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를 찾아라

- 화계사 조실 숭산행원 대선사



우리 불가에 심우도(尋牛圖)라는 것이 있다.

소와 사람이 숨바꼭질을 하면서 잃어버린 소를 찾아 그 등에

올라 앉아 피리를 불며 고향에 돌아온다.

집에 와서는 그 소마저 자취를 감추고 홀로 저자에 나와

대중들을 살피는 행자의 모습이 역력하게 그려져 있다.


첫번째 그림은 소를 찾는 그림이다.

일원의 대공(大 O)속에 산천 경계가 그려져 있고 더벅머리

노총각이 고삐를 들고 소를 찾아드니 물은 깊고 산은 멀어

인생길이 헉악하다. 힘이 빠지고 마음이 피로하니 비틀비틀,

나뭇가지의 매미소리를 들으며 먼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면 무슨 소를 찾는단 말인가?

깨달음을 등지니 소외된 인생이 되고, 6진에 빠지니 마침내

자성을 매각(昧却)한다. 본가(本家)는 점점 멀어지고 길은

갑자기 달라져 얻고 잃은 마음이 처연하니 시비가 칼날 같다.


우습구나 소를 찾는 사람이여

본래 잃지 않았는데 무엇을 찾는단 말인가

앵음연어가 모두 소 소리요

초복총림이 모두 그 몸이로다


두번째는 자취를 찾는 그림이다. 물가 숲아래 많은 발자국을

보고 꽃다운 풀, 우거진 초원, 가령 깊은 산이 더 깊은 곳에

있다 할지라도 꼬리를 감추지 못하여 결국 콧구멍이 잡힐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 발자국을 보는가?

부처님의 경전을 의지하여 겨우 뜻을 알고 자취를 찾아 여러

그릇이 모두 한 흙인것을 알게 된다.

정사(正邪)를 가리지 못하면 이 문에 들어올 수 없으므로

퉁기어진 먹물로 진위를 가리어 자취를 본다.


경교를 헤쳐 찾아 들어가니

만물이 모두 한가지 흙이로다.

먹줄을 퉁겨 진위정사를 가리니

물가 숲속에 자취가 분명하다.


셋째는 소를 보는 것이다.

소리를 쫓아 앵무연어를 보고 푸른 숲속에서 나무를 본다.

6근문에 착착 들어맞으니 동용중(動用中) 낱낱이

길이 드러난다. 물 가운데 설탕 맛, 빛속에 푸른 아교,

조금만 묻어도 피가 시비가 나타날까 염려된다.


보는 놈은 누구이며 보이는 것은 무엇이냐

따뜻한 봄바람에 만 가지 꽃이 피었으나

마주 보고 돌아서도 돌아설 곳 없으니

등을 돌리고 꼬리를 흔들며 마주보지 못한다.


넷째는 소를 잡는 광경이다.

정신은 차려 고삐를 잡았으나 어떻게 사나운지 가라앉히기

어렵다. 어느날은 높은 언덕에 오르고 어느날은 안개속을

헤치니 경계가 뛰어나 쫓기 어렵고 꽃다운 연정은 눈물흘린다.

억센 마음, 야성의 말괄량이 채찍이 없이는

길들이기 어렵도다.


득실시비가 장안에 가득하다.

누가 얻고 누가 잃었는가.

방할을 번갈아 길들이고자 하나

굳은 마음 장렬한 힘은 얼른 없애기 어렵더라.


다섯째는 소를 먹이는 것이다.

채찍을 들고 풀밭은 경계하니홀끔홀끔 곁눈질하면서도

고삐를 두려워한다.

앞생각 다스리고 나면 뒷생각이 따라와서 진망(眞妄)이

교차한다. 코뚜레를 굳게 매어 사량계교를 용납하지 않으니

어즈버 고삐 따라 순순히 말을 잘 듣는다.


풀밭 성 속에서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냈던가

채찍이 두려워 보리밭에 들지 않으니

참고 살기 더욱 참기 어려워도

풀 한 포기 곡식 한 알이 그대로 젖국 이루었다.


