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이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충분히 행성을 설계하실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현재 지구에 이러한 풍요로운 상태가 구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살펴보았습니다. 관측 가능한 이러한 사실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구현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인간 사회에서 일어났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논리적으로 우리가 해야 하는 다음번의 조치는 지구에 풍요로운 삶이 실현되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분은 자신이 누구이며, 무한한 우주 속에서 한 점의 티끌에 불과한 한 행성으로 보내지기 전에, 여러분이 당초에 무엇을 하도록 되어 있었는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이며, 왜 지구에 존재할까요?


이 문제에 대해 답을 하기 전에, 나는 서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두 개의 종교, 즉 정통 기독교와 유물론적인 과학으로부터 여러분이 지금까지 배워왔던 것들을 뛰어넘지 않을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우주의 기원에 대해, 이러한 두 개의 믿음체계들은 자신들이 궁극적인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러한 주장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믿고자 한다면, 나는 풍요에 이르는 열쇠를 여러분에게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핵심적인 열쇠는 이러한 두 개의 믿음체계들 속에서는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통 기독교든, 아니면 유물론적인 과학이든, 이들이 풍요로운 삶에 이르는 열쇠들을 제공해줄 수 있었다면, 그와 같은 풍요로운 삶은 이미 오래전에 지구에 틀림없이 구현되어 있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두 개의 믿음체계들에 의해 만들어진 관념의 틀을 뛰어넘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만이 아버지 왕국의 풍요를 물려받을 수 있는 진정한 열쇠를 찾아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다음번의 열쇠를 제공해주기 위해, 우리는 지구의 현재 상황에서 뒤로 물러설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전 물질 우주 밖으로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고 말씀하셨으며, 내가 이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우주 속에는 다른 차원들, 다른 단계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천상의 세계에도 이러한 단계들이 아주 많이 존재하며, 모든 것이 에너지라는 과학적인 지식을 감안한다면, 어떤 것이 이러한 단계들을 서로 분리시키고 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감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과학자들은 물질 우주가 두 개의 요소들, 즉 물질(matter)과 에너지로부터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진실로 물질 우주는 물질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물질 우주는 영적 세계, 즉 천상세계가 만들어진 것과 똑같은 재료로부터 만들어졌습니다. 이 재료는 바로 과학자들이 에너지라고 부르는 것이며, 성경에서는 이것을 빛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물질 우주가 어떻게 창조되었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물질 우주는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창세기 1:3)”는 명령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기 때문에, 빛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빛을 창조하시는 것에서부터, 창조의 과정을 시작하셨을까요? 빛 혹은 에너지 그 자체는 형태를 지니고 있지 않지만, 어떠한 형태든, 형태를 지닐 수 있는 잠재력은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과학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과학 이론, 특히 E=mc2라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물질은 보이는 형태를 띠고 있는 에너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에너지는 어떠한 형태의 진동으로 볼 수가 있으며, 과학은 보다 낮은 주파수에서부터 보다 높은 주파수를 띨 수 있는 많은 형태의 에너지들을 찾아냈습니다.

총체적으로, 물질의 형태를 띠고 있는 에너지는 낮은 주파수의 범위에서 진동하며, X레이 (단단한 물질을 투과할 수 있는) 혹은 생각처럼, 보다 순수하고 미세한 에너지들보다 진동수가 낮습니다. 이러한 과학적인 관찰에 따른 결론에 따르면, 우주는 보이지 않는, 보다 미세하거나 혹은 보다 근원적인 에너지로부터 만들어졌으며, 이러한 에너지가 물질적인 에너지가 되어, 물질의 형태를 띨 때까지, 진동수가 낮추어지게 된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지를 현재는 설명하지 못하지만, 머지않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게 될 것입니다.


