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0일에 적어둔 글...

여러가지 좋은 의견과 다양한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물질과 영적인 세계를 연결시키고,
새로운 차원을 지상에 실현시키는 것이 화두가 되는가 봅니다.

네사라는 지난 2년간 중요한 화제로서 다루어졌고,
이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이 오고간 것 같습니다.
결론은 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실천적으로 무엇인가를 얻어내지 않으면 현실을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무슨 재주를 갑자기 배워낼 수도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더 명료하게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듭니다.

현실적으로 영적인 세계와 물질적인 세계가 대립적으로 존재하고 있고,
영적인 세계는 마스터들에 의해서, 물질적인 세계은 현실의 권력가들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마스터들은 계속해서 자신이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메세지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력가들 혹은 어둠의 일당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용기에 찬 행동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빛과 어둠의 투쟁, 영과 현실의 갈등이 지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보편적으로 개혁가들과 수구세력간의 다툼은 인간이 있는 어느 곳에든 있었고,
동시에 영의 세계와 현실세계가 투쟁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각각 다른 소재와 색다름을 가지고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였지만,
어디까지나 인간 상상력 내의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 아무리 독특한 사상이나, 제 아무리 굉장한 힘이라 할지라도
사람으로서 상상해서 만들어낸 일입니다.
상상력이라는 인간의 숨겨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출때,
역사적인 투쟁과 갈등, 영성과 세속의 대립을 하나로서 바라볼 여지가 있게
되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각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입니다.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는 변화 뒤에는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한
환경이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지원일 수도 있고, 전통의 힘이라거나,
아니면 자기암시, 집단의 암시일 수도 있습니다.
상념차원에서, 에너지 차원에서, 사람들의 인식차원에서, 그리고 물질화의 차원에서
여러가지 수준의 환경조성이 필요합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자신의 사상만이 최고의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행위를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가슴의 느낌과 조화를 통해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영과 현실, 빛과 어둠을 모두 바라보려는 것입니다.
특별한 재능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 감추어진 특별한 재능들을
발견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합의 계기가 되는 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듭니다.

옳고 그름이나, 강요보다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가운데에
목적과 행동이 드러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64억명이 산다는 지구에서 행성활성화라는 이름을 내건 곳은 이곳 밖에 없습니다.
64억명이 각자 자신만의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들은 묶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묶어내기 위한 키를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현실과 영의 세계를 모두 보는가 하면, 빛과 어둠을 모두 담아내야 합니다.

절대반지는 드러나지 않은 하나의 목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절대반지가 있음으로 하여 하나의 이야기가 쓰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선악의 어느 한켠에 서지 않으며, 그 누구의 손에도 쥐어지면 안됩니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반지의 세계 전체의 통합의 계기로서 필요한 것입니다.
이점을 이해하는 사람이 반지의 운반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의 세계는 빛과 어둠, 생과 사를 초월하는 또 다른 세계라고 합니다.
모두가 그런 수준의 인식을 가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대의 배우로서는 각자 한가지의 역할을 맡을 수 있고,
빛과 어둠의 대립을 초월해나간다는 연극을 만들어나갈 수는 있습니다.
한 명의 사람 안에서 모든 것을 다 찾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면 각자가 자신만의 역할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갈 수는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모인 우리가 아니어도, 어느 누군가는 이와 같은 모임을 가졌을 것입니다.
지구적인 차원의 불평등과, 인터넷문명의 부상, 그리고 사회전반의 패러다임 변화가 닥치면
인간의 어느 한 부분에서는 반드시 이를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채널링의 방식으로, 영감의 방식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미개척된 영역으로서
통합의 계기들이 산재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모인 분들은 각기 자신의 분야에서 느낀 한계와 자신만의 해법을 가진 분들입니다.
대표성을 가진 분들이 만나는 곳이므로 평등, 자발성, 조화가 유지되는 거라 봅니다.

네사라가 있다 없다라는 말은 빛과 어둠이 두가지가 모두 있다 라는 말과 같습니다.
실재는 자신속에 빛과 어둠을 얼마나 구현해내는가를 통해 있고,
네사라 역시 자신이 가진 통합의 계기들이 서로간에 맞아떨어져가는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