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세상이 있다고 했다.
다른 세상들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특히 일곱 번째 세상에 대해서는 형태로 이해한다.

첫 번째의 세상은 이곳에서 얻는 것은 훌륭한 것이다.
탄생의 과정을 겪어 이 세상에 태어나고 육신의 한계와 본능을 견디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모든 수준의 의식과 이해가 존재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은 '표현되는 하느님' 또는 본보기 세상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감성적 이해를 넓히기 위하여 물질적 형태로 의식을 나타내고 목격할 수 있는 곳이다. 수많은 세상이 있지만 당신이 있는 이 지구라는 곳은 본보기 세상으로서 실체가 육체를 빌려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두 번째 세상은 고통과 후회, 죄책감을 이해하는 경험을 쌓는 곳이다.

세 번째 세상은 힘을 실현하는 세계이다.
이곳에서는 다른 이들을 통제하고 다스리고자 한다.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성이나 육체적인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 '마음속의 생각'으로 그렇게 하며 남들을 자기의 관점으로 보게 만들려고 한다.

네 번째는 사랑의 세상이다.
이 세상에 사는 이들은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깊이를 표현하지 못한다. 빛의 존재로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만, 그러나 그것을 표현할 능력이 없다.

다섯 번째는 낙원이라는 곳이다.
이곳은 '황금빛'이라고 하는 것으로 둘러싸인 첫 번째 세상이다. 생각해 보라, 태양에서 나오는 빛과 같은 황금빛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다섯 번째 세상에서는 그 빛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다.
모든 것들은 고유한 색을 가지고 그 싱그러움을 드러낸다. 그곳엔 또 밤이 없이 황금빛만이 있다. 그리고 음악, 아름다운 음악이 항상 들린다. 모든 것을 감싸는 빛은 그 색상에 따라 경이롭고 조화롭게 움직이면서 진동을 한다. 이 조화로운 운동이 '생명의 숨'이다. 공기를 호흡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낙원의 세상에서는 소리와 음악으로 숨을 쉬고 빛 속에 산다.

알다시피, 첫 번째 세상인 당신들이 사는 이 세상에도 육욕과 고통, 그리고 힘을 이해하고 통달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현실세계에 사랑을 가져왔다. 그들은 이곳에서 사랑의 표현을 비교적 쉽게 성취할 수 있었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단계의 이해는 이 본보기 세상에서 쉽게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여 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첫 번째 세상에 있으면서 사랑을 베푸는 이들,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밖으로 표현하며 자신의 삶을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들은 이 세상을 떠나면 다섯 번째로 간다. 낙원이라는 세상에는 수십억 년이나 나이를 먹은 이들도 있으며, 이들은 이 낙원이 너무나 멋진 곳이어서 그 위에 다른 세상이 더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다섯 번째 세상에서 사는 이들은 사랑을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한 순간에 원하는 것은 바로 나타나게 된다. 고기 잡는 것을 좋아하는 낚시꾼이 낚시를 하고자 원하기만 하면, 그 순간 그는 바로 앞에 호수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호수에는 사이프러스와 포플러 같이 그가 좋아하는 나무가 우거져 있다. 그 호수의 가을 모습을 좋아하면 포플러는 이제 계피 색깔이 되고 사이프러스는 짙은 에메랄드빛으로 물든다. 낚싯줄을 던지면서 신선한 바람을 원하면 시원한 미풍이 호수를 가로지르면서 불어온다. 그 풍치 좋은 호수 한가운데로 작고 연약한 지렁이 미끼를 던지고 어떤 고기를 잡고 싶다고 원하면 그것을 잡게 된다. 그 고기는 이 지구의 고기와 같은 모습이다. 이제 그 고기를 자신이 꿈꾸던 집으로 가지고 가서 조리를 한다. 그는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고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랑한다.
이곳에 사는 실체들은 그보다 더 좋은 곳은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그곳을 낙원이라고 부른다. 사랑을 깨닫고 표현하지 않는 이들은 도달하기 어려운 곳이다.
다섯 번째 세상에서 한동안 머물고 나면 모든 것을 둘러싸는 빛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자신은 무슨 자격으로 그곳에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많은 이들은 왜 자신이 그곳에 있을 수 있는지 의아해하지 않는다. 그저 단순히 받아들인다. 그러다 결국 곰곰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 빛과 음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러면 그때 눈부신 생명력의 에너지를 보게 된다. 이것은 평등함을 가지고 있는 에너지로서 빛과 꽃과 고기와 호수와 가을의 계피색 포플러, 모두가 대등하게 보인다. 이때부터 만물의 평등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고, 아무 것도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알기 시작한다. 이것을 보기 시작하면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이해하고 알게 되었던 그 모든 사랑을 가지고 온갖 사물, 온갖 실체의 하나 됨을 숙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섯 번째 세상으로 진보한다.


