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윤리주의자들은 아기의 육체적 탄생이 삶의 시작이며 최후 심판의   날에 삶이
끝난다고 말하지만 사실 진정한 삶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으며, 비록 형태와 차원이 바뀔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신이 우리의 일부이듯 우리 역시 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고의 범위를 넓혀준다.   만일 우리 각자가 신이고 우리 모두가 신이라고 일괄해서 생각한다면,  그리고 완전한 신이 되는것이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안다면.  자신처럼 다른 사람도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힘껏 도와야만 한다.  그들은 우리의 팔 다리나  눈이나
귀처럼 필수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산 자나 죽은 자 모두 인류의 전체성이 없다면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모두가 하나가 전체가 되는 진리가 산 자나 죽은 자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전체성에 대한 이해를 할 때 우리가 늘 신이라고 부르는 우주의식과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계의 시간은 지상의 시간과 다르다.   이 곳에서는 시계로 측정하는 시간은 없다.  우리는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에 지상의 시간으로 어느 때라도 원하는 곳은 어느 곳이라도 갈 수 있다.

   그리고 지상의 시간 개념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너희들이 미래하고 부르는
앞날을 미리 내다 볼 수도 있다.   사건들은 미리 계획되어 있고 그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만일 지상의 인간들이 사건들이 먼 미래까지 계획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떤 재난을 피하기 위해 그토록 심하게 버둥거리지 않고 그저 관망할 것이다.   너희 앞에는 모든 것이 세밀하게 계획되어 있는데 걱정한들 모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가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리고 항상 긍정적이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두려움 없이 다가오는
미래를 받아들여라.  미리 예정된 것이 너를 위한 우주의 신성한 계획의 일부일 수도 있고 아니면 네자신이 육체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을 때 수행하기로 약속한 자신의
임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우주계획에 대한 신뢰의 부족이다.  긴장을 풀고 기꺼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것을 받아 들여라.  그리고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라.

   죽음이란 손짓하며 부르는 문을 단지 통과하는 것이다.   너무 간단하고 순간적이어여 자신이 그 문을 건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조차 힘들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문 너머에 존재한다.

   육체는 지치고 약해진다.  어느 순간이 되면 더 이상 육체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거나,  영혼이 열린 문으로 빠져 나가버려 심장은 멈추게 된다.   그 때가 되면 어떤 이는
기쁘게 영계로 가고,  어떤 이는 마지못해서 간다.   그러나 모두는 평화와 평온을 위한 우주적 충동에 따르게 되는 것이다.    

  특별히 과도한 충격이나 정신적 나약함이 있을 경우  그 영혼은 영계로 오는 과정에서 잠시동안 잠을 잘 수도 있다.   이경우 그 영혼이 스스로 깨어나서 자발적으로 영계의 존재들과 접촉하기를 바라게 될 때까지 자도록 내버려둔다.

   그러나 때때로 영계로의 이동이 여름의 산들바람처럼 아주 부드럽게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 곳은 네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이 곳이 지구와 다른 점은 더 이상 육체적 안락이 필요없으며 세상의 아름다움이 완전히 원형 그대로남아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곳이 내가 살아 있을 때 잠재의식 속에서 기억했던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 그러나 지상의 어느 누구도 이 곳의 아름다움이나 이 곳의 영혼들이 다른 영혼들에게 가지는 호감과 같은 강한 친근감을 정확하게 기억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마치 문을 지나 늙고 병든 몸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죽음에 대한 의식적인  생각없이 순간적으로 이 곳으로 와서 친척들에게 둘러싸였다.

   아직도 지상에서 영계에 대해 어린애와 같은 유치한 상상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그런 엉터리  같은 생각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이 곳에서 진보가 늦어진다.  진리 대신 많은 보푸라기를 걸치고 있다면 그것들을 신중하게 벗어버려야 한다.  즉시 그 일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 곳에도 일은 있는데 그것은 합목적적이고 , 필요하며, 기분 좋은 것이다.   아무도 강제로 일을 하지는 않는다.   자기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그 일이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아무도 성장과 발전을 강요받지 않는다.  이 곳에는 스스로 원하지 않을 경우는 읽고 쓰기를 배우라고 강요하는 교사도 없다.

   그러므로 영계에서는  지상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   이해가 되는가?  지상에서는 우리를 훌륭하게 만들려는 사랑스런 부모와 교사들이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부를 강요한다.  그러나 이곳 영계에서는 제멋대로하도록 방치된다.  그래서 게으른 영혼은 길가를 방황하면서도, 한 번도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아무도 그 게으른 영혼에게 올바른 길을 가라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 영혼들에게 영계가 같은 곳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각자가 지상에서 환생을 거치고 나면 모두 이 곳으로 돌아옴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겪게 되는 영계는 다르다.

