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감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 그러한 자기감은 여러분의 신성한 청사진과 물론 완벽하게 일치했었습니다. 형태의 세계 속을 여행하면서, 자신이 지닌 상상력과 자유의지를 행사함에 따라, 그러한 자기감은 당초의 청사진보다 더 큰 존재가 되거나, 아니면 당초의 청사진보다 더 적은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정체성에 대한 신성한 청사진은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영원히 저장되어 있습니다. 의식적인 여러분, 즉 현재의 여러분의 자기감은 언제라도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존재, 즉 자신이 어떤 존재라고 스스로 여기고 있는 존재가 됩니다.

이 말은 여러분이 자의식을 바꾸면, 이전의 여러분, 즉 이전의 자기감은 죽게 되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땅 속에 있던 밀알이 싹이 트면, 밀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밀알은 싹으로 변형되었으며,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싹이 자라, 식물이 되면, 싹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도 개념으로서의 싹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현실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싹은 이미 식물로 대체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 번 생에서 여러분이 직접 체험했던 것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5살 때, 여러분은 오늘날처럼, 자기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때에는 다른 시각을 가졌으며, 보다 더 제한적인 시각을 가졌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사실상, 그 아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몸은 당시에 지녔던 형태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몸은 현재의 몸으로 성장하는 과정 속에 계속 존재해 왔던 것입니다. 5살 아이의 자기감은 동일한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자기감으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유에는 어떠한 제약이 따른다는 것을 밝혀두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에 여러분에게 일어났던 일로 인해, 심리적인 상처가 발생하여, 오늘날까지도 이에 따른 영향을 받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유를 통해, 그 당시에 존재했던 자의식은 더 큰 자기감으로 대체되었다는 사실만은 여전히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을 가슴으로 곰곰이 생각해보고, 내가 말로 전해주고 있는 것을 뛰어넘어, 내면으로부터 직관적인 이해를 구해보기 바랍니다. 별개의 존재로서, 처음 형태의 세계 속으로 뛰어 들어오고자 했을 때, 여러분은 신성한 청사진, 즉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개체성의 표현인 자기감을 지녔었습니다. 여러분은 한동안, 그러한 자기감 위에 추가로 쌓아갔습니다.

먼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여러분은 반대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감을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축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신적 자아와의 관계를 확장했던 것이 아니라, 그러한 연결 관계를 점차적으로 제한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자기감을 제약했으며, 존재의 용기 속에 들어 있는 내용물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었으며, 용기 자체에 대해서는 점차적으로 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저장된 불멸의 자기감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여러분이 체험했던 것에 기초하여, 만들어낸 자기감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처음에는 점진적인 과정이었지만, 여러분이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지나게 되었을 때, - 비록 자신의 신성한 청사진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 결정적인 시기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통과하고 난 후, 여러분은 자신이 만들어낸 제한적인 자기감 속에 갇히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신적 자아와의 의식적인 연결을 상실하게 됨으로써, 여러분은 자신의 참된 근원에 대해서도 망각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기감은 자신이 신적 자아의 분신이며, 신적 자아와 영원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더 이상 기초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자신의 신적 자아와 분리 혹은 차라리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와 분리되어 있다는 것에 기초하여, 새로운 자기감을 쌓게 되었으며, 이러한 자기감은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개념들을 토대로 구축하게 된 것입니다. 


