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장에서, 나는 특정한 구체에 사는 모든 존재들은 - 그들이 새로운 공동 창조자이든, 아니면 보다 높은 구체에서 추락한 존재이든 - 에덴동산처럼, 보호받는 환경 속에서 시작하게 된다고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비록 현재는 영적 세계로 상승하여 보다 높은 구체가 되어 있지만, 이 구체에서 추락했던 존재들은 경험이 전혀 없는 새로운 공동 창조자 혹은 천사들로 추락했던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아주 강력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러한 존재들이 추락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여기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천사들과 관련하여 앞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최초의 추락은 네 번째 구체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추락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이전의 3개 구체에서 출발했던 어떤 천사들이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고의적으로 저항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 많은 존재들이 - 천사와 공동 창조자들 모두 - 추락하게 되었으며, 기본적으로 이 장에서는 이러한 존재들이 어떻게 추락하게 되는지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주로 이야기할 내용은 특정한 구체에 봉사하도록 창조된 천사와 공동 창조자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던 구체가 상승하게 되면서, 어떻게 추락하게 되는지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 장에서의 가르침은 고차원의 구체로부터 추락했던 존재들과 당시 구체의 우주 학습장에서 처음으로 출발했던 존재들 모두에게 어느 정도는 공통적으로 해당될 수 있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네 번째 구체에서부터, 물질의 빛이 지닌 밀도는 현실적으로 추락이 가능했을 정도로 충분히 높았습니다. 따라서 특정한 구체가 한계점에 도달하여, 실제로 상승하게 될 때까지, 그 구체에 있는 존재들은 추락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 구체에서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는 존재들에게도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구체 속에 어둠이 남아 있는 한, 이원성적인 의식이 숨을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존재들은 반-그리스도의 마음에 의한 교묘한 환상의 늪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삶의 영적인 측면에 대해 아주 수준 높은 지식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 하더라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추락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면, 추락하지 않았겠지만, 그들의 의식 속에 이원성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정말로 더 잘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것을 알지 못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23:34)


학생들은 우주의 학습장에서 완전한 그리스도의 신성을 성취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도 또한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교과 과정을 만들어낼 수도 없으며, 교과 과정을 이수하는 모든 학생들이 그리스도가 된다는 보장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기계적인 기술이 아니라, 창조적인 과정으로서, 여러 가지 의사결정들을 해야만 하며, 자신의 내면에 어떠한 통찰력을 지녀야만,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계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알파의 체험” 혹은 획기적인 체험의 결과로서만, 그리스도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그리스도가 되거나”,“되지 않거나”둘 중의 하나입니다. 스승은 여러분이 올바른 결정을 하고, 획기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기 위해 도울 수는 있지만, 그러한 체험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우주의 학습장이 목표로 하는 것은 학생들이 영적으로 자립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학생이 자신의 상위 존재와 어느 정도 접촉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내면에서부터 빛과 안내를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온전한 그리스도의 신성을 지니게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온전한 그리스도의 신성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의 신성은 온전한 하나님의 의식으로 이어져 있으며,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성장의 과정입니다.


어떻게 하면 임계치의 그리스도 신성을 성취하여,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로지 모든 생명과 하나가 되는 상태가 됨으로써, 성취할 수가 있으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것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마가복음 10:44)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신성은 교실에 앉아서, 이론적으로 배운다고 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모든 것들처럼, 그리스도의 신성에도 알파와 오메가가 존재합니다. 알파의 측면은 자신의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 들어가서, 내면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내면의 나라, 즉 자신의 상위 존재와 존재의 고리와 어느 정도 접촉을 할 수 있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오메가적인 측면에 관여할 필요가 있으며, 이 말은 모든 생명을 끌어올리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지구의 대학 교육에 비유될 수가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몇 년 동안 공부하고 난 후, 졸업을 하고, 사회에 진출하여, 배운 기술을 실습함으로써,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대학에 다니면서 배웠던 것보다, 일을 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에 이르는 길에서 가장 빠르게 진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영적인 학습장에서 충분히 배우고 난 후, 배웠던 것을 실천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예를 들면, 에덴동산을 졸업한 학생들 중의 일부는 물질계로 보내져 육화하게 되는 반면에, 다른 존재들은 감정계, 정신계 혹은 정체성의 세계로 가게 됩니다.


