었다.  그것은 13C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에 의하여 재확인 되었으며 바로 그 형식으로 오늘날의 로마 가톨릭에 이어지고 있다.
  문예부흥기에 이성과 과학이 강조되면서 섭리론의 근거가 위태로워졌으나,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그것은 더욱 힘차게 재확인 되었으며, 특히 캘빈의 신학에 있어서 예정론은 더욱 분명하게 중심교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또한 17세기 코페르니쿠스와 데카르트 같은 사상가에 의해 발단된 과학적 방법론의 영향으로 역사에 있어서 신의 섭리에 의해 연출된 부분에 대한 회의론이 생겨났다. 그러나 섭리론은 부셰(Bossuet)를 거쳐 다시 20세기 중엽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의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에서 재확인 되었다.

  바)  콩도르세  :  우주와 인간사에 대한 전통적 종교적인 접근방법으로부터 탈피하려는 경향이 르네상스시대에 시작해서 계몽주의 시대에는 극치에 달했다.  계몽주의 시대의 한 사상가인 콩도르세는 천상의 낙원을 지상으로 끌어내렸으며, 그의 시대에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하였던 새로운 과학적인 지식이 가져다주는 희망을 근거로 하여 이를 확신케 하고 있다.  콩도르세에 의해 확립된 세속적인 진보에 대한 사상은 헤겔의 변증법적 일환역사철학(一環歷史哲學) 아래 마르크스에 의해 공식화 되었다.  

  사)  헤겔  :  헤겔의 변증법적인 순환 속에서 인간의 역사는 다음과 같은 명제 - 반명제의 유형을 나타낸다. 순수한 존재로서의 무한의 부정(否定)은 무(無)이다.  현실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 무한은 구체적인 것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체를 실존적인 세계의 무수한 형식들 속에 현현(顯現)하고 유일한 실재의 개체 즉 절대이념으로서의 그 자체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고,  그에게 있어서 역사적인 과정의 목표는 절대적인 무한한 정신의 완전 구체적인 실현으로 이것은 자유의 실현을 의미했다.

  아)  마르크스  :  마르크스는 헤겔이 제시한 변증법적인 역사의 발전을 유물론적인 것으로서 보인 역사에 적용했다. 그와 동시에 마르크스는 유태, 기독교의 묵시적인 사상에서 차용한 훌륭한 예언적인 각본을 추가한다.  헤겔이나 동양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도 역시 자유를 역사에 있어서 인간 행로의 목표로 보았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는 물질적인 욕구에 대한 인간의 멍에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한다.  마르크스는 이것이 급선무라고 보았고, 그렇게 될 때에만 인간은 모든 분야에서 자기의 보다 고상한 협동적이며 건설적인 창의력을 자유롭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자)  스리 오로빈도의 일환적인 역사이론  :  20세기 인도의 철학자 스리 오로빈도는 우주적인 역사를 무한한 정신의 퇴화와 진화의 과정으로 보았다.  오로빈도의 무한자의 개념은 한 존재에 대한 개념이며, 그의 실재는 부분적인 방식으로만 우주에 의해 현현된다.  거기엔 현현되지 아니한 무한한 깊이가 있으며 무한자의 퇴화는 그것의 가장 저급한 수준의 존재, 즉 물질에의 하행(下行)이다. 물질은 非意識的인 수준이라고도 한다. 그런 다음에 진화가 시작되며 비의식적인 것은 下位意識的인것 혹은 생명수준의 존재에 달한다. 다음에 自己의식적 혹은 정신적인 수준, 즉 인간이 차츰 나타난다.  이것을 넘어서서 진화과정의 최종 목표는 영지적(靈知的)인 수준, 즉 초정신적인 것이지만 아직 이러한 수준에 도달해 보지를 못했다.

  차)  라다크리쉬난  :   라다크리쉬난의 일환적인 역사철학도 오로빈도의 역사철학과 유사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는 이 다음 그리고 최종적인 기원은 현재의 지성에 대한 층면이, 정신의 층면 즉 자유의 층면에 의하여 대치되었음을 보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일환적인 역사의 의미와 목표는 ‘자유스런 정신의 왕국을 수립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수준에 달한 성자들은 몇 안 되지만, 결국 모든 사람은 자유의 높은 층면에 도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죽음은 정복될 것이며 시간도 극복되고 신국(神國-Brahmaloka)이 지상에 도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이 벌어질 때 우주적인 현존재는 무한한 존재에 다시 병탄(倂呑)될 것이다. 우주적인 순환이란 만다라의 상징적인 표현에 생생하게 표상된 신으로부터의 소외와 복귀의 순환인 것이다.


    3.  문화순환론(文化循環論)  :  20세기의 제(諸) 견해

  역사를 유형 짓는데 있어서 문화순환사상은 과학적 사회적인 방법으로 사료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20세기 서양세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의 대 역사철학자 이븐 칼둔(Ibn Khaldun)과 서양의 비코(Vico, 1668-1744)는 20세기 문화순환사관의 선구자로서, 이들의 사상은 스펭글러, 소로킨, 그리고 토인비와 같은 현대의 순환론자들이 소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상을 내다보고 있다.

  가)  이븐 칼둔  :  그는 몽테스큐와 버클(Buckle) 같은 후대의 서구 사상가들의 ‘실증주의적’인 제 이론 즉 지리학적인 영향으로 인하여 고도한 문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에서부터 자기의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문명의 근거로서 종교에 중요성을 두었고, 종교는 다양한 집단감성을 가진 다양한 부족들을 단합시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보았으며, 종교의 역할에 의해 한 왕조가 세워지면 그것은 다섯 단계의 변화를 거쳐 결국 붕괴되는 순환과정을 밟는다고 생각했다.

  나)  지암 바티스타 비코  -  문화순환의 과학  :  비코의 저서 ‘신학문(新學問)’은 표제가 암시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는 과학이라는 명제를 옹호한다.  신의 섭리에 의해 인도된 비코의 순환적인 유형은 ‘인간적인 시민사(市民史)의 회귀(回歸)’에 대한 ‘영원한 전형적인 유형’이다. 전형적인 영원한 법칙들을 따라 모든 국가사정은 발전, 진보, 성숙단계, 쇠퇴, 멸망을 통하여 진행되며  비록 영원한 시간을 통하여 때때로 탄생하게 되는 무한한 세계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러할 것이며 인간의 문화순환은 아주 똑 같은 유형 속에서 회귀할 것이다.  비코의 위대함은 이븐 칼둔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지배적인 인간역사에 대해 그가 인본주의와 사회학과 심리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다)  오스왈드 스펭글러의 문화순환론  :  20세기 문화순환론자들 가운데 으뜸이 되는 역사철학자는 스펭글러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문화는 소우주적인 유기체와 비슷한 출생, 성장 및 쇠퇴의 유형을 따르는 독특한 대우주적인 유기체라는 것이다.  개개의 대문화유기체는 하나의 종교적인 이념을 중심으로 총합된 전형적인 개성 혹은 스타일을 발전시킨다. 이러한 스타일은 그 문화의 예술과 과학, 그리고 사회적인 기구와 정치적인 기구 가운데 드러나게 된다. 몰락과 쇠퇴는 그 문화를 총합시키는 주된 이념에 대해서 회의를 가질 때부터 시작된다. 역사란 그와 같은 대문화 유기체의 발전이라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라)  소로킨의 문화역학(文化力學)의 순환적인 유형  :  하버드의 사회학자 소로킨도 문화순환론을 옹호하고 있다. 각 문화는 특유한 이념적, 이상주의적, 감각적인 순환의 과정을 거쳐 나간다. 그러나 그를 뒤따르는 제 문화는 전 문화 위에 터전을 마련함으로써 대다수 인류의 진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이로써 소로킨의 역사에 대한 이론은 나선적(螺旋的)인 것이 되며, 하나의 문화가 중심으로 삼고 발전하기 시작할 지도 모를 핵심적인 사상은 이념적, 혹은 이상주의적인 것이다. 이상주의적 또는 완전한 것이란 종교적(직관적-신비적)인 것과 합리적-과학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를 총합하는 이념이 차츰 그 창조적인 정신을 잃어가기 시작할 때에 그 문화는 쇠퇴하고 와해된다.

  마)  토인비  :  토인비의 대체적인 관점은 인간문명의 기본측면으로서의 종교가 전반적인 진보를 보여준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나선적인 것이다.  과거의 모든 위대한 문명이 보여준 흥망성쇠의 유형은, 사람들을 현세의 유물주의적인 궁극 목표로부터 소외시키고 정신적인 궁극 목표로 향하게 하는 신의 섭리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토인비는 한 문화의 몰락은 세속적인 의미의 목표에 대한 환멸과 종교의 진행에 있어서 발전을 유발하는 것, 즉 보다 높은 고등종교의 탄생으로 인간은 정신적인 층면의 목표를 향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 인간의 진정한 자유는 그와 같은 영원한 정신세계에 있어서 만이 성취되는 것이었다.



    4.  결론  :  순환론에 대한 케언즈의 결론

  이상에서 우주순환론, 일환론, 문화순환론으로 분류된 과거의 여러 사상가들의 견해를 케언즈의 이해를 통해 극히 간단히 살펴보았다.  끝으로 이러한 고찰을 통하여 케언즈가 내린 몇 가지의 중요한 결론을 살펴본다.


  1)  역사를 순환적으로 유형(類型) 짓는 것이 옹호될 수 있는가?

  순환적이거나 비순환적이거나 간에 인간역사의 중요한 몇 가지 측면들이 부합되는 절대적인 유형을 제시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하는 것이 대부분 현대의 역사가와 사료(史料)편찬가들의 견해이다. 실제의 역사적인 인간세계를 설명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역사 가운데 작용하는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다원론적인 방법을 택하지만, 결국 역사가들이 하나의 사상에 맞추어 사실들을 나열하는 방법은 부분적으로는 적어도 자신의 마음속으로 구상해야 하는 것이다.  또 역사가의 사상은 그가 처한 환경과 시대의 영향 하에서 형성되는 것이고, 물리, 과학 이외의 제 분야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완전한 진리라고 할 것을 어느 단일한 세대에서도 이루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기준이 필요하다.

첫째로 그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절대적인 것이라고 자부하는 어떤 특수한 역사철학을 회의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그러나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문화와 현재 동, 서양의 제 문화가 시도하는 것을 감식하고, 개방적인 마음을 갖게 하여 인간역사의 의미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2)  동, 서양 순환철학의 비교 (역사의 목표와 의미에 있어서의 유사성)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혹은 중국 도교와 요가체계와 같은 모든 동양의 순환철학에 있어서 목표는 정신적인 자유이다.  이것은 개아(個我)의식에 집착한 욕망의 물질세계-분열과 해체의 세계-의 멍에로부터 벗어나 일자(一者)인 동시에 일체(一切)인 중심과 더불어 정신적인 통일과 총화를 이룬 세계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인류와 다른 우주의 생물들에 대한 그러한 초역사적인 목표는 역사에 대하여 영혼의 해방이라고 하는 목적을 부여 한다.  또한 동양의 정신철학은 편협한 저 세상적인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정신적인 자유와 성숙이야말로 분리된 개아(個我)가 정말로 신화라는 것과 인간의 목표는 중심이며 일체이신 무한한 一者와 합일하는 것임을 체득하는데 있음을 강조한다.

  우주와 인간역사에 대한 모슬렘과 기독교의 묵시적인 일환사상의 목표는 여러모로 동양적인 견해와 유사하다. 역사와 우주 그리고 인간은 동양인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짧은 것으로, 절대적인 시원(始原)과 종말을 가진 대일환(大一還) 속으로 압축되었다.  그러나 중신의 세계, 즉 신의 정신세계에 들어감으로써 생사의 물질세계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것에서는 동양적인 사상의 목표와 거의 흡사한 것이다.  이러한 일환론적 사상의 본질은 토인비의 문화순환론에 이어졌으며 헤겔에 있어서도 역사의 의미와 목표는 개체 인간의 인격의 목표가 관여하는 한에 있어서 동양의 제 학파의 그것과 거의 같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변증법적인 유물론은 공언하듯이 미학적이며 이 세상에서 생의 본질적인 향락에 집중하였다. 사회의 물질적인 제 생산력은 직접, 간접으로 인간의 문화적 체계를 창조하는 신들이며, 인간의 목표는 그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유일한 삶에 있어서 이들 제 생산력의 산물을 향수하는 것이라고 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역사의 목표는 대다수의 대중이 마침내 집단적으로 생산의 수단들을 소유하게 될 때에 달성된다고 보았는데, 이 목표는 인간역사의 묵시적인 대일환 속에서 달성되는 것으로 이 목표의 성취는 전 인류에 대한 자유인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는 단지 인간적인 수준에서 만이라고 한다면 개체 또는 개아의 의식을 상실한 일종의 인간성에 대한 집단적 혹은 공통적인 의식에 있어서 중심에의 복귀를 전제로 한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인 목표와 동서양의 제 철학을 연결하는 근본적인 패반(覇絆)이 존재한다.  노트트롭이 말한 것처럼 인류를 위한 새로운 기원을 수립하기 위하여 우리는 서양의 과학적인 지식과 공학의 이론적인 요소와 더불어 결합된 동양의 강렬한 초의식적인 영성(靈性)을 필요로 한다.


