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나오는 그림은 임마누엘이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시대에 그려진 오래된 그림을 토대로 셈야제가 그린 것이다.  물론 그녀가 과거여행을 해서 베껴온 것이다.

바티칸에 보존되어 있는 성수의 - 예수의 장사지내기 위해 그 시신을 싸매었던 아마포에 예수의 얼굴이 전사되었다고 전해진다. -에 나타난 예수의 얼굴 모습과는 많은 점에서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이 임마누엘이 직접 제자에게 그의 가르침을 기록케 한 <탈무드 임마누엘>과 현재에 전해지는 신약성서는 어떤 점에서 다른 것인가.

수많은 차이점을 지적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처녀임신과 부활의 두가지 중요한 문제에 대해 살펴보자.

셈야제의 이야기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처녀 마리아의 잉태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에 관하여 <탈무드 임마누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마이아의 남편은 요셉이었다.  마리아는 임마누엘의 어머니로서 그녀는 비밀 수호천사인 하늘의 아들 라시엘의 먼 자손에 의하여 임신케 되었다.  마리아가 라시엘의 혈족인 하늘의 아들의 자손에 의해서 임신한 사실을 안 요섭은 노발대발하여 사람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그녀를 떠나 버리겠다고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요셉은 마리아를 임신시킨 하늘의 아들 가브리엘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하늘의 아들의 자손에 의해 임신하게 되었다"고 기록된 것을 보아도 마리아가 혈통이나 자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성령에 의해 잉태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 다음에는 마리아의 임신이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탄생할 때와 같은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오랜 과거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음이 기록으로 보여진다.

"마리아의 임신은 하늘의 아들 셈야자에 의해 아담이 태어난 지 1만 1천년 뒤에 일어났으며,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우주의 지배자인 신이 말한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임마누엘은 아담과 똑같이 하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생명체와 지구 인류 사이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탈무드 임마누엘>에서는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의 유래와 임마누엘 탄생의 중대한 의의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녀가 잉태한 아이는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며 그 뜻은 '신 (엘) 은 우리들과 함께 있다 (임마누)'는 것으로서 신의 명예를 말하며 신과 이 세상에 대한 배려를 나타낸 것이며 지성있는 인간으로서 살도록 격려하기 위해 우주 저편에서 온 하늘의 아들을 통하여 이 세계의 여자가 동침케 함으로써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신과 그 수행원들이 아득히 먼 곳에서 찾아와 그들 스스로 강한 속박 상태를 해방시키고 이 세계의 성숙한 여자를 택하여 하나의 새로운 인종과 나라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하늘의 아들, 신, 그의 수행원"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것은 분명히 플레이아데스 성단에서 온 셈야제의 먼 옛날의 선조인 외계인들이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신이란 외계인 중의 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 외계인 (신) 이 아담을 낳게 하고 지구 인류의 아버지가 된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신을 스스로 자기 입장에 따라 생각하게 되면서 심각한 영적 타락으로 이어졌다.  지금이 바로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키고 깨닫게 하지 않으면 안될때인 것이다.

지구 인류에게 스스로의 올바른 역사를 재확인시킴으로써 영적인 각성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다시금 아담과 같은 방법으로 임마누엘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것이 <탈무드 임마누엘>의 가르침, 즉 우리들이 오늘날 예수라고 잘못 부르고 있는 임마누엘의 가르침인 것이다.


<<예수 부활의 진상>>

그렇다면 신약성서의 중심적 테마이며 또한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부활에 대해 <탈무드 임마누엘>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

임마누엘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십자가에 매달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임마누엘이 죽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마누엘의 가르침을 따르던 아리마테아의 요셉은 임마누엘이 가사 상태임을 알아차렸다고 기록하면서 다음과 같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다.

