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면에는 처절한 고독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가장 뛰어난 인간만이 그 고독과 함께 한다.
나머지는 삶에 취해 살다가 꿈처럼 죽어간다.]  (묵연)


그러니까 오래 전의 얘깁니다.
저는 [묵연]이라는 잘 알지도 못하는 스님의 이 말을 어디서 보고 무척 오랫동안 생각하여왔습니다.
그 뜻을 알 것 같으면서도 실감을 할 수 없고.. 답답한 그런 시간 중에 내면으로 묻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부처님 또는 예수님을 찾았던 것 같아요.
늘 그렇지만 인생사 개인의 고민 속에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눈을 감고 사색하던 어느 날, 저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리가 있었습니다.

위 구절이 그대로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말은 이러했습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처절한 고독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뛰어난 인간만이 그 고독과 함께 한다.
나머지는 삶에 취해 살다가 꿈처럼 죽어간다

이 말은 옳은 말 이로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자르다.

오랜 세월,
그대가 걸은 길은 몽상가의 역사였도다.
삶의 뒤안길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던 자를 보았다.

그대는 다시 황량한 불모지(자궁)에 둥지를 틀고,
그리고, 곧바로 삶에 압도되어 또 한번의 무지한 역사를 창조하고 말았도다.

고타마는 오백회로 그 지루하고도 권태로운 역사에 종식을 고했으나,
그대 그 횟수 너무도 아득하니,
이미 몸과 마음은 육신의 세상에 중독되어 길을 잃었도다.

삼 천년 전,
허무의 왕국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저자 거리에서 탁발하던 일족들을 기억하는가?
이 가공할 사연을 듣고 그대는 무엇을 느끼는가?

삼천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무지로 무장한 세상 사람들의 한 여름 밤 꿈에 그대 몸과 마음을 기대고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삼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가 변하지 않는 한,
세상이 변할 것은 하나도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대, 세상을 향한 눈을 감고 안으로 들어가라.
그대가 찾는 눈에 보이는 것 모두의 출구는 무상한 것뿐이다.
오직 안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입구만 그대 앞에 있게 하라.
서둘러라. 그대에게 주어진 시간도 그리 넉넉하지 않구나..

그대의 역사 속에 타락의 길로 인도한 무거운 여장(旅裝)을 해체하고,
거미줄 가득한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궈라.
그대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그 방이 진정한 그대의 성전이었도다.
그 곳엔 오직 그대와 그대가 찾는 신, 둘만의 여지만 있게 하라.

지칠 줄 모르고 펄럭였던 생각과 말의 표독한 깃발을 꺾고
오직 무저항으로 그의 음성에 귀 기울일 차례로다.

그는 너무나 오랜 시간 그대가 침묵하는 그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도다.

그의 음성 속에서 만이,
[나와 너]가 있음으로 해서 생겨나, 세상과 내가 앓고 있는 그 [혼돈]을 종식시킬 것이로다.

그의 음성 속에 진정한 그대이자 내가 있느니라..
.
.
.


한 개인의 내면의 소리를 타인에게 공개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저와 유사한 고민을 경험한 분이라면, 그리하여 그 분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이 즈음에서 못할 것도 없으리라는 판단입니다.
한편으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미 몇 편의 내면의 소리를 전달한 바 있습니다.
읽는 분들이 저와 같이 공명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비록 짧은 것들이지만 시사하는 바는 클 것으로 봅니다.
물론 저에게 한에서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고 함은 우주의 모든 성인의 이름 앞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송구한 바램일 수도 있지만,
진리를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축적된 지식을 해체하고
내면으로 들어가 우리가 앓고 있는 [혼돈]이 종식되길 기원합니다.



허적..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9-05 1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