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면(內面)과의 대화의 방법과 그 의미

1. 정의.

[1] 내면이란?
  
  1. 규정 없음을 말한다. 그것은 창조주인 근원의 자리이다.

  2. 자기 자신의 본질을 원하면 나타나는 절대계의 속성이다.
  
  3. 자기 자신을 포함(합일)하면서, 상대적으로도 존재하는(분리로 체험되는),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의 본질인 창조주를 함께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하나이나,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체험되는 상대성의
     세계이다.
  
  4. 개별의식의 측면에서는 내·외부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전체의식의 측면에서는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의 내면이다.

  5. 내면(창조주)의 존재 상태는, 양극성(이원성, 상대성.)이 통합되어 있는,
     합일(규정 없음, 한정 없음, 조건 없음, 고요한 평화.)의 자리이며,
     모든 것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상대계의 전체의식의 자리이다.
  
  6. 내부와 외부라는 경계가 없는 합일의 존재 상태에 머무를 때 체험된다.
  
  7. 자기 자신이 창조주 또는 근원임을 잊지 말고, 자기 자신의 고요함으로 들어가라.
     그곳이 바로 자기 자신의 고향인 내면이다.


[2] 내면과의 대화란?

  1.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라는 3중의
     존재.) 깨달음은 ‘영혼이 자기 자신을 알아 가는 것’을 말한다.
     몸과 마음은 기록이나 체험에 관계된 도구이고,
     자기 자신의 개별영혼(인식을 위한 분리이지, 본질적인 면은 아님.)이,
     자신의 심층으로 확장된 자아(이 우주의 창조주 또는 자기가 기원한 우주의 창조주,
     모든 우주들의 창조주인 근원.)와 대화하는 것이다.
  
  2. 몸과 마음과 영혼이 안정되고, 명료한 상태에서,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설정)으로,
     자신의 본질인 창조주와의 대화를 원함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3. 나 자신이지만, 대화모드이므로 분리되었다는 설정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설정은 분리이지만, 존재 상태는 분리가 아니다.)


[3] “내면으로 가라?”
  
  1. 내면으로 가라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것이며,
      자기 자신에게 고요히 집중하면 자기 자신의 본질(창조주)의 영역이
      일깨워지기 때문이다.

  2. 신과의 만남이나 신에 대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
     소수에 의한 권력(勸力)이나 금력(金力)의 추구에 의한 지배욕에 의하여
     주입되어온, 잘못된 가치관이 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전(以前)이나, 지금의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나
     그릇된 종교의 틀에 의하여, 신과의 만남이나 신의 진리를 성직자나 권력자와 같은
     매개자(媒介者)에 의존(依存)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권력이나 정치권력에, 일반 대중들을 의존케 함으로서,
     소수의 권력층에 의한 지배(支配)와 대다수의 일반 대중이 피지배(彼支配)
     관계의 입장에 놓이는, 지배-피지배 구도(構圖)를 강화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이는 자기 자신의 본질이 신임을 가리는 행위이며, 깨달음에 관계된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자기 자신의 신성(神性)에 의지하지 않고,
     외부적인 정치권력이나 종교권력에 의존하게 하는 것이다.
     선각자(先覺者)들은 자기 자신의 본질이 창조주임을 깨달았다.
     수많은 선각자들은 당시의 정치권력이나 종교권력의 아웃사이더였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내밀한 느낌에 귀 기울이면, 자기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래서 일반대중에게, 내면(內面)으로 가라고, 은유적(隱喩的)으로 표현하여
     이야기한 것이다.
  
  3. 신이 자기 자신을 체험으로 알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본질이 아닌 상대적인
     모습을 창조하였는데, 자기 자신에 대한 체험을 세부적으로 하기 위해서,
     전체인 자기 자신을 수많은 부분으로 나누었다.
     본질은 하나이나, 상대성이라는 환상 속에서, 수많은 신의 부분들이
     상대적으로 작용하면서, 자기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게임을 펼치고 있다.
     그 속에서 각자의 깨달음을 위해서 상대적으로 작용하는 역할과 활동이 있다.
     그러한 상대적인 역할과 활동 속에서의 판단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기에,
     당연히 믿음의 주체가 외부의 대상(종교나 정치에서 주장하는 특정 존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며, 자기 자신의 구원 또한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4.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철저히 적용되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므로,
     채널링의 상태로 접근되는 과정에서, ‘내면(內面)’이란 용어자체가,
     ‘자기 자신의 내부(內部)의’ 에너지-장(場)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본질과의 대화로 접근하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
  
  5. 대상으로서의 존재 중에서, 자기 자신의 영혼의 계획에 도움이 되는 존재도
     있지만, 방해(妨害)를 하고자 하는 존재도 있으므로, 그 방해되는 존재에
     연결이 되어서, 현혹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말로써,
     ‘내면으로 가라!’고 한 것이다.
     자기 자신이 원하지 않는 영적존재가 개입됨으로써, 채널링의 대상에게로
     에너지 중심이 넘어가게 되면, 연결을 끊기가 어려워진다.
     채널링의 내용 또한 명확한 논점이 없으며, 자신의 우월의식, 분리의식을
     부추기며, 삶을 허무하게 바라보게 하며,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없다.
     그 정보의 교묘함이란 너무도 정교해서, 속는 줄도 모르고 속게 된다.  
  
  6. 깨달음은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을
     말하므로, 내면으로 가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일깨우는 집중을 돕는 의미가 있다.
  
  7. 자기 자신의 본질에 모든 지혜가 다 있으니, 자기 자신을 일깨우라는 말이다.
  
  8. 자기 자신에게 고요히 집중하는 상태는 이원성(양극성, 상대성.)을 넘어서는,
     합일(규정 없음, 한정 없음, 조건 없음, 고요한 평화.)의 자리이고,
     이것은 창조주의 ‘되어있음의 존재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