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발 이라크전 후폭풍이 서구를 강타하고 있다. 폭풍은 양 갈래다. ‘유럽판 9·11’로 불리는 3·11 마드리드 연쇄폭탄테러 사건의 배후가 알 카에다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유럽 각국이 후속 테러 공포에 휩싸였다. 또 이라크전을 적극 지지한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스페인 정부가 14일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에 대한 무조건적 동조 분위기에도 경종이 울렸다.

◇유럽 테러 공포=마드리드 테러사건의 용의자로 검거된 모로코인이 9·11테러 공모 죄로 수감중인 알 카에다 스페인 세포조직 지도자의 추종자라는 사실이 14일 새롭게 밝혀지면서 이번 사건의 배후가 알 카에다일 가능성이 더욱 짙어졌다. 알 카에다의 유럽 테러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유럽 각국은 대테러 보안상황을 점검하고 정보수집 노력을 강화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

오토 쉴리 독일 내무장관은 이날 비상 보안 당국자회의를 소집한 뒤 “이번 사건이 이슬람 테러범들의 소행이라면 이는 유럽 전역에 새로운 성격의 위협이 될 것”이라며 “유럽 대륙은 보안 관련 조치들을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교통경찰 당국은 이날부터 지하철에 사복 차림의 대테러 경찰을 배치하고 시민들에게 수상한 가방을 발견할 경우 즉각 신고할 것을 당부했다. 장 피에르 라파랭 프랑스 총리도 이날 기차역을 방문, 강화된 새 보안조치를 점검하고 시민들에게 수상한 행동에 대한 감시를 당부했다.

BBC방송은 “이제 유럽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대테러 보안 조치로 인한 시민권 제약 논란을 눈 앞에 두고 있다”며 “시민들이 일상생활의 불편을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합의가 도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권 심판 후폭풍=아스나르 스페인 정부가 14일 총선에서 사회노동당에 패배함에 따라 미국이 주도하는 대테러 전쟁 동맹에도 균열 조짐이 일고 있다. 먼저 스페인 차기 집권당으로 올라선 사회노동당이 오는 7월 이라크 파병 병력을 철군시킬 방침이다. 1,300명 남짓한 이라크 주둔 스페인군은 전체 지상군 병력의 1%도 되지 않지만 미국·영국·호주와 함께 이라크 침공을 주도했던 스페인군의 철수는 상당한 상징적 의미를 띠게 된다.

미국의 한 외교관은 “스페인 사회노동당도 유엔이 이라크 평화유지군 파병 결의안을 채택한다면 협력하겠다는 입장으로 알고 있다”며 상반기 중 결의안 통과를 희망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번 스페인 총선 여파로 세계 각국이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와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정책을 재고하게 될 것이며 이는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꺼리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스페인 총선과 마찬가지로 다른 이라크전 지지국 내부에서 유권자들의 직접적 정권 심판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영두기자 ydmoon@kyunghyang.com〉  최종 편집: 2004년 03월 15일 19: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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