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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빛의 지구에 몸 담고 계셨던 [태평소]란 아이디를 쓰시던 분이 작년 12월 23일 부로 책 두 권(1, 2부)을 출간하셨군요.

그 소식을 뒤늦게 접했습니다.

축하합니다.

평소에 자신의 소신이 분명하셨던 분인데,
그래서, 寂도 존경하던 분이신데,
역시나 그 분의 성품답게 세상을 향해 은둔(隱遁)의 사혈(思血)을 토해 내셨군요.

사학자 신채호 선생이 ‘조선 역사상 1천년 來의 제1대 사건’이라 칭한 [妙淸의 亂]이 발발하기까지 고려시대 문, 무신들의 내면세계를 특유의 필체로, 묘유(妙有)의 시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허적은 인터넷에서 이제 막 첫 장.. 소재 [붓칼]만 읽었을 뿐인데.. 연연(連延)한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작가는 창작을 하는 순간 [全知者]가 되는 것인가 봅니다. 작가의 손에 새로운 세상이 창조되는 것이니까요. 작가의 특권일 것입니다.

전지적(全知的) 주시자(注視者)의 입장에 선 작가는, 경박(輕薄)하지 않고, 그것을 寂은 선정의 경지(禪定의 境地)라 말 할 수도 있겠는데, 그것이 그 어려운 작업의 반대급부(反對給付)이자 유심조(唯心造)를 찾아가는 길의 고(苦)에 대한 보상(報償)이 아닌가 합니다.


送人-鄭知常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비 개인 긴 언덕에는 풀빛이 푸른데
그대를 남포에서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은 그 언제 다할 것인가,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작가의 머리글)

문득 시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비 개인 강둑 풀빛 짙푸른데…….

기차 속이었습니다. 기차는 달리고 있었고, 저는 지정좌석에 앉아 의식적으로 지루함 대신 차창 밖 풍경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문득 제 머릿속을 뒹굴고 있는 그 한 구절의 글자들을 의식한 것이었습니다.
낯선 글자들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일부러 시를 외워본 적이 없는 저는 다음 구절을 잇지 못했고, 기차에서 내릴 때까지 그 첫 구절이 어디서부터 떨어져 온 것인지조차 기억해내지 못했습니다.
알 듯 모를 듯하게 기억과 망각의 사이를 헤매는 것은 때때로 환장할 일입니다.
중요하지 않은 건가 보다. 중요한 거라면 다시 기억날 테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야 했습니다.

12세기 초반을 살았던 한 시인의 시는 문득 그렇게 다시 제게 다가왔습니다. 학교 다닐 때 배운 기억으론 서정시에다가 이별시의 백미니 천 년의 절창이니 하는 둥의 설명들이 붙었던 것 같은데, 새롭게 다가온 시인의 시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 느낌이 이야기가 되고 하나의 책이 되었습니다.

막상 끝을 보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역사에 죄를 지을 만큼 대단하지 못하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제게 다가왔다가 지나쳤거나 떠나 버렸거나 머물고 있는 모든 인연들이 새록새록 했습니다. 되든 안 되든 끝까지 달릴 수 있었던 힘이 거기서 나왔습니다. 예전에도 지금도 결국 이야기할 건 사람과 사람뿐이라는 새삼스러움이 제겐 크나큰 변명이자 위안입니다.
같은 높이, 같은 하늘을 살아가는 모든 분들께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2008년 10월
충청도 어금니 산에서


(관련 사이트)
http://blog.naver.com/chungeoram99?Redirect=Log&logNo=140060153200


p.s)

허적의 성급한 기쁨이 그 분께 실례가 아니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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