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


  -브라이언 와이스-



우리의 임무는 지식과 이해를 통해 신(神)과 같이 되는 법을 배워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식을 통해 신에게 다가가고 그리고 나서야 쉴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다른 이들을 가르치고 돕기 위해 다시 오게 됩니다. 신은 모두의 안에 존재합니다.



"저는 좀더 관대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저한테 잘못한 것을 용서하지 않았어요. 오랜 동안 마음 속에 넣어두고 있었어요.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요."



"이 차원에는 영혼들이 많습니다. 저 혼자가 아닙니다. 저는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저는 참는 것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많은 차원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 시대 여러 층을 거쳐왔습니다. 층마다 의식의 수준이 다릅니다. 우리가 어떤 층으로 가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진보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영적인 진보는 우리들의 지식과 지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능력을 남들보다 빨리 찾아냅니다. 그렇게 되려면 악습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생애로 그것을 짊어지고 가게 됩니다.



우리는 오직 육체 상태에서만 우리가 쌓아온 악습을 떨쳐버릴 수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대신해 주지 못합니다. 만일 고집을 부려서 악습을 떨쳐버리지 못하면, 고스란히 다음 생애로 가져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현상계의 문제들을 해결할 만큼 강해져야만 더 이상 다음 생애에서 그것을 짊어지지 않게 됩니다.



자신과 진동이 똑같은 사람들만 찾아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자신과 수준이 똑같은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진동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찾아가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직관적인 능력에 따라야지 저항하면 안됩니다. 저항하는 사람은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특정한 층에서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지 않습니다. 전생에 대한 보답으로 다른 사람보다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평등해지는 때가 올 것입니다.



"가사 상태에 빠지게 되면 유예상태에 있게 됩니다. 아직 다른 층으로 건너갈 준비가 안된 거예요. 건너갈지 말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자신만이 그걸 결정할 수 있어요. 만약 육체 상태에서 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건너갈 수가 있게 돼요. 배워야 할 것이 더 있게 되면 뜻하고 관계없이 돌아가야 해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자신을 완전하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우리한테는 배워야 할 가르침이 있어요. 우리 모두가요. 한 번에 하나씩 배워나가야 해요. 순서에 따라서요. 그러고 나서야 옆 사람에게 뭐가 필요한지, 그 사람한테 뭐가 부족한지, 아니면 우리에게 뭐가 부족한지를 알 수 있어요. 그것이 우리가 완전해 지는 길이에요."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카르마(業)를 끝내기 전에 그들의 삶을 갑작스럽게 중단시킬 권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권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살아 남더라도 더 큰 응보(應報)로 고통을 받습니다. 그들은 안식의 상태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악행으로 상처를 입힌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들의 삶을 중단시키고 있으나 그들에게도 그럴 권리는 없습니다. 그들은 결국 벌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평안을 누려야 해요. 영혼은 이 곳에서 안식을 찾아요. 육신의 모든 고통을 뒤로하고 이곳에 와있는 것이에요. 영혼이 평화롭고 평온해요. 정말 기분이 좋아요. 정말 좋아요. 언제나 해가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요. 빛이 너무 찬란해요. 모든 것이 이 빛에서 나와요. 이 빛에서 에너지가 나와요. 우리 영혼은 곧바로 그곳으로 가요. 마치 자석이 끌어당기는 것 같아요. 굉장해요. 힘의 원천 같아요. 이 빛이 영혼을 정화해줘요. 빛은 여러 가지 색깔이에요. 친구들이 모두 있어요. 사람들이 많이 보여요. 우리는 그냥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는 육체상태로 들어올 때와 떠날 때를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내려와서 성취하려고 했던 것들이 다 이루어지는 때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다된 것을 알 수 있고, 그러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이 생애에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영혼을 쉬게 하고 재충전하는 시간을 다 보내고 나면, 육체 상태로 다시 들어가는 것을 선택하는 일이 허락됩니다. 망설이는 사람들, 세상으로 돌아오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육체 상태에서 이루어야 하는 것을 이루는 기회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믿음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그토록 삶이 힘들었던 것입니다. 저는 살면서도 믿음이 없었습니다."