  3)  우주적인 순환들과 현대과학 Premieral

  현재 가장 호의를 많이 얻고 있는 두 가지 우주론적인 이론, 즉 ‘계속적인 창조론’과 ‘폭발설’은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성질의 대우주적인 순환들을 가정하지는 않는다.
  ‘폭발설’을 주장하는 학파는 최초의 원자(Premieral Atom -레마르트) 혹은 일렘(Ylem -가모프)의 폭발로부터의 발단을 가정하는데, 이것은 인간역사의 일환적인 묵시론 들과 일치한다.

  또 ‘계속적인 창조론’은 정신에 있어서 힌두교와 불교 그리고 헤겔과 스피노자와 같은 서양의 범신론적인 사상가들의 우주론적 사변에 가깝다.  그러나 ‘폭발설’은 일렘이나 최초의 원자가 나타나기 이전의 세계의 본성에 대한 설명이 없고, ‘계속적인 창조론’은 수소원자의 無 로부터의 창조라고 하는 단점을 갖고 있다.  

  ‘계속적인 창조론’의 최초의 제안자 가운데 한 사람인 호일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은하계의 모든 송이, 모든 항성, 모든 원자는 시작을 가지고 있었지만 우주자체는 그렇지가 않다. 우주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부분들 이상의 어떤 것이며, 아마도 결론을 예측할 수가 없을 것이다.” 호일레는 무한한 우주와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의 무한을 가정한다.
  서양의 대일환론은 이러한 견해에 일치하지는 않으나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 및 중국의 역사철학은 그것과 완전히 조리가 닿는다.  하나의 세계질서에 뒤이은 또 하나의 세계질서는 각기 동일한 근본적인 유형으로서 공허한데서 나타나서 결국 사라진다. 호일레는 거의 꼭 같은 것을 긍정하고 있다. 각 은하계는 꼭 같은 패턴을 통해 전개되며 가없는 공간 속으로 사라진다.  오직 전체의 무한한 우주만이 동일한 것으로 남는다.

  삼라만상과 우주 그리고 인간역사에 대한 그러한 유기적인 견해는 중국사상에 있어선 아주 시적으로 출발하였다. 철학적으로 대우주와 인간의 하나임에 대한 신비적인 도교의 직관적인 깨달음에 근거한 중국의 순환관은 우주의 본성과 그 안에서 인간의 위치에 대하여 상당한 정도의 통찰에 달하였다.

  오늘날의 천문학자들은 광대한 우주에 있어서 생명의 발전에 적합한 거대한 유성들이 적어도 1억 개 존재하며, 틀림없이 단세포 형식들로부터 정신의 형식들(그 너머에는 무엇이 가로 놓여 있든지)에 이르는 생명의 역사는 반복되어 왔다는 사실을 지극히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순환적인 역사철학들은 우주역사에 적용되었던지 아니면 인간역사에 적용되었던지 간에 뚜렷한 근거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동양의 순환관들은 현상적인 우주의 궁극적인 본성에 관한 진실한 이념을 직관을 통하여 적중시킨 것 같다.


  4)  예지(叡智)  :  역사에 있어서 이 다음의 기원

  만약 우리가 탐구하였던 과학과 종교철학적인 체계 모두에 의해서 옹호된 인류의 혈연적인 통일의 사상이 결국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면 인류역사의 다음 기원은 상호작용 하는 두 층면에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세속적이며 이 세상적인 하나의 층면은 지상에서 이러한 삶을 누림에 있어 일체의 인간, 형제들을 위하여 마르크스, 소로킨, 라다크리쉬난, 토인비, 오로빈도와 같은 사람들이 믿는 바와 같이, 보다 신적인 존재를 창조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를 제외한 이들 사상가들은 사람들이 이러한 물질세계를 넘어서서 저들의 궁극적인 목표와 ‘본향’으로서의 정신적인 층면을 바라보지 아니하면 인간의 통일은 영속적인 근거 위에서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극적이며 깊은 영감적(靈感的)인 견해는 지학자(地學者)이며 인류학자인 떼일야르드 샤르댕(Teilhard de Chardin)에 의해서 그의 저서 ‘인간의 현상’(The Phenomenon of Man)에서 제시된다.  보다 큰 구심성(centralism)이 언제나 본질적인 측면이었던 복잡화를 향하여 , 생명이 지향적인 추세를 보여준 이래 인간의 더 이상의 진화는 하나의 보다 큰 구심성(求心性)을 보여줄 것이라고 샤르댕은 주장한다. 사람은 이미 생명층 혹은 생명권을 넘어 지구라고 하는 행성의 둘레에 하나의 새로운 층을 전개하였다. 이것이 바로 정신권 또는 정신사회의 층이며, 그것이 밖으로는 지구라는 행성의 면모를 바꾸어 놓았으며, 안으로 정신권은 우리의 전체 정신적인 문화의 유산 또는 정신적인 분위기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검토한 모든 역사철학들은 사랑을 건설적이며 응집력이 있는 패반(覇絆)으로서 사랑을 통하여 인간의 제 사회는 성장하고 번영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이미 논의한 동, 서양의 많은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샤르댕은 ‘이성과 신비주의의 접속을 통하여 인간의 정신은, 그것의 발전에 대한 바로 그 본질(사랑)에 의하여 그 활력의 최대치를 힘자라는데 까지 투시하여 찾아내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 한다.  이것들은 이성, 과학 그리고 사랑, 즉 민주적이지만 유기적인 세계문화가 나타날 것이며, 그런 다음에 최종적으로 영원한 오메가의 상태가 이르게 될 것을 의미한다.

  라다크리쉬난은 높은 영성(靈性)의 새로운 기원 즉 정신이 지금까지 인간에게 있어서 지배적인 요소였던 지성을 대신하게 될 새로운 기원의 여명(黎明)을 기대한다.  다가오는 정신의 시대는 지적인 사랑에 근거한 전 세계적인 인간통일의 기원이 될 것이며, 대체로 협조하는 개인들과 민족문화들의 세계가 될 것이다. 지성(知性)과 사랑은 지배적인 것이 될 가치들인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이들 제 가치를 확립하기 위하여 최상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인간역사의 다음의 기원은 오웰(Orwell)의 1983년의 비극적인 광경을 닮게 될 것이다.  보다 심하게 말하면 3차대전에서 살아남은 인간은 끔찍스럽게 다시 야만 상태로 환원될 것이다. 이것은 비코의 말을 빌리면 너무 썩어서 구제할 길이 없는 사회에 대한 ‘극단적인 치유책’인 것이다. 이성과 사랑 그리고 이들 제 가치를 보충하기 위한 작업은 인류를 이 마지막 재앙으로부터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천문학적인 광대함에 있어서 최고의 정신적인 목표는 이미 많은 은하계에서 달성되어 왔을 것이다.

  동양의 행자(行者)들과 서양의 행자들의 신비적인 체험에서 이루어지고 윤곽이 잡힌 정신의 완전한 순환은 호일레의 제 이론이 옳다고 할 경우 무수한 은하계에서 이미 달성되어 왔을 것이며 또 그와 같이 반복될 것이다.  힌두교도와 불교도들의 동양적인 순환관은 이런 까닭으로 하여 대우주적인 수준에서 역사적인 진리를 직관한 것임이 입증될 것이다.
  다음의 대문화의 순환은 분명히 세계적인 문화의 기원이며, 이전 어느 때 보다도 훨씬 고상한 정신적인 수준에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동양과 서양의 위대한 성자들과 현인들이 있다. 이 거룩한 전위대는 우리에게 참 자유에의 길을 보여 주었으며, 우리는 참 자유를 인간역사의 직접적인 목표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Ⅲ  현대문명의 위기(危機)        


    1.  위기의 몇 가지 요인

  오늘날 현대문명의 미래에 대해 매우 심각한 위기의식이 지배하고 있다. 현대 인류의 위기라는 의식은 사회의 모든 분야에 종사하는 지식인들을 지배하고 있으며, 그들은 여러 각도에서 그것을 분석하고 있으나 그 결론은 대략 몇 가지의 문제로 귀결지어 진다. 즉 그것은 전쟁의 문제, 인구의 문제, 천연자원의 고갈과 환경오염, 식량의 공급문제 및 현대사회의 사상적 갈등과 가치관 혼란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들의 발생은 인류가 근대에 들어와 급격한 과학적, 공학 기술적 혁명을 이룩한 데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으로, 이러한 변화는 인간의 자연 지배력을 급격히 확대시키고 인간의 많은 불행과 재난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으나 그러한 기술적 혁신은 오늘날에 있어서 오히려 인류의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게 된 비극적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인류의 역사상 전 인류의 절멸이라는 위험을 가졌던 시기는 아직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시대는 과거의 어느 때 보다도 막대한 과학적, 사회적, 생물학적 지식이라는 자원을  획득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그러한 지식의 무절제한 사용으로 말미암아 전 인류문화의 파멸이라는 위험을 눈앞에 맞이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다 바람직한 인류의 미래, 번영과 행복을 지속시킬 수 있는 이상적 사회의 건설을 위해서는 이러한 여러 가지 난제의 성격을 밝히어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된다.


  1)  전쟁의 문제  :  인류역사상 전쟁은 사회변화의 중요한 한 원인으로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러셀의 견해에 의하면 과거의 전쟁은 하나의 수지맞는 기업이었고, 전쟁에서의 승리는 많은 물질적 부의 획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고도로 발달된 과학기술의 성과는 이미 그러한 원칙을 과거의 한 신화로 만들어 버렸다. 오늘날의 발달된 핵무기와 미사일 체제는 전 인류의 순간적인 파멸을 가능하게 하고 있으며 그러한 순간의 현실화를 위한 준비를 완료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의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는 전쟁의 위협은 현대인류가 극복해야할 중대한 난제의 하나가 되고 있다.


  2)  인구의 문제  :  인구의 문제는 식량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으로 지구상의 면적과 경작지는 제한되어 있는데 인구가 증가하므로 자연이 인간에게 제공하는 생활공간이 축소되고 식량의 공급이 부족하게 되는 데에서 발생한다.
  역대의 인구증가 추세를 Julian Sorrel Huxley의 통계를 통해 살펴보면,  B. C. 8000년경에  지구상의 인간은 약 일 천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B. C. 5000년경에는 약 2천만 B. C. 400년경에는 2억, A. D. 1650년경에 5억 4천만, A. D. 1950년에는 22억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Rome's Club의 보고에 의하면 1970년에 세계의 인구는 36억으로 추정되고 성장률은 연간 2.1%였다. 이 성장률에서의 배증 기간은 33년으로 이러한 증가율이 변화되지 않으면 2000년에는 70억을 돌파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심각하다. 지구의 식량생산 능력은 제한되어 있는데 인구가 계속적으로 증가하면 그만큼 식량의 공급은 부족하게 될 것이며, 현재에 있어서도 이미 세계의 여러 곳 특히 저개발국 인구의 상당수가 영양부족 상태에 있다는 것은 앞으로 인구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 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3)  식량의 문제  :  식량의 생산은 인류문화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는 농경의 시작에 따른 잉여생산물의 존재가 인류문명 발전의 전제조건이라 평가하고 있다. 인류의 인구는 인간의 자연 지배력에 비례하여 증가하여 왔는데 근대에 들어오면서 이루어진 급격한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달은 인구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초래하고, 그만큼 식량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다. 로마클럽의 조사에 따르면 개발도상국 중의 여러 나라에서는 절대적 칼로리 섭취량 특히 단백질 섭취가 필요량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더욱이 세계의 농업 총생산은 증가하고 있으면서도 비공업국의 일인당 농업생산은 현재의 불충분한 수준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고 하며, 또 식량생산의 기본적 자원인 토지에 있어서 지구상의 잠재적 농업적지는 약 32억 헥타르로 평가되는데 현재 그것의 반에 해당하는 가장 기름지고 이용이 용이한 토지가 경작되고 있고, 나머지 반을 개발하는 데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므로 새로운 농경지를 개척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F. A. O.(유엔식량농업기구)의 보고를 인용하여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식량의 자급자족 문제도 현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중요한 위기의 하나가 되고 있다.


  4)  자연의 고갈과 오염문제  :  “현대는 인구의 막대한 증가 및 지질적 자본의 급속한 고갈이라는 희생을 치르고 인간이 지구의 어떤 부분에 고수준의 사회를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는 참으로 짧은 에피소드라고 볼 수 있으며, 또 1000년 후-인류사로 보아도 짧은 기간-에 우리들의 자손은 모든 광석 , 석탄, 석유가 무참하게 제거된 고갈되고 황폐한 지구에 살게 될 것이다.”라고 K. E. 보울딩은 말했다.

