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들이여, 여러분이 고향인 아버지의 나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 방해물이 존재한다는 개념은 환상입니다. 이러한 환상은 여러분의 내면에 있는 적(敵), 즉 세속적인 자아와 외부에 있는 적(敵), 즉 이 세상의 왕이 만들어낸 환상입니다. 이 두 개의 적(敵)들은 세속적인 자아라는 정신적인 감옥 속에 여러분을 계속 가두어두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한 정신적인 감옥의 문은 잠겨 있지 않으며, 문이 잠겨 있다는 생각은 이원성적인 환상입니다.


이러한 개념이 여러분이 성장하면서 믿어왔던 것과 모순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언제든지 하나님의 나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믿기 힘들게 만드는, 두 개의 개념을 믿으면서 성장해 왔습니다. 이러한 개념들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천상의 옥좌에 앉아 계시는, 분노하고 심판하는 하나님으로,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개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은 여러분이 저지른 모든 잘못에 대해, 여러분을 심판하고, 벌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심한 경우, 자신이 준 계율을 어겼다면, 여러분을 지옥으로 보낼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하늘에 계신 분노하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이 행성에 존재하는 많은 종교들에 의해 강화되어 왔습니다. 불행한 것은 심지어 기독교조차도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이미지, 잘못된 우상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노하는, 외적인 하나님이라는 이미지는 반-그리스도의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우상입니다.


내가 앞장에서 이야기한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는 두 번째의 이미지는 많은 종교들에 의해 조장되고 있는 개념으로서, 구원받는데,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것 혹은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개념입니다. 원초적으로, 이러한 개념을 조장했던 종교가 바로 기독교입니다. 많은 기독교의 교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며, 모든 비 기독교인들은 지옥으로 가게 될 거라는 교리를 조장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하는 데에는 이들의 교리가 예수님의 어떠한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지만, 나는 여러분이 성경을 다시 읽어보고, 예수님께서 외적인 자기 개인 혹은 외적인 종교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문구를 찾아보기 바랍니다. 기독교적인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면, 여러분은 즉시 요한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 즉 “내가 곧 길이요 진리이고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라는 문구를 인용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본보기가 됨으로써,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의식을 되찾음으로써, 육화한 살아 있는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죽을 때까지 계속 그리스도의 의식을 따름으로써, 예수님께서는 이 길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이 끝나갈 무렵, 예수님께서는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마음과 하나가 된 상태에서, “나는(AM)”이라고 하셨던 말씀은 인간적인 육체를 지닌 외적인 개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의식적인 자아는 자신의 신적 자아 및 자신의 창조주와 완벽하게 동일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AM)”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께서 지칭하셨던 것은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마음, 다시 말해 신적 자아 및 스스로 존재하는(I AM THAT I AM) 창조주를 지칭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나는( AM)”이라는 말씀은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저장된 자신의 신성한 청사진과 하나이며, 또한 자신의 불멸의 자아와 하나가 되어 있는 자기감 그리고 창조주와 하나가 되어 있는 자기감을 의미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진실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됨에 토대를 둔 자기감이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도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의식을 통하지 않고는 창조주에게 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외적인 하나님, 즉 하늘에 계신 분노하는 하나님이라고 여기는 한, 여러분은 하나님에게 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서 개체화하신 분신이며, 하나님의 아들 혹은 딸이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국소화된 자기감을 통해, 자기 스스로를 표현하고 계시며, 여러분의 내면에 존재하는 나(I AM)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에게 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내면적으로 하나가 되는 느낌이 구원에 이르는 진정한 열쇠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그래 왔으며, 언제나 그렇게 될 것입니다. 모든 시대에 걸쳐, 인간은 반-그리스도의 이원성적인 마음을 활용하여, 하나님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길에 대해, 많은 각인된 이미지(우상)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인간이 창조해낸 어떠한 것도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참된 길이 자신의 창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변화시키지는 못 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참된 길은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이 자신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따라서 더 이상 세속적인 자아와 동일시해서는 안 되며, 또한 자신의 창조주와 분리되어 있다거나, 따로 떨어져 있다고 여기서도 안 됩니다.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은 자신이 창조주께서 확장하신 분신이라고 여겨야 하며, 따라서 창조주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분의 내면에 있다(누가복음 17:21)”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이것을 요한복음의 인용문구와 비교해보면, 만약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의 내면에 정말로 존재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 2000년 전에 살았던 역사적인 인물을 꼭 거쳐야 한다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상승한 존재를 꼭 거쳐야 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상승한 마스터를 거쳐서는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은 아니며, 다만 여러분이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을 얻고, 예수님을 자신의 형제로, 심지어 영적인 가족, 즉 생명나무의 일부로, 그리고 자신의 더 큰 일부로 여길 때,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오늘날 이 행성을 위한 구세주라는 영적인 직책을 지니고 있으며, 예수님의 임무가 모든 영적인 구도자들을 하나님의 나라에 들도록 돕는 거라는 사실을 내가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다시, 여러분은 구원에 이르는 참된 열쇠인 내면적으로 하나가 되는 느낌, 즉 순수함을 통해서만,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창조주와 하나가 되는 느낌을 얻기 위해, 여러분의 잘못에 대해 벌할 준비가 되어 있는, 하늘에 계신 분노하는 하나님이라는 이미지를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공동 창조자가 되도록 창조하셨으며, 여러분에게 상상력과 자유의지도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창조주께서는 여러분이 원래의 신성한 청사진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시는 것 이외에, 다른 소망은 가지고 있지 않으시며, 그렇게 되어야 여러분도 창조될 당시의 본연의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창조주께서는 더 큰 존재가 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소망의 표현이며, 따라서 공동 창조자로서의 여러분도 더 큰 존재가 되고자 하시는 여러분의 창조주께서 지니고 계신 소망의 표현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창조주께서는 더 큰 존재가 되고자 하시는 오직 하나의 소망만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러한 소망의 표현으로서, 하나님께서는 형태의 세계를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심지어 더 큰 존재가 되고자 하시는 소망의 더 큰 표현으로서, 여러분을 통해 창조주께서 더 큰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자의식을 지닌 공동 창조자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창조주께서는 여러분을 통해, 더 큰 존재가 되는 것 이외에 어떠한 다른 소망을 지니고 있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자기 스스로를 초월하여, 창조될 당시의 여러분보다 더 큰 존재가 될 때에만,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통해 더 큰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이 자기 자신을 신성한 청사진에 미치지 못하는 존재와 동일시하는 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통해 더 큰 존재가 되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재능의 우화(마태복음 25:14)를 통해 설명하셨듯이,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재능을 증식시키는 공동 창조자들에게 보상을 해주시지만, 예수님의 우화가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잘못이 아니며, 그것은 예수님께서 당시 사람들의 의식 수준에 맞추어 설명을 하셔야 했기 때문에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명백히, 예수님께서 일반 대중에게는 비유(우화)로 가르쳤으며, 자신의 제자들에게는 더 깊은 진리(mystery)를 설명하셨다는 사실만 봐도 이러한 사실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내가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 말들을 알아듣지를 못한다. (요한복음 16:12)“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2000년 전에, 인류는 여전히 두려움과 분리 속에 철저하게 갇혀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외적인 하나님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의 재능의 우화는 자신의 재능을 증식시킨 하인들에게는 보상을 해주고, 땅 - 세속적인 자아를 상징 - 속에 재능을 묻은 하인을 벌했던 주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벌하시는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벌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우주는 단지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재능을 이원성적인 의식이라는 땅 속에 묻어두면, 여러분은 삶이 투쟁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의 거울은 삶이 투쟁이라는 여러분의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상황들을 여러분에게 다시 되돌려주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분노하고, 여러분의 잘못에 대해 벌하시는 심판하는 하나님이라는 이미지를 받아들인다면, 여러분은 그러한 이미지를 우주의 거울로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의 거울이 무엇을 돌려주게 될지 예상해보세요.


