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의 요지는 이러한 존재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적이라고 여기지만, 창조주께서는 이들을 적으로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이들의 의식적인 자아들을 자신이 확장한 분신들로 여기고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창조주께서는 이러한 의식적인 자아들이 전적으로 반-그리스도의 의식으로 만들어진 정체성으로 들어갔을 뿐이라고 여기고 계시며, 따라서 거기에는 어떠한 실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창조주께서는 허공이 완전히 빛으로 채워지면, 실체가 없는 모든 정체성들은 최후의 심판에 의해 용해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창조주께서는 개별적인 존재들이 이러한 정체성이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시점에서, 언젠가는 이러한 정체성을 이겨내고, 더 큰 것이 되기로 결정함으로써, 생명의 강에 합류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이들이 이러한 정체성을 지니는 것을 허용하고 계십니다.


사실, 창조주께서는 물질 우주를 설계하실 때, 이러한 존재들에게 자신들이 꿈꾸는 대로, 끝까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궁극적인 기회를 제공해주도록 하셨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이러한 존재들이 할 수 있는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도 위협을 느끼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존재들이 개별적인 행성을 겨우 파괴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창조주의 전체적인 계획은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질 우주는 전체적으로 상승 나선 속에 있으며, (이러한 상승 나선은 너무 커서, 추락한 존재들이 이러한 나선을 통째로 아래로 끌어당기기에는 역부족임) 그리고 이전의 상태를 초월하기 위해, 모든 것을 위로 끌어당기는 힘은 매초마다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일부의 추락한 존재들이 개별적인 행성들의 성장을 간신히 늦추게 할 수는 있었지만, 이들이 이러한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더 힘들게 싸워야만 합니다.


지구와 관련된 추락한 존재들은 말 그대로 전 우주를 위로 끌어당기는 힘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며, 나머지 우주가 끌어당기는 힘에 지구가 저항할 만한 질량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구에 추락해 있는 존재들이 생명력에 저항할 가능성은 없지만, 창조주께서는 이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이 행성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시도에 협조해 왔기 때문에, 환상이 계속 유지되어 왔던 것입니다. 임계 수치의 사람들이 “임금님은 아무것도 입지 않았어요!”라고 외칠 때까지, 이러한 환상은 유지될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인류가 두 개의 그룹, 즉 하나님 편에서 싸우는 사람들과 하나님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로 나누어질 수 있다는 것이 완전히 환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 믿습니다. 사실, 적과 싸우고 있다고 - 그러한 싸움이 어떻게 정의된다 하더라도 -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원성적인 의식에 갇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참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히 아니며, 단지 이원성적인 세력들이 유지될 수 있도록 도움만 줄 뿐입니다.


만약 어떤 종교가 자신이 유일한 참된 종교이며, 다른 사람들 혹은 종교들은 참된 종교의 적 혹은 하나님의 적이라고 규정한다면, 이것은 이 종교가 이원성적인 의식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추락한 존재들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지구에 대한 지배권을 확장하기 위해, 추락한 존재들이 만들어낸, 현재 진행 중에 있는 거대한 이원성적인 투쟁에 종교는 한 명의 선수로서 참여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비-이원성적인 가르침은 누군가를 반대한다고 스스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단지, 모든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그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보살펴줄 뿐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어떤 가르침은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진리를 말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며, 심지어 다른 종교의 교리가 진리에 못 미친다고 여기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원성적인 투쟁에 힘을 보태지 않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유일한 한 분의 하나님만이 존재하시기 때문에, 진실도 하나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러한 진실을 대변하는 참된 종교도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논쟁은 어떤가요? 지구에는 아주 많은 종교들이 존재하며, 이러한 종교들은 대개 직접으로 서로 모순되는 외적인 가르침들을 지니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요? 몇 개의 관점들이 서로 모순된다면, 그러한 관점들은 모두가 진짜일 수는 없으며, 따라서 하나가 진짜이어야 하며, 모순되는 모든 것들은 거짓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흑백의 논리에 대한 대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제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기를 바랍니다. 대안은 모든 관점들이 거짓이거나, 적어도 불완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대안은 가르침 그 자체가 아니라, 종교적인 가르침들을 사람들이 이원성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종교적인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 무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해석이 이원성적인지를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요? 진실과 거짓이라는 이원성이 작용하는 모든 해석들은 이원성적인 의식에서 생겨나게 됩니다. 종교적인 가르침들 간에 모순이 생기는 것도 이원성적인 의식 때문입니다. 이원성으로부터 벗어나면, 모든 비-이원성적인 종교들에서 말하는 내적인 가르침들 간에는 전혀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의 서두에서, 나는 진리와 - 하나님의 실체 - 이 진리에 대해 사람들이 지닌 정신적인 이미지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 바가 있습니다. 정신적인 이미지는 진리를 직접적으로 체험하지 못할 때에만, 필요한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해, 정신적인 이미지는 하나님의 실체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미지는 이원성적인 세력들에게는 비옥한 토양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력들은 하나님의 실체 속에는 존재할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즉 어둠이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 세계에서만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정신적인 이미지라는 세계 속에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며, 이러한 세상 속에는 모든 것이 우상(idol:허상)이며, 각인된 이미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모든 정신적인 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한다고 (요한복음 4:24)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어떠한 설명으로도 충분치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을 직접 체험하려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의식적인 자아는 창조주께서 확장하신 분신이므로, 여러분은 그러한 체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핵심적인 차이를 알 수 있나요? 하나님의 영을 잠시 힐끔이라도 보게 된다면, 어떠한 교리나 경전도 하나님에 대해 온전하고,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종교적인 가르침은 단지 도로의 표지판에 불과하며,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상, 어떠한 설명으로도 초월적인 하나님의 실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면, 하나의 표현이 유일한 참된 표현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이러한 깨달음은 종교에 - 자신이 믿는 종교와 타인들이 믿는 종교 모두에 - 비-이원성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초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느 도시를 가는 도중에, 그 도시까지의 거리가 100마일이라는 도로 표지판을 만났다고 상상해 보세요. 하지만 도로 표지판 주위에서, 기뻐하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게 되어, 이들에게 물어보고 나서, 이들이 이미 그 도시에 도착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마 여러분은 이것이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므로, 종교를 의미하는 도로 표지판이 유일한 참된 거라는 것을 놓고 싸움을 벌이는 것, 특히 비-이원성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면, 이들 모두가 동일한 방향을 가리킬 수 있기 때문에, 똑같이 어리석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즉 진리의 영을 직접 체험할 때까지, 비-이원성적인 방식으로 여러분이 좋아하는 표시를 따라, 계속 가기를 바랍니다.