이것은 ‘공업이란 비 환원적 작용에 의존한 것이기에 근대공업은 일종의 지구자원에 대한 약탈’이라고 말한 러셀의 견해와 통하는 것으로, 이러한 지구의 천연자원의 기하급수적 소모와 그 결과로서 빚어지는 자연환경의 파멸적 오염은 인류의 생존에 대한 또 하나의 치명적인 위협이다.  자원의 고갈 문제에 있어서는 오늘날 새로운 에너지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어느 정도의 희망을 보여주기도 하나, 아직 해결된 것이 아니다.  한편 오염의 문제는 세계 도처에서 직접 간접으로 피해를 당하게 되자 진지하게 그것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으나 그러한 노력은 단지 오염의 진행속도를 늦추는 것에 불과하지 근본적인 해경이 되지 못하며, 인간을 품어온 자연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진적으로 파괴되고 있다는 것은 현대인류가 당면한 하나의 비극적인 상황이다.  그러므로 천연자원 고갈의 문제와 적극적인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 더욱 더 심각한 오염의 문제는 참으로 난제 중의 난제라 할 것이다.


  5)  사상적 대립과 새로운 세계관의 문제  :   오늘날 세계를 불안하게 하고 끊임없는 투쟁으로 얼룩지게 하는 요인은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서로 다른 종교 간의 갈등, 인종적인 증오심, 편협한 민족주의 등이다.
다윈은 그의 저서 ‘종(種)의 기원(起源)’을 통하여 유기적 생물의 세계를 지배해 온 것은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러한 생존 경쟁적 세계관은 전 인류의 역사를 지배해 온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라는 것은 사실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의식은 아직까지 인간의 잠재적 본능 속에서 작용하고 있다.  러셀은 그러한 의식이 ‘그것으로 이득을 볼 수 있었던 황금시대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아직 많은 사람들은 ‘남이 가난해지면 자기가 부유하게 되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경쟁의식, 타민족, 인종, 사상, 종교에 대한 적개심은 우리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과거에 있어서 그러한 적개심, 증오심은 단지, 부족, 사회, 국가간의 투쟁으로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은 전쟁에 있어서 어느 일방의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신념체계에 대한 인간의 광신적 편협성은 전 인류문화의 존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으며, 더욱이 전통적 가치질서에 대한 신뢰의 상실은 더욱 더 인간을 불안하게 하고 공포로 몰아 그들의 행동을 난폭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그와 같은 정신적-사상적 난제를 인류생존에 관계되는 문제로 삼지 않을 수 없고, 새로운 가치체계, 세계관 정립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2.  로마 클럽의 견해에 대한 고찰  

  로마 클럽은 이상에서 고찰한 여러 인류 위기의 원인들을 포함한 인류사회의 위기에 대한 제 요인과 그 상호작용에 대한 집단적 연구를 통하여 10가지의 결론적 견해를 제시하였는데 아래에 그것을 기술한다.

  1)  세계 환경의 양적 한계와 과도성장에 의한 비극적 결말을 인식하는 것은 인간의 행동, 나아가서는 현재 사회의 전체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만한 새로운 형태의 사고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불가결의 것임을 확신한다.

  2)  세계의 인구 압력은 현재 이미 우려할만한 상태에 이르러 있으며, 더구나 그 분포는 지극히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인류는 지구상에서 균형상태를 추구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갖게 된다.

  3)  많은 이른바 발전도상국이 절대적으로나 또는 경제적인 선진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향상되는 경우에만 세계의 균형이 실현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인식한다. 또 그와 같은 향상은 전 세계적인 전략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장한다.

  4)  그렇지만 세계적인 개발 문제는 다른 세계적인 개발 문제에 아주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므로, 특히 인간과 그 환경의 문제를 포함하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반적인 전략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주장한다.

  5)  복잡한 세계의 문제는 많은 정량화할 수 없는 요소를 지니고 있음을 우리들은 인식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이 보고에서 사용된 뛰어난 정량적인 접근 방법은 문제의 작용방법을 이해하기 위해 빼 놓을 수 없는 도구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지식에 의해 문제의 제 요소를 파악할 수 있게 되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6)  우리들은 현재 불균형 상태에 있고 또 위험한 방향으로 악화되어 가고 있는 세계의 상황을 급속히 또 근본적으로 시정하는 것이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기본적인 과제라고 일치하여 확신하고 있다.

  7)  이 노력은 우리들의 세대에 대한 도전이며 다음세대에 넘겨 줄 수는 없다. 이 노력은 결단코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또 중요한 방향전환이 이제부터 10년 동안에 달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

  8)  인류가 만약 새로운 진로를 향해 내딛는다면 전례가 없을 정도의 규모와 범위에 일치한 국제적인 행동과 공동의 장기계획이 필요해질 것이다.

  9)  우리들은 세계의 인구증가와 경제성장의 악순환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세계 여러 나라의 경제 발전의 현재 상황을 동결시키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굳게 지지한다.

  10)  마지막으로 우연 또는 파국에 의해서가 아니라, 계획적인 방법에 의해 합리적이며 영속적인 균형상태에 달하려고 하는 의도적인 시행은 결국 개인, 국가, 세계의 각 레벨에서의 가치관과 목표의 근본적인 변경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주장한다.



Ⅳ  결론  :  현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의 방안
  

  지금까지 본고(本稿)에서는 역사철학의 본질과 그 목적에 대한 검토, 과거의 여러 가지 순환론적 역사철학에 대한 간단한 고찰, 그리고 역사철학의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되어야 할 현대문명의 위기의 제 요인 몇 가지에 대한 논의를 전개해 왔다. 그러면 이제 우리 인류사회의 보다 나은 이상적 사회로의 전진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원칙적 기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타(他) 사상, 종교, 신념체계에 대한 관용(寬容)  

  사유하는 존재, 생물학적 존재,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역사시대를 통하여 가지각색의 종교, 철학 등, 세계에 대한 다양한 가치체계를 소유하여 왔다.  사유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은 그들의 인식영역에 들어오는 모든 자연, 사회적 실재들에 대하여 항상 종합적인 이해에 이르려고 노력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자연적, 사회, 역사적 환경에서 생활하였던 인간들이 매우 다채로운 사상체계를 확립했다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나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모든 인식체계는 인간 정신의 창조적 행위의 결과라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나는 서로 상이(相異)한 자연환경과 사회, 역사적 환경 속에서 생활한 많은 인간들이 그들의 특유한 직관적 인식과 이성적 사유의 활동을 통해서 여러 가지의 세계관을 획득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를 통하여 판단하면 자신이 믿고 있는 가치체계와 이질적(異質的)인 다른 모든 세계관에 적대(敵對)한다는 것은 무지와 편견의 결과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고 분노와 증오심으로 어둡게 하는 것은 서로 다른 종교 간의 폐쇄적(閉鎖的) 집념과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 간의 투쟁, 그리고 광신적 민족주의 등이다. 자신의 가치체계에 대한 폐쇄적 확신은 끊임없는 개인과 개인, 사회 대(對) 사회. 국가와 국가 간의 투쟁을 야기하고 있다.  러셀은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논하면서 ‘현대의 소란은 광신적인 경향이 증가하고 있는데서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폐쇄적 집념이 맹목적인 편견이며, 모든 가치체계는 인간정신의 창조적 활동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모두 그것대로의 특유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여, 타 사상, 종교, 철학체계에 대하여 관용하는 마음을 가짐으로서 오늘날 인류가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2.  인종적, 민족적, 국가적 적대 감정에서의 탈피 : 세계주의로의 지향

  가치체계에 대한 폐쇄적 광신과 더불어 인류를 불행하게 하는 것으로 인종적, 민족적, 국가적 적대감정이 있다.  개인을 단위로 이룩되는 인간의 사회는 역사시대를 통하여 사회적 집단의 규모를 계속 확대시켜 왔다. 그것의 원인은 인간의 자연 지배력의 확대와 의시 영역의 확대라 할 수 있는데, 인간이 자연을 다루는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인간은 그들의 시간적 공간적 생활영역을 확대시켜 왔던 것이다. 그것은 가족에서 씨족으로, 씨족에서 부족으로, 다시 부족에서 민족, 국가로 사회 단위가 증대 되었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인종 간에,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한 국가집단 간의 대경의 양상을 띠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서로 이질적인 문명사회 간의 갈등의 현상으로 나타났다.

  인간 대 인간의 투쟁을 야기하는 원인 중에는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생존본능’과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이기적 욕망’이 있다.  생존본능은 자연, 사회적인 외적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본능으로, 자연적 위협은 인간생존의 기본요소인 의식주의 결핍에서 야기된다.  사회적 위협은 인간역사의 한 원리로 적용되어 온 약육강식의 원칙에 의해 야기되는데, 이러한 생존 경쟁적 의식구조는 이질적인 사회, 국가, 문화집단에 대한 공포감과 증오심 형성에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인류는 과거의 생존 경쟁적 의식구조를 극복하고 전 인류를 한 가족으로서, 단일한 세계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에 있어서는 원시적인 인간의 기술로 인하여 他 집단을 공격하는 것이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길이었던 시대가 있었으나 오늘날의 세계는 이미 그러한 단계는 넘어 섰다.

  1)  현대의 고도화된 과학기술은 그것을 인간이 유효하게 활용하고, 인구의 증가를 적절히 통제함으로써 모든 인류를 물질적 결핍에서 구제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
  2)  고도로 발달된 현대의 전쟁 무기로 인해 전 인류의 생존이 위태롭게 됐다는 사실.
  3)  인종, 민족, 국가 간의 적대감정은 오랜 인류역사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그것은 변화하는 것이며, 개조될 수 있다는 세 가지 이유에서
  우리는 과거의 생존 경쟁적 의식을 과감히 극복하고, 세계 인류를 한 형제로서 의식하고, 사랑으로 서로 화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그러한 세계적 결단을 통해서만 인류의 문화 - 현대문명은 생존할 수 있고, 번영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3.  세계에 대한 동양의 우주순환론적 이해 : 직관에 의한 자연, 우주와 인간의 合一
      
  과거의 많은 성자, 현인들이 우주의 본질과 인간존재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들은 직관적 인식을 통하여 여러 가지의 세계(우주)관을 확립하였는데, 그러한 것들은 본질에 있어서 매우 유사한 몇 가지의 형태로 분류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케언즈는 그의 저서 ‘Philosophies of History'를 통하여 순환론적 역사인식 패턴을 적용하여, 여러 가지의 역사철학적 인식유형을  우주순환론, 일환론, 문화순환론의 세 형태로 구분하였다.

  人類史上 모든 문명권은 위와 같이 그들의 특유한 세계관 아래 인간과 자연을 인식하여 왔다. 그리하여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여러 세계관이 세계전역에 소개되었고, 많은 사상가들에 의해 비교, 분류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적 현실 가운데 존재하고 있는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들은 결국 어떤 것이든 하나의 세계관을 선택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어떤 형태의 세계관이라도 그것이 절대적인 것으로 모든 인간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일반화된 결론이지만, 무한한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에게는, 그들의 존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무한한 미래에 있어서 그들이 지향해야할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하나의 세계관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계관은 전 인류가 공동의 관심 하에 추구해야 할 것이며, 충분한 대화를 통하여 화합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나는 ‘개아(個我)의식에 집착한 욕망의 물질세계- 분열과 해체의 세계-의 멍에로부터 벗어나 一者인 동시에 일체인 중심과 더불어 정신적인 통일과 총화를 이룬 세계로 들어가는 것, 즉 정신적인 자유를 목표로 하는 “동양의 우주순환론적 사상에 기대를 갖는다.”  또한  ’계속적인 창조설‘을 제시한 호일레를 중심으로 한 현대과학적인 우주관에 대하여  “서양의 대일환론은 그러한 견해에 일치하지 않으나,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 및 중국의 역사철학은 그것과 완전히 조리가 맞는다.”고 평한 케언즈의 견해에 나는 절대적으로 공감하며, 더 나아가 동양적인 세계관이 미래의 인류사회를 이끌어 나가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리라 확신한다.
  과거의 대부분의 역사철학에 공통되는 것은 인간의 정신적인 자유의 추구와 사랑을 기초로 한 인간전체의 화합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두 가지의 원칙 하에, 인류를 절멸의 위기에서 구하고, 끊임없는 창조 속에 인류의 무한한 번영을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을 확립하는데 모든 노력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다.


    4.  진리(眞理)에 대한 성실성(誠實性)  

  끝으로 나는 현대문명의 자멸이라는 지대한 과제를 맞고 있는 현대의 인간들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삶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나는 앞에서 자신이 믿고 있는 가치체계와 같지 아니한 세계관에 적대(敵對)하는 것은 무지와 편견의 결과라고 말하였고,  또 인종적, 민족-국가적 투쟁과 서로 다른 문명사회 간의 갈등은 인류의 역사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그것은 변화하는 것이며, 개조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그와 같은 견해를 밝힌 것은,  첫째, 인간의 사상, 품성은 자연적, 사회적 환경의 영향 하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것과  둘째로 인간은 아직 정신적으로 유아기에 있는 존재로서 앞으로 무한히 성장할 수 있고, 또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될 존재라는 생각.  셋째, 사물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편견에 그칠 위험이 있으며, 생동하는 창조적 사유의 흐름을 차단하는 위험이 따르기 쉽다는 것, 등의 생각에 근거한 것이었다.