   우리는 그 문(죽음)을 다시 통과 할 때 마다 변한다.  영계로 돌아올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생각의 틀과 아이디어를 배워왔다.

   우리에게 있어서 사고는 곧 물질이다.  우리는 신과 함께 이 곳에 있는 것들을 창조한다.  우리는 네가 이러한 고차원의 진리를 지상의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기를 바란다.
지상의  사람들도 그들의 생각에 의해 자신의 미래의 삶을 창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의 천국이나 지옥도 만들게 된다.

   그러나  옳고 그른 장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장소와 우리는 하나이다.  지상에서는 너희 안에 천국이 존재하고 이곳에서는 우리 안에 천국이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지상에 있을 때 우리가 기대했던 것에 영향을 받는다.  즉 육체 상태에서 생각한 것이 영혼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정신의 성장과 영적 진보야말로 이곳에서든 지상에서든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성장하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하는 존재들이다.   어느 것도 우리를 위해서  대신 성장
해 주지는 못한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성장할 것인가 아니면 정신적 미숙아 상태로 남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신 자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너에게 우리 각자가 신이며 동시에 신의 일부하고 말하는 것이다.

   영적인 진보야 말로 이곳에서든 지상에서든 행복을 찾는 열쇠이다.  그리고 이 곳은 배우고 성장하기를 열망하는 우리와 같은 영혼들에게는 아주 환상적인 곳이다.  이 곳의 하늘과 꽃나무, 저녁 노을은 네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다.   이런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계든 지상이든 거기에 속하는 모든 것이 생각의 틀
임을 알아야 한다.

   이 곳에서는 오직 생각을 통해서 대화하고 일하고 성장하고 번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기계에 불과한 물질적 마음 때문에 방해를 받는 일은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나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다른 사람이나 영혼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 즉시 그를 볼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의 틀을 투사함으로써 원하는 곳에 즉각 갈
수 있다.

   생각이 곧 물질이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냐 하는 것은 곧 우리가 무엇을 보게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육체적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도 맏들 수 있고 추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악을 생각하면 악한 일이 닥치고, 선을 생각하면 선한 일만 생긴다.  사랑을 생각하면 너 자신이 사랑에 둘러싸일 것이고,  미움을 생각하면 세상은 온통 괴물과 파괴적인 목소리로 가득 찬 지긋지긋한 곳으로 변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곳에서 선한 생각을 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의 마음은 그 자체가 생각의 틀에 방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보고 서로의 수준을 알게 된다.   서로 생각의 수준에 맞게 어울리기 이것을  우리는  유유 상종 이라고 말한다.

   생각할 장소로 태양이 빛나는 바람 부는 해변이나 산의 장엄함을 볼 수 있는 후미진 숲속을 원하는 사람이 슬럼가의 뒷골목이나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코니 아일랜드에
있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잠재의식은 언제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잠재의식은 우리의 일부이며,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 우리 영혼의 마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른바 장막의 그 쪽(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현재의식과 더불어 잠재의식도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잠재의식을 지나치게 억압하여 오직 현재의식만이 가슴과 머리를 지배하게 하는 대신, 잠재의식이 확대되고 그 눈부신 위력이 밖으로 드러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너에게  명상와 기도의 목적, 영계와 지상의 상호관련성, 영계의 삶의 방식들에 대해서 알려주겠다.   지상의 사려깊은 사람들을 일깨워서, 그들이 영계에 대한 준비를 해 나가지 않은다면  삶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육체상태의 인간의 삶도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 영혼은 모두 지구라는 학교로 돌아가서 더 빨리 성장하고 발전하는 방법을 배우고, 영계에 성취한 진보의 정도를 스스로
시험한다.  이것은 정신적 면에서 어린이가 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과 같은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속에는 영혼의 진보와 내적 성장을 시험할 수 있는 도전과 기회와 방법들이 숨어 있다.

   명상을 하지 않는 날은 무의미하게 낭비되는 날이며, 시간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 즉각적으로 멈추게 된다.

   만일 내가 이 곳에서 알게 된 것을 지상의 사람들이 볼 수만 있다면, 그들은 한 번의 인생이 불빛이 깜빡이는 정도의 짧은 순간이며 지상의 삶과 삶 사이의 기나긴 기다리는 기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