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들이여, 하나님의 전체의식으로부터 생겨난 존재, 즉 하나님께서 개별적인 영혼(lifestream)으로 현현해 있는, 하나님과 함께 하도록 되어 있는 존재가 자신이 나왔던 전체(All)에 대한 자각을 어떻게 상실할 수가 있었는지 여러분은 궁금해할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봄으로써, 여러분은 많은 도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문제에는 오직 하나의 답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공동 창조자들은 독특한 개개인이 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근원과의 연결이 단절된 정확한 이유는 개인마다 다를 수가 있습니다. 수수께끼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여러분이 개별적이고, 별개의 존재라고 인식하면서, 이와 동시에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존재의 전체를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하느냐 하는 어려운 난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개체성과 자유의지라는 선물에 뒤따를 수밖에 없는 핵심적인 과제입니다. 어떤 공동 창조자도 이 과제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도전과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아주 쉽게 대처해 가고 있지만, 나머지의 사람들은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합니다. 현재 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수십 억의 영혼들(lifestreams) 대다수를 포함하여, 공동 창조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까지 수수께끼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체성이라는 난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수수께끼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이고, 무엇이며, 여러분이 지닌 정체성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창조된 모든 것들은 창조주의 특이점(singularity)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태초에는 오직 하나님, 즉 창조주만이 존재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전체이면서, 독립적인 존재였으며, 지금도 그렇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자의식을 지니고 계시며, 분명한 정체성도 지니고 계십니다. 창조주께서는 두 개의 기본적인 힘들, 즉 확장하는 아버지의 힘과 수축하는 어머니의 힘들 창조하시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이러한 힘들은 중력과 자력(磁力)처럼, 지구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힘과 같이, 생명력이 없는 힘이 결코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두 개의 영적인 힘들은 창조주(Creator)로부터 최초로 탄생한 자의식을 지닌 두 분의 공동 창조자들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이 두 존재들은 알파와 오메가, 즉 시작과 마지막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두 분의 존재들은 창조주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진실로 창조주의 분신으로서, 창조주께서 구현되어 나타나신 현현(顯現)들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경은 “주(Lord)께서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 1:8)”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자기 자신을 두 분의 자의식을 지닌 존재, 두 분의 공동 창조자로 현현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두 분들 각자는 자의식을 지니고 계시므로, 별개의 존재, 즉 별개의 개인으로서의 자기감을 지니고 계십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창조주의 의해 직접 창조되었으므로, 이 분들은 창조주와 아주 단단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단계에 있는 존재는 그러한 연결감에 대한 인식을 상실할 가능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알파와 오메가께서는 자손들을 낳으셨으며, 알파와 오메가로부터 나와, 계통을 잇고 있는 자의식을 지닌 존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후 알파와 오메가로부터 태어난 직접적인 후손들도 자신의 자손들을 낳았으며, 창조계의 많은 영역에서 이런 식으로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영적인 진실에 대해, 직선적인 이미지로는 완벽할 정도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직선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직선적인 방식으로 설명함으로써, 나는 사실 불가능한 것을 설명하고자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 형태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의식을 지닌 모든 존재들은 한 분의 창조주에게로 이어지는 똑같은 계보(family tree)로부터 나왔습니다. 그가 없이는, 지어진 어떠한 것도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계보에 대한 설명을 잘 이해한다면, 이제 계보에는 다른 자손들을 상징하는 많은 가지(branches)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생명의 나무에서, 창조주로부터 멀리 벗어나면 날수록, 창조주와의 연결감도 그만큼 더 멀어지게 지게 되는 것입니다. 창조주로부터 멀어지면 질수록, 그러한 연결감에 대한 인식도 상실하기가 더 쉬워지게 됩니다. 