  K. E. 보울딩은  그의 저서 ‘The Meaning of Twentieth Century’에서 새로운 문명 후 사회로의 전환에 대해 논하면서
  “당신은 어느 쪽인가? 라는 질문은 위험한 질문이다. 그러한 질문은 대화보다는 변증법에, 교육보다는 설교에, 자기음미보다는 자기변호에, 새로운 것을 배우기보다는 낡은 편견을 굳히는 쪽으로 향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보울딩의 견해는 현대의 여러 위기를 극복해야할 우리의 자세를 생각해 보는데 매우 뜻있는 견해라 생각되며, 아울러 니체의 다음과 같은 논의는 음미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위대한 인간은 필연적으로 회의적이다. 모든 확신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가 그 강한 의지에 깃들어 있다. 신념을 원한다는 것, 긍정이건 부정이건 어쨌든 절대적인 무엇을 바란다는 것은 약한 증거이다…. 신념이 강한 자는 조그마한 족속이다. ‘정신의 자유’ 즉 본능적인 불신은 위대성의 전제조건이다.”

  그러므로 나는 ‘진리에 대한 성실성’  ‘티 없이 맑고 밝은 마음가짐으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관찰하려는 태도’  ‘더욱 더 바른 사실에 대해 두려움과 수치심을 갖지 않고, 긍정하려는 깨끗한 용기’  그러한 것이 새로운 인류사회의 창조를 지향하는 현대의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성실성과 용기, 자연과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 무한한 우주(자연)와 합일하려는 의지 등을 가지고, 끊임없는 창조적 노력을 계속할 때에, 모든 인류의 난제는 극복될 것이고 무한히 밝은 미래가 전개되리라 믿어진다.  [ 1978.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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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가 발견한 진실들



***  이해되지 않는 것은 직접 확인하라. ***


내가 태어난 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주된 종교적 환경은 기독교였다.  어린시기 유아세례를 받았으며,  평양에 교회와 학교를 세우셨다는 친할아버지를 비롯해 온 가족이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환경의 결과랄까?!  필자도 중, 고등학교 6년간을 아침이면 담임교사님과 함께 기도로 시작하는 미션스쿨(대광)에 다녔다.

항상 우주를 창조하신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다보니, 일찍부터 대우주와 인간의 生과 死, 善과 惡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으리라.
그러나 기독교의 신학이론은 많은 모순점을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고,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이도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셨는데, 왜 그분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은 무지한 인간을 바로 가르쳐 옳은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위한 지옥 불을 준비하고 계실까?!”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분명히 따서 먹을 줄 아셨을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아담과 이브를 에덴에서 추방하셨다면,  이건 하나님이 알고 놓았던 덧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  전지전능하지 않으시던가?!” 등등 이것 말고도 무척 많다.

이러한 모순적인 교리에 대한 의문에 대하여, 전문가이신 목사님이나 전도사님 어느 한 분도 이해할만한 답을 주지 못했다.  어리석은 인간의 머리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다 헤아릴 수 없으니 더 이상 따지지 말고 믿으라는 것이 거의 공통된 결론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답을 찾겠다고 결심했고, 결국 구하려던 답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큰 여러 중요한 문제에 대한 앎을 찾았다!  그리하여 지금 홀로 알고 있기에 어려운 가슴 뛰는  감사와 기쁨 속에서, 아직 미로 속을 헤매고 있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기 위해 이 책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문제를 만나고, 그것이 중요한 문제일 경우는...

끝까지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라!  
그것이 위대한 교사 예수의 가르침이었으며..

그것은 변함없는 우주의 법칙이다!



***  진리는 매우 단순하다. ***



짧을수록 진리에 가까운 것이다!

쉬운 예로 열쇠를 잃어버린 자물쇠를 열어보자!
열쇠의 구조에 박식한 전문가는 단 몇 초 안에 잠긴 자물쇠를 열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사람은 한 시간, 두 시간이 걸려도 열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실력 있는 의사는 단 한번의 처방으로 병을 고치거나 병세를 호전시키지만,
돌팔이 의사는 병을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살아오면서 인생이 괴롭고 고달팠다면,  또 지금 심각한 불안과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잘 닦여지고 포장된 도로를 떠나 길이 없는 험한 정글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며, 여러분의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가 서툰 아마추어일 가능성이 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지구에서 가지는 삶은, 사실 영적인 차원에서 스스로 선택했던 체험을 위한 여행코스인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충분히 힘든 과정을 겪을 만큼 겪었고, 또한 많은 이들의 노력에 힘입어  지구의 에너지장이 바뀌었기에,   지금은 우리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즉시 지상낙원을 우리의 가슴 안에 스스로 창조하고 우리의 눈으로 보며 누릴 수 있는 지점까지 온 상태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어느 누구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각자가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결과는 확정적으로 결정되었으나, 하루라도 빨리 더욱 많은 사람이...
나아가 모든 사람이 사후의 낙원이 아니라 몸을 가지고 살고 있는 이번 생에서 온전한 기쁨과 평화를 기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인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실상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바른 이해에 도달하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나타나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깨달음의 빛과 기쁨이 아직 많은 곳에 남아있는 어둠과 고통을 해체하고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진리는 단순하고 쉽게 표현될 수 있다!

우리의 귀한 형제이며 지혜로운 가족이었던 ‘예수’의 기록으로 남겨진 가르침이 얼마나 되는가?!  A4용지 30페이지도 되지 않을 것이다!
주로 비유를 통해 설명한 쉽고 짧은 이야기로, 그는 이 우주에 작용하고 있는 중요하고 큰 원리를 명쾌하게 지적했으며,  그러한 지혜의 빛은 2000여 년 동안 지구를 밝혀온 외로운 등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짧은 비유 속에 담겨진 지혜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그 분에 근접하는 지혜를 스스로 가지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고..
그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결실을 맺기까지는, 싹이 트고 비와 바람과 햇빛을 고르게 받는 날들이 지나고, 폭풍도 견디고 계절이 바뀌는 과정을 통해야만 하는 것!
아무 때나 “주여 믿습니다!!” 하고 외치면 구원받는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그 분 말씀 하나에 담긴 뜻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었다면!  이미 지구는 오래 전에 지상낙원을 이루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는 자만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짧게 핵심을 설명할 수 있다!



***  자신의 체험만을 가지고 비판하지 말라. ***


자신이 직접 겪어보아 안 것이 아니면 함부로 자신의 지식만으로 타인을 판단하면 안 된다!

농사짓는 일, 못 하나 박는 일도 1년 일한 사람과 10년 일해 본 사람의 경험과 지식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을 오래 연구해 온 사람이, 전혀 생소한 이론을 주장할 때는 성급히 판단하지 말고, 그 사람이 지나온 과정을 먼저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어린 아이와 같은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은
어린 아이와 같이 호기심을 가진 맑은 눈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사실을 관찰할 수 있는 자가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고 빈 자리로 남겨놓아야,  진실된 정보와 지식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준비된다.
자신이 충분히 알아보지 않은 것에.. 성급히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지식과 세뇌된 고정관념을 가져다 놓으면,  참된 지식과 정보가 들어올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항상 자신이 알고, 믿고 있는 것과 함께  넓고 큰 빈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면
진리를 찾아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길은 항상 열려있는 것이다!



***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 ***



“우리가 누구인가?”
“우주가 운행되고 있는 원리와 지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어떤 것인가?!”
등에 관련된 이야기는
내 내면의 직관적인 느낌(앎-기억)과 체험적인 삶의 경험을 토대로 하고..
기록으로 남겨진 많은 역사적 사회적 자료와, 지구 외부로부터 오는 여러 정보를 참고로 하여 도출 해 낸 결론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 생에 내가 계획했던 나의 역할임이 분명하다고 나는 느낀다.

지금까지 내가 찾아오고, 문을 두드려서 열고 확인하게 된 나의 여러 진실들은 어느날 한 순간에 얻어진 것이 아니고,
한 해 한 해, 하루하루 더욱 선명해지고 확장되는 감동과 공명을 통해 얻어진 것임을,  나는 나의 직접적인 체험에 비추어 밝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말하려는 정보와 이야기는 이미 지구인 수 천 만 명이 보아 알고 있는 것이며, 100만 명을 넘는 사람들이 확고한 앎의 단계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행여나 황당하게 느껴지실 분도 있겠으나..
일단 새로운 이론이며 학설이라고 보시고
여러분 자신의 눈과 내면에 잠재된 기억과 직관적인 느낌을 가지시고 직접 스스로 확인하고 판단하여주시기 바랍니다!



***  지구는 우주의 핵과 같다. *** 


  
지구는 현존(現存)하는 우주 내에서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가능한 유일한 실험행성이다.
지구에서 창조되는 새로운 에너지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상승 진화시키는 도약의 발판으로 작용하며,
과거 1만 여 년 전 레무리아와 아틀란티스 문명이 새로운 에너지 창조에 실패하고 멸망한 후, 다시 시작된 지금의 지구 문명은 서기 2000년을 넘어서는 시점에서 확실하게 성공의 임계치를 넘었고,  이제 그러한 성공의 결실을 수확할 마지막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2000년을 전 후한 시기가 새로 시작한 지구문명이 성공이나 실패 중 하나의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는 가능성은 미리 예상되었던 것이며, 그러한 가능성을 미리 내다보고, 긍정적인 결과를 창조하기 위해 이 시대에 특별히 많은 경험과 지혜를 가진 영혼들이 대거 육화했다.
그들 많은 빛의 일꾼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로..  지구는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했던 지구 멸망의 가능성을 뛰어 넘었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제2창조계로 진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존재하고 있던 제1창조계가 영원한 지금의 순간 속에서 진화와 확장을 계속하던 어느 한 지점에서, 더 이상 원활한 진화와 창조가 이루어지지 않게 된 상황이 발생하였고,
그러한 지점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그때까지 존재한 적이 없었던 새로운 에너지의 창조가 요구되었으며..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할 무대로서 지구가 선택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때까지 창조의 선두에서 활약해 왔던 가장 많은 경험과 지혜와 용기를 가진 영혼을 소집하는 근원의식으로부터의 소집령이 온 우주에 알려지고, 이에 응답한 오래된 영혼(천사-神-靈)들이 모여  스스로 자신의 모든 기억을 지우고, 무한한 창조력을 제한한 상태에서 인간으로 육화하여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었던 존재들이 자신의 모든 기억을 지우고, 자신의 창조력을 제한시킨 상태로 인간의 몸에 육화한 것은..
사람이 눈과 귀를 가리고 손과 발이 묶인 상태로 무인도에 정착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며,  무한한 자유와 기쁨 안에서 살아오던 영혼이 그렇게 제한된 상태에서 몸을 가지고 수 백, 수 천 번의 윤회 환생을 겪어낸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봉사와 헌신의 행위입니다.

그와 같은 일에 스스로 자원하고 감내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무한한 사랑을 간직했던 존재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며, 그와 더불어 베일 저편 고향에 남아 항상 위로하고 안내하고 지원해 온 영혼 가족들의 뜨거운 사랑이 또한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1창조계가  어느 시점에 정체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함은
제한 없는 창조력을 가지고 스스로 존재하던 영혼이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와 확장에 몰두하던 중, 자유롭던 창조행위가 균형을 상실한 한계에 부딪쳤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최근 몇 십 년간 인기를 끌어 온 ‘스타워즈’ 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별들 간의 전쟁이 극심하게 전 우주를 휩쓸었다는 것이 그러한 정체지점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로 볼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우주)의  근원(창조자)이 되는 영혼(집합의식)이기도 하며 동시에 고유한 개별적 체험을 가진 영혼(개별의식)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들이 모여..  모든 것을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선택된 지구는 우주의 핵과 같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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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

  
    1)  나와 같은 보통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인류역사를 통해 평범한 백성들은 대체로 고달픈 삶을 살아왔습니다.
오늘날은 모든 인간이 평등한 인격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가치관이 보편화되어서,  보통사람들이라 하면 물질적으로 큰 풍요를 누리고 있지 않거나, 사회적 지위가 특별하게 높지 않은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전체 인구의 95% 이상이 보통사람으로 분류되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제가 처음으로 보통사람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쓰게 된 것은,  인간이 지상에서의 삶을 시작한 이래.. 가장 힘들게 살아온 것이 힘없고 이렇다 할 특권이 없었던 일반 백성이었기 때문에, 저도 같은 부류에 속하는 입장에서 가지게 되는 친근감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일반 백성들은 춥고 배고프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걱정하고, 땀 흘려 일하고, 권력을 가진 지배자들의 그늘 아래서 많은 경우 겨우 입에 풀칠정도 하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항상 힘들 수밖에 없었던 주된 이유는 지배계층의 그 끝을 알 수 없는 부귀영화를 향한 탐욕이었을 것이니,  우리들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권력자들이 부와 권력을 어느 수준 이상 쌓게 되면 더 큰 욕심이 발동하여 이웃 부족과 이웃 나라를 공격하여 타인과 타민족, 나라의 재산과 생명을 빼앗고 노예로 삼기도 하며  자신의 왕국을 끝없이 넓히는 데에 평생 애를 썼던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역사상 여러 차례 전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야욕 때문에 세계정복전쟁이 있었고,  그로 인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목숨과 재산을 빼앗기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기야 대부분 사람들의 심성이 비슷했을 것이었고,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공평하게 적용되었을 것이니 누가 누구를 탓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오로지 강한 힘이 법이고 정의(正義)가 되고, 약한 것이 죄며 불의(不義)로 규정되었을 뿐입니다!