천상과 지구와의 차이는 진동수에서의 차이 밖에는 없습니다. 지구 행성을 비롯한 전 물질 우주는 무한히 서로 다른 다양한 모습과 형태들 그리고 특성들을 지닐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하나의 기본적인 재료로부터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에너지 혹은 빛은 진동수가 서로 다른 많은 층들을 가질 수 있으므로, 느린 것에서부터 빠른 것까지, 혹은 짙은 밀도에서부터 순수한 밀도에 이르기까지 범위가 다양합니다. 낮은 진동수에서 높은 진동수로 올라가면, 결국에는 보이지 않는 어떠한 경계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선을 넘으면, 물질 우주를 벗어나, 영적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낮은 영적 세계에서 점점 더 높은 진동으로 계속 올라가면, 보다 높은 영적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형태의 세계에서부터 진동수가 가장 높은 곳을 향해 계속 올라가면, 창조주 자체인 하나님의 순수한 빛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창조주는 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이 존재께서 창조의 과정을 시작하셨으므로, 여러분도 이러한 과정의 일부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인간이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혹은 궁극적인 측면이 아닙니다. 형태의 세계, 즉 빛을 틀 속에 넣어 형태를 만듦으로써, 형태를 지니지 않은 빛을 형태로 만드심으로써 창조된, 세계로부터 물러나야만, 하나님의 참된 존재를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궁극적인 의미에서,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종교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궁극적인 하나님을 “공(空)”으로 묘사하고 있는 종교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에서 볼 수 있는 어떠한 이미지 혹은 말로 표현될 수 있는 형태 혹은 특성들을 전혀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 계율 중에서 첫 번째 계율이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출애굽기 20:3)”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너희는 특정한 형태, 특정한 우상을 절대로 가져서는 안 되며, 이러한 이미지가 하나님에 대한 완벽한 표현이라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는 뜻입니다.

궁극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하신 형태의 세계를 초월하여, 즉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초월하여 존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다. (요한복음 13: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말과 이미지를 사용하여, 궁극적인 하나님에게 이것들을 투사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을 정확하게 혹은 완벽하게 표현했다고 주장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며,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것이 바로 지구에 풍요로운 삶을 구현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주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음을 넓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들을 토대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에게는 두 개의 측면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입니다.;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3)” 이 말은 어떤 것이 창조되기 이전에, 오로지 하나님만이 존재하셨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완벽하시며, 스스로 존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창조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Allness)이라면, 하나님께서 굳이 우주를 창조하여, 우주 속에 존재하는 의식적인 존재들이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궁극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알려져, 숭배를 받아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며, 따라서 완벽하시며, 전적으로 자립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존재하며, 형태를 지닌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 그리고 형태를 지닌 세상이 형태가 없는 모든 것(Allness)과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 궁극적이고, 자립적이며, 형태가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유일한 측면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또 다른 측면이 존재해야 하며, 그것은 내가 창조주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하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측면으로, 하나님께서는 형태가 없는 허공보다 더 큰 존재가 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살고 있는 형태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또 다른 측면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우주를 어떻게 창조하셨을까요? 창조주께서는 자신의 존재로부터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창조하기 위해, 자기 이외에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창조주께서는 형태를 지니지 않는 하나님과는 다릅니다. 형태를 지니지 않는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는 반면에, 창조주께서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확장하며, 스스로를 초월하고 계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에게 이름을 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 대답은 “YOD HE VAW HE(히브리어)” 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문구는 영어로 “I AM THAT I AM(나는 스스로 있는 자 : 출애굽기 3:14)”라고 번역되고 있습니다. 사실, 일부의 성경학자들은 보다 정확하게 번역하면, “I WILL BE WHO I WILL BE(나는 존재할 나)”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하나님께서도 자신이 준 계율에 충실해야 한다(어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모세에게 이름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우상, 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데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조차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에 산에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하셨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느 때라도 존재하실 존재이십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 특정한 이미지에 집착해서는 안 되며, 스스로를 초월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흘러야만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국한되지 말고, 이 세상을 포함하여, 하나님 존재의 모든 것(All)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의 강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형태가 없는 하나님의 순수한 존재 속에는 어떠한 변화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형태가 없는데, 어떻게 변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자체로 완벽한데, 어떻게 진보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창조주 측면에서는, 끊임없는 움직임이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주 측면은 더 큰 것을 창조하고, 더 큰 것이 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창조주가 무엇일까요?

