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성적인 세력들로부터 속아왔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이들은 아주 교활하며, 지구에서 그들에게 물으려고 하지 않는 이원성적인 개념들이 주입되지 않은 곳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영원한 의문은 여러분이 속아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더 이상 속지 않겠다고 할 것이냐, 아니면 거짓된 스승들이 축복이라고 말하는 무지 속에 계속 남아 있고자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참된 구도자가 지닌 특성은 환상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환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환상을 어둠에서 끄집어내, 그리스도의 진리라는 빛으로 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분별력을 연마해야 합니다. 따라서 아무도 물어보려고 하지 않는 의문을 묻는 것에서부터, 아니면 과거에는 물어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물으려고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삶과 믿음들을 솔직하게 살펴보려고 해야 합니다. 묻는 것을 꺼려하는 부분이 없는가?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열망에서 혹은 지옥에 가는 것이 두려워서,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는가? 영적인 지도자가 자신의 말대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꺼려하는가? 지도자가 자신의 가르침대로 살아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분석적인 마음을 통해, 변명거리를 찾아내거나, 아니면 이것을 합리화하려고 하지 않는가?


하는 김에, 수준을 높여, 여러분의 일부가 자신의 잘못을 찾아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묻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 아닌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영적인 길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유혹은 두려움이며, 가장 교묘한 유혹은 자만(自慢)입니다. 정확하게 말해, 자만이 위험한 이유는 자만으로 인해,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 노출되는 질문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만이라는 겉만 번드르르한 새장 속에 갇히고 나면, 자만이라는 쇠사슬을 풀려고 하지 않는 한, 벗어나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자만이 어디에서 올까요?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자만은 여러분의 의식적인 자아 혹은 여러분의 신적 자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영적인 정체성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만은 오로지 에고로부터 나오게 되며, 이것은 여러분의 참된 존재의 일부가 아닙니다. 따라서 자만의 흔적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려고 해야 하며, 그러한 흔적을 이용하여, 자만을 통해 여러분을 통제하려고 하는 에고가 어둠에서 나오게 해야 합니다. 에고가 아무리 설득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에고는 오로지 이원성 속에서만 존재하며, 에고가 믿고 있는 모든 믿음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따라서 에고는 필사적으로 자신이 절대로 잘못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심어주려고 해도, 언제나 옳지 않은 것입니다. 이원성은 언제나 옳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진정한 여러분, 즉 의식적인 자아는 자신이 이원성적인 믿음들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더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잘못을 더 잘 인정하게 되며, 따라서 무한정 잘못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중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번 속으면 당신 탓, 두 번 속으면 내 탓”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한번 속는 것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분명히 말해, 여러분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속았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냥 넘어가라는 뜻에서 하는 말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에고의 자만을 꿰뚫어보고, 의식적으로 이것과 분리되고자 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 심지어 가장 영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상상하지 못하고 있는 영적인 자유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에고의 오만과 환상을 고수하려는 쳇바퀴 속에 계속 갇혀 있는 동안에는, 영적인 자유가 어떤 것인지를 정말로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자유로 인해, 여러분은 비록 자만이 어떠한 감정적인 이점(利點), 즉 안전감과 우월감을 제공해주는 것처럼 보였다고 할지라도, 두려움과 오만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상위 존재와 하나가 되면, 여러분은 절대로 길을 잃을 수가 없으며, 편안함을 느끼는데, 굳이 거짓된 안전감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따라서 에고의 감옥을 버리고, 자신의 신적 자아라는 밝은 빛으로 달려가세요. 왜냐하면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때, “감춰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기”(마태복음 10:26) 때문입니다.


