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 당하자,

지바도시찌라는 일본 청년은 국가의 영웅을 죽인 안중근을 처단하리라 결심했다.

청년은 만주로 가 안중근의 담당 교도관이 되었고 그를 볼 때마다 욕설을 퍼붓고 괴롭혔다.

어느 날 안중근은 적개심이 가득한 청년의 눈빛을 조용히 응시하며 말했다.

"개인과 민족과 세계는 그 자체로 귀하고 한 울타리가 되어야 하오.

하지만 당신의 영웅은 울타리를 파괴하고 해체한 사람이오.

나는 세계평화를 위해 전범을 제거한 것뿐이외다."

이 말은 지바도시찌의 가슴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안중근의 사람됨에 감동한 그는 그 뒤부터 꼬박꼬박 안 의사라고 부르며 국적을 초월한 우정을 쌓아 나갔다.

안중근은 그에게 '국가안위 노심초사'등 많은 글씨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일본 정부로부터 안중근의 사형 명령이 내려왔다.

슬픔에 잠긴 그는 안중근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안중근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친구, 너무 슬퍼하지 마오.

정작 슬픈 것은 우리의 이별이 아니라 짓밟힌 채 일어나지 못하는 조국의 현실이라오."

안 의사가 처형을 당하자 지바도시찌는 교도관을 그만두고 고향 센다이로 돌아왔다.

그는 대림사라는 절의 한 법당에 안 의사 영정과 글씨를 걸어 놓고 20년 동안 모셨다.

임종 순간에도 그는 아내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안 의사를 부탁하오. 그분은 내 생애 최고의 스승이었소."

아내는 남편의 말을 잊지 않고 20여 년 넘게 모시다가 숨을 거뒀다.

그뒤 수양딸 미우라 양은 안 의사 탄생 100주년이 되던 해 대림사에 비석을 세웠고, 그의 글씨를 우리나라에 기증했다.



-좋은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