물주전자를 난로 위에 올려놓고, 버너에 불을 켜보세요. 얼마 지나면, 물은 점차적으로 데워지지만, 어떠한 변화도 감지할 수가 없습니다. 물이 일정한 온도에 도달하면, 기포가 형성되기 시작하며, 얼마 후 잠잠하던 물이 끓기 시작합니다. 주전자에 열을 계속 가하면, 주전자 속에 있던 물은 결국 증기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의 물 분자는 여전히 그대로 존재하지만, 이러한 분자들은 분명히 다른 형태를 띠게 되므로, 액체로서의 물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자들은 이제 보이지 않으며, 액체의 물과는 다른, 증기로서의 특성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물 분자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난로 위에 올려져 있는 주전자의 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여러분은 보다 낮은 정체성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신적 자아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적 자아와 분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눈치채지 못 했습니다. 자신의 신적 자아와의 연결이 아주 협소해지게 되는 위험한 단계가 찾아오게 되었으며, 그러한 연결에 대한 의식적인 자각을 아주 갑작스럽게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말 그대로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고무줄은 끊어지지 않고도, 장시간을 늘려도, 언제나 원래의 모양으로 되돌아오는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고무줄은 견디지 못하게 되며, 더 이상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담장에서 떨어진 험프티 덤프티(humpty dumpty : 한번 넘어지면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라는 아이들의 동화 책 속에 나오는 수수께끼 속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모든 왕의 말들과 모든 국민들은 -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힘”을 의미함 - 험프티를 다시 담장 위에 올려놓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신적 자아와의 의식적인 연결을 상실하게 되기 전까지는, 그래도 여러분은 자기보다 더 큰 어떤 것과 연결된, 즉 물질세계를 벗어나 있는 어떤 것과 연결된, 영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분리의 시점을 통과하고 난 후, 여러분은 자기 스스로를 외적인 하나님과 분리된, 별개의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 물질세계의 제약들, 즉 시공간의 제약들에, 속박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아주 극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아주 극적으로 일어나게 됨으로써, 영적인 존재로서의 자의식, 즉 분리되기 이전의 여러분이었던 자아는 이 과정 속에서, 말 그대로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결정적인 하강 지점을 통과하기 이전에, 여러분이 지녔던 자기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자기감은 근원과의 연결에 토대를 둔 것이 아니라, 근원과의 분리에 토대를 둔 새로운 자기감으로 대체되고 말았습니다.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은 존재를 계속 유지했지만, 자아라는 용기에 담긴 내용물들은 신성한 청사진과는 전혀 다른, 반대되는 것으로 대체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낮은 자기감으로의 하강은 성경에 아담과 이브의 추락이라는 이야기 속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정통 기독교계에서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 이야기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의 선조로서의 두 사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대신에, 이 이야기는 낮은 자기감, 즉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이 먼 과거에, 다시 말해 여러 생의 이전에 겪었던 낮은 의식 상태로의 추락의 과정을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여러분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로부터 가치 있는 교훈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이 이야기에 대한 정통적인 해석에 갇힌 채, 그대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통적인 해석에 집착해 왔다면, 아마 이 강좌를 읽고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 아마 이 강좌를 이단이나, 신성모독이라고 오래전에 딱지를 붙였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살펴보세요. 남성과 여성의 인물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아담이 먼저 창조되고 난 후,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사실, 이것은 여러분의 신적 자아가 여러분의 전(全) 존재 중에서 남성 혹은 영적인 측면을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 즉 물질세계로 내려온 자기감은 여러분의 전 존재 가운데 여성적인 극성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적 자아는 영원히 영적 세계에 거(居) 하며,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뱀으로부터 유혹을 받아, 분리의 의식, 즉 이원성적인 의식으로 추락했던 것은 여러분의 신적 자아가 아닙니다. 이원성적인 의식, 즉 상대적인 선악의 의식에 참여하도록 유혹을 받은 것은 여러분 존재의 여성적인 측면, 즉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원성적인 의식은 자신이 직접 선악을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식이며, 그리스도 의식에서 말하는 절대적인 정의, 다시 말해 선(善)이란 하나님의 법칙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하며, 악(惡)이란 전체에 반(反)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 속에서, 이브는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부터 유혹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뱀은 추락의 과정에 대해 다른 측면들을 나타낸다고 해석할 수 있는 몇 가지의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는 가장 폭넓고, 가장 보편적인 해석을 이용하고자 하며, 뱀은 자유의지에 수반될 수밖에 없는 어떠한 의식 상태를 상징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을 때, 하나님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하나님의 법칙을 거스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상상력과 자유의지를 지닌 자의식적인 존재에 따를 수밖에 없는 유혹(temptation)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법칙을 거스를 수 있으며,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유혹은 가능성으로서 언제나 존재하지만, 굳이 이러한 유혹에 빠지거나, 참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의식을 지닌 공동 창조자가 이러한 유혹을 철저히 무시하고, 하나님의 법칙들 테두리 내에서 계속해서 공동 창조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의 공동 창조자들은 유혹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했으며, 이들은 하나님의 법칙들에 저항한다면, 그리고 위로부터의 지시를 무시한다면,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속에서, 추론하는 마음속에서, 분석하려는 마음속에서, 이러한 궁금증들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새로운, 그리고 경험이 전혀 없는 공동 창조자로서, 여러분이 아직까지 하나님의 법칙들에 대해 의식적으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했었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이 궁금해졌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법칙들이 여러분이 지닌 창조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으며, 오히려 여러분이 지닌 개체성을 하나님의 몸체와 조화를 이루어 표현할 수 있도록, 창조의 자유를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 했던 것입니다. 자의식이 충분히 확장되지 못했으므로,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몸체와 하나이므로, 타인들에게 행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것이란 사실을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법칙들을 따르는 것이 계몽된 자기 이익(enlightened self-interest)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한적인 이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법칙들과 지침들을 거스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에 대해, 여러분이 궁금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칙들이 여러분이 지닌 창조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으며, 여러분은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창조력을 실험해볼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자신이 지닌 창조력을 실험해볼 수 있지만, 우주는 거울과 같이 작동하므로, 필연적으로 자신이 뿌린 것을 거두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과 하나님의 전(全) 몸체를 확장시키는 긍정적인 결과들만을 수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법칙들이 마련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칙들은 진실로 여러분을 구속하지 않으며, 구속감은 삶을 제한적으로 이해하는 데에서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