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익숙하지가 않았습니다.
우리는 바보였습니다. 세상 살기를 배워가는 다른 어린이들 보다
한참 늦었고 때로는 그들을 따라했으며, 때로는 집도 못 찾아 헤매었습니다.
우리의 부모는 매일같이 싸웠습니다.
우리는 평화라는 말이 존재하고
사랑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사랑과 평화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뜻했습니다.
우리의 가슴은 한없이 약해져 갔습니다.
학교의 구석 어딘가에 꼭 있어야 하는 것처럼 있어야 하는
우리를 괴롭히는 아이들은 끊이지 않고 우리 뒤에서
주먹을 쥐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미련했습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아무런 저항없이 그대로 따랐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적인] 시간 속에서 나름대로 행복했을 텐데요.
그러나,

약해만 갔던 우리의 가슴은 어느 때에 극적인 열정에 휩싸여,
그것은 더 이상의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는 이해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보았습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배웠던
전능한 신이나 그 신을 방해하는 악마 이야기가 더 이상 없는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더 소외되어 갔습니다.
가족들과도 멀어지고 친구들과도 멀어졌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보이지 않는 세계는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들과 친하게, 또한 [정상적]인 삶을 살려면,
배부르게 쇼파 위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봐야하고,
예술가라면, 모두가 좋아할만한 요란하고 단순하며 가벼운 음악을 만들거나
그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는 세상살기가 꽤 가치있으며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어떤 과정에 있었을 때는,
세상이 그냥 이렇게 흘러가길 바랬던 적도 있었지요.
신께, 그냥 그래도 웃음있고 사랑을 구하는 이 삶의 존재들을 그냥 놔두시라고
기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즐겨 보는 책들은 꽤 많이 숨겨져야 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많은 메시지들은 우리를 울렸지만.
그것을 밖에서 바라보는 이들은 우리가 하루빨리 정신을 차렸으면 하는
그들 나름의 신념에게 기원했겠지요.

우리는 종교인들을 상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다.
그들은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본적이 자세도 유지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것이 유일무이한 진리여만 하기 때문이죠.
무언가를 강력하게 숭배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삶을 가진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도 당신들을 숭배하는 숭배자에 지나지 않는가 봅니다.

어린시절, 우리는 교회에 가서 엎드려 기도하는 것을 좋아했더랬습니다.
절 안의 깊은 향을 맡기를 좋아했고 신화 이야기들 즐겼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살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요.
한편으로는 당신들이 보내는 메시지와 보다 깊은 신적 이해를 즐기면서
바깥으로는 그러한 [행세]를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살기로 돌아가기가 힘듭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릴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소외되고 무서웠던 어린시절의 바보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제, 오늘날, 우리를 관찰하면,
우리가 더 이상의 이해로 나아가길 촉구했던, 철학도 우주심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보다, 우리가 더욱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기다림에 지치기도 하며,
서로 욕을 하고, 술을 즐겨 마시고, 여기에서의 존재의식이 초라해질
수 있는 것들이라면, 적극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죠.

아직도 우리는 세상살기에 익숙하지 않은 바보와 멍청이에서 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우리가 그렇게 살기로 했다는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생의 소중함을 생각하면, 이렇게 우리의 영광이 바보 취급당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별로 근사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당신들이나 세상의 힘있는 한 편에서 무엇을 추진하고 무엇을 계획하며
어떤 일을 벌이는지를.

그러나 너무나 지쳐있는 우리는 신뢰감을 잃어간다는 인간적인 고백을
않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필요한 기회를 우리는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들은 우리의 가슴을 바라보고 사랑의 객관적인 시선을 보내지만,
우리는 이것을 안고 살아가며, 유한한 이 땅의 의식 속에서,
우리와 동일시하며 살아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미친사람이 되며, 삶을 게을리하게 됩니다.
어느 산 꼭대기에 올라가 당신들을 기다리는 또 다른 바보가 될 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우리는 모든 존재들의 보살핌과 우리 자신, 영혼의 영광으로
아주 편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바보가 되거나 외로운 미친사람이
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됨을 사랑하는 존재들이여.

어떤 때나 어떤 약속이나 어떤 예언으로 우리를 힘들게 하지 마십시오.
또한 우리가 그것을 선택하고 실망이 기다리고 있는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을
도와주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지 아십니까.
우리의 가슴은 그것을 이겨낼 만큼 굉장하지가 않아요.

그동안에 쌓여왔던 감정들을 생각해보세요.
어린시절 부터 고스란히 담겨왔던, 어린아이의 주먹질에서 친구들의
조롱까지, 그 소외감과 상처, 하늘에 대한 동경들...  

희망적인 예언은 우리의 고개를 돌리게 하고 우리를 흥분하게 하며
요동치는 가슴 속에서 새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는 그야말로 밖으로 외출하는 것이지요.
내면은 잠시 잊혀집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더 많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가 일어나니 대바하세요] 따위의 것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듣고 싶은 것은
당신들 존재 차원에서 느끼고 배우는 것들과의 교류입니다.

그리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의 마음을 통합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존재들이여. 반가운 우리의 이웃이여.

우리는 익숙하지가 않았습니다.
우리는 바보였습니다. 세상 살기를 배워가는 다른 어린이들 보다
한참 늦었고 때로는 그들을 따라했으며, 때로는 집도 못 찾아 헤매었습니다.
우리의 부모는 매일같이 싸웠습니다.
우리는 평화라는 말이 존재하고
사랑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사랑과 평화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뜻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이 삶을 선사합니다.
당신들에게 우리가 고맙다면, 그리고 보답하고 싶다면,

다만 우리가 외롭지 않다는 내면의 기쁨만을 약속하십시오.

그것은 영원히 지킬 수 있는 우리의 가장 깊은 진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