"저는 분노와 시기, 남에 대하여 감정을 품는 것을 배웠어요. 또 제가 제 삶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지배하고 싶었지만 되지 않았어요. 스승들을 믿었어야 했어요. 스승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인도해 줘요. 하지만 저는 믿지 않았어요. 저는 세상을 한번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어요. 믿음을 가져야 해요. 하지만 나는 믿음 대신 의심을 선택했어요..."



모든 사람의 길은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육체 상태에 있는 동안 몇 가지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이런 태도를 다른 사람보다 빨리 익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애, 희망, 믿음, 사랑.. 우리는 이러한 것을 모두 알아야 하는데 그것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의 희망, 하나의 믿음, 하나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수많은 것이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그러한 것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나타낼 수 있는 길은 매우 많습니다. 우리는 그 각각의 것에 대하여 아주 작은 부분만을 알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질서 속에 사는 사람들은 이러한 자애와 순종의 서약을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많은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 밖의 사람들은 대가를 요구하고 자신이 한 행동의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대가는, 그들이 바라는 대가는 없는데도 말입니다. 대가는 행위 속에 이미 들어 있는 것입니다.



"탐닉하면 안 돼요. 어떤 것도 지나치거나 과도하게 하면 안 돼요."



때가 되면 안내자가 나타납니다. 사람이 세상에 온 목적이 이루어지면 이승에서의 삶은 끝납니다. 목적을 이루기 전에는 끝나지 않습니다. 긴 세월이 남아있습니다.



인내와 기다림, 모든 것은 때가 되어야 이루어집니다. 인생이란 서둘러 꾸려 나갈 수 없고,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처럼 계획한대로 진행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 이상을 바라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삶은 끝이 없기에, 우리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우리는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변화의 국면 속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끝은 없습니다.



인간은 여러 차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시간은 우리가 보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시간은 우리가 얻은 가르침 속에 있습니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전에 앞서 우리가 전해준 지식들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런 명분 없이 죽게 될 거예요. 우리는 극소수의 인간들의 이념을 지켜주기 위해 죽는 거예요. 증오, 무분별한 살상, 오도된 증오, 이유도 없이 증오하는 사람들에 대해 배웠어요. 우리는 육체 상태에 있는 동안에 악에 이끌려 다닌 거예요."



당신(브라이언 와이스)이 이러한 것이 사람들에게 적절한 치료법이라고 생각한 것은 옳았습니다. 당신은 사람들 마음 속에서 공포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공포의 존재는 에너지의 낭비를 가져옵니다. 공포는 우리가 이루어야 할 과업에서 우리를 분리시킵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 속에서 실마리를 찾으십시오.



깊은 단계까지, 아주 깊은 단계까지.. 더 이상 육체를 느끼지 않는 단계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본질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표면만 보았을 때, 온갖 문제가 시작됩니다. 그들의 영혼 깊숙한 곳, 사고가 창조되는 바로 그곳이 당신이 이르러야 할 곳입니다.  



에너지, 모든 것은 에너지입니다. 너무 많이 낭비되고 있습니다. 산의 안쪽에 있으면 고요합니다. 산의 한가운데 들어가 있으면 고요합니다. 그러나 바깥쪽은 온갖 문제가 쌓여 있는 곳입니다. 인간들은 바깥쪽은 보지만, 당신은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화산을 보려면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육체상태에 있는 것은 비정상입니다. 영혼 상태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육체상태로 들어오는 것은 전혀 모르는 낮선 곳으로 뛰어 드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이 더 걸리게 됩니다. 영혼 세계에서는 그저 기다리고 있으면 새롭게 됩니다. 영혼이 새로워지는 상태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다른 차원들과 똑같이 존재하며, 당신은 이미 그 상태에 거의 이르렀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전 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지식을 가지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십시오. 사람들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영혼들이 당신을 돕기 위해 갈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올바로 행하고 있습니다. 계속 그렇게 하십시오. 이 에너지는 소모되지 않을 것입니다. 공포를 물리쳐야 합니다. 그것이 당신이 가진 위대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영혼이에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육체 상태에 있는 사람들도 있고, 새롭게 되는 기간에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 나머지는 보호령들이에요. 하지만 우리도 그렇게 돼요. 우리도 보호령이었어요."