고려해야 하는 또 다른 사항은 졸업할 때, 모든 대학생들의 실력이 똑같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이 성취한 그리스도의 신성도 똑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스승과 분리되고자 했기 때문에, 일부의 학생들은 졸업도 하지 않고, 즉 자립도 하지 못한 채, 보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스승은 이러한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 삶을 통해서 배우고, 언젠가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키워가게 될 거라는 희망을 여전히 지니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요지는 학생들이 영적인 학습장을 떠난 후, 자신들이 태어난 구체로 가서, 거기에서부터 성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학생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이라는 내적인 역량을 더 키우지 않은 채, 외적인 역량을 아주 잘 발휘할 수가 있습니다. 분명히 말해, 외적인 역량을 키울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더 자기중심적인 존재로 바뀌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지구에서 일부의 국가 지도자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데에는 아주 뛰어나지만, 진정한 연민 혹은 타인들에 대한 사랑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음으로 인해,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남용하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한편 다른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분야의 기술을 발달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려는 욕망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성장은 할 수 있지만, 이것이 그리스도의 신성이 커지게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고 있는 한, 분명히 여러분은 이원성적인 마음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공동 창조자들과 새로운 천사들이 (특히 특정한 구체를 위해 창조된 천사들), 추락하게 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일부의 공동 창조자들과 일부의 천사들은 다른 존재들과 비교하여,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외적인 역량을 키우게 됩니다. 비록 이러한 존재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구체가 상승하도록 가치 있는 봉사를 한다고 할지라도, 이들은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동기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자기중심적인 존재들이라 하더라도, 지도자적인 지위를 차지할 수가 있으며,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구체가 성장함에 따라, 공동 창조자들은 - 그리고 일부의 천사들 - 실험을 함으로써, 성장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실험이 허용되며, 공동 창조자들은 천사들보다, 더 넓은 허용범위를 가지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공동 창조자는 비록 자기중심적인 욕망에서 추진된다 하더라고, 되고자 원하는 모든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존재들과 비교하여, 자기만의 역량을 키우는 것조차 더 큰 것이 되는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해, 이러한 행위는 수준이 보다 낮은 것이지만, 사심 없는 봉사로 변형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요한계시록에서는 “미지근한 사람들보다 뜨겁거나 찬 사람들이 더 좋은 위치에 있다(계시록 3:15-16)”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지근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향상시키는데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지도자를 따르려고 합니다. 차가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은 하지만, 이기적인 목적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의 노력이 사심 없는 봉사로 바뀔 수 있는 깨달음을 체험할 가능성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미화하는 데에도 진보된 기술이 필요하므로, 이들은 이러한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타인들에게 더 훌륭한 봉사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참된 영적인 스승과 마스터들은 누구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또다시 알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자의식을 지닌 모든 존재들에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로 제공하려고 하며, 형태의 세계는 매우 유동적으로 설계되어 있어, 존재들은 용이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어떤 존재가 타인들과 비교하여, 자신만이 우뚝 서려고 하는 욕망을 강하게 키우고자 한다면,  이 존재는 어둠이 존재할 여지가 있는 구체 내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더 큰 것이 되고자 하는 시도는 어떤 시도이든, 어느 정도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진정한 성장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존재들이 오랫동안 자신들을 미화하기 위한 기술들을 키우고자 노력해왔지만, 이들은 심경의 변화, 즉 의식의 다이얼이 돌아가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으며,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들은 보다 이타적인 존재가 되었으며, 자신들이 가진 기술과 체험을 이용하여, 타인들에게 봉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구에서도 이러한 사례들을 많이 찾아볼 수가 있으며, 예를 들면, 수십 년 동안 재산을 모았던 기업가가 자선 사업가로 변신하여, 모두를 끌어올리기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뜨겁고, 찬 것의 차이는 단지 의식의 다이얼을 약간 돌리는 것에 불과하며, 이러한 이유로 차가운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욕망이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될 기회를 많이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바람은 이들이 언젠가는 충분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며, 이원성적인 사고방식에서 깨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스승으로서, 우리는 성령의 본질에 충실해야 하며, 어떤 존재가 희망을 넘어서는, 즉 절망하게 되는 이미지는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존재가 깨어날 수 있으며, 하나가 되는 길을 걸을 수 있다는 무결한 개념을 지녀야만 합니다.


