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바라고 계시는 것은 여러분이 주위를 살펴보고, 지구에서 현재 찾아볼 수 있는 여러 상황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현실적인 평가를 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즉,“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주고 계시는 완벽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내가 알고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으며, 무한하다는 것을 나는 깨달을 필요가 있어. 하나님께서는 지구 행성에 자신(하나님)의 나라가 물질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보시는 것 이외에, 다른 소망이 없어.”라고 말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진실로,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나라를 주시는 것이 아버지의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나라를 받기 전에, 사람들이 죽어서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시며, 바로 여기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나라를 주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지구의 현재 상황들은 하나님의 나라와는 아주 거리가 멉니다. 지구의 현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지닌 최고의 비전과도 아주 동떨어져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들이 하나님의 비전과 아주 동떨어져 있는 이유는 정확하게 말해, 사람들이 이원성적인 의식으로 추락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창조력을 남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공동 창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에고가 고통스러운 삶을 창조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여러분처럼 보다 높은 비전을 지닌 사람들이 그러한 비전을 전파하고, 다른 사람들을 일깨울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줌으로써, 받을 것을 증식시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40)”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의식의 보다 낮은 단계에서,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만, 여기에 멈춰 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단계를 뛰어넘어, 보다 높은 단계로 올라설 필요가 있으며, 따라서 여러분이 하나님과 하나인 이유는 창조된 모든 것들 속에 하나님의 존재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창조주께서는 자신의 존재로부터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타인들에게, 혹은 지구 어머니에게 내어줄 때, 진실로 여러분은 하나님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단, 여러분이 하늘에 계신 먼 존재라고 여기는 하나님에게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모든 것 속에 존재하는 내적인 참된 하나님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이러한 형태의 세상들을 창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계시는 창조주께서 존재하시므로, 보다 높은 세계에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시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라는 존재의 일부는 창조된 모든 것들 속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보다 높은 세계에 존재하시는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측면이며, 모든 것 속에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측면입니다. 전체(All)이신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또한 모든 것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하나님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전체(All)이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것은 빛과 사랑을 모든 것들(all) 속에 존재하시는 하나님에게 조건 없이 주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 속에 존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일시적이지만 물질적으로 불완전한 모습으로 변장하고, 그 뒤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마음속으로 상상하고 계시는 완벽함을 표현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그러한 하나님을 자유롭게, 즉 물질의 빛을 자유롭게 해주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것들 속에 존재하시는 하나님께서 전체이신 하나님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반-그리스도의 의해 창조된 분리라는 부자연스러운 환상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 행성에서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영적으로 보다 진보해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모든 성향을 극복하고, 그 대신에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을 개발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빛의 사절, 즉 그리스도 비전의 사절이 되기 위해,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공동 창조자가 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지구에 실현하기 위해,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상위 존재가 여기로 오기로 선택했던 바로 그 이유를 인식하게 될 때, 여러분은 풍요로운 삶을 체험하고,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풍요로운 삶이라는 숫자 8이 원활하게 흐르게 할 수 있는 열쇠는 여러분이 가진 것을, 여러분이 받은 것을, 여러분이 내면화한 것을, 여러분이 되어 있는 것을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신적 자아라는 태양이 자신의 하위 4개 몸체들을 통해 비추게 해야 하며, 불의한 자와 불의하지 않은 자들 모두에게 비추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 여러분은 이 세상의 왕에 의해 퍼지게 된 사랑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거짓말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왕과 교활한 마음이 퍼뜨린 모든 거짓말들 가운데 가장 음흉한 거짓말은 사랑을 반드시 조건부로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짓말은 여기 이 지구에는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이 여러분의 존재를 통해 흐르는 것을 상황에 따라, 차단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간 세상을 살펴보면, 이 행성에 살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서는 사랑을 받는 사람이 어떠한 조건에 따라 삶을 살아감으로써, 어느 정도는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음흉한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랑을 조건 없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빛을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비추시며, 자신의 사랑을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에게 내리기(마태복음 5:45)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기 위한 조건들을 만드는 여러분은 누구인가요?


