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북소리
글 수 590
불교 경전 중 열반경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열반에 들 때,
그의 제자 아난다가 붇다에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면 중생들은 누구를 의지하여야 하나요.
붇다는 즉시 대답했습니다.
[대중이 원한다면, 열반을 미룰 수 있다.]
그러나, 아난다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아난다는 붇다가 연로하고 병든 나머지 이제 곧 돌아가실 것을 기정 사실로 두고, 부처가 돌아가신 다음 중생은 어찌해야 하는 가를 묻기에 바빴습니다.
부처는 잠시 생각 후 [법등명 하라]고 말했고..
다시 아난다는 말세에 불교가 핍박을 받을 날까지 염려되어 부처의 말씀을 담은 경전들이 다 타고 없어질 때 대중은 어찌 해야 하는 가를 성급히 물어 봅니다.
그 때, 부처는 아난다의 얼굴을 한참 쳐다 보고 나서야 어렵게 대답했습니다.
[그 때는 자등명 하라.]
이 말의 핵심은 이런 것입니다
붇다란 존재만이 중생을 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법등명과 더욱이 자등명은 부득이 언급했던 임시 방편일 뿐입니다. 법등명과 자등명이 핵심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붇다는 자신을 좀 더 붙든다면 대중을 위해 열반을 미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매한 아난다는 부처의 존재에 대한 의미의 소중함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난다는 붓다가 열반 후 그의 상수제자 마하가섭에게 세존을 붙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호된 질책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하가섭은 아난다의 무지함을 원망했던 것입니다.
붇다의 정법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서서히 그 맥이 끊기고 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많은 사람들이 붇다의 임시 방편인 [法燈明]과 [自燈明]에 철저히 의지하여 치열하게 수행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윤회의 사슬을 끊는다는 것은 언제까지나 요원한 꿈이었습니다.
이제까지 본인이 소개한 얘기의 핵심은 붇다란 존재만이 중생을 삼계 밖으로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분만이 최고의 신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중생이 원할 때, 최고의 신과 연결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천년 전, 예수도 똑 같은 말을 했습니다. [오직 나를 통해서 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라고..
이 말은 부처의 말과 같은 말 입니다.
우주에는 참으로 많은 신이 존재합니다. 작게는 세상을 관장하는 주변 신에서부터 우주의 차원을 관장하는 신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맡은 영역이 다릅니다. 심지어는 우주를 주유하는 의식의 에너지체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연결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며, 설사 그들과 연결된다 하더라도 삼계를 벗어나지 못한 신 또는 존재라면,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설상가상으로, 홀로 찾는 분들[자등명 하는 분]은 삼계 속에 한참 낮은 등급의 신[雜神]들과 연결되어 그대로 고착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영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경지에서 그곳을 대표하는 신들과 반드시 대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나약한 힘으로 그들을 통과하기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자신마저 보호할 수가 없게 됩니다. 설사 도력(道力)이 있다 하더라도 암흑 속에 바른 길을 찾기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충분히 납득 될 것입니다. 그러니, 자등명은 무지의 소치입니다. 다만 이 방편을 통해 수신제가(修身齊家)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의미 밖에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우리는 법등명(지식) 해 왔고, 자등명(노력) 해 온 역사를 제각각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도로 발전한 이 문명 속에서도 여전히 무지 속을 잠수하며, 이상향을 꿈꾸고 있습니다. 우주 시대가 펼쳐져, 외계의 문명을 접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나 그에 이르는 길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영역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와의 직접적인 연결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그 연결은 그와 이미 연결된 자의 도움으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본인은 플레이아데스에서 오직 그 목적으로 그 분을 찾아 이 지구에 왔습니다. 이 말은 한치의 거짓이 없는 진실입니다.
여러분들은 저 멀리 과학문명이 발달한 우주의 고향 별을 이상으로 삼으시겠습니까?
그것은 퇴보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속고 있는 것입니다.
아득히 먼 하늘을 올려다 보며 무슨 일이 벌어질까를 관찰 할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가까이 있는 각자의 내면의 신과 이 지구 상에 울려퍼지고 있는 신의 메신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삼계 내에서의 윤회법칙은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정리되고 안되고의 문제가 아닌 실존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계를 벗어나 윤회의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 실존해 있기 때문입니다. 삼계를 넘어선 존재는 있어도 삼계가 없어지는 일을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지구인의 문제는 지구인 각자 스스로가 찾아야 할 순간이 온 것입니다.]