자신이 지닌 개체성에 너무 초점을 맞추게 되면, 결국에는 자신의 근원(根源)을 망각하게 되며, 따라서 망망한 바다 위를 표류하는 배처럼, 자기 자신을 이리 저리 떠다니는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체, 즉 생명나무를 살펴보면, 계보에 대한 이미지에 심각한 제약들이 생기게 됩니다. 계보에 있어, 여러분은 어떠한 위치에서 태어나게 되며, 그 위치는 절대로 변경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몸체에서, 자의식을 지닌 개개의 존재들은 - 어디에서 유래했든 관계없이 - 하나님의 완전 의식에 이를 때까지, 서로 다른 단계들을 거쳐 상승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의식을 지닌 존재들은 자신이 유래했던 단계 아래로 내려갈 수가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의식으로부터 더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생명의 나무에서, 위로 상승할 것이냐, 아니면 내려갈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결정적인 요소는 여러분의 자기감, 즉 자의식, 정체성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가문(family)에서 태어나게 되며, 가문은 어떠한 혈통을 지니고 있으며, 이 혈통을 추적하여, 거슬러 올라가면, 많은 세대들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지닌 유전자와 어떤 환경 속에서 양육되었느냐에 따라, 여러분은 오늘날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존재로 인식하느냐에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정체성이 외적인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여러분은 자신의 자아를 다스리고, 최고의 비전에 따라 자기 자신의 자기감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육체는 가문 속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유전자의 산물이며, 여러분의 양육은 여러분의 가정과 사회의 문화와 세계관의 산물입니다. 여러분은 여전히 별개의 개별적인 존재이며,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이 증명해온 것처럼, 여러 가지 면에서 가정환경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여러분은 영적인 존재이므로, 현재의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완벽한 자유를 지니고 있으며, 심지어 여러분의 개별적인 존재가 태어났던 정체성을 초월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존재의 핵심은 여러분이 지닌 자기감, 즉 정체성입니다.


창조주께서 여러분에게 자의식과 상상력 그리고 자유의지를 주셨을 때, 창조주께서는 변할 수 없는, 고정된 정체성을 지니도록 여러분의 존재를 창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말 그대로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존재이며, 어떠한 존재라고 여기는 존재입니다. 만약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여긴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세속적인 인간이라고 여긴다면, 적어도 시공간의 세계 속에서, 여러분은 세속적인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정체성을 바꿀 수가 있으며, 상상력과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자의식도 바꿀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것을 망각하거나, 부인할 수도 있으며, 그 대신에 마음속으로 세속적인 죄인이라는 정체성을 상상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의 제한된 정체성을 버리고, 존재 속으로 태어났던 당초의 참된 정체성을 되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다음, 무결한 개념을 쌓아, 당초에 창조되었던 것보다 더 큰 존재가 될 수도 있으며, 진실로 창조주께서 여러분에게서 바라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는, 가슴으로 사고해야 할 부분들이 다소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석적인 마음은 모순처럼 보이는 것을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영혼(lifestream)이 처음으로 태어났을 때, 여러분에게 주어진 개체성에 대해,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마음은 신성한 청사진과 무결한 개념을 저장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청사진은 상실될 수가 없으며, 여러분이 나왔던 더 큰 영적인 존재는 여러분이 여기 지구에서 무슨 짓을 한다 해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영적 세계에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영적인 존재는 무엇보다 여러분의 신적 자아지만, 신적 자아 역시도 가족의 일원으로서, 여러 세대들 혹은 단계들을 거쳐, 거슬러 올라가면 창조주에게 이르게 됩니다.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여러분은 자신의 신적 자아보다, 자신의 계보보다, 자신의 창조주보다 더 큰 존재입니다. 내가 더 큰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더 낫다고 하는 것처럼, 상대적인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여러분이 창조주와 영적인 가족의 구성원들이 지닌 자의식을 초월하여 별개의 자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별개의 자기감을 지니고 있으며, 이 자기감은 두 개의 측면들, 즉 “자각(awareness)”과 “자아(self)”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존재하며, 실체와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각은 자신의 자아, 즉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여기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됩니다. 