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마크람 교수 연구팀이 슈퍼컴퓨터 ‘블루진’을 이용해 시뮬레이션한 뇌신경세포(뉴런) 영상. 뉴런은 자극을 받으면 미세한 전기신호를 전달한다는 점에 착안해 현재 바쁘게 일하는 세포일수록 붉은빛을 강하게 표현했다. 로잔공대 제공


지난달 22일 저녁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차로 1시간가량 북쪽으로 올라가 레만 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으로 유명한 도시 로잔에 도착했다. 이튿날 20분 정도 지하철을 타고 유럽의 매사추세츠공대(MIT)라고 불리는 로잔공대에 들어섰다. ‘AAB 114.’ 로잔공대의 ‘뇌·의식연구소’ 방 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보며 건물로 들어갔다. 미로처럼 좁고 복잡한 복도 몇 개를 지나 연구실을 찾았다. “똑똑, 한국에서 취재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하자 로잔공대 뇌정신연구소 소장인 헨리 마크람 생명과학과 교수(사진)가 반갑게 맞았다. 마크람 교수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일단 눈으로 봐야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서 ‘영상정보실’로 데려갔다.

○ 슈퍼컴퓨터 속에 ‘가상 뇌’ 만들고 뇌 기능 연구

대형 스크린에는 신경세포인 뉴런 영상이 3차원(3D)으로 펼쳐져 있었다. 동물의 뇌신경세포가 미세한 전기신호로 정보를 전하는 과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영상이다. 화면 속 뉴런의 한쪽 끝(수상돌기)에 ‘자극’을 주자 붉은색과 파란색 빛이 위쪽(핵)으로 흘러갔다. 강한 자극은 붉은색을 띠었고, 약한 자극은 파란색으로 나타났다.

이 영상은 실제 동물의 뇌신경 세포를 찍은 것이 아니다. 뇌신경연구로 저명한 마크람 교수 연구팀이 슈퍼컴퓨터로 만들어낸 ‘인공 신경’, 즉 ‘가상 뉴런’이다. 마크람 교수는 “이러한 뉴런을 한 가닥씩 모아 실험용 생쥐의 두뇌를 가상으로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이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뇌 연구에 뛰어든 것은 6년 전인 2005년이다. 2005년 무렵 뇌과학자 대다수는 자기공명영상(MRI) 장치 등을 이용해 ‘뇌 기능 해석’에 집중하고 있던 터라 동물의 뇌 구조를 컴퓨터 속에 ‘개념’적으로 만든다는 마크람 교수의 시도는 파격적이었다. 기존의 뇌 연구가 동물의 뇌를 ‘들여다보는’ 연구였다면 이 연구는 인간의 뇌를 컴퓨터로 ‘만들어 보는’ 연구다.

연구팀은 IBM이 지원한 슈퍼컴퓨터 ‘블루진’을 이용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연구용으로 운영하는 ‘슈퍼컴퓨터 4호기’의 6분의 1 정도 성능이지만 그 당시에는 ‘최강’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 뉴런 1개서 시작…2023년, 인공두뇌 개발 목표

연구팀은 연구 첫해에 뇌신경세포의 기본이 되는 뉴런 하나를 만들었다. 뉴런 1개를 컴퓨터로 구현하는 것은 간단하다. 신경돌기 끝에서 신호를 받아들여 신경 세포핵 쪽으로 전달하는 기능이 전부라 프로그래머라면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2개부터는 차원이 다르다. 연구팀은 같은 해 뉴런을 하나 더 추가한 다음, 2개의 뉴런이 전기신호를 주고받을 때 생기는 간섭현상까지 고려해 시뮬레이션을 마쳤다.

2008년에는 뉴런을 1만 개까지 늘려 생쥐의 대뇌신피질 한 부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대뇌신피질은 뇌에서 언어와 인지작용을 담당하는 곳으로 인간 사고활동의 핵심이 되는 곳이다. 연구팀은 뉴런 수를 점점 늘려 최근 100만 개로 메조서킷(mesocircuit)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펠릭스 쉬르만 연구원은 “메조서킷은 사고현상의 기본이 되는 ‘의식신경상관(NCC)’ 신경세포구조 100개를 모아 ‘뇌 회로’를 구성한 것”이라며 “2014년까지는 생쥐의 뇌 전체를 시뮬레이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생쥐의 뇌 전체를 시뮬레이션하려면 약 1억 개의 뉴런이 필요하다.

연구팀은 올해 인간 뇌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최종 목표는 2023년까지 인간의 뇌를 컴퓨터 속에 만들어내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의 뇌 구조는 생쥐의 1000배 이상 복잡하다. 뉴런을 1000억 개 이상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이미 유럽연합(EU)에 예산신청을 마쳤으며 슈퍼컴퓨터의 용량을 늘리는 등 연구 규모를 키워갈 방침이다. 마크람 교수는 “인간의 뇌를 슈퍼컴퓨터 속에 가상으로 만드는 ‘뇌 소프트웨어’가 완성되면 합성 신경전달물질이나 여러 향정신성 약품 제조기업들이 동물실험 없이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뛰어난 인공지능 로봇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

인간의 뇌를 세포 하나부터 만들어가는 스위스 로잔공대 뇌의식연구소가 진행중인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 현장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슈퍼 컴퓨터 전문가와 함께 찾았다. 대용량의 슈퍼컴퓨터 속에 인간의 뇌를 ‘가상으로’ 만들어 보는 곳이다. 뇌세포 하나를 가상으로 만든 다음 이런 뇌세포 1000억 개를 모아 인간의 뇌로 바꾸겠다는 것.

로잔=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