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일본의 주간지가 탄핵정국을 맞아 특집을 실었다는데, 국외자의 입장에서 본 글 내용이 객관적, 주관적
관점이 혼재되어 있는 양상이라 우리와의 시각이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점을 상기할
수도 있고, 또한 그들이 느끼는 자기 나라에 대한 안보 감각과 한반도에 대한 시각을 참고하는 차원에서 옮겼다.

<日 週刊文春 특집>
한국 친북 정권의 죄(罪) 제2탄 - "청와대에 북한 스파이가 침투되어 있었다"
   --加藤昭 저널리스트

「우리는 마침내, 남조선 정권의 중추에 "거점" 구축에 성공하였다.」
작년 2월 말, 노무현대통령 취임 직후, 북조선의 명승지 금강산 암벽에 이상과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고, 한국 국회에서도 문제시된 바 있다.

그로부터 약 1년, 노무현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한국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소추 이유는, 노무현이 선거중립 의무를 파기하고 사실상의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던 것인데, 이것은 문제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현수막 건은, 노무현과 북한과의 이상한 밀착 태도가 폭로된 사건이었는데, 이러한 노무현에 대한 불만이 이번에 한꺼번에 폭발된 것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실제로, 탄핵가결 직후인 3월14일, 북한은 "탄핵은 야당에 의한 쿠데타” 라고 격렬하게 비난, 노무현에 대한 원호사격(援護射擊)으로 나왔다.

한편 한국정부 안팎에서는 작년 이후 노무현에 대한 고발의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다.  작년,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로서 연설을 하고 있었을 때에, "북한과의 관계만 잘 이루어지면, 나머지 일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라고 함부로 말해서 큰 소동이 일어났었다.  노무현은 그 당시부터 "김정일위원장은 약자(弱者) 편이다.  빠른 시일 안에 평양 방문이 이루어져, 꼭 한번 만나고 싶다"라는 말을 흘려, 비서진에게 그 시기를 만들도록 시키고 있었다고 한다.(한국 국가정보원 측 자료)

3백만 명이나 되는 국민을 굶겨 죽인 독재자를, "약자의 편"이라고 한 것은 정상적인 소신이라고는 보기 어려우며, 더욱이 이러한 친북 발언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셀 수가 없다.  대통령 취임 직후, 육·해·공 3군의 수뇌들을 모아놓고 노무현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주한미군 철수 후의 전략과 군사 시뮬레이숀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싶다."  지금까지 미군철수를 거론한 한국 대통령은 1명도 없었고, 미군 없는 군사정책 또한 상정 (想定)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죽 늘어앉은 3軍 장성들은,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일본 방위청 관계자)

주한미군의 어느 준장도 탄식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군사 기밀 유지가 매우 곤란하게 되었다.  군사 연습(演習) 등의 중요 의제를 얘기한 후,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사이에 그 내용이 평양에 곧바로 누설되고 있다.  그래서, 미끼 정보를 흘려보았는데, 어찌어찌 하여 핫 라인(Hot-line)을 통하여 기밀 정보가 흘러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핫 라인(Hot-line)이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후에 부설(敷設)된 남북간 최고 수준의 직통 전화를 말하는데, 놀랍게도 이 전화가 미군의 기밀 누설 루트로서 사용되어 왔다는 것이다.  작년 5월 노무현의 방미(訪美)에서 부시 대통령이 겨우 30분밖에 회담 시간을 할애하지 않은 것도, 노무현에게 정상급 비밀을 말할 수 없다(방위청 관계자)라는 판단이 작용하였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왜 노무현은 미국을 적(敵)으로 돌리면서까지, 노골적으로 북한에 접근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일까?   "그 이유는 노무현을 둘러싼 참모들 의 구성에 있다"라고 한국 국가정보원의 고급 간부는 설명한다.  노무현의 정책 입안에는 변호사 시절의 동료인 "민변(民辯)그룹"이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  "386 세대"(현재 30대에서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60년대 출생자)에 속하는 그들 대부분은, 학생 시절에 반정부 활동을 한 경력을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반미(反美)의 입장에서 북한에 동정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은 변호사 시절, 과격한 학생운동을 하다 체포된 학생들의 국선 변호인의 일을 많이 처리해 왔다.  그러한 좌익 과격파 인맥들이 노무현 측근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국정 상황실장으로서 세론(世論)의 동향을 감시하고, 공안(公安)문제를 담당하는 이광재(작년 10월에 사임), 대통령 의전 팀장인 서갑원 등이, 노무현의 동지로서 대우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국가정보원 스탭)

고영구 국가정보원 원장, 서동만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이종석 국가 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 "친북 3인조"라는 것이 정평이 나 있다.
한국군 사령부 간부는 말한다. "고영구는, 전에 북한 공작원인 김낙중을 평화주의자라고 옹호하여 즉시 석방을 요구했고, 장기간 반국가 단체로서 감시 받아온 한통련(韓統連: 재일 한국민주통일연합)의 명예회복을 운동하는 조직의 대표로 있었다."