**  인간 삶의 영적인 목적과 윤회의 법칙  **



제가 이번 생에서 “내가 누군가?”  “神은 있는가?”  “生과 死의 前과 後에는 무엇이 있는가?” 등에 의문을 가지고 한 우물을 파다보니 늦게나마 깨우친 바가 있고, 그러한 정보가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삶이 기쁨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알았기에..  지금 이렇게 글을 통해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윤회를 통해 반복되는 삶의 체험을 통해서 영적인 지혜와 경험을 넓혀나갑니다.  전생(前生)과 윤회(輪廻)의 개념은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중요한 진실로서 인정되어 온 것이고, 서양에서도 예수가 살던 시기에도 있었던 개념이나 AD325년 그리스도교의 신앙선언서인 니케아신조(信條)[Nicene Creed]에서 윤회를 부정한 이후에 서양에서는 주로 부정되어온 개념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살아서 지은 선행과 악행의 결과에 따라 천당과 지옥 중 어느 한 곳으로 가게 된다면 당연히 신의 대변인인 성직자의 지시에 얼마만큼 순종하고 잘 따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됩니다.  성직자에게 밉게 보이거나 저주를 당하면 천당 가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  모든 인간은 우주를 창조한 근원의식의 단편이다.  **  



근원의식이란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神 또는 하나님의 다른 표현입니다.
모든 인간은 神의 분신이며, 神(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인간인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와 꼭 같습니다.

비유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혹시나 원숭이들만 사는 나라나, 개들만 모여 사는 도시가 있다면 그곳에 가서 함께 이웃하여 같이 사시겠습니까?
아마도 어느 누구도 말도 통하지 않고, 지능지수도 현저히 차이가 나는 개나 원숭이와 한마을에 살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따로 살아야지요!

인류사에 큰 족적을 남겼던 선각자 예수가 무어라 했습니까?!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여러분은 내가 한 일을 할 수 있고, 나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요한 13:12)  
예수가 한 이 말은 그 표현 그대로 진실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만든 자동차나 로봇이 여러분에게 “아버지! 또는 어머니!”라고 부르면 어떤 기분이겠습니까?!!

부모는 자신이 낳은 자식이 자기보다 더 위대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의 부모나 영적인 부모의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받았기에,
우리의 육신의 부모보다 더욱 큰일도 할 수 있으며
우리의 영적인 부모를 대신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을(우주, 별 등) 창조하는 창조자의 역할을 영원한 시간동안 해왔던 존재입니다!


**  지구는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하기 위해 선택된 별  **



스스로 존재하던 신의 가족이 자유롭게 물질우주를 창조하며 진화와 확장을 계속하던 어느 시점에서,  예기치 않았던 정체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영(靈)- 神의 세계에서 물질우주를 창조하고 그 속으로 육화하여 놀던 신의 아이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기억상실 상태로 들어서게 되었고, 희미하게 남아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자신의 힘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집착과 두려움으로 변형되었으며,
상대의 힘을 빼앗으려는 경쟁과 대결 상태로 서로 맞서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별과 별 사이의 전쟁으로 비화되었고, 드디어는 전 우주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최근 수 십 년 사이에 영화화된 ‘스타워즈’ 같은 영화는 이러한 상황을 보여주는 적절한 예(例)입니다.

수 백 만 년 간 계속된 우주전쟁으로 인하여 모두가 지치게 되었으며, 제한 없는 창조로 확장 진화하던 우주의 약동하는 생명력이 정체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창조된 적이 없었던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했기에...  전 우주에 걸쳐서 가장 경험이 많고, 강하고 용기 있는 신의 아이들(천사)을 찾는 소집령이 발표되었고, 이에 응답한 많은 노련한 천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지구라는 작은 별에서 새로운 에너지의 창조를 위한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구별에는 그동안 우주에서 창조되었고, 문제를 일으켰던 모든 에너지가 모아졌으며...
지구로 들어가게 된 천사들은 모두 자신이 그동안 체험하고 경험했던 모든 기억을 지우고, 그들의 천부적인 능력까지도 대부분 제한된 상태로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문명사회에서 생활하던 도시인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정보, 경험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운 상태에서...  눈과 귀마저 가려지고 아무런 도구도 없이 무인도나 깊은 정글 속에 버려진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구에서의 새에너지 창조를 위해 자원한 천사들은 천사들 중에서도 최고의 경험과 능력을 가졌던 존재였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을 위한 이들의 헌신적인 봉사행위는  뒤에 남아서 이들을 바라보며 지원해 온 이들의 가족 형제들 모두를 위한 위대한 희생이었습니다.

영겁의 시간동안 윤회와 환생을 반복하며 지구에 머물러온 이들 자원한 천사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드디어 2000년을 전 후 한 시기에 결실을 보게 되었으며,
지구에서 창조된 새에너지는 지금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전 우주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위대한 희생과 봉사에 자원했던 천사들이란 바로 이 시대에 지상에 살고 있는 여러분입니다.
만약 지구에서의 새에너지 창조계획이 실패하였다면,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했던 1999년의 지구멸망 가능성이 실현될 수 있었으나,  지구는 이러한 위험지점을 뛰어 넘었으며..
지금은 오랜 시간 자신의 모든 기억과 능력을 상실한 채 처절한 고난의 삶을 반복하여 온 이들 위대한 인간천사들이 서서히 자신의 기억과 능력을 회복하는 중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 천상의 모든 가족들과 외계 세계의 가족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우리를 지원하는 메시지와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으며,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다시 기억을 되찾을 가족과의 재회를 위해 모두가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  제한된 의식에서 완전의식으로의 전환  **



오랜 시간 제한된 의식상태에서  두려움과 추위에 떨어왔던 인류는, 지금 현재 완전의식과 기억회복을 향한 첫걸음을 떼기 시작했으나,  아직 대부분의 인류는 심각한 기억상실과 깊은 잠 속에서 아직 잠들어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 이러한 상황을 가능한 한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저(필자)도 이제 겨우 희미하게 전체그림의 윤곽을 파악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내면의 외침소리를 조금 먼저 듣기 시작했을 뿐,  아직 제한된 의식 속에 많은 부분이 머물러 있는 것은 여러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저와 비슷한 수준에서 기억을 회복하고 있는 인간 가족은 약 100만 명 정도인 것으로 짐작되며...  지금부터 우리 모두가 서로를 도와가며 다시 예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체험의 기억과 창조자로서의 능력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파른 오르막길은 이미 넘어섰으며,
우리 모두의 DNA 안에 기록되어진 모든 우리의 경험과 잊혀진 과거에 대한 기억은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하루하루 우리의 회복속도에 가속도가 붙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의 성공을 기뻐하며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기다리고 있는 지구 밖의 모든 가족들을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2)  정치인에게 보내는 편지 [2009. 5월]



정치가는 모든 국민을 대표하여 나라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고,  모든 국민이 안정과 풍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인 풍요를 성직자 그룹이 담당한다면,  물질적인 풍요와 안정된 사회적 질서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 정치를 담당하는 입법, 사법, 행정부의 여러 국가공무원들이라 보여 집니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만인 평등사상이 모든 공동체의 토대가 되었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러한 원칙이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에 반영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과 100 여 년 전만 해도  많은 나라는 왕정치하(王政治下)에 있었고,  모든 강대국이 자신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약한 나라를 침략하여 지배하기 위한 식민지 개척의 야욕이 전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본에게 주권을 강탈당하여, 1945년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 패하기까지 36년간 일본의 식민지 지배 하에 있었습니다.

인류의 역사시대, 모든 기록을 살펴보면 어느 사회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칼과 무력으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하고, 왕권을 확립하여 힘없는 자의 생명과 재산을 지배해 왔습니다.  오늘날 제1의 강대국이며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에서도 150년 전만 해도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짐승 잡듯 포획하여 노예로 사용하는 것을 당연한 사회적 권리로 인정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역사 기록으로 되돌아 볼 수 있는 5000 여 년 동안 인류는 단지 지식과 기술만 앞섰을 뿐인 동물, 그 이상의 존재가 아니었으며, 어떤 면에서는 짐승보다도 더 잔인하고 흉악한 심성을 가져온 동물이었을 뿐입니다.

수 천 년 간 인류의 몸과 의식에 깊이 각인되어온 그러한 성품은 아직까지도 우리 안에 깊이 잠재되어 있으며,  우리의 지역공동체, 나아가 국가와 전 세계적 구조 내에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 있고,  단지 은밀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위장되어 있을 뿐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의식과 행동이 우리가 스스로 자각 하지 못하는 가운데 만연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한 현실의 증거는 우리 주변에 가득합니다.  매년 수 백 만 명이 음식과 필요한 의약품의 부족으로 사망하는 사실, 극심한 빈부의 양극화 현상, 개인과 작은 그룹의 이익을 목적으로 발생하는 일방적인 전쟁 -학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대규모의 전쟁.
자국의 이익을 목적으로 행해지는 타민족, 문화에 대한 무력점령, 목적을 가지고 저질러지는 사방에 널린 거짓말, 잘못된 범죄적 행위를 보고도 침묵해야 하는 무력한 국민들...
70억 인류 중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 직접, 간접으로 벗어나 있는 존재가 없다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거짓과 폭력으로 가득한 지구촌의 인류는 모두가 그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무지(無知)의 결과입니다.
모든 은밀하고 노골적인 기만행위의 가해자는 그들의 삶의 터전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며, 그들 자신의 양심과 영혼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것과 같은데,  우주 불변의 법칙은 “뿌린 대로 거두어야 한다!”는 것이며, 어느 누구도 이러한 법칙에서 예외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인류의식의 수준(파동)이 폭발적으로 급성장 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 통신 교류의 수단이 하루가 다르게 확장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의식은 그러한 비약적인 확장을 넘어서 새로운 차원으로 이미 도약을 시작한 상태에 있습니다.

‘100마리 원숭이 효과’라는 실험결과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고립된 섬에서 살고 있는 원숭이가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어 보니 흙이 씹히지 않아서 좋다는 것을 발견하고 물에 씻어 먹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행동하는 원숭이가 100마리에 달하게 되자, 다른 섬이나 지역에 살고 있던 모든 원숭이들이 동시에 같은 행동을 시작했다는 것을 발견한 조사 결과인 것입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부 원숭이의 의식과 행동양식이 시, 공을 초월하여 사방으로 확산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러한 방식으로  인류의식의 변형과 상승의 파동은 일시에 지구 전역으로 영향을 미치며, 이것은 지구 밖으로까지 그 빛을 발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500 여 년 전 인류문화(서양의 경우이고, 한국은 수천년 전에 이미 최고의 경지에 있었음)의 의식변화의 싹이 텃 다면, 지금은 그 꽃을 피우는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정보전달 도구(수단)의 생활화로 지구의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한 순간에 지구 전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그와 마찬가지의 속도로 인류의 평균의식은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성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정부의 입법, 사법, 행정 분야에서 종사하는 분들은, 한 국가의 이상적인 발전과 안정에 있어서..  가장 크게 작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며,  정치(政治)라는 것의 목적이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행복과 번영을 위한 것임은, 지금 모든 국민이 합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정치가는 국민의 뜻을 살피고, 국민 전체의 균형 있는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자세로 일해야 하며,  그가 얻는 대가는 돈과 권력이 아니라 모든 국민으로부터 돌려받는 사랑과 감사와 존경심으로부터 오는 명예입니다.