창조주께서는 자의식을 지닌 존재로서, 3가지의 능력을 지니고 계십니다. 첫 번째의 능력은 자각, 즉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능력입니다. 두 번째의 능력은 상상력으로, 아직까지 어떠한 우주 속에서도 실현된 적이 없는 어떠한 형태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창조주에게 상상력이 없었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창조주께서 좋아하시는 세 번째의 능력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세상을 둘러보면, 여러분은 아주 많은 것들을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왜 하늘은 푸르기만 하고, 다른 색은 없을까요? 왜 지구는 둥글고, 다른 형태는 없을까요? 우주가 얼마나 복잡하고,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을 과학자들은 계속해서 찾아내고 있습니다. 원자의 핵들을 뭉치게 하는 힘의 세기가 약간만이라도 달라졌다면, 원자가 뭉칠 수 없어, 물질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중력이 약간만 바뀌어도, 태양들과 행성들은 궤도 속에 머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 모든 것들이 이런 식으로 존재할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설계하실 때, 어떠한 선택들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창조주께서 하셨던 선택들 가운데 하나는 전 우주를 하나님 혼자서 창조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자신의 분신으로서, 자의식을 지닌 존재들을 창조하여, 이들에게 창조력과 자의식, 상상력 그리고 자유의지를 부여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에 따라, 닮은 꼴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의식을 지닌 많은 존재들을 창조하셨으며, 이러한 존재들은 창조주의 분신으로서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존재들은 창조주 스스로가 출발시킨 창조물들 속으로 여행하면서, 창조주께서 미리 마련해놓으신 토대 위에 쌓아갈 수 있는 공동 창조자로서 봉사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는 밖에서부터 창조하시며, 공동 창조자들은 내부에서부터 창조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창조주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를 여러분은 추론할 수가 있으며, 많은 타당한 이유들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존재하고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은 창조주께서 이러한 선택을 하셨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자의식을 지닌 존재로 창조하시기로 선택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존재하며,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왜 이곳에 존재하는지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을 수 있는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의문들을 통해, 여러분은 운에 좌우되는 게임 혹은 지성이 없는 진화의 과정에 의해 생겨난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의문을 물을 수 있다는 사실 바로 그 자체가 실은 여러분이 자의식을 지닌 존재의 후손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어떠한 개념을 고안해내고, 마음속으로 계획한 후, 육체를 이용하여, 마음속에 있는 개념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있는 능력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의 집을 어떻게 설계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들은 일부의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여러분이 진화해 왔다는 동물의 왕국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여러분은 많은 새들보다도 더 가치가 있는 존재들이며,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자신의 진정한 바람인 풍요로운 삶을 제공해줄 수 있는 완벽한 능력을 갖춘 우주를 만드셨던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여러분에게 상상력과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하는 공동 창조자가 되도록 여러분을 계획하셨기 때문에, 어떤 외적인 근원으로부터 풍요로운 삶을 여러분에게 제공해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자신의 상상력과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자신의 영향력 범위 내에서 그러한 풍요로운 삶을 구현해내야 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지구”를 다스리고자 결심해야 하며, 이 지구라는 말은 자신의 마음과 물질세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풍요로운 삶을 여러분이 누릴 수 있도록 우주를 창조하셨지만, 그와 같은 풍요로운 삶을 자동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우주를 창조하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성이 없는 로봇으로 여러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의식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하게 설명하겠으며, 지금은 단지 여러분이 풍요로운 삶을 구현할 것인지, 아니면 제약과 결핍 그리고 고통스러운 삶을 구현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선택할 수 있는 능력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여러분은 지니고 있으며,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재능을 통해, 여러분은 자신만의 체험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실수로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을 창조하고 있지만, 진실로 그것은 참된 잠재력을 망각한 인간들의 마음이 삶이라는 스크린 위에 투사한 신기루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왕국을 물려받을 수 있기 전에, 진실로 여러분은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닮은 꼴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말이 창조주께서 물질적인 육체를 지니고 있으며, 인간과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또한 창조주께서 찰톤 헤스톤(charlton Heston)처럼 말을 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구현되어 있지 않은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과 여러분이 지닌 정신적인 이미지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 물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며, 이러한 능력들은 창조주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이 살고 있는 우주를 창조하는데 사용하셨던 것과 똑같은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