허적..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0-03 09:33)
고타마 싯다르타가 열반에 들 때,
그의 제자 아난다가 붇다에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면 중생들은 누구를 의지하여야 하나요.
붇다는 즉시 대답했습니다.
[대중이 원한다면, 열반을 미룰 수 있다.]
그러나, 아난다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아난다는 붇다가 연로하고 병든 나머지 이제 곧 돌아가실 것을 기정 사실로 두고, 부처가 돌아가신 다음 중생은 어찌해야 하는 가를 묻기에 바빴습니다.
부처는 잠시 생각 후 [법등명 하라]고 말했고..
다시 아난다는 말세에 불교가 핍박을 받을 날까지 염려되어 부처의 말씀을 담은 경전들이 다 타고 없어질 때 대중은 어찌 해야 하는 가를 성급히 물어 봅니다.
그 때, 부처는 아난다의 얼굴을 한참 쳐다 보고 나서야 어렵게 대답했습니다.
[그 때는 자등명 하라.]
이 말의 핵심은 이런 것입니다
붇다란 존재만이 중생을 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법등명과 더욱이 자등명은 부득이 언급했던 임시 방편일 뿐입니다. 법등명과 자등명이 핵심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붇다는 자신을 좀 더 붙든다면 대중을 위해 열반을 미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매한 아난다는 부처의 존재에 대한 의미의 소중함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난다는 붓다가 열반 후 그의 상수제자 마하가섭에게 세존을 붙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호된 질책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하가섭은 아난다의 무지함을 원망했던 것입니다.
붇다의 정법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서서히 그 맥이 끊기고 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많은 사람들이 붇다의 임시 방편인 [法燈明]과 [自燈明]에 철저히 의지하여 치열하게 수행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윤회의 사슬을 끊는다는 것은 언제까지나 요원한 꿈이었습니다.
이제까지 본인이 소개한 얘기의 핵심은 붇다란 존재만이 중생을 삼계 밖으로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분만이 최고의 신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중생이 원할 때, 최고의 신과 연결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천년 전, 예수도 똑 같은 말을 했습니다. [오직 나를 통해서 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라고..
이 말은 부처의 말과 같은 말 입니다.
우주에는 참으로 많은 신이 존재합니다. 작게는 세상을 관장하는 주변 신에서부터 우주의 차원을 관장하는 신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맡은 영역이 다릅니다. 심지어는 우주를 주유하는 의식의 에너지체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연결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며, 설사 그들과 연결된다 하더라도 삼계를 벗어나지 못한 신 또는 존재라면,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설상가상으로, 홀로 찾는 분들[자등명 하는 분]은 삼계 속에 한참 낮은 등급의 신[雜神]들과 연결되어 그대로 고착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영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경지에서 그곳을 대표하는 신들과 반드시 대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나약한 힘으로 그들을 통과하기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자신마저 보호할 수가 없게 됩니다. 설사 도력(道力)이 있다 하더라도 암흑 속에 바른 길을 찾기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충분히 납득 될 것입니다. 그러니, 자등명은 무지의 소치입니다. 다만 이 방편을 통해 수신제가(修身齊家)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의미 밖에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우리는 법등명(지식) 해 왔고, 자등명(노력) 해 온 역사를 제각각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도로 발전한 이 문명 속에서도 여전히 무지 속을 잠수하며, 이상향을 꿈꾸고 있습니다. 우주 시대가 펼쳐져, 외계의 문명을 접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나 그에 이르는 길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영역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와의 직접적인 연결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그 연결은 그와 이미 연결된 자의 도움으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본인은 플레이아데스에서 오직 그 목적으로 그 분을 찾아 이 지구에 왔습니다. 이 말은 한치의 거짓이 없는 진실입니다.
여러분들은 저 멀리 과학문명이 발달한 우주의 고향 별을 이상으로 삼으시겠습니까?
그것은 퇴보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속고 있는 것입니다.
아득히 먼 하늘을 올려다 보며 무슨 일이 벌어질까를 관찰 할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가까이 있는 각자의 내면의 신과 이 지구 상에 울려퍼지고 있는 신의 메신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삼계 내에서의 윤회법칙은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정리되고 안되고의 문제가 아닌 실존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계를 벗어나 윤회의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 실존해 있기 때문입니다. 삼계를 넘어선 존재는 있어도 삼계가 없어지는 일을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지구인의 문제는 지구인 각자 스스로가 찾아야 할 순간이 온 것입니다.]