여섯 번째 세상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나무나 바람,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자신과 별개라고 믿고 있는 이에게, 다른 모든 것과 완전한 하나이면서 동시에 하나인 그것과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해 줄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여섯 번째 세상도 일곱 번째의 입구일 따름이다.

일곱 번째에서는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에 따라 당신의 실체는 완전하게 그렇게 되어 버린다. 그래서 '하나 됨 안의 하느님'만을 보고 그 하나 됨의 세상에 살 때, 그는 자신이 보는 그것이 되며, 또 그것과 더불어 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치의 초상관성(超相關性)과 무상(無上)은 일곱 번째 세상의 특징이다. 그 세상으로 가는 길은 여섯 번째 수준을 이해하는 것, 즉 당신의 본래 모습을 아는 것이다. 당신의 본모습은 순수한 하느님, 순수한 논리, 순수한 생각, 순수한 생명, 순수한 빛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의 전체로서 본질이며 토대이다.


이제 일곱 번째이다.
눈부신 것보다 더 눈부신 것을 상상해 보라. 그 밝음의 진화하는 핵심은 색깔이 더 이상 밝음을 가질 수 없는 그러한 빛의 근원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눈부신 빛을 낸다. 밝음의 핵심에선 이러한 경이로움이 번쩍인다. 핵심이 있는 바다는 움직이고 팽창하며 위로 굽이쳐 오른다. 핵심이 굽이쳐 오르면 핵심에서 나오는 밝음은 빛의 열병식을 만들어 낸다. 빛의 다발이 외곽으로 퍼져 나가면서 그 핵심부는 계속 진화한다. 그리고 존재한다.
그 핵심에 다다르는 이가 바로 당신이다. 당신이라고 하는, 그 핵심에 다다라 밝음을 더하며 장관을 만들어 내는 이는 핵심에 대한 생각을 숙고하며 독특한 형태로 그 핵심이 되어 지속해 온 존재다.
핵심을 숙고하고 그와 하나가 된 당신은 모든 생명이 태어나는 근원이 된다. 핵심이 밝게 빛날 때 그곳에서 나오는 것은 생각이다. 독특한 형태로 지속되는 당신의 생각에서부터 모든 생명의 의식이 양육되고 확장된다.
내 설명은 매우 모자란 것이다. 이 일곱 번째에 대한 비전은 공간과 시간, 측정의 한계를 넘는 것이다. 언어의 한계를 넘어 감성적인 이해에까지 다다른다. 그러나 마스터,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진화하고 이해를 넓히고, 한 순간 한 순간, 한 걸음 한 걸음, 깨달음에 깨달음을 더함에 따라, 당신의 미래는 점점 더 확장이 되고 마침내 당신의 감성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감쌀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가 당신이 기쁨을 느낄 때이다. 이것이 일곱 번째 세상이고 하느님인 것이다. 여기가 모든 것이 마지막으로 다다르게 될 종착점이다.


                                                                      


                                                                         람타의 가르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