여섯째는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광경이다.

소를 옆으로 비스듬히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피리소리가

늦노을에 울려퍼진다. 한박자 한 노래에 한 없는 뜻이

들어 있으니 소리를 아는 이가 몇이나 되는가?

채찍을 놓으니 이제부터는 득실시비가 모두 공해진다.

어떤 이는 나무꾼의 초가(草歌)를 부르고 어떤 이는

유행가를 부른다. 몸을 소등에 올려 놓고 구름과 하늘을

쳐다보며 푸른 강물을 기어온다.


세상이 텅텅 비어 안과 밖에 없는 곳에

마음대로 높은 소리 향가를 부른다.

구멍 없는 피리 흘러 나오는 메아리여

한 박자 한 가락이 무진한 뜻이 있도다.


일곱째는 소를 잊고 사람만 있는 것이다.

소를 타고 이미 집에 돌아오니 소는 비고 사람만 한가하다.

붉은 해가 석 자나 솟도록 자도 말하는 자 없고 채찍. 고삐

또한 쓸모가 없어 초당에 누워 있다.

법에는 두 법이 없으니 소와 사람이 둘 될 리 없다.

토끼를 잡았으면 덫을 놓아버릴 일이요,

고기를 얻었으면 산대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달이 구름에서 벗어난 것 같고 금이 광산에서 쏟아져

나온 것 같다.


풍전등화는 긴 한의 노래요

법을 구하고 도를 구한 일 모두가 물거품

채찍. 산대는 초당에 먼저 두고

주인은 앉아 졸며 어젯밤 꿈을 생각하네.


여덟째는 사람과 소를 함께 잃는 것이다.

채찍. 고삐. 사람. 소가 비었으니 푸른 하늘 멀고 멀어,

뚫린 것이 끝없어라. 붉은 화로에 무엇 때문에 눈을

넣을 것인가? 옛 조상의 넋을 기리며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그렇다. 범부의 정을 놓아버리면 성인의 뜻이 모두 비게 된다.

부처가 있는 곳에도 가지 않고

부처가 없는 곳에도 가지 않는다.

천개의 눈으로도 볼 수 없는 곳에 앉아 만가지 새가 꽃을

물고 오는 것을 보니 도리어 부끄럽다.


고요하고 고요한 땅 무량수불이여

이름도 모양도 일체가 끊어졌네

맑은 하늘 해와 다 천강에 비치나

끝없는 하늘 그대로 끝없는 하늘.


아홉째는 본원에 들어온 것이다.

본래 청정하여 한 티끌도 받지 않지만 모양 없는 모양이

천지에 가득하다.

들 푸르고 산 푸름에 복숭아꽃은 어인 일인가?

도를 얻어 가만히 홀로 앉아 장님. 귀머거리처럼 앉았으면

도리어 부처님 신세만 쌓여진다.

법을 구하고 도를 깨침은 중생이 있기 때문이니 새삼스레

원을 세우고 시집갈 채비를 한다.


봄이 오니 옛대로 풀이 저절로 푸르러지고

여름이 오니 열풍에 녹엽이 무성하다.

해마다 봄. 여름은 이름이 같지만

청산의 나무와 잎은 옛 것이 아니다.


열 번째는 시장에 나아가는 것이다.

사립문을 닫고 홀로 앉아 있으니 천성(天聖)이 알지 못한다.

자기의 풍광을 매몰하면 옛 성현들의 길을 저버리는 바가

되므로 표주박 차고 지팡이 끌고 시장에 나아가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한다. 가슴을 헤치고 시장에 서서 맨발로 사람을

대접하는 꼴을 보라. 주는 사람, 받는 사람의 볼에 웃음이

가득하다. 신선은 비결이 없어도 고목에 꽃에 저절로 핀다.


전답에 심은 과일을 골고루 나누어주니

주고받는 사람들이 모두 다 풍만하다.

티끌과 흙, 수염에도 누덕이 가득하다.

마른 나뭇가지가 봄을 만나 꽃피는 것 같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