허적..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0-03 09:33)
2007.09.18 00:55:33 (*.209.43.248)
앞번호의 글도 잘 읽었습니다만,저는 이렇게도 생각합니다.
법등명하고 자등명하라는 의미:진 리의 말씀을 등불삼아 진 아를 등불삼아 수행정진하그라/
오직 나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예수께서 그 스스로의 진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만난것처럼 너희들도 너희들 각자의 진아를 통해서 나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법등명하고 자등명하라는 의미:진 리의 말씀을 등불삼아 진 아를 등불삼아 수행정진하그라/
오직 나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예수께서 그 스스로의 진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만난것처럼 너희들도 너희들 각자의 진아를 통해서 나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2007.09.18 01:13:21 (*.252.236.62)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진아란 무엇입니까? 진아는 神입니다. 神과 대면할 수 있는 자는 神밖에 없습니다. 예수는 신의 육화된 모습이기에 대중이 상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07.09.18 01:22:17 (*.252.236.62)
[나를 통해서만이 만날 수 있다] 라는 말의 의미는 [너희들이 직접 만날 수 없는 분이니, 내가 대신하여 너희들을 신에게 소개하겠다.] 라는 의미입니다.
2007.09.18 01:54:45 (*.104.106.75)
스스로의 선택의 순간이지요.
창조주 하느님.애국가 속의 하느님..같은 분이시지요
지구인여러분들께서는
우주에서 이상을 찾지말고 이 지구상에서 천국을 만들어가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외계인23드림
(플레이아데스계열이신데 아주 드문 대표 지구인유전자중 하나를
가지고 계십니다)
창조주 하느님.애국가 속의 하느님..같은 분이시지요
지구인여러분들께서는
우주에서 이상을 찾지말고 이 지구상에서 천국을 만들어가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외계인23드림
(플레이아데스계열이신데 아주 드문 대표 지구인유전자중 하나를
가지고 계십니다)
2007.09.18 08:24:46 (*.109.132.189)
부처님의 육성법문은 아함경에 있습니다. 열반경은 대승경전으로서 후대에 적혀진 내용입니다. 석가모니의 죽음 이후에 교단은 충격을 받아 석가모니의 죽음을 아난다에게 뒤집어 씌웠던 것입니다.
인용하신 내용은 불교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종교적인 내용이지 사실에 가까운 내용은 아닙니다.
그리고 정통 불교 이론과 수행체계에서는 '신'은 윤회해야 하는 존재이며 에너지를 갖는 실체의 모습을 가진 허상의 존재입니다.
분명 인간의 노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노력은 그림자로 그림자를 쳐내는 노력인 것입니다. 그림자로..(이것은 무명의 소치인 인간적 노력으로) 그림자를..(현재의식의 더러움을) 쳐낸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림자로 그림자를 쳐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내면의 본성이 반영되고 내면의 본성과 상응하여 현재의식을 움직일 때 현재의식의 오물을 쳐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허적님이 '명상'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내면과 대화하는 것처럼요.
법등명 자등명은 법에 의지하여 자등명하라는 것입니다. 이 법(法)은 외부의 절대자나 창조주와 같은 객체화된 실체가 아닙니다. 창조주가 어디에 머물고 있거나 어느 궁전에 머물고 있거나 모든 존재의 찬양을 받거나 우리는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안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피창조주가 되고 창조주가 어느 궁전에서 어느 곳에서 있다고 하여 창조주 자체도 인간으로 격하시키는 모습을 보입니다.
창조주는 이 우주를 지탱하는 에너지 필드(filed)로서 존재합니다. 법화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법비를 평등히 받으나 그 존재의 근기에 따라 나무와 잡목과 수풀이 된다...개인적으로 창조주의 에너지를 간접적으로 공명하는 것이 가능하나 의식적인 교류는 고차원 존재들 중 일부만 가능한 것으로 봅니다.
인용하신 내용은 불교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종교적인 내용이지 사실에 가까운 내용은 아닙니다.
그리고 정통 불교 이론과 수행체계에서는 '신'은 윤회해야 하는 존재이며 에너지를 갖는 실체의 모습을 가진 허상의 존재입니다.