사랑하는 이들이여, 지금까지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한 것들을 종합해보면, 여러분이 세속적인 자아에 갇히게 되면, 즉 이원성적인 의식 속에 갇히게 되면, 여러분은 자기 충족적인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내보내는 것은 우주의 거울에 의해 여러분에게 되돌아오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의 풍요를 빼앗겼다고 느낀다면, 우주는 여러분의 믿음, 즉 하나님께서는 고의적으로 삶의 풍요를 주시지 않는 불공정한 엄한 주인이라는 믿음을 반영한 외적인 환경을 여러분에게 되돌려주게 될 것입니다.


시대를 통틀어서, 인간은 분노하고, 심판하는 외적인 하나님이라는 이미지를 지녀왔습니다. 사람들에서 나쁜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이것이 자신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라고 추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안 좋은 일들은 분노하고 심판하는 하나님이라는 이미지만 강화시키게 됩니다. 많은 세대와 많은 세기를 거치면서, 분노하는 하나님이라는 이러한 이미지는 집단의식 속에 깊이 스며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황금 송아지를 버리기 대단히 어려울 정도로, 일부의 사람들은 여러 생에 걸쳐 이러한 이미지를 받아들여 왔습니다.


진실로, 창조주께서는 자신이 창조하신 것들을 초월해 계십니다. 창조주의 전체(All)를 정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이미지는 이 형태의 세계 속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창조주를 적절하게 묘사할 수 있는 말도 존재하지 않으며, 결론적으로 어떠한 종교의 경전도 여러분의 창조주를 완전하게 혹은 제대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어떠한 이미지를 정해놓게 되면, 여러분은 자동적으로 우상을 창조하는 것이며, 따라서 여러분은 모세에게 준 처음의 두 개 계율(출애굽기 20:3-4)을 위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닌 우상은 잘못된 하나님으로, 여러분은 참된 하나님이 아니라, 거짓된 우상을 숭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이미지를 초월해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받은 처음의 두 개 계율이 지닌 참된 의미는 여러분이 하나님에 대해, 반-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이원성에 기초한 어떠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해도, 그러한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우상, 즉 거짓된 이미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원성적인 이미지는 참된 하나님을 알아볼 수 없도록 모호하게 할 것이며, 따라서 여러분은 필연적으로 지신이 직접 창조한 혹은 그 외의 누군가가 - 아마 양의 탈을 쓰고 오는 거짓된 교사들 - 창조한 잘못된 하나님을 숭배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멈춰 서 있는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이며, 반면에 실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흐르며, 언제나 스스로를 초월하고 있는 생명의 강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믿고 있는 종교 혹은 특정한 모든 종교에 대해 여러분의 신념을 무너뜨리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참된 영적인 구도자라면, 그리고 여러분이 아버지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걱정한다면, 여러분은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의심해보려고 하는 상태에 반드시 도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반-그리스도의 마음에 의해 영향을 받은, 여러분이 믿고 있는 종교가 조장해온 하나님에 대한 그러한 이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려고 해야 합니다. 만약 분노하고 심판하는 하나님이라는 이미지를 믿으면서 성장했다면, 이러한 이미지는 반-그리스도의 마음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반-그리스도의 마음으로부터 실제로 생겨났다고 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