옛날부터 왕권을 장악하고 힘으로 자신의 왕국을 넓혀온 지배자들의 의식은 생존본능에 기반 한 두려움에서 작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며,  모든 인간의 본질은 어버이 창조주 신의 귀한 분신인 영(靈)이란 것을 알지 못한 무지의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강한 무력을 바탕으로 일정한 세력을 확보하면,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이 발동하기 시작하여, 전 세계를 소유하기 위한 목적에서 세계정복 전쟁을 일으키는 일이 인류역사에 주기적으로 나타났으며, 그로 인해 흘린 피와 고통은 얼마나 컸습니까?!
그리고 그들 정복자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몇 십 년도 안 되는 삶을 긴장과 두려움으로 소모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물질적 풍요와 권력을 구하기 위해 평생 애쓰는 이들의 의식의 뿌리는 생존을 위한 두려움에 있습니다.  큰 물질과 강한 권력이 있을 때, 자신의 생명이 안전하리라는 본능적 두려움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러한 것을 구하는 행위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며,  그러한 무의식에 기반 한 습관이 살아있는 동안 더 큰 부와 권력을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만약 모든 인류가 나의 가족이며 형제라는 것을 이해하고, 서로 돕고 사랑하는 삶을 가지게 된다면,  그러한 사람에게는 지구는 물론 존재하는 모든 것 - 무한한 우주까지도 나의 모든 형제들과 공유하는 내 자신의 소유가 될 수 있는 것이며, 그 때에 진정한 평화와 행복이 얻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암흑의 긴 세월을 지나왔습니다.
영겁의 시간 동안 수 백 , 수 천 의 삶을 반복하면서 온갖 체험을 다 겪었습니다.

모든 인간의 DNA 안에는 모든 전생의 삶의 기록이 저장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그것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래고 오랜 시간 반복하여 쌓아온 삶의 체험들이 깨어나기 시작했으며, 따뜻한 봄 날 작은 씨앗에서 싹이 트기 시작하듯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神의 귀한 자녀인 인간 천사들의 영(靈)이 자신의 모든 기억을 지우고 인간의 몸으로 들어와서 답답하고 꿈꾸는 듯한, 처절한 생존을 위한 온갖 고통을 감내해 온 것에는 ‘위대한 희생’이란 진실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미 수 백 만의 인간 천사가 자신이 누구이며, 왜 이곳에 지금 있는가?!에 대하여 잠자던 기억들을 되살리기 시작했으며.
그러한 기억들은 곧 우주를 창조하던 창조자의 권능으로 회복되어질 것이며, 쓰나미처럼 한 순간에 지구의 빛과 소리를 바꿀 것입니다.

이 지구는 특별한 자유의지의 행성이며, 새로운 에너지의 창조를 위해 준비되었던 실험행성입니다.  연극과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가, 극이 끝나면 함께 자축파티를 가지듯..
이곳 지구에서의 모든 삶은 하나의 가상현실에서 연출된 드라마일 뿐이며, 모든 드라마의 끝에 종합적인 평가는 있겠으나,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는 심판은 없습니다.
단지 각자가 지구에서의 학습에서 얻은 체험으로 성숙된 수준에 따라, 그에 맞는 새로운 수준과 환경에서 다시 시작되는 창조와 탐험의 새로운 삶이 있을 뿐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은 영원한 생명이며, 그것은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입니다.
두려움은 창조계의 확장과 진화를 위해 필요했던 거울이며, 환상일 뿐입니다.


지금은 모든 정치 영역에서 인류라는 거대한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이들이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내면 깊이 간직해 온 사랑과 빛의 씨앗을 다시 찾아 양지바른 곳에 묻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싹을 틔워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이 알 필요가 있는 모든 자료와 정보는 이미 몇 십 년 전부터 쌓여 왔으며,
이제는 즉시 여러분의 안방에서 그것을 찾아 확인해 볼 수 있고,  이미 여러분은 사회생활에서 여러분의 상식을 벗어난 일들과 현상들을 체험해 왔을 것입니다.

인간의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일 뿐이며, 물이 수증기로 변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인간의 몸은 영혼이 새로운 체험을 위해 갈아입는 옷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재확인 하고, 항상 기억하며 모든 두려움의 환상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또한 진실만이 강한 힘이며,  오직 정직함 만이 평화와 기쁨의 세계로 우리를 건네줄 수 있는 나룻배라는 것을 가슴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겐 오로지 지금! 이란 이 순간만이 변하지 않는 현실입니다.
과거는 스쳐간 꿈이며, 미래는 우리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두려움입니다.
    
모든 실패와 추락은 도약과 성장의 발판이 되며, 우주는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영원히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지금 이 순간 새롭게 시작되는 우주적인 축제에 모든 인류 가족과 함께 동참합시다!




    3)  모든 정신계와 종교계의 지도자님들께 드리는 글



종교와 靈 -神의 영역을 탐구하시는 분들은  우리가 누구이며?!  우주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진실을 밝혀, 모든 사람들의 삶에 기쁨과 평화를 가져오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길 안내자며 교사의 역할을 하시는 중요한 분들입니다.

여러분은 인류사회의 선두에서 길을 찾고, 인도하는 위치에 있기에,  여러분의 판단과 선택을 뒤따라오는 수 십 억 인류의 삶은 지옥과 같은 정글의 미로를 헤매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물과 꽃과 열매가 풍요로운 낙원에서의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달리 말하면,  여러분은 모든 인류의 삶에 대해 가장 큰 책임과 역할을 가지고 계신 분들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류의 삶은 어떻습니까?
낙원과 같습니까?  아니면 지옥과 같습니까?!
5000 여 년이 넘는 역사시대 동안 항상 성직자 계층은 있었고,  인간의 生과 死의 경계를 넘어선 영역과,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실상(實相)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 진지한 노력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종교들이 가장 소중하게 추구해 온 것은 사랑과 자비, 용서와 관용, 인내와 같은 미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류사회는 종교가 다르고, 이념이 다르고, 언어와 혈통이 다르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전쟁과 다툼을 계속하여 왔으며,  오늘날은 서로가 전쟁을 위해 비축한 무기가 지구를 수 십 번이라도 파괴하고 남을 만큼 넘쳐납니다.

그 주된 원인은 몇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겠으나,  일단 결과를 놓고 볼 때, 인류의 정신적인 지도자로 자처해 온 모든 성직자와 영적, 정신적 교사들은 그들의 역할에서 크게 실패했습니다.
역사시대만 따져도 5000 여 년의 긴 시간이지만,  그들과 여러분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이러한 실패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많은 위대한 선각자와 교사들이 항상 지구 위를 함께 걸었고, 또 반복해서 걸어왔지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 모두를 포함해서.. 결과를 놓고 볼 때, 모두가 함께 져야할 책임입니다.

모든 병의 치료가 그 원인을 정확히 알았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우리 모두가 세웠거나 믿어왔던 모든 가정(假定)과 판단들이 핵심을 벗어난 상태에 있지 않았을까?!를 숙고해 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인류역사상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진실을 외치다 죽어 갔습니다.  목숨까지도 포기하며 지켜야 했던 진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신념이요 앎이었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그것은 자신의 형제, 가족,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한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감으로 현실을 인식하게 되고, 죽음이라는 마지막 지점을 바라보게 될 때, 참으로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어느 시대나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며,  몇 몇 뛰어난 존재들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많은 종교들이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오감으로 인식하는 모든 자연현상에는 하나의 원칙이 작용합니다.  삼차원 현상계에 작용하는 원리들이 일관된 하나의 법칙아래 작용하고 있기에, 보이지 않고 오감의 범위를 넘어선 세계도 역시 단일한 세계일 것으로 유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판단입니다.
그러나 신의 영역, 종교의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우리 인류사회에는 수 백, 수 천의 서로 다른 종교관, 우주관이 존재합니다.

한 그루의  꽃나무를 70억의 인류가 함께 보고 각각 그림을 그린다면 완전히 일치하는 그림이 있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지구 위를 걸었던 많은 현인(賢人), 선각자들이 보고 깨달았던 진실은 모두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저의 개인적인 체험에 비추어 종교에 대하여,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저의 진실에 대하여 잠시 이야기 하겠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20년 가까이 접했던 종교관은 기독교였습니다.  저의 친 할아버님은 평양에서 교회를 세웠던 분이시고, 부모님 역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살아오셨습니다.
저 역시 어린시절 유아세례를 받았고, 청소년시기 내내 그리고 중, 고등학교 6년을 미션스쿨(大光)에서 성경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나  16-7세경부터 여러 신학이론의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점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고,  어느 누구로부터도 납득할만한 설명과 답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고등학교 졸업을 전 후 한 시기부터 저는 스스로 그 답을 찾기로 결심했고, 그동안 가지고 왔던 모든 신학이론을 내려놓고 새로운 탐험의 길을 떠났습니다.  지금 기억하기에 그때의 나는 오랫동안 누어있던 병상에서 일어난 듯 후련하고 상쾌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약 40 여 년, 저의 삶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기쁨이 반복되어 온 생활이었으며, 지금은 캄캄하던 밤이 다 지나가고 밝은 태양이 중천에 뜬 것과 같은 상태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제가 잘 알고 있는 종교관이고, 평생을 독실한 기독교의 신자로 살아오셨으나, 기쁨과 평화가 아니라 사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오신 어머니의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며 느끼고 있는  연민과 슬픔 때문에..
저는 항상 예수가 가르친 많은 진실과 그 안에 담겨있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작용하고 있는 궁극적 원리’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기독교의 발단이 되었던 임마누엘 예수의 일생과 그의 가르침은, 심오한 진실을 밝힌 지혜와 사랑의 열매였습니다.  많지 않은 그의 비유를 통한 가르침은 쉽고 짧은 이야기였으나, 그 안에는 큰 지혜와 아름다운 생명의 빛이 가득합니다.  

그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태어났든 그는 한 여인의 몸을 통해 태어났으며, 우리와 같은 한 인간으로 지구 위를 걸었습니다.  그는 우리 사람이 그와 마찬가지로  ‘그가 한 일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고’(요한복음13:12) 확언하였으며, 이는 내가 지나온 여정 속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확인할 수 있었던 진실입니다.
우리의 본질은 100 여 년 살고 사라질 뿐인 몸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영원히 살아있는 영(靈)이고 우리가 영의 부모인 창조주로부터 태어났기에,  사람이 부모로서 가지고 있는 특성은 바로 창조주 신의 마음이라는 것이 제가 확인할 수 있었던 진실이며, 그것은 유태민족의 역사서(예언서)인 Bible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 모두를 통하여 나타났던, 명쾌히 이해할 수 있는 원리입니다.

제가 명료한 앎의 수준에서 말할 수 있는, 우리의 귀한 형제 예수 임마누엘이 비유로 가르친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 속에는 집을 떠나 잘못된 길에 들어서고, 타락과 절망의 끝에 이르러 집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방탕한 자식을 극진히 반기며 큰 잔치를 벌인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 담긴 진실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였던 예수의 가르침과 함께,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계신 어버이 신의 마음과 성품을 알려주는 중요한 것입니다.  


창조주 어버이 신의 고귀한 자식으로 태어난 인간(靈)이 짐승만도 못한 행동을 하며 살아온 데에는 심오한 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의 비유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위대한 대 제국의 왕의 아들(딸)로 태어난 한 왕자(공주)가 있었습니다.  왕자가 태어나고 몇 년 후에 있었던 이웃나라와의 큰 전쟁 중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왕은 왕자를 잃게 되었으며, 어린 왕자는 목숨은 구할 수 있었으나  머리에 큰 충격을 받고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고,  다행히 비천한 백성으로 살고 있었던 한 부부에 의해 발견되고 양육되어졌습니다.  이 어린 왕자는 새로운 부모를 친 부모로 알고 성장했습니다.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으나 제왕의 피를 받았던 이 왕자는 남달리 지혜롭고 용감하였고, 그러한 비상한 재능으로 인하여 친 부모인 왕의 군대의 유능한 장군이 되었습니다.  
이 장군이 어느 전투에서 큰 상처를 입고 치료를 받던 중, 기억을 상실하기 전에 몸에 가지고 있었던 특이한 상처의 흉터를 발견한 왕과 왕비인 친부모를 만나게 되고, 잊었던 어린시절의 기억과 함께 귀한 왕자의 신분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왕국을 이어받을 형제가 여럿 있었음에도, 왕의 자리를 물려받아 백성을 사랑하는 위대한 왕으로 그의 왕국을 몇 배 크게 넓혔으며, 가장 위대한 왕으로서 기억되었습니다.