"요셉은 급히 마을로 돌아가 빌라도에게 가서 임마누엘의 시체를 자기에게 인도하여 주기를 간청했다.  빌라도는 그것을 허락했다.  요셉은 사람들과 함께 임마누엘을 십자가에서 끌어내려 그 시체을 인도받아 깨끗한 아마포에 쌌다.  그리고 그 위에 기름을 발라 임마누엘의 모습이 천에 배어 그려지도록 했다.

아리마테아의 요셉은 임마누엘의 시체를 예루살렘까지 옮겨 마을에서 떨어져 있는 바위를 뚫어 만든 자기의 무덤에 안치했다.  그 무덤은 요셉자신이 죽으면 묻히기 위해 마련해 두었던 것이었다.  요셉은 무덤 입구를 큰 바위로 막고 임마누엘을 치료하기 위한 약품들을 수배했다.

무덤 입구 주변은 병사들과 임마누엘의 어머니가 지키고 있었으므로 아무도 임마누엘에게 접근하거나 시체를 훔칠 수 없었다.   아리마테아의 요셉은 인도에서 와 있던 임마누엘의 친구를 찾아 그와 함께 무덤으로 돌아와 다른 데로 뚫린 또 하나의 비밀통로로 무덤 안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사흘동안 밤낮으로 임마누엘을 치료한 끝에 임마누엘은 마침내 소생하였고 원기를 회복했다.

신약성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성령의 힘으로 예수가 부활한 것과는 달리 <탈무드 임마누엘>에서 임마누엘은 약과 인간의 치료로 반사상태에서 살아났다는 것이다.  <탈무드 임마누엘>은 여기에서 분명히 예수가 일반인과 같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임을 밝히고 있다.  그와 동시에 신이라고 불린 존재도 실은 인간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임마누엘의 아버지는 이른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신이 아니라 우리들과 다음없는 유한한 육체적 생명을 지닌 지구 바깥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 인도에서 1백 15세까지 산 임마누엘>>

<탈무드 임마누엘>에서는 십자가 형벌 이후 임마누엘이 세계 각지를 두루 다니면서 가르침을 전파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스위스계 독일어판 <탈무드 임마누엘>은 그 여행 도중인 '제 36장 41절'에서 끝났다.

마이어에 따르면 이것은 원본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은 분량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탈무드 임마누엘>은 실제로는 이보다 1백 장 정도 더 있다는 것이다.  번역이 도중에 중지된 것은 번역자가 거듭되는 종교적 박해를 받은 결과 망명을 하게 되었으며, 그 와중에 박해자들의 손에 의하여 원서가 소각당하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떠한 세력들에게 실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어떤 세력들로 말미암아 <탈무드 임마누엘>의 전모를 알 길은 없어졌으나 다행히 마이어는 임마누엘의 그 뒤 행적에 대한 대강의 역사를 셈야제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이제 마이어의 기록을 따라 임마누엘의 행적을 찾아가 보자.

"임마누엘은 모친인 마리아, 동생인 도마, 제자인 유다 이스카리옷과 더불어 북방 인도로 떠났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너무도 혁명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여러 번 망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인도에 이르는 여정은 길고도 긴 것이었으며 그것은 몇 년동안에 걸친 것이었다.

임마누엘의 모친 마리아는 현재의 파키스탄의 북쪽 고봉인 서부 히말리아 산맥의 마지막 지맥에서 중병에 걸려 사망한다.  임마누엘이 38세가 되던 때다.

그후 그들은 지금의 인도 캐시미르 지방에 도달했고 그곳에서도 가르침을 펼쳤다.  그리고 북쪽 인도의 대부분을 여행하고 현재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등지로 여행을 넓혀갔다.  그곳에는 이스라엘에서 이주해온 이스라엘 10부족이 정착하고 있었다 한다.

임마누엘이 45세가 되었을 때 그는 인도 여성인 마리아라는 이름의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고 많은 자손들을 남겼다.  임마누엘은 세상의 평범한 아버지들처럼 살았으며 지금의 캐시미르 지방과 인도의 스리나갈에 오랫동안 머물렸다.

그는 그곳을 기점으로 해서 각지를 여행했으며 그의 새로운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였다.