배움에 있어서 육체와 영혼은 각각 다른 단계의 배움이 있습니다. 육체상태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느껴야 합니다. 영혼 상태가 되면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그때는 새롭게 되는 기간이에요. 박사님의 영혼은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육체 상태에 있을 때에는 고통을 느낄 수 있어요. 아프다는 것을 느끼죠. 영혼 상태에서는 느끼지 못해요. 행복과 만족감만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새롭게 되는 기간이에요. 영혼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교류하는 방식은 달라요. 또한 육체 상태에 있으면 관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대해 경솔하게 판단하면 안 돼요. 누구한테나 공정해야 해요. 섣부른 판단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어요."



사람은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강요해선 안됩니다. 육신이 불에 타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육신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수많은 단계를 거쳐갑니다. 아이의 몸을 벗고 어린이의 몸으로 들어가고, 어린이의 몸을 벗고 성인의 몸으로 들어가고, 성인의 몸을 벗고 노인의 몸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왜 단계를 뛰어 넘어 바로 영적인 차원으로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성장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계속 성장합니다. 영적인 차원에 들어가서도 계속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이르면, 육체는 소멸합니다. 우리는 새롭게 되는 단계, 그리고 결정의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 어느 곳으로, 어떤 이유로 돌아올지를 결정합니다. 어떤 이들은 돌아오지 않기로 결정하기도 합니다. 발전의 또 다른 단계로 나가기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 상태로 남아 다른 이들보다 더 오래 남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성장과 배움, 끊임없는 향상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세상에 머무는 동안 이용하는 수레에 지나지 않습니다. 영원한 것은 우리의 넋과 영혼입니다.



영혼 상태에서 배우는 것이 육체 상태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빨리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배울 것을 선택합니다. 관계를 통해 배우기 위해 돌아올 필요가 있을 때면 우리는 돌아옵니다. 다 배우고 나면 다시 돌아갑니다.



영혼 상태에 있을 때에는 원하기만 하면 육체 상태에 있는 사람들과 접촉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일일 때에만,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을 이야기 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신에 대한 신뢰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신뢰도 배워야 해요. 저는 항상 남이 저를 해치려고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을 멀리하고 피하지 말아야 할 상황을 피하게 돼요. 항상 멀리해야 할 사람들을 가까이 하게 되고요.



"저는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무슨 이야기를 들으면 그걸 믿는 법을 배워야 해요. 말하는 사람이 지혜가 있는 사람일 때는 말이에요. 하지만 전 갈팡질팡이에요. 신뢰해야 할 사람이라고 느끼면서도, 그런 제 감정과 항상 싸워왔어요. 결국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되는 거죠."



"한 생애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어요. 생애마다 얻어야 할 지식이 아주 많아요."



모든 것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자연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동물은 조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것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파괴합니다. 조화가 없고 하는 일에 목적과 계획이 없습니다. 자연은 다릅니다. 자연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자연은 에너지이고 생명이며 부활입니다. 인간은 그저 파괴합니다. 그들은 자연을 파괴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파괴합니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를 파괴하게 될 것입니다. 일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일어날 것입니다. 자연은 살아 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남지 못합니다. 우리세대에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또 다른 층, 또 다른 차원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 일을 보게 됩니다.



당신은 아무한테도 다가갈 수 없습니다. 멸망을 막으려면 모든 이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당신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멸망은 막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진화할 때 그들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평화를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아닙니다. 이 차원에서는 아닙니다.