왕국의 뿌리가 되는 천한 백성의 희로애락을 모두 체험해 본 왕과, 오로지 안락한 왕실에서의 안락함 속에서 성장한 왕은 어떠한 차이가 있겠습니까?  천민의 삶을 몸으로 체험한 왕은 모든 백성을 친 형제, 자식처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기에 더욱 지혜롭고 귀한 경험을 가진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위대함과 창조자로서의 권능과 체험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인간으로 육화하여 생존을 위해 처절한 두려움과 고통을 반복하여 온, 근원의 창조주의 귀한 자녀인 인간(靈)의 삶에는...  
장대한 창조계가 더욱 높은 차원으로 날아오르기 위해 필요했던 새로운 에너지의 창조라는 고귀한 목적이 있었던 것이며,  스스로 자원하여 선택했던 큰 희생의 위대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영겁의 시간동안 온갖 어려움을 인내하며 지구라는 무대에서 살아온 인간의 여정을 바라보며, 고향에 남아서 지원하며 애태우던 어버이 신과 형제들의 눈과 가슴에서 흐르는 감사와 사랑의 눈물!
드디어 목적했던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하게 된 것을 기뻐하는 고향의 가족들이 눈물로 우리의 발을 씻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사에 기록된 많은 선각자와 메신저들, 그들은 위대한 진실의 빛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쳐가면서 진리를 외쳐왔으며, 자신의 진실을 지키기 위해 죽임을 당한 귀한 형제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들이 흘린 피는 그들이 인식하지 못했을지는 모르나,  신의 아들, 딸인 그들의 핏속에, DNA 속에 잠재하고 있던 어버이 신의 무한한 사랑의 씨앗 때문이었으며,
그들이 자신의 진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렸던 것은, 지구라는 중요한 별에서 창조되어야 할,  존재하는 모든 것을 더욱 크고 넓은 세계로 도약할 수 있게 할 새로운 에너지의 창조를 위함이었으며,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조건 없는 극진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영(靈)들이 스스로 계획하고 도전했던 지구에서의 실험은 목적했던 새로운 에너지를 성공적으로 창조하게 되었으며,  만약 이번 지구문명에서의 도전이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면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했던 지구멸망의 가능성이 1999년 경 우리의 현실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틀란티스와 레무리아가 흔적 없이 사라졌던 것 처럼!


    예수 임마누엘의 진실 - 하나의 진실


제가 느리지만 꾸준히 하나의 초점을 가지고 살아왔던 이번 생의 여행길에서 만났던 여러 선지자의 가르침,  가장 큰 인연으로 만났던 예수 임마누엘.  전래되어온 많은 민족적 지혜. 석가모니, 노자, 공자 등의 가르침.  인류역사 시대를 통해 나타났다 사라진 많은 우주 -신관(神觀), 사상과 이념.  여러 지역의 토속신앙!
그리고 무엇보다도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책과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고, 지금도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는 지구 외부와 내부의 지적문명세계로부터의 메시지(정보),
우리들 영혼의 고향인 베일 건너편 하늘(천상) 형제들로부터의 가슴을 울리는 감동과 함께 전해지는 메시지는 모두 혼란과 대립이 없는 하나의 진실로 조화롭게 일치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지식과 기술은 원시상태로부터 오늘날과 같이  무한한 우주로의 여행을 시작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확대 발전하였으며, 인류의 의식은 계속 성장하여 왔습니다.  
    
지난세월 개인과 개인, 가족과 가족, 부족, 민족, 국가간에 있었던 끊임없는 갈등과 대결은,  이제 지구촌 전체가 일일 생활권으로 좁혀지고, 한 순간에 지구의 반대편에서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지점까지 온 상태에서..  그 끝을 볼만한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지구촌의 전 인류는 모두가 지구라는 작은 마을의 한 가족임을 깨닫고,
나아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 동일한 근원에서 비롯된 한 형제, 가족임을 알아야 하며, 지구에서 무수한 삶을 반복하며 살아온 인류가 누구인가를 자각하여 제2의 창조계로 도약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의 지구현실을 볼 때, 아직도 매년 수 백 만 명이 기아와 영양실조로 생명을 잃고,
끊임없는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한 순간에 전 인류가 멸망으로 갈 수 있는 충분하고도 남는 무기를 갖추고 서로 경계하고 있는 지구상황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을 면할 수 없으며...
특히 지금 살고 있는 정신계, 종교계의 지도자로 자부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동책임임을, 지금 이 순간 스스로 자각 하고,  지금까지 가지고 온 모든 견해와 믿음을 총체적으로 재점검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참고하기에 충분한 자료와 정보는 우리주변에 이미 충분하고 남을 만큼 쌓여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편안하게 느껴지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며,
수 백, 수 천 년 전의 기록에만 매달리지 말고,  지나온 수 천 년 간의 인류의식의 변화와 성장과정을 살펴보면서,  어린아이와 같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로 과감히 뛰어들어 전진하는 용기와 적극성뿐입니다!  


자식이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독사를 줄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한 마리의 길 잃은 어린 양을 찾아 밤길을 헤매는 목동의 마음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며, 어버이 신의 마음인 것을, 이미 2000년 전의 한 선각자가 쉽게 알려주었는데도...

자식의 고통은 부모의 더 큰 아픔이 되며,
자식이 행복과 기쁨에 거하기를 소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며,
먹을 것이 없으면 자신은 굶어도 자식에게 남은 것을 모두 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닙니까?

자식에게 지식과 지혜를 가르치기 위해 소 팔고 집 팔아, 평생 허리가 휘도록 일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일진대...
무한한 사랑을 가지신 전지전능한 어버이 신께서 불의 지옥을 준비하고, 심판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숨을 거두는 날!  지옥의 형벌을 면하기 위하여..
평생을 처절한 두려움 속에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하루하루의 위안을 벗 삼아..
쓰러질 때까지 뛰고 또 뛰는 우리의 가족!  우리의 형제가 얼마나 많습니까!!


죄가 있다면!  잘못 안 것을, 스스로 충분한 확인을 거치지 않고 가르쳐서 많은 중생을 고통의 늪으로 데려가는 종교계의 지도자만큼 큰 죄인이 없을 것입니다!

내게 진정한 기쁨과 감사가 없다면, 두려움이 내 안에 남아 있다면!
그것은 무한한 사랑! 그 자체이신 우리의 영적인 부모가 바라는 것이 아니며,
무언가 잘못된 길에 들어선 증거일 뿐입니다.

문은 두드리면 열립니다!
구하면 얻습니다!

끝까지 두드려 보지 않고, 끝까지 구해보지 않고!  
많은 어린 영혼들을 가르치고, 목자의 역할을 해 온 이들이 많았기에
아직까지도 지구는 피 흘림과 고통의 눈물이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오랜 시간 겪어온 수많은 고통과 눈물!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으며
오로지 기쁨과 감사와 사랑만을 알았던 영(靈)이
자신의 본성이 아닌 것을 체험함으로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재확인하고,
한때 정체상태에 이르렀던 창조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필요했던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하기 위한
위대한 희생의 행위였습니다!

지금은 스스로 지웠던 모든 기억을 되살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함께 우주적 축제를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4)  언론, 방송인,  판-검사, 군-경찰들에게  보내는 편지        


언론, 방송인이 진실 되고 중요한 정보를 전하고 가르치는 이들이라면,
판, 검사는 法과 사회규범의 잣대로 진실을 가리고 분쟁을 해결하며, 공정한 판단을 내려
국가와 사회의 질서와 정의(正義)를 유지하는 일의 담당자이고,
군과 경찰은 헌법과 법을 기준으로 국가의 안위와 국내의 안정되고 균형 있는 질서를 지키는 지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론, 방송인/ 판-검사, 변호사/ 軍과 경찰은 한 나라에서 제 1의 기준으로 정한 헌법과, 제반 법률과 사회적 규범에 따라, 공동체의 약속과 안정과 질서를 지키는 제1선에 선 관리자들이며,  이들이 진실과 정직함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사회와 국가는 병들고 쇠약해져 스스로 붕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태는 과정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오직 결과 만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앞에서는 비난할망정 돈과 권력을 가진 자가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 그것을 얻었든 간에 겉모습을 보고 부러워하며, 양심과 진실보다 돈과 권력이 더 큰 힘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부조리 불법적인 행위가 만연된 원인으로는

첫째  언론 방송인들이 진실을 구하지 않고, 부와 권력의 힘에 눌리거나 굴복하고, 나아가 소수의 무리는 적극적으로 권력과 손을 잡고 개인의 눈앞의 이익과 안위를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우민화 정책에 적극 가담한 경우가 많았던 것에 원인이 있습니다.  실제로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과 모든 경제적 기반까지도 포기해야만 했었던 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사회현실 이었던 것은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둘째  정의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할 판사와 검사, 변호사들 중의 상당수가 자신의 출세와 개인적 탐욕에 눈이 어두워져 법의 잣대를 임의로 늘리거나 줄이는 등의 천박한 행위로 자신의 양심과 가족과 사회를 속여 온 것이 두 번째로 중요한 원인이 될 것인데,
시중에 만연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현실을 꼬집는 이야기가 그러한 타락의 증거라고 보아도 결코 무리가 아닙니다.  또한 이러한 양심의 부패는 개인적 차원보다도 집단적, 조직적 권력의 강압과 개입에 1차적 원인이 있음, 역시 상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셋째로  나라를 지키고 헌법을 수호해야 할 군인과 경찰이 전 국민이 함께 지키기로 약속한 헌법과 법의 원칙에 충실하지 못하고, 양심을 버리고 탐욕을 선택하거나, 자신의 생명과 안위를 지키기에 우선하여, 부패한 권력과 불의에 굴복하고, 로봇과 같은 위치로 스스로 물러나는 유약(柔弱)함을 선택한 것에 있을 것입니다.  


이보(二步) 전진을 위한 일보(一步) 후퇴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당장의 결과를 예측하고, 후일의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과 지혜를 선택하는 상황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의 사회는 불의에 항거하여 자신의 목숨도 내어 놓는 이들의 투쟁에 의해 발전하고 성장하여 왔습니다.


진실과 거짓,  이타심과 이기심, 사랑과 두려움 등 서로 반대되는 심성은 항상 인간의 마음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물리적 힘이 항상 정의로 규정되어 왔고, 힘을 가진 자에 의해 역사는 기록되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이론적이나마 정착된 만인 평등사상, 법치주의, 남녀평등,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사상은 자신의 신념과 진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은 물론 가족에게까지 돌아오는 생명에 대한 위협을 무릅쓰고 외롭게 양심을 지켰던 이들이 흘린 피의 대가라는데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그들이 자신의 목숨까지 의연하게 희생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 하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설사 그들이 명확히 의식하지 못했을 수는 있으나, 자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많은 이들을 위한 연민에 그 뿌리가 있었을 것이며, 그러한 용기와 열정은 모든 인간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만인 만물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왔을 것입니다.  권위와 권력, 불의에 굴복한 이들은 인간적 두려움에 압도되어 그들 내면의 양심과 사랑의 씨앗을 살리지 못했을 뿐입니다.
사정이 그러하기에 대부분의 사람은 목숨을 던져가며 자신의 진실과 신념을 지키고 불의한 권위와 세력에 맞섰던 이들을 존경하며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편으로 보다 정확히 판단한다면, 자신의 양심과 진실을 지키지 못하는 것의 더 큰 요인은 무지(無知)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결단을 요하는 일과 마주 섰을 때, 그 일의 원인과 내용의 실상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거나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확고한 앎에서 나오는 신념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한걸음 더 나가보면, 더 많은 경우에 작용했던 것은 빗나간 교육과 종교와 습관에 의해 세뇌되어, 바르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었던 경우가 가장 큰 사회적 문제의 원인이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예외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조건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인류가 아직까지도 심각한 전쟁과 사회적 갈등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의 주된 원인이 바로 이것!  無知와 스스로 내면의 지혜를 구하지 않고, 듣고 보는 것을 분별없이 받아들이는 습성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해에서 판단할 때, 거짓을 말하고 진실을 숨기는 언론이나 방송의 책임과 폐해는 참으로 큰 것입니다.  자신과 소수 특권계층의 목적을 위해서 여론과 진실을 왜곡하는 이들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인류사회를 더욱 깊은 수렁으로 몰아가는 자이며, 자신의 자식, 가족에게도 속이는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고,  그들의 후손에게 고통과 불행을 남겨주는 이입니다.

특히 과거 오래 전에는 인류의 의식이 미개하여 힘을 가진 자들이 폭력적인 권력으로 세상을 지배하기가 쉬웠으나, 많은 의로운 이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세계는 주권재민(主權在民), 만인 평등의 사상, 법치주의의 사상이 일반화 되어 있기 때문에,
권력을 가지고 자신의 이익만을 구하는 이들은 매우 지능적인 방법으로 인류와 국민의 눈을 가리고 속이고 있으며, 신문, TV, 영화, 잡지 등의 대중매체(大衆媒體)가 그 대표적인 수단입니다.
그래서 많은 대중은 그들이 주로 접하는 대중매체를 통해 눈과 귀가 가려지고, 거짓을 진실로 알아 적과 아군을 거꾸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기만술을 통해 세상을 지배해 왔고, 지배하려는 이들에게는 모든 정보와 진실의 원천인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 첫째로 중요한 일이고, 또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되기 때문에...
진실을 알기 원하는 이들은 항상 대형 보도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여러 정보와 소식을 분별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되며,  항상 전해지는 정보 이면의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넓고 깊게 모든 사회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오늘날은 인터넷이란 인류역사상 최고, 최대의 발명품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 있어서, 대형 언론매체와 방송을 통한 통제가 불가능한 시점에 도달하였습니다.