서동만도 북한에 동정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고, 거듭되는 서해에서의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하여 "우발적인 사건이고, 김정일의 지시는 아니다" 라는 주장을 반복해왔다.
위 2人의 人事로, 국정원 내부는 공황(恐慌)에 빠졌다. "사임(辭任)을 결심한 사람들도 몇 명 있습니다.  그것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전신(前身)인 안기부 시절부터 장기간 '주적(主敵)'으로서 철저히 배워온 북한에 대하여, 하필이면 동정심을 표명하는 책임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안기부 전 직원)

작년 4월, 노 대통령이 국정원 원장에 고영구를 지명하여 열린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는, 고영구의 자질이 여러 가지 각도에서 검증되었는데, 그 중에서, 어느 일본인의 이름이 튀어나온 바 있었다.  질문에 나선 야당·한나라당의 이윤성 의원과, 고영구의 증인으로서 출석한 앞서 언급한 서동만과의 말다툼이다.

李 의원: "和田春樹 가 친북 학자로서(파일 상에서) 분류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나?"
徐 증인: "잘못된 분류이다. 나는 정반대의 평가도 듣고 있고, 특히 북한 문제에 관한 한, 가장 양심적인 태도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학자의 한 사람이다."

和田春樹란, 구(舊) 소련과 북한의 전문가로서 알려진 동경대학 명예교수다. "김일성과 만주 항일전쟁" 등의 저서를 내놓은 바 있는 "진보적 문화인"의 한사람인데, 작년, 일본인 납치 사건에 대해 북한 옹호 발언으로 빈번히 비판을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56년생인 서동만은, 75년에 서울 대학교 정치학과에 진학하여 좌익 운동에 몸을 던져, 78년에 체포된 경력이 있다.  8개월 간의 구류를 거쳐 석방된 서동만은, 86년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和田의 문하생이 되었다.  서동만은 和田 밑에서 약 10년간 배우고, 95년에 "북한에서의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 1945- 1961"이라는 박사논문을 쓰고 있었다.  앞에서 나온 국정원 간부는 이 박사논문에는 중대한 의심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테면, 박사논문의 참고문헌으로서 "조선 전사(全史", "조선노동당 약사(略史)," "조선 노동당/역사 교재" 등, 북한의 원서가 죽 나열되고, 말미에 "북한 인명록(人名錄)"이 부록으로 붙어 있다.  서동만이나 和田 연구실은 이들 저서를 어디에서 입수한 것일까?
"북한 인명록"은 조선노동당, 정부, 여러 사회단체 등의 간부의 이력이 망라되어 있어, 반출·공표는 엄금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는 "북한 인명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그들이 북한과 통하고 있다고 확신하였다.

和田의 영향력은 서동만에게 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NSC 사무차장인 이종석도 和田와 친근한 사이이다.  58년생인 이종석은, 성균관대학 대학원 시절부터 북한 연구에 몰두하면서, 고(故)김일성이 제창한 주체사상에 빠져들어 갔다.

이종석은 92년, 和田의 저서 "김일성과 만주 항일 전쟁"을 번역하고 있다.  또, "북한의 주거 이전, 여행 자유의 제한은, 사회주의의 특성이고, 남북 군사 대립 하에서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방위적인 조치다", "김정일은 오케스트라의 연주 중, 어느 연주자의 반음(半音)의 실수까지 들어서 알만큼 음악에 조예가 깊다" 등 많은 북한 찬양의 발언을 하고 있다고 한다.(안기부 전 직원)

한국 국방회의의 어느 간부도, "이종석은 핫 라인을 구사(驅使)하며, 북한과 매일같이 접촉하고 있다.  그것은 NSC 사무차장인 그의 전권(專權) 사항임엔 틀림없으나, 이종석이 국가 기밀을 누설하고 있지는 않은가 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라면서 의심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항으로부터, 최근에는 "和田 사모(思慕)설" 까지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고 한다.
"서동만, 이종석을 중심으로 하는 그룹이 북한 주도의 통일 헌법 초안을 준비하고 있는 데, 和田가 나쁜 꾀를 넣어주는 것은 아닐까?"(국정원 간부)

한국에서는 북한과의 통일 헌법안을 의논하는 것은 허락되어 있으나, 기초(起草)안의 명문화나 발표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헌법 조문이 여전히,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초안 만들기의 중심은, 임동원 전(前) 대통령 특별 보좌관인 바, 그는 김대중 정권 하에서 "햇볕정책"을 추진하여, 남북 정상회담의 주역이 된 사람이다. 이 그룹에는 임동원 이외 5명이 더 있다고 하는데, 임동원은, 서동만과 이종석이 초안을 OK 하기만 하면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도 클 것이라 보고, 2명을 참가시킨 것으로 관측된다. (국정원 간부)

(중략)

서동만과의 관계에 대하여, 和田春樹교수에게 물어보았다. "서동만 군과는, 서울을 방문하면 거의 매일 만나고 있습니다. 서동만은 저의 연구실에 적(籍)을 두고 있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다지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다. 한국 국회에서 나와의 사제관계가 문제시 된 것으로, 서군의 입장?악영향을 미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和田에게는 "북한--유격대 국가의 현재"(98년)라는 저서가 있다. 이 저서의 집필 동기나 타이틀에 대하여 물어본 결과, 1974년, 김정일이 명확히 내세운 나라 만들기의 지침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 유격대 식으로"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나는 和田에게, "당신은 조선반도를 배회하는 요괴다"라고 말했으나, 조선반도에는 和田 이외에도 김정일이나 김대중, *** 등 다수의 "요괴" 들이 발호(跋扈)하고 있다.  이번 대통령 소추를 받고, "요괴"들은 어떻게 움직이는 것일까.  그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일본의 안전보장 따위는 삽시간에 날아가 버릴 것이다.(문장 중 경칭은 생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