구체가 상승에 가까워지게 될 때, 그 구체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마지막의 시험, 즉 무욕(selflessness : 사심 없음)이라는 시험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학교에서는 하나가 되는 길을 가르칩니다. 이 말은 모든 생명이 하나라는 사실을 체화(體化)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학교를 떠난 후, 세상으로 나가, 체험을 통해 자신들이 배웠던 것을 하나로 통합하게 됩니다. 일부의 학생들은 계속해서 하나가 되는 길을 따르고, 하나됨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됨에 따라, 뜨거워지게 됩니다.

다른 일부의 학생들은 하나가 되는 길에서 벗어나, 속된 표현으로 “자기 이익만을 생각함(looking out for number one)”으로써, 차가워지게 됩니다. 또 다른 일부의 학생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땅 속에 묻어 두고,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들을 보살피려고 하지 않음으로써, 미지근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우주의 날숨이라 부르는 기간, 즉 구체가 성장하는 동안에는 허용이 됩니다. 하지만 구체가 임계점에 도달하게 되면, 들숨의 과정이 시작되며, 이때 존재들은 무욕의 시험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일부의 존재들은 높은 지위를 얻고, 그러한 지위에 걸맞은 모든 의무사항을 이행하는데 관심을 집중한 나머지, 가르침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일은 한 쪽으로 제쳐놓고 있습니다. 이들이 올바른 일을 하려는 열망, 즉 건설적인 열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들은 그러한 열망에 타인들보다 더 낫고, 타인들과 비교하여 자신들을 끌어올리려는 욕망을 덧씌우게 됩니다. 이러한 존재들은 대개 그들이 속해 있는 단체, 예를 들면 종교와 정부 조직에서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으며, 자신들을 지도자로 여기는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종자들 중에서 일부는 자신들의 지도자들에게 충성을 다하며, 기본적으로 지도자들이 지시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은 이들이 맹목적으로 따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체가 임계점에 도달하면, 자기중심적인 성향에 기초하여, 고위직을 차지했던 지도자들은 매우 어려운 입문과정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러한 입문과정의 속성은 지도자에게는 생소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입문과정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통과하기가 쉬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입문과정은 존재들이 모든 분리와 분리된 자기감의 모든 파편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주도면밀하게 계획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구체의 진동수가 상승함에 따라, 과정이 시작되면, 필연적으로 모든 존재들, 심지어 시험받을 위치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고위직에 있는 존재들조차도 자신들의 내면에 지니고 있는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노출시키게 될 것입니다. 모든 입문과정은 겸손한지 여부를 묻는 시험이며, 어느 누구도 이러한 시험을 피해 갈 수 없으며, 심지어 (혹은, 특히) 외적인 사회에서의 계급 때문에, 제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으십니다. (사도행전 10:34)


하나가 된다는 것(oneness)과 겸손이라는 마지막의 시험이 어떤 것일까요? 새로운 구체가 만들어지게 됨에 따라, 상승하는 구체에 살고 있는 존재들은 다음번의 구체를 창조하는데 돕도록 요청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구체가 어떻게 창조될까요? 그것은 창조주로부터 시작된 창조 과정의 일부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창조주께서는 자신의 존재와 의식으로부터 첫 번째 구체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후, 창조주께서는 자신의 존재로부터 자의식을 지닌 공동 창조자들을 창조하셨으며, 그들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셨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자기 존재의 일부가 형태 속에 갇히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자의식을 지닌 공동 창조자들은 창조주 존재의 일부를 통제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창조주께서는 자신의 일부를 가지고, 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도록 허용하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상승하는 구체 속에 있던 존재들이 - 천사들과 공동 창조자들 모두 - 자신들의 존재와 의식을 이어지는 구체의 창조물들 속으로 스며들게 했던 것처럼, 이러한 과정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의 구체가 상승 지점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면, 그 구체 속에 있는 존재들은 자신들의 일부를 새로운 구체 속으로 스며들게 하도록 요청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물론, 새로운 구체에는 자유의지를 지닌 경험이 없는 공동 창조자들이 - 심지어 일부의 추락한 존재들도 - 거주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존재들은 고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는 존재들이 스며들게 한 것을 가지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겸손의 마지막 시험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자신들의 일부를 새로운 구체 속에 심어놓은 존재들은 새로운 구체와 하나라는 깊은 의식을 가지게 되며, 따라서 그 구체 속에 있는 존재들이 상승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될 것이며, 게다가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들마저도 자유롭게 상승할 수 있도록 돕게 되는 이 계획이 지닌 탁월함을 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