상승한 호스트들이 직면해 있는 딜레마들 중에서 하나는 영적인 구도자들이 어떠한 스승이나 가르침에 대해, 이들이 간직하고 있는 믿음을 해치지 않고, 거짓된 스승에 대한 충성심과 집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돕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지금까지 거짓된 종교 혹은 스승을 따라왔지만, 이제는 절대로 두 번 다시 속고 싶지 않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실제로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속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어떠한 스승이나, 가르침도 절대로 신뢰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거짓된 스승에 대한 충성심과 집착이 여러분의 에고의 도움을 받고 있는 거짓된 스승들이 계획적으로 꾸며낸 음모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말했던 것처럼, 이원성적인 세력들은 하나님의 잘못을 증명하고자 하며, 이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참된 길을 찾아내지 못하게 하고, 또한 따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구에서 아무도 그리스도가 되지 못한다면, 자신들이 지구를 정복하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에게서 지구를 빼앗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거짓된 스승들은 여러분이 자신들을 따르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그들을 따르는 한, 분명히 여러분은 그리스도가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원성적인 온갖 종류의 영적인 운동을 전개하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에 절대로 도달하지 못하게 하고, 이와 동시에 사람들이 영적이라고 느끼고 싶어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추종자들이 으로 보기에는 영적으로 진보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진정한 목표, 즉 내가 그리스도의 신성(Christhood)이라 부르는 영적인 자립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단 여러분이 거짓된 스승을 따르기 시작하면, 이원성적인 세력들은 여러분이 멈추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을 의심하고, 더 큰 어떤 것을 갈구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글쎄요, 이원성적인 세력들이 지닌 전체적인 목표는 여러분이 참된 길을 따르지 못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잘못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참된 스승을 찾고자 한다면, 거짓된 스승들과 여러분의 에고는 모든 스승들에 대해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신뢰를 망가뜨림으로써,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을 것입니다.

이들은 여러분이 참된 길을 찾아내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따라서 영적인 것에 대해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모든 신뢰를 훼손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 이상, 여러분은 이러한 음모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으며, 단지 거짓된 스승을 버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뱀이 이브를 조종하여, 그녀의 마음속에 의심이라는 씨앗을 심어 놓았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기억하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거짓된 스승을 따랐다는 것을 인식한 이상, 이로 인해 치유해야 할 상처가 생겼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튼, 일단 여러분이 속았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 다시 속지 않게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요? 나의 첫 번째 견해는 여러분이 속았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더 현명해지게 되었으며, 따라서 다시 속을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다음번의 견해는 체험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번 이상 속는다 하더라도, 여러분이 속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이상, 그러한 속임을 가치 있는 배움의 체험으로 바꿀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스승이나, 가르침을 찾으려고 함으로써, 궁극적인 안전감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존재는 바로 에고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바랍니다. 내가 이 책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궁극적인 안전은 여러분의 외부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스승이라 할지라도, 여러분의 구원을 보장해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여러분의 의식의 성장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충분히 인정한다면, 에고의 꿈, 즉 오류가 전혀 없는 스승이라는 꿈을 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거짓된 스승을 따르는 것과 관련하여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스승은 전혀 오류가 없으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분별력과 차단되어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설명한 것처럼, 여러분은 자신이 지닌 그리스도의 분별력과 차단되어서는 안 되며, 또한 오류가 전혀 없는 스승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이 책 역시도 여러분이 오류가 없는 가르침으로 여기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의식이 상승함에 따라, 확실히 더 많은 것들이 주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말의 요지는 에고는 여러분이 거짓된 스승을 따르고, 그런 다음에는 스승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스승을 오류가 없는 존재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따랐던 스승이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곧바로 오류가 없는 또 다른 스승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몇 년, 몇 십 년, 혹은 여러 생에 걸쳐, 심지어 이 스승에서 저 스승으로, 여러 스승을 거치게 됩니다. 하지만 보다 성숙한 반응은 이러한 “스승 찾아 돌아다니기(Guru-hopping)”는 그만두어야 하며, 오류가 없는 스승이라는 개념 자체를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가 되는 길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며, 자립하려고 함으로써, 모든 외적인 스승이나 가르침들을 초월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면적으로 진리의 영을 직접 체험하게 될 때, 외적인 스승이나 가르침이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이 외적인 가르침이나 종교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며, 외적인 활동을 한다고 해서, 여러분의 구원이 보장되거나, 방해를 받게 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근본적인 차이를 알 수 있나요? 오류가 없는 스승을 찾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대신하여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스승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꿈을 버리기만 하면, 여러분은 자기 초월의 길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진리에 대한 궁극적인 표현을 찾을 필요도 없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세계에서는 그러한 표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에, 여러분은 자신이 지닌 직관력을 신뢰하게 되며, 동시에 그러한 직관력을 계속해서 가다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직관력이 현재 있는 곳으로 여러분을 데려다주었으며, 그러한 직관력을 계속 갈고 다듬어갈수록, 그리스도의 신성에 이르는 남은 길로 여러분을 데려다줄 거라는 것을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하면, 영적인 길에서 결코 믿음을 상실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길(path)은 현재도 진행 중인 과정이며, 어떤 종류의 외적인 구세주를 찾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최고의 스승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여러분을 다음 단계로 데려다줄 스승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스승은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을, 즉 자신의 상위 자아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외적인 스승이나 가르침들은 단지 외적인 마음을 일깨우기 위해, 내적인 스승이 사용하고 있는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한 명의 스승이 목적을 이루고 나면, 내면의 스승은 여러분을 또 다른 스승에게로 안내해줄 것입니다. 따라서 진실과 거짓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진행 중인 성장의 과정에서, 여러분은 각각의 스승을 디딤돌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말했던 것처럼, 실패한 실험이라 하더라도, 그 실험은 진보로 바뀔 수가 있으며, 여러분은 거짓된 혹은 불완전한 스승과의 관련을 통해 실제로 엄청나게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영적인 구도자들은 학생이 준비되면, 스승은 나타난다는 말을 곰곰이 숙고해봄으로써, 도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요령은 여러분이 찾는 스승은 여러분의 현재 의식 상태의 반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따라서 스승은 개인적인 길의 어느 단계에서 배워야 할 특정한 교훈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적합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만약 거짓된 스승에게 이끌린다면, 그것은 거짓된 스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어떤 것을 여러분이 배워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과거의 의사결정을 고수하거나, 변명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단지 숨어 있는 교훈을 찾으려고 해야 하며, 그런 다음,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필요한 교훈을 배우지 않는 사람들은 똑같은 교훈을 배우게 해줄 또 다른 스승에게 이끌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교훈을 배우자마자, 여러분은 길에서 보다 높은 단계로 올라서게 되며, 이제는 더 높은 스승에게 끌리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거짓된 스승으로부터 벗어나고, 인류의 참된 스승을 찾기 위해,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을 하루 속히 배우기 바랍니다.