분명 인간의 노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노력은 그림자로 그림자를 쳐내는 노력인 것입니다. 그림자로..(이것은 무명의 소치인 인간적 노력으로) 그림자를..(현재의식의 더러움을) 쳐낸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림자로 그림자를 쳐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내면의 본성이 반영되고 내면의 본성과 상응하여 현재의식을 움직일 때 현재의식의 오물을 쳐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허적님이 '명상'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내면과 대화하는 것처럼요.
법등명 자등명은 법에 의지하여 자등명하라는 것입니다. 이 법(法)은 외부의 절대자나 창조주와 같은 객체화된 실체가 아닙니다. 창조주가 어디에 머물고 있거나 어느 궁전에 머물고 있거나 모든 존재의 찬양을 받거나 우리는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안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피창조주가 되고 창조주가 어느 궁전에서 어느 곳에서 있다고 하여 창조주 자체도 인간으로 격하시키는 모습을 보입니다.
창조주는 이 우주를 지탱하는 에너지 필드(filed)로서 존재합니다. 법화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법비를 평등히 받으나 그 존재의 근기에 따라 나무와 잡목과 수풀이 된다...개인적으로 창조주의 에너지를 간접적으로 공명하는 것이 가능하나 의식적인 교류는 고차원 존재들 중 일부만 가능한 것으로 봅니다.
2007.09.18 08:32:54 (*.109.132.189)
허적님의 명상은 제가 하는 사유명상과 비슷하네요...에너지 명상으로 고요함에 들어가는 방식도 하고 때로는 위빠사나와 비슷하게 알아차림을 하기도 하고...좀 더 깊이 들어가려면 에너지를 느끼면서 본인의 허위를 쳐내는 사유명상을 하기도 합니다....생각을 본질과 일치해서 역으로 소급해서 특정 에고의 뿌리를 찾는 식의 명상입니다.
2007.09.18 11:43:35 (*.150.226.152)
그러니까 부처님께선 무를 알고 깨달으셨으니까 무는 근원이자 신이니까 최상위 계층에 속하니 신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는 얘기네요..우리가 신과의 대화를 하려면 많은 걸 거쳐야 된다는 거군요... 신은 아주 가까이 있는데 신의 목소리를 못듣고 있다는 말씀이라서 신과의 거리는 가까운데 많은 신들을 많나고 그 신들을 끈기가 어려워, 단계적 접촉은 한참 걸린다는 뜻...
2007.09.18 15:23:35 (*.252.236.62)
自歸依 法歸依 自燈明 法燈明..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여라..
사실, 붇다가 열반전에 한 이 말은 일반 대중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그에게 입문한 제자들에게 한 말입니다. 부처를 통해 비로서 연결된 신성을 어떻게 개인적으로 발전시키느냐에 관한 수행지침입니다. 일반대중에게는 의미가 그다지 없는 수행지침입니다.
창조주의 에너지를 간접적으로 공명하는 것이 가능하나 의식적인 교류는 고차원 존재들 중 일부만 가능한 것으로 봅니다.
오택균님의 행간의 이 말씀은 많은 의미를 시사합니다.
열반경에는 소승열반경과 대승열반경이 있습니다. 소승열반경은 병이 든 부처님이 죽기까지의 과정, 열반후 사리탑을 지어 공양하기까지가 자세히 기록된 팔리어로 된 원시경전입니다. 대승열반경은 열반의 의미와 입장을 장황하게 설명한 사상서(경전)입니다.
본인이 인용한 부분은 사실에 가깝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 내면의 지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붇다가 열반전에 한 이 말은 일반 대중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그에게 입문한 제자들에게 한 말입니다. 부처를 통해 비로서 연결된 신성을 어떻게 개인적으로 발전시키느냐에 관한 수행지침입니다. 일반대중에게는 의미가 그다지 없는 수행지침입니다.
창조주의 에너지를 간접적으로 공명하는 것이 가능하나 의식적인 교류는 고차원 존재들 중 일부만 가능한 것으로 봅니다.
오택균님의 행간의 이 말씀은 많은 의미를 시사합니다.
열반경에는 소승열반경과 대승열반경이 있습니다. 소승열반경은 병이 든 부처님이 죽기까지의 과정, 열반후 사리탑을 지어 공양하기까지가 자세히 기록된 팔리어로 된 원시경전입니다. 대승열반경은 열반의 의미와 입장을 장황하게 설명한 사상서(경전)입니다.
본인이 인용한 부분은 사실에 가깝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 내면의 지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