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펠러가의 사람들…피터 콜리어 지음/씨앗을 뿌리는 사람-

존 데이비슨 록펠러(1839~1937)는 미국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가문 록펠러가를 일으킨 사람이다. 100년 가까이 살면서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빌 게이츠의 3배가 넘는 돈을 벌었다. ‘록펠러가의 사람들’은 이 천문학적 돈을 바탕으로 록펠러란 한 가문이 어떻게 흥성하고 쇠락하는가를 보여준다. 동시에 사회의 중핵에 포함된 소수 동질집단을 통해 미국 근현대사를 조명하고 있다. 다루는 기간은 4대, 1970년대까지이다.

존 데이비슨은 석유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비견되는 인물로는 철강의 카네기, 자동차의 포드 정도이다.

살아 생전 그의 재산에는 ‘더러운 돈’이란 명패가 붙어다녔다. 존 데이비슨은 어려서부터 일기 대신 회계장부를 기록했다. 숫자가 하루하루의 반성이었던 셈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곡물위탁판매회사에 경리사원으로 입사했다. 주급 4달러. 석유산업의 발흥은 셈과 관리에 능한 그에게 도약의 기회를 제공했다.

석유산업에 투신한 뒤 현장에 밀착해 원가절감 요소를 찾아냈다. 경비를 줄이면서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최적지점으로 모든 경영요소를 수렴했다. 그런 방식으로 타사에 비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까지는 모범적인 기업가로 불릴 만했다. 그러나 그는 그 경쟁력을 바탕으로 아예 경쟁을 회피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높아진 자체 경쟁력을 바탕으로 당시 물류를 담당하는 핵심수단인 철도를 장악했다. 그리곤 경쟁자들을 압박해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모든 ‘더러운’ 수단이 동원됐다. 결국 존 데이비슨은 ‘스탠더드 트러스트’를 탄생시킨다. 미국 석유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한 독점기업체였다. 1911년 미 연방 대법원이 분할명령을 내리기까지 그는 엄청난 ‘검은 돈’을 모았다. 또한 반트러스트 법인 셔먼법에 의해 ‘스탠더드 트러스트’가 33개 소규모 석유회사로 나뉜 뒤에도 계속 치부할 수 있었다.

가문에 따라붙은 탐욕과 무자비함이란 낙인을 없애기 위해 존 데이비슨은 물론 후대에서 자선사업을 벌였다. 록펠러재단이 중심에 있었다. 자선과 후원은 최근의 게이츠에서도 볼 수 있듯 미국 거부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또한 우연찮게도 존 데이비슨 록펠러와 빌 게이츠는 창의성이나 개척정신으로 대변되는 기업가정신보다는 시장약탈형 악덕 자본가 정신으로 똘똘 뭉쳐있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3대인 넬슨 올드리치(1908~79)도 록펠러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뉴욕주 주지사 4선에다 부통령을 역임했다. 공화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3번이나 나갈 정도로 백악관을 향한 끝없는 욕망을 불태웠다. 평생 권력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실패한 정치가로 기록되고 말았다. 할아버지와 손자 두 사람을 비롯, 나머지 등장인물을 우리에게 친숙한 한국 재벌가 사람들로 바꿔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검지 않은 돈은 없기 때문일까. 함규진 옮김. 3만3천원.

〈안치용기자 ahna@kyunghyang.com〉
  최종 편집: 2004년 04월 09일 17: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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