아무도 다른 사람보다 위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단지 교훈이고 또 징벌일 뿐입니다.



모두 일곱 개의 층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각각의 층에는 많은 단계가 있습니다. 일곱 개 층 가운데 하나는 회상의 층입니다. 이곳에서는 회고가 가능합니다. 방금 막 끝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더 높은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 허락됩니다. 그들은 세상으로 돌아가서 역사에 대한 깨달음으로 사람들을 가르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낮은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의 삶만을 돌아보는 것이 허락됩니다.



사람들은 갚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 빚을 갚지 못하면, 그것을 또 다른 생애로 짊어지고 가서 갚아야만 합니다. 사람은 빚을 갚아야 진화합니다. 육체 상태에서 빚을 갚을 때 인생의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만일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빚을 갚을 수 없는 경우에는 회상의 층으로 돌아와 빚을 갚을 상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 두 영혼이 동시에 육체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때에만 사람들은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허락됩니다. 그러나 돌아갈 시기는 자신이 결정합니다. 빚을 갚기 위해 무엇을 할 것 인가도 자신이 결정합니다.



전생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방금 떠나온 생애를 제외하고는.. 현인들과 같이 더 높은 수준의 영혼들만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우리에게 할 일을 가르치기 위해서 역사와 지나간 시간들을 기억하는 것이 허락됩니다.



일곱 개의 층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기 전에 거쳐야 하는 일곱 개의 층이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전이(轉移)의 층입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기다립니다. 이 층에서는 우리가 다음 생으로 가져가야 할 것이 결정됩니다.



우리는 모두 지배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탐욕이 될 수도 있고, 욕정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성향이 무엇이던 간에 사람들은 그들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생애동안 자신의 지배적인 성향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욕망을 극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다음 생애로 넘어갈 때 그것을 또 다른 성향들과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짐은 갈수록 무거워 집니다.



한 생애에서 이러한 빚을 갚지 못하면 더욱 고된 생애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빚을 갚게 되면 보다 편한 세계가 주어집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선택합니다.



"육체 상태에서 빛의 에너지는 정신을 통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아주 편안한 상태여야 합니다. 빛을 통해서 새롭게 될 수가 있어요. 빛을 통해서요. 모든 긴장을 풀어서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 해요. 그럴 때 새롭게 되는 거예요. 잠잘 때도 새롭게 돼요."



"저는 여기서 할 일을 끝내지 못했어요. 모든 인생을 경험하기 전에는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는데, 저는 아직 다 경험하지 못했어요. 모든 계약을 다 이행하고 제가 진 모든 빚을 갚으려면 수많은 생애를 더 살아야 해요."



"마약을 이용해서 아스트랄 차원을 접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한 것을 이해하지 못해요. 어쨌든 경계를 넘어가 본 사람들이에요.'



"능력이라는 것은 관계를 통해서 개발되는 거예요.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세상에 와서 남보다 큰 능력을 지닌 사람들도 있어요. 그 사람들이 개발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게 될 거예요."



"자각의 층과 전이의 층이 있어요. 배움을 완수하고 생을 떠나 왔으면, 또 다른 차원의 인생으로 넘어가게 돼요. 그렇지 않으면 건너갈 수가 없어요. 배우지 못했으면 반복해야 해요. 모든 측면에서 경험을 해야 해요. 바라는 측면을 알아야 하고, 주는 측면도 알아야 해요. 알아야 할 것이 너무도 많고, 얽힌 스승들이 너무나 많아요. 바로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거예요. 스승들은 그저 이 층에 있는 존재들이에요.



우리가 당신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일단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당신은 자신의 직관을 통해 배워나가야 합니다.