보다 큰 차원에서 보면, 이러한 거짓말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삶에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모든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을 실현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태양은 자신의 빛을 비춤으로써, 스스로 기쁨을 얻게 됩니다. 만약 태양이 자신의 빛을 차단하는 조건을 만든다면, 태양은 기쁨의 원천을 차단함으로써, 자기 스스로를 해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혹은 자신의 바깥에, 하나님의 빛과 사랑이 여러분의 존재를 통해 흐르는 것을 멈추게 하는 어떠한 상황을 만든다면, 여러분은 기쁨의 원천, 즉 진실로 어떠한 의식 상태인 풍요로운 삶의 원천을 단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존재 속으로 들어오도록 허용했던 어떠한 조건에 따라, 누군가가 끝까지 삶을 살아갈 경우에 한해서만, 그 사람에게 사랑을 줄 수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내가 의도적으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모든 조건들은 세속적인 자아와 이 세상의 왕이 만들어낸 것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존재를 통해 흐르는 것을 단절시킬 수 있는 모든 상황들은 반-그리스도의 마음으로부터 직접 생겨나게 되며, 어둠의 세력들을 먹여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재론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룰에는 예외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다시, 여기에 교묘한 차이가 존재하며, 이러한 차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고차원적인 이해를 갈구할 때까지, 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무차별적으로 주거나, 혹은 여러분이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주라는 말은 아닙니다. 조건 없이 주는 것과 차별적으로, 즉 분별해서 주는 것 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또다시 사랑의 본질이 어떤 것도 제약적인 상황 속에 멈춰 있게 하지 않는 힘이라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이 언제나 현재보다 더 커지고, 현재의 상태를 초월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을 똑같은 사랑과 친절로 대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또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말하고, 관대해야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여러분이 마주하게 되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존재를 통해 흐르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사랑이 자유롭게 일 할 수 있게 해야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멈추게 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통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어떠한 조건도 붙이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빛이 여러분을 통해 무엇을 하고자 할까요? 하나님의 빛은 여러분이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을 변형시키고자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 이들이 더 높이 올라, 자기 스스로를 초월함으로써, 더 큰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를 보고자 한다면, 많은 기독교회들이 쌓아온 잘못된 이미지를 뛰어넘어, 새로운 자각으로, 예수님의 삶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감정을 숨기지 않는, 대하기 편한 영적인 스승으로 묘사되어 왔으며, 내가 “친절하고, 사랑스럽다”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적이고, 호의적인 방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은 언제나 부드럽고, 온유하다고 믿은 의식 상태에 갇혀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랑스럽다고 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말하고, 이들이 나쁜 상황, 혹은 제약적인 마음 상태에 있을 때에도, 기분 좋게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며, 사람들의 기분은 좋게 할 수 있지만, 현재의 비참한 상황이나 제약적인 상황을 초월하게 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상황만 악화시켜 인간적인 동정심만 유발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은 영적인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부드럽게 말하고, 온유하지 않았으며, 대개는 아주 단호했으며, 대단히 직선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어떻게 반박했으며, 환전상들을 신전에서 어떻게 내몰았는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얼마나 자주 제자들을 질책하고, 이해를 하지 못한다거나, 혹은 믿음이 적다고 이들을 나무랐는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신성한 사랑을 지니셨으며, 따라서 - 마주하게 된 모든 상황 속에서,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들이 더 커지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상황 혹은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와 동일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돕고자 하셨으며, 이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심지어 이들에게 도전하여, 자기 스스로를 초월하고, 더 높이 올라, 더 큰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억지로 내몰았습니다. 이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여러분 역시도 어떤 것이 동일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 해서는 안 되며, 현재 지구 행성에 존재하고 있는 불행과 투쟁이 계속 남아 있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단순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동정을 베푸는 것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외적인 투쟁을 야기하는 진정한 원인이 되는, 현재의 의식 상태를 사람들이 초월할 수 있도록 돕는데 필요한 것을 행하는 것이 참된 사랑인 것입니다.


이기심과 자기중심적인 성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현재의 의식 상태를 초월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매우 단호하고, 직선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이 집착해 있는 이원성적인 믿음들을 반박하고, 노출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이들의 믿음을 흔들고,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핑계들에 대해 반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불친절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보다 넓은 관점에서 보면, 불친절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의미에서 친절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주의 거울이 불행과 투쟁을 이들에게 계속 되돌려주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친절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의식 상태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이들을 흔들고, 자신들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함으로써, 이들이 보다 더 풍요로운 상황들을 되돌아오게 할 어떤 것들을 우주의 거울 속으로 투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친절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참된 친절이며, 지구에서 진귀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끌어올린다면, 여러분은 그러한 참된 친절을 보다 일반화하는데 도움을 주게 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풍요로운 삶을 실현하기 위한 열쇠는 자기 스스로를 공동 창조자라고 여기는 것이며, 여러분은 지구가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데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을 단순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혹은 사람들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기분 좋게 느끼도록 돕기 위해, 여러분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더 높이 오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그리고 모든 생명이 더 높이 오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할을 충족시키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세상의 왕이 만들어놓은 또 다른 음흉한 환상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왕은 지구에서 볼 수 있는 현재의 제약들과 불완전함이 궁극적인 의미에서 실재하는 것이라고 여러분이 믿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왕은 또한 하나님께서 지구에 존재하시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불완전한 상태와 투쟁은 피할 수가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이 지구에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믿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왕이 만들어놓은 최고의 환상이며, 이 세상의 왕은 물질 우주가 현재 처해 있는 상태를 능수능란하게 이용함으로써, 이러한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계 중에서, 물질 우주는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구체입니다. 하나님께서 허공 속에 새로운 구체를 창조하실 때, 그 구체는 단지 허공과 겨우 분리될 정도의 빛만을 지니게 됩니다. 보다 높은 세계 있는 자의식을 지닌 존재들이 새로운 구체 속으로 내려오게 되며, 이들은 하나님의 빛을 가져오고,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비전을 물질의 빛 위에 겹쳐 포개놓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구체가 그리스도의 비전을 표현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새로운 구체가 임계 수치의 빛으로 가득 채워지지 않는 한, 그 구체 속에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빛이 육체적인 감각으로 명백하게 알 수 있을 정도의 강도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물질 우주 속에는 외형적으로 실현되어 있는 것들 뒤에 존재하는 빛을 육체적인 감각으로 알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빛이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이 정말로 어머니의 빛으로부터 만들어졌으며, 다만 어머니의 빛이 일시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의 눈으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구 진화의 현 시점에서, 외형적으로 실현되어 있는 것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빛을 인간의 육체적인 감각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은 하나님의 빛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빛을 보기 위해, 여러분은 이 세상의 왕이 만들어놓은 환상의 베일로부터 벗어나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