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내면과의 대화의 의미.
  
   1. 삶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나는 무엇인가?)이므로,
      내면과의 대화를 통하여 자신 자신을 알아 가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2. 내면과의 대화는 자신의 ‘지금 여기’의 상황을 적절하게 다루는 맞춤형이다.
      각자의 내면과의 대화이지만, 지향점은 ‘모든 하나’를 위함에 있다.
      그러므로, 각자의 내면에 충실할 때, 우리는 하나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3.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내면의 자신보다 나 자신을 더 잘 아는 존재도 없기에,
      자신의 내밀함에서 나온 선택이야말로, 자기 영혼의 목적에 맞는 것이다.
  
   4. 자기 자신에 몰두하여 자기 자신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기를 원해야 한다.
      “나는 네가 (구·체·적·으·로·) 원하는 것을 원한다.”
      “대충 원하면 대충 답한다.”
      “자기에 대해서 별로 알고 싶지 않으면, 나(창조주. 근원.)도 말하기 싫다.”

   5. 대답의 출처가 확장된 자아인 우주의 창조주의 것인지,
      모든 우주의 창조주인 근원의 것인지에 대한 구별을 명확히 하고 싶겠지만,
      내면의 심층으로 접근되어 작용되는 본질적인 존재들의 입장에서는,
      메시지 전달의 역할에 대한 개별적 책임의 개념이 극히 희박하다.
      그것은 단계적 존재로서의 분리의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면의 영역에서 작용한 것이므로, 대화를 하는 도중에 분별하고자 하는
      생각을 빈번하게 가동시킬 필요가 없다.
  
  6. 기록의 수단을 사용하면, 가시화되는 물질로서 구현시키는 것이므로,
      기억의 수단보다 훨씬 명확하며, 기록이 보존되는 한 영구적이다.
      자세하게 검토할 수 있고, 음미할 수 있으며, 연결 지어서 알고 싶은 것을
      챙길 수 있는 자료가 있게 된다.
      기록하는 속도에 맞추어 영감을 받아들이는 조절능력이 얼마 안가서 생긴다.        
      기록하는 행위는 집중력을 향상시켜 명확성을 더하는 데 도움이 된다.
  
  7. ‘나는 물어볼 것이 없다. 궁금한 것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자기 자신이 모든 것’이라는 것은, 신과 나의 속성에 대한 원론적인 개념
      또는 일시적인 영적체험에 대한 이야기이고, 일상이라는 구체화된 현실에서,
      ‘지금 여기’의 나는 신의 분신으로 존재하고 있다.
      분신으로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 나의 물질세계에서의 삶이므로,
      삶의 세세한 상황에 필요한 정보들을, 자기 자신 보다 넓고 깊은 시야를
      가지고 보는, 자기 자신의 본질에게서 받아야 한다.
  
   8. 무념무상은 고요함으로 가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고요함의 자리에서 자기 자신의 본질이 근원임을 일시적으로 확인하는 것을
      견성(見性)이라고 한다. 일시적인 체험을 한 이후에도, 일상적으로 다가오는
      현실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에 필요한 구체적 정보를 받는 것이 내면과의 대화이다.

   9. 내면과의 대화를 통하여, 영적각성이 점점 심화될수록, 평소에 이루어지는
      생각들이 영혼의 목적에 관계되는 방향으로 사고의 작용이 이루어진다.
  
  10. 내면과의 대화는 영적체험이며, 견성(見性)이며, 진아(眞我)체험이고,
      자기 영혼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관계한다.
  
  11. 고요한 집중력이 향상되므로, 현실의 삶의 순간순간에서, 보다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의미를 알아내는 능력이 향상된다.
  
  12. 기록의 수단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도, 필요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영감을
      끌어 쓰는 능력이 향상된다.

  13. 설정은 분리이지만, 영혼차원의 느낌 속에서 존재하면서 진행되는 것이기에,
      존재 상태는 분리가 아니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분리의 파장은
      발생하지 않으며, 근원의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분리의식 또는 이원성이 심화되는 문제는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대화의 상대자에 대한 머리로 하는
      생각이 많은 경우인데, 그것은 ‘지금 여기’에 충실하게 존재해야 하는,
      생활 속의 명상의 기본적인 수행 과제이다.
  
  14. 내면과의 대화는 집중하는 명상이고, 자신의 근원의 에너지를 강화시키는
      수련이다.
  
  15. 좋은 스승을 만나기가 참으로 어렵다. 내면의 스승이야말로 자신의 참 스승이다.
      자기의 수행과정에 필요한, 가장 적절한 방향으로 안내한다.

  16. 자기 수준만큼의 대화가 진행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인식능력(존재능력)의 향상이 이루어진다.
  
  17. 자신의 심층과의 대화이므로, 대화상대자의 형편에 따라서 도망가는 일이
      없다. 내가 고요히 집중하여 원하는 상태만 만든다면, 언제든 어디에서든
      가능하다. (빙의나 외부의 대상인 존재와의 연결이 끊어진 이후의 교신두절        
      같은 것은 없다.)
  
  18. 자기 자신의 근원과의 대화를 통하여 자기 자신에게 중심 되는 에너지가
      강해지면, 자기 자신이 원하는 대상과의 대화가 가능해진다.
      (천상계, 식물계, 동물계, 자연계, 정령계, ….)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에 의한 교류이다.)

  19. 내면의 소리에 대한 믿음이 커지고, 그 소리에 자신을 내 맡길 수 있다면,
      새로운 깨달음이 필요 없다. 깨달음은 이미 나 자신의 내면에 있기에,
      필요에 따라서 다가오게 된다. 끊임없이 무한정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게 된다.
      ‘지금 여기’에 필요한 깨달음에 충실할 때, 자신의 삶에 충실해지는 것이며,
      그것이 순리이고, 섭리이며, 영적 진화의 자연스러운 흐름의 원활함이다.

20. “자기 자신에게 모든 것이 다 있다.”
      (자기 자신을 고집스럽게 거부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