지혜는 매우 천천히 얻어집니다. 그것은 쉽게 얻어진 이성적 지식이 '감성적' 또는 잠재의식적인 지식으로 변형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변형되고 나면, 그 지식은 영원히 각인됩니다. 행동을 통한 실천은 이러한 반응에 필수적인 촉매입니다. 실천이 없으면 개념은 바래고 희미해집니다. 실제의 적용이 없는 이론적 지식은 충분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균형과 조화가 무시되고 있지만, 이것들은 지혜의 기반입니다. 과식으로 몸이 불어납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자신의 뒤를 돌아보거나 남의 모습을 둘러볼 여유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지나치게 천박합니다. 지나치게 마시고 지나치게 흡연하고,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지나치게 속 빈 말을 하고, 지나치게 걱정을 합니다. 흑백 논리가 판을 칩니다. 전부 아니면 전무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방식이 아닙니다.



자연에는 균형이 있습니다. 동물들의 파괴는 극히 소규모입니다. 대량 살상이란 없습니다. 식물은 소비되고 다시 자라납니다. 자양분의 샘은 마르기 전에 보충됩니다. 꽃이 구경거리가 되고 열매는 먹히지만 뿌리는 남아 있습니다.



인류는 균형을 실천하기는커녕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탐욕과 야심이 인류의 안내자였고, 공포가 인류의 조타수였습니다. 계속 이렇게 나아가면 인류는 마침내 스스로를 파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은 살아 남습니다. 적어도 식물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행복은 진실로 절제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생각과 행동에 있어서 지나친 모든 것은 행복을 갉아먹습니다. 과도함은 기본적인 것을 가리는 먹구름입니다.



경건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행복이란 가슴속에 사랑을 채움으로써 오는 것이고, 신뢰와 희망으로부터 오며, 자애를 실천하고 따뜻한 마음을 베풂으로써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진실로 옳습니다. 그러한 태도를 지닌다면 균형과 조화가 따를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존재의 본원적인 상태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변화된 의식 상태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인류가 지구상에 생존해 오는 동안 자연스러운 본연의 상태에 있지 않았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인류가 자신을 사랑과 자애와 절제로 채우고 스스로 순결함을 느끼며 고질적인 공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변화된 상태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 변화된 상태, 다른 가치 체계에 이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일단 이르면 어떻게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대답은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종교 안에 공통분모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죽지 않으며, 우리는 지금 교훈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학생입니다. 불멸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영원한 존재이고 또 그렇게 믿을만한 수많은 증거와 역사가 있는데도 우리는 왜 스스로에게 이렇게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까? 왜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남을 밟고 올라서서 배움을 내팽개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비록 속도는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두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교훈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성적으로 본다면 해답은 언제나 존재해왔지만 경험으로 현실화시키고 그 개념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함으로써 잠재의식 속의 각인을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열쇠입니다. 주일 하교에 나가 달달 외우는 식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구두선(口頭禪)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사랑과 자애와 신뢰에 대해 알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려면, 그것을 느끼려면, 변화된 의식 상태가 요구됩니다. 그것은 마약이나 알코올, 갑작스러운 감정 따위에 기댄 일시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항구적인 상태는 지식과 이해를 통해 이를 수 있습니다. 그 상태는 육체적인 행동과 실천 행위를 통해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신비로운 어떤 것을 가까이 가져와 실천을 통해 친숙한 일상으로, 하나의 습관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특별히 위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아십시오. 느끼십시오, 남을 도우십시오. 우리는 모두 한 배를 젖고 있습니다.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우리는 풀잎처럼 외로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 거대한 다이아몬드가 있다고 합시다. 이 다이아몬드에는 천 개의 면이 있지만 그 면에는 먼지가 끼어 앉고, 때가 끼어 있습니다. 그 하나 하나의 면을 깨끗이 닦아서 표면이 반짝이고 무지개 빛을 반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영혼의 임무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많은 면을 닦아서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몇 개밖에 닦지 않아 초라한 빛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먼지와 때를 벗기고 나면, 모두가 가슴속에 천 개의 면으로 찬란히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 다이아몬드는 완벽해서 단 하나의 흠도 없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깨끗이 닦인 면의 수입니다. 그러나 모든 다이아몬드는 똑같으며 모두 완벽합니다.