만약 거짓된 스승이라는 것을 깨달았음에도, 거짓된 스승을 따랐다면, 거기에는 그러한 스승과 관련되도록 선택했던 어떠한 이유가 존재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신성한 계획의 일부로, 이러한 스승을 따르기로 결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선택을 하는 데에는 몇 가지의 이유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거짓된 스승을 따름으로써, 뭔가를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순진함(naiveté)을 극복하고, 분별력을 키우고자 원했을 수가 있습니다. 거짓된 스승을 따르고, 온갖 형태의 학대를 받는 대상이 되는 것이 이것을 성취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을 수가 있습니다.


스승이 판단이 이루어지도록 돕고자 원했습니다.


여러분은 스승이, - 혹은 일반적으로 거짓된 스승 - 세상에 노출되도록 하고 싶어 했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 그러한 조직의 내부에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길(path)을 증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지구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거짓된 스승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맹목적인 추종자가 되는 것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리스도의 참된 길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 싶어 했을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다면, 거짓된 스승을 따랐던 것에 대해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가 있으며, 스승도 용서하고, 넘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거짓된 스승이 종종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들을 학대하는 것을, 내가 정당화하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단지 나는 여러분을 위해, 분노와 비난이라는 의식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비-생산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여러분을 스승과 묶어둠으로써, 여러분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스승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에고와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사실, 타인들이나, 자기 자신을 비난할 필요도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은 단지 체험으로부터 배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며, 그러한 체험을 이용하여, 다음 단계의 길로 나아가면 됩니다. 기본적으로 여러분은 어떤 것을 부정하거나, 저항하거나 혹은 비난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절대로 안 되며, 단지 어떤 것이 여러분의 성장을 돕는지, 아니면 성장을 방해하는지만 살펴보면 됩니다. 만약 여러분의 성장을 방해한다면, 교훈을 찾아내야 하며, 교훈을 배우고 나면, 그냥 과거를 버리고, 넘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은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사항으로 이어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