임마누엘은 1백 10에서 1백 15살 정도의 나이에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이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유해는 스리나갈에 매장되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90세 정도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스리나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매장되었다.

유다 이스카리옷이 이 세상을 떠나자 임마누엘의 장남 요셉이 임마누엘의 역사를 계속 기록하다가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인도를 떠났다.  그리고 3년 동안 여행을 계속하다가 부친의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여생을 살았다.

그는 <탈무드 임마누엘>의 원본을 인도에서 갖고와 그것을 일찍이 임마누엘이 십자가에 처형을 받은 다음 가사상태에서 옮겨졌던 그 무덤에 감추었다.  그는 그곳이 가장 안전하리라 믿었던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원본은 그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탈무드 임마누엘>의 존재는 일반인에게는 물론 크나큰 의문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의 계보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마침내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신에 이르는 오늘날의 성서만으로는 결코 잃어버린 지구 인류의 기억을 되살릴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탈무드 임마누엘>은 우주를 향해 비약하고 있는 현재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인류들에게 주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서는 과연 앞으로 다가올 미래까지 인류의 정신세계를 뒷받침할 만한 것이겠는가?

그 답은 역사가 결정해줄 것이다.  어쨌든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곧 다가올 21세기에 정신세계의 과제를 감당해 줄 수 있는 가르침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대사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21세기의 바이블>>

<탈무드 임마누엘>에서 설명되고 있는 것은 창조, 신, 이난 그리고 임마누엘, 그 각각의 우주적 존재와 역할에 대해 지구 인류가 갖고 있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고 본래의 우주적 의식에 눈뜨도록 호소하는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의 가르침은 '창조주이신 신 (하나님)' '신 (하나님) 의 아들 예수' '죄많은 인간' 이라는 이해 위에 성립된 것이지만 가사상태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금 가르침을 전파하기 시작한 임마누엘은 다음과 같이 사람들에게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는 사람과 모든 것들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이해 수준에서 창조 그 자체는 완전한 것으로 보일 것이나 그렇지 않다.  창조는 영이며 살아 있는 것이다.  창조도 무한히 진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아니고 창조는 사람과 신과 모든 것들 위에 존재하고 더욱이 창조도 무한히 진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참으로 경탄할 만한 가르침이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전 우주의 발전과 전개에 포함되어 외계인과 지구 인류가 존재한다"는 전혀 새로운 진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탈무드 임마누엘>은 지구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지구 바깥 우주에 있는 고도로 발달된 인간을 신이라 부르고 창조주로서 절대적인 존재로 믿어 왔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예배하는 것이나 마리아를 예배하는 것, 그리고 하늘에 있는 신을 예배하는 그 모두가 잘못된 것이다.

임마누엘은 말한다.

"나는 말해 두거니와 어떠한 예배도 옳지 않다.  나는 창조만이 최고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어떠한 예배도 진리가 될 수 없고 또한 거기에는 지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조작되지 않은 나의 진실된 가르침이 새롭게 밝혀지는 날은 2천년 후에나 될 것이다.  그 동안에 잘못된 예배 종교가 판을 칠 것이며 그 수효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우리가 21세기를 맞이하는 지구 인류의 바람직한 정신세계를 생각할 때, 임마누엘의 말은 참으로 정확한 예언이었다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머지 않아 우리들은 21세기를 맞게 된다.  아직도 세계 각지에는 잘못된 예배 종교가 범람하고 있다.  그러나 임마누엘의 예언처럼 그가 살았던 시대로부터 2천 년 뒤 임마누엘의 "조작되지 않은 진실된 가르침이 새롭게 밝혀지는 날" 이 곧 오게 될 것이다.

<탈무드 임마누엘>은 21세기의 바이블로서 반드시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게 될 것이 틀림없다.


* 제   목 : 플레이아데스의 외계인 셈야제의 이야기
* 출판사 : 대원출판
* 오다카 요시아 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