모든 면이 깨끗이 닦여 빛의 스펙트럼을 발하게 되면 다이아몬드는 원래의 순수한 상태인 순수한 에너지로 돌아갑니다. 빛은 남습니다. 그것은 마치 모든 압력이 풀려버린 상태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과정이 거꾸로 진행되는 것과 같습니다. 순수한 에너지는 빛의 무지개 속에 존재하며, 그 빛은 의식과 지식을 소유합니다. 모든 다이아몬드는 완벽합니다.



<전생요법>



다음은 최면 치료 중 많은 고난에 찬 전생을 겪은 여러 사람들에게 그 생애에서 무엇을 배웠냐고 묻자 대답한 것들이다.



"좀 더 고집을 세웠어야 했어요. 내가 옳을 때는 옳다고 생각한 대로 해야 했어요. 쓸데없이 마음 고생하지 말고요. 저는 내 주장을 더 했어야 했어요."



"미워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했어요. 저는 용서하는 법과 미워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해요."



"전 가족들을 용서해야 해요. 그건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해요. 전 사랑을 표현해야 하고, 가족들과 저 자신을 용서해야 해요."



"누구를 편안하게 해주려면 그 사람의 말을 듣지 마세요. 말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오류를 낳을 수도 있어요. 그 사람의 가슴속으로, 그 사람의 상처 속으로 직접 들어가십시오. 그 사람은 말로는 거부할지 모르지만 여전히 위안을 필요로 하고 있어요."



"머리로 하는 사랑에서 가슴으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가야 해요. 그러면 우리는 조화 속에 있게 됩니다. 균형 속에 있게 됩니다."



다음은 저자가 환생을 믿었기 때문에 고문을 당하고 죽음에 이른 전생을 체험한 후 영적 스승이 말해준 것이다

"당신은 진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때, 그렇게 하지 않았소. 그리고 그럴 기회가 없었을 때 그렇게 했소. 그 생애에서 당신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그러한 믿음 때문에 죽었소. 당신은 사랑에 대해 매우 손쉽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가르칠 수가 있었소. 그 순간에 그 문제를 밀어붙인 것은 옳지 않았소. 이번에는 올바르게 행하시오."



한 음악가는 전생에서 아버지와 형제들 보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가혹한 체벌을 받았다. 그는 반항할 힘과 용기가 없었고, 자신의 재능과 열정, 즐거움을 추구할 수가 없었다. 결국 가출을 시도했지만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죽음을 겪은 후 한 말.

"난 내 인생을 허비해 버렸습니다. 내 재능을 펼칠 용기와 믿음을 가졌어야 했습니다. 그 생애에서 나는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고, 옳지 못한 것들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난 가족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포기했던 것입니다. 내쫓기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어쨌든 가족들은 나를 사랑했을 텐데, 난 그것을 몰랐습니다. 가족들이 나를 억누르게 된 것도 바로 자신들의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가족들도 사랑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사랑이 전부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아만도라는 사람은 전생을 경험하고 싶었으나 아무리 애써도 전생을 체험하려 해도 안 되자 최면 상태에서 한 청바지를 입은 마이클이라는 젊은 영적 스승이 나타나 한 말.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십시오. 너무 진지해지지 마십시오. 현재의 두려움을 버리게 될 때, 그 보상으로 전생들을 기억하는 일이 허락될 것입니다.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당신은 사람들을 두려워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들은 아무 일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완벽하길 기대하지 마십시오. 단 한 사람일지라도, 가서 그 사람을 도와주십시오."



이제 명상을 위해 조용하고 안정된 장소를 찾아가 긴장을 푼 다음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하라.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라. 호흡이 고요하고 규칙적이 될 때까지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숨을 쉬어라.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인식한 다음, 그것을 부드럽게 흘려보내라, 자신을 판단하지 말라. 초조해 하지말고 인내심을 지켜라. 흘러가는 생각을 그저 관찰하라. 그렇게 하면 자신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잘만하면 전생의 기억에 다가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