또한 많은 양심적인 언론인과 교육자, 일부의 성직자 들이 진실을 외치며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이들 정직한 이들을 돕는 최선의 길은 모든 보통사람들이 진실과 거짓을 바르게 분별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일이며, 이미 필요한 정보와 지식은 우리 주변에 가득합니다.  단지 현실세계의 무수히 많은 부조리와 고통과 폭력이 왜?!  아직도 우리 주변에 가득한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그 답을 스스로 찾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인류사회를 주도해 온 소수 탐욕적인 권력자들의 거짓과 우민화정책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언론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모두가 한마음으로 호구지책에 연연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 시작해야 하며,
법조계와 군, 경찰에 종사하는 이들이  탐욕과 밥 세끼의 노예가 되어 권력과 불의에 굴종하는 삶을 청산하고, 먼저 오랜 시간 숨겨져 왔고 왜곡되어 알려진 모든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를 바로 알기 위해...
책과 인터넷을 통해 이미 거의 모든 것이 드러난 정보와 진실을 향해 눈과 귀를 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리적인 힘이나 행동보다 더 큰 힘은 우리의 의식(意識-思考)의 힘입니다.
우리 인간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원인자인 神 -근원의식에서 비롯된 존재이기에,  우리가 꿈꾸고 염원하는 것은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진실을 깨닫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한사람의 힘은 거짓을 말하는 이들 천, 만을 압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깨어나고 있는 인류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곧 한 순간에 이 세상을 모든 인류가 바라는 지상낙원으로 바꿀 것입니다.

구세주가 나타나 우리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잠에서 깨어난 우리 자신이 바로 이 시대를 암흑으로부터 낙원으로 이끌 구세주인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해줄 이를 기다리게 해 온 것은 우리 안에 잠재된 힘을 잠재워 노예화하고, 소수 신의 대변인으로 자처한 이들이 그들의 권위를 강조하고, 부와 권력을 누리기 위한 無知와 속임수에 그 뿌리가 있습니다!
과거의 어느 선각자도 종교를 만든 일이 없었고, 많은 종교는 그 후대의 사람들이 진실을 깨닫고 가르쳤던 이들의 권능을 오해하거나 왜곡하여, 그들을 신격화(神格化)시키고 인간을 비천한 죄인이나 피조물로서 추락시켰던 무지와 거짓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어버이 신으로부터.. 우리의 고향인 천상으로부터 우리들의 형제며, 가족인 천사들과 이 지구를 우리와 같은 한 인간으로 걸었던 교사요 선각자들이었던 존재들로부터...  그리고 지구 외부의 고도의 물질문명세계의 지적인 생명체인 우리의 형제들로부터 우리를 위해 전해지는 많은 귀중한 메시지(정보)들이 폭우처럼 쏟아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의 본질은 영원히 죽지 않는 靈-神이기 때문이며, 인간으로의 삶은 신의 아들, 딸이 체험을 위해 갈아입었던 옷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모든 메시지 -정보를 이미 수 십 년전부터, 수 백, 수 천 의 책을 통하여 받았으며, 하루도 빠짐없이 일부의 전달자(채널러)를 통해 인터넷을 통해 받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진리라고 믿어왔던 모든 고정관념과 편견을 내려놓고, 제로(0) 상태에서 새 출발하는 것뿐입니다.

이 우주는 무한한 시, 공의 세계입니다.  우주에는 지구와 같은 별이 지구에 있는 모든 모래알의 수보다도 많다는 것이 현대의 천문학자들이 모두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며, 우리 인류는 이제 겨우 달 위를 걸어보았을 뿐입니다!


이미 태양은 높이 솟아 있고, 아직 밝아진 새 세상을 보지 못하는 이들은 스스로 눈을 감고 잠자고 있는 다수 무감각한 대중들과, 이들이 계속 잠들어 있기를 바라면서 작은 손바닥으로 밝은 태양을 가리기 위해 최후의 헛된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소수의 탐욕에 빠진 기회주의자들뿐임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정직함과 진실만이 가장 튼튼한 반석이 될 수 있는 시대이며,
모래위에 세워진 거대한 성들은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태풍과 지진으로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는 시대로 이미 들어섰습니다!
영겁의 깊은 잠에서 먼저 깨어나고 있는 神人들에 의해 두려움과 환상의 무대는 이미 막을 내리기 시작했고,
청군(惡)과 백군(善)으로 나누어 시작했던 이원성(二元性)의 드라마는 마지막 장의 끝 부분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혼이 스스로 깨어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기를 바라며..
모든 지구 위를 걸었던  교사들과, 이 시기에 먼저 깊은 잠에서 눈을 뜨기 시작한 수 백 만의 많은 형제, 자매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스로 깨우친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걸어야 할 길입니다!




    5)  교육자와 역사학자들에게


교육자는 성직자와 함께 미래를 책임지고 갈  인류사회의 지도자를 교육하는 자리에 계신 분들이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난 후의 몇 년 동안에 평생을 좌우할 인성(人性)의 바탕이 마련된다고 하고, 유아기에 입력되기 시작하는 자료는 컴퓨터에 바탕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에 비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어린시기에 있어서 교사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지혜는,  한 인간의 일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기에 결국 인류사회의 미래는 초등학교와 중, 고등학교 교사의 능력과 자질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한편 역사학(歷史學)이란  지나간 과거에 인류가 살아온 과정을 연구하고 분석함으로서,  수 천 년 간 쌓아온 인류의 축적된 경험 속에서  유용한 것들을 찾아 활용하고, 이상적인 미래사회를 창조하는데  귀한 자료로서 쓰여 진다는 점에서 역시 대단히 중요한 영역입니다.

인류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이해는 교육자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 개개인에게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한 도구로서 필수적인 것이며  과거 인류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나 하는 것을 아는 것은,  지금의 내가 어느 곳에 있으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어느 곳인가를 찾고 결정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인류의 미래가 교사의 자질과 직결되고,  교사의 능력과 수준에 따라 미래사회의 성장가능성이 좌우된다고 보면  교사의 직책을 맡으신 분들은 국가와 인류사회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지혜와 지식을 계발(啓發)하고,  항상 시대를 앞서가는 선두그룹의 지성인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특히 요즘 시대에 태어나고 있고,  10세를 전후하여 중요한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들은 人類史 전 기간을 통하여 과거에 없었던 특별한 능력과 자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들로서...
다수가 ‘인디고’나 ‘크리스탈’ 어린이로 불려지는 특수한 부류의 인간으로,  태어나는 그 자체로 이미 상당한 잠재적 가능성(지혜와 앎)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다면  지금까지 태어난 인류의 평균적 지능지수가 100정도라고 가정하면,  이들 새로운 아이들은 150 ~ 200 수준의 우수성을 가지고 있고,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배우지 않고도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거나, 하나를 가르치면 둘, 셋을 앞서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일선 교육현장에서 이들 새로운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교사 분들은 이미 이러한 사실을 알고 계시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황당한 일들을 많이 겪어 오셨을 것입니다.
제가 이러한 아이들의 성향에 대하여 들었던 한 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5~6년 전 초등학교 교사로 30여 년 가르쳐 온 매우 가까운 친구에게,  “요즘 아이들 가르치기 힘들지 않는가?!”고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의 대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선생님이 무엇을 지적하면, 그에 반응하는 태도가 “당신이나 잘하지!!” 하는 표정이라고’ 하더군요.  그러한 학생들의 태도는 이미 선생님의 의도와 생각은 알고 있고, 그 문제의 핵심과 해결책까지도 훤히 내다보고 있는데서 나올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교육현장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제가 선생님들 앞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쓰는 것 같아서 송구합니다마는...  저는 “크리스탈‘ ”인디고“ 어린이에 관련한 정보를 다른 통로를 통하여 얻은바 있고, 개략적인 자료는 접하고 있으나 제 전문 관심분야가 아니어서..  그들이 특별한 시기에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라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동시에 인터넷을 통하여 상세하고 많은 정보가 이미 공개되어 있으니, 필히 관심을 가지시고 찾아보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또한 모든 교육자가 한 발 앞서 나가면, 인류문화가 두 발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항상 새로운 정보에 마음 문을 여시고 선두에 선 개척자로서의 소명을 다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역사학을 선택과목으로 분류한 김영삼 정부



한편 역사학과 관련하여 저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최근에 역사과목이 김영삼 정부 시절에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하향조정 되었고, 수 백 개가 되는 전국의 대학에 歷史學科가 남아있는 곳이 10여 개 내외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歷史를 선택과목으로 분류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그 사례를 찾기 어렵다 하며,  이는 단일민족으로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고, 現 인류문명의 시원(始原)의 역할을 담당했던 우리 민족의 중요성을 덮어버리는 황당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나라와 민족의 혼을 죽이고 우민화 정책을 확대하는 결정이라고 판단됩니다.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알고 기억하는 것은 폐쇄적인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단지 인류역사의 전체 흐름을 이해하여 하나의 지구촌을 완성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역사관(歷史觀)을 확립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는 단절과 공백 없이 수 백 만 년의 인류사, 나아가 태초 창조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총체적 앎을 위해서도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歷史가 이렇듯 그늘진 곳으로 밀려나게 된 이면에는..  일본 제국주의 지배 36년간 철저하게 왜곡된 우리민족과 아시아의 역사와,  지금까지 계속된 친일 기회주의자들의 기만(欺瞞)과 매국행위(賣國行爲)와 관련된 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또한 500여년의 이씨조선 (李氏朝鮮 : 1392~1910)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아시아와 인류역사의 始原인 한민족의 역사 전체에 관한 명확한 사실 확인은,  이 시대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입니다!  
다행히 제도권 역사학자들이 호구지책의 노예로 양심을 잃어버린 현실에 반하여, 재야의 학자와 일반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계속 심도 있는 연구를 확대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라 보입니다.  
진실이 조작된 거짓으로 덮여지는 것은 일시적으로 가능할 수 있으나, 결코 영원히 숨겨질 수는 없습니다!


조선이 일본에게 강제로 합병되고,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통치 하에서 은밀히 이루어진 역사왜곡과,  해방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친일 잔존세력의 지배와 활동 내용에 대한 진실과 행적은 철저히 밝히고 확인해야 할 사안으로,   정직하지 못한 지도자가 있는 한!  왜곡되고 거짓으로 덧씌워진 역사를 바로세우지 않는 한!  진정한 화해와 용서는 불가능하며..
정직함과 진실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영혼을 기억하고, 감사와 위로를 전하지 않고는 우리나라의 정신은 바로 설 수 없으며,  참다운 남북통일과 지구촌의 온전한 통합은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진정한 화해와 통합



오로지 정직(正直)과 진실(眞實)함 만이 얽히고설킨 혼란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으며,  
거짓으로 왜곡된 진실을 털어서 버리지 않는 한,  
진정한 화해와 통합과 전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용서를 통해 우리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는 진실을 말하고, 거짓에 대한 반성이 있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정직함이 없는 곳에 있는 것은 거짓이며,
거짓과 속임이 있는 곳에 온전한 통합과 화해가 설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모든 역사의 왜곡된 부분, 거짓된 기록은 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이것은 이 시대 역사가들의 최대의 과제이며,
분단된 민족의 통일과,  나아가 지구촌의 화합과 하나 됨을 위해서도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일입니다!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하여 진실을 감추고 폭력적인 힘으로 타인을 억압했던 이들이 양심을 찾고,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대화의 테이블에 앉을 때,  
그들은 자신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우리 모두는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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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구별 졸업여행



    ***  정상에 오르는 길은 무수히 많다  ***

  

모든 사람은 각자 다른 사회환경, 직업, 종교, 가정환경 속에서 태어나고 

매 순간 여러 갈림길 중의 하나를 선택하며 삶을 이어간다. 

무한히 많은 눈꽃의 입자가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삶의 여정을 밟아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모든 사람들의 체험과 선택과 결론은 각자 다를 수 밖에 없기에

아무리 뛰어난 지혜를 가진 성현들의 깨달음과 가르침도 참고의 대상이 될 뿐

모든 개개인의 삶은 오로지 자신의 선택에 따라 펼쳐져 나가며

정상에 이르는 길이 수 십억 인간의 수 만큼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개인은 스스로 독립적인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누군가 나를 대신하여 온전한 앎의 세계를 열어줄 수 없고

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스승들의 체험과 가르침도 각자가 스스로 이해하여 내것으로 만들고

자신의 집과 성을 스스로 쌓아나가야만 내 지혜와 앎이 된다.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내가 했던 여러  이야기도 한 개인의 체험과 삶의 여정이었을 뿐

많은 이들에게 답을 줄 수 있는 지름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구하여 얻고, 두드려서 열었다는 하나의 예일 뿐

약간의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길게 나열했다.


지금은 지구역사의 한 장을 매듭짓는 특별한 시기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어떠한 의문과 질문에도 답을 찾아볼 수 있는 도구가 우리의 곁에 있다.

의문이 가는 일들에는 그 답을 스스로 찾아 보고, 

믿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앎의 단계를 끊임없이 구하며 전진한다면 모두가 뜻을 이루리라....


'지구별 졸업여행'에서 모든 분들이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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