여러분의 자각은 자신의 존재를 담아두는 용기이며, 자기감은 개별적인 존재라는 용기 속에 들어 있는 내용물입니다. 이러한 자각으로 인해, 여러분은 존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며, 자아를 통해 여러분의 존재는 특정한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며, 따라서 이 형태의 세계에서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각은 어떠한 형태에도 구애받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자아와는 별개로 독립적으로 존재합니다. 자각은 특정한 개체성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혹은 특정한 개체성을 거치지 않고도, 순수한 자각으로 존재할 수가 있으며, 이러한 자각은 하나님이라는 존재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궁극적인 하나님께서는 순수한 각성(awareness)의 상태이며, 이러한 각성은 형태를 벗어나 있습니다. 이 말은 결국 러한 각성은 결코 상실될 수가 없으며, 나누어질 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각성은 특정한 형태를 통해, 즉 개별적인 자아를 통해, 자기 스스로를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없었다면, 어떠한 것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자아가 지닌 내용물들은 순수한 자각을 흐리게 할 수는 있지만, 순수한 자각은 변할 수가 없으며, 영원한 것입니다.. 인디언들의 속담에서처럼, 사람들은 오고 갈 수 있지만, 나는 영원히 그대로인 것입니다(I go on forever). 자기감은 변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자기 자신을 어떤 존재라고 상상하느냐 따라 그리고 자신이 실재하며, 자신의 일부이라고 마음으로 결정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감은 자아라는 용기 속에 담겨 있는 내용물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으며, 그리고 분명한 것은 여러분의 자기감은 형태의 세계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의식적인 여러분은 형태 속에서 길을 잃을 수가 있으며, 자신의 근원인 순수한 인식을 망각할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자기감을 변화시킴으로써, 그리고 여러분 존재의 용기에 들어 있는 내용물을 변화시킴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자의식)을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각은 한 장의 흰 종이와 같으며, 창조주께서 그 종이 위에 여러분의 신성한 청사진을 아름답게 그리셨습니다. 낮은 자기감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여러분은 검은색 잉크로 종이 위에 낙서를 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이렇게 하게 된다면, 여러분의 신성한 청사진뿐만 아니라, 그 뒤에 있는 흰 종이마저도 결국 낙서로 가득 차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순수한 자각과 영적인 자아에 대한 모형은 명확하게 정의된 구조도 없이, 온통 검은 선으로 뒤얽힌 그물망으로 뒤덮이게 됩니다. 다행히도 검은 선들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마커 펜(marker)으로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검은 선들은 투명한 플라스틱 판위에 그려진 것입니다. 이 말은 흰 종이와 당초의 청사진은 손상되지 않고, 원래대로 여전히 존재하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형태가 창조되기 전에, 그 형태는 자의식을 지닌 존재의 마음속에 먼저 정신적인 이미지로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내가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불렀던 자의식을 지닌 마음은 여러분의 개체성, 즉 여러분을 창조하게 만든 개체성을 나타내는 정신적인 이미지, 즉 청사진을 영원히 저장하고 있는 창고입니다. 자의식을 키워 감에 따라, 창조될 당시보다 더 큰 존재가 되기 위해, 그러한 토대 위에 자기감을 쌓아감으로써, 여러분은 확장해가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칙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공동 창조할 때, 여러분의 확장된 자기감 역시도 그리스도의 의식 속에 기록될 것입니다. 일단 얻고 나면, 여러분이 성취한 것은 결코 잃어버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형태가 구현되기에 앞서, 정신적인 이미지가 물질의 빛 위에 반드시 투사되어야 합니다. 정신적인 이미지, 즉 여러분의 개인적인 정체성에 대한 청사진은 형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공동 창조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의식을 지닌 존재가 아닙니다. 청사진과 무결한 개념은 단지 여러분이 태어났던 더 큰 영적인 존재의 마음속에 지닌 어떠한 개념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은 잠재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존재이지만, 구현된 존재는 아닙니다. 형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의식적인 여러분, 즉 자기 자신을 개체화한 별개의 존재로 인식하는 자의식을 지닌 여러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존재에 대한 청사진을 먼저 만드시지만, 하나님께서 자기 존재의 일부를 순수한 자각을 지닌 자아에게 불어넣어 줌으로써, 자아 속으로 생명을 북돋아줄 때에만, 청사진은 살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제1장 : 여러분은 공동 창조자입니다. (1//3)|작성자 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