내 말의 요지는 하나님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경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전은 단지 이미지만을 제공해줄 수 있을 뿐이며, 사람들이 그러한 이미지가 완벽하고, 오류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들은 필연적으로 그러한 이미지를 우상으로 둔갑시켜 놓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그러한 우상이 하나님인 것처럼, 이미지를 숭배할 것이며, 모든 이미지를 초월해 있는 영을 직접적으로 체험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경전의 목적은 - 비록 상승한 호스트들이 영감을 불어넣은 것이라 하더라도 - 하나님의 진리를 완전하게, 그리고 오류가 없이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진정한 목적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외적인 경전을 뛰어넘어, 외적인 설명 뒤에 숨어 있는 영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내면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스승들이 안고 있는 딜레마는 물질의 밀도가 너무 짙어, 사람들이 물질세계 너머에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초월적인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사람들에게 경전을 전해 야만 했으며,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가리키는 도로 표지판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경전이 지닌 주요한 목적은 목적지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체험을 하려는 열망을 일깨워줄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뿐입니다. 종교는 휴가의 목적지를 홍보하는 브로슈어와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브로슈어를 보고, 실제로 목적지를 향해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면, 브로슈어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인간의 에고는 진리의 영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가 없기 때문에, - 오직 의식적인 자아만이 체험할 수 있음 - 추락한 존재들은 사람들이 외적인 설명과 외적인 종교를 뛰어넘을 수 없거나, 뛰어넘도록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믿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외적인 종교가 사람들을 목적지로 데려다줄 것이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라이벌 의식과 전쟁을 불러오는 진짜 이유가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지구에 이렇게 많은 종교가 존재할까요, 그리고 모든 싸움을 종식시키기 위해, 하나의 뛰어난 종교가 탄생하지 못할까요? 자유의지와 이원성적인 의식 그리고 추락한 존재들의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유일한 하나의 종교가 태어날 수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종교를 만들어왔으며, 추락한 존재들도 다른 종교들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종교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가 비-이원성적인 가르침을 전했다고 하더라도, - 우리가 이따금씩 전했던 것처럼 - 이원성적인 마음 상태에 갇힌 사람들은 그것을 “유일한 참된 종교”로 바꾸어놓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이원성적인 가르침은 이원성적인 패권 다툼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상승한 호스트들은 이 행성에 유일한 하나의 종교를 태어나게 할 마음이 전혀 없으며,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의 종교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앞장에서, 나는 현재 지구가 배경이 서로 다른 다양한 영혼들을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길게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이러한 많은 그룹들은 사고방식이 아주 다르기 때문에, 이들은 다른 종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의 가르침이 지구에 사는 모든 영혼들의 관심을 끌게 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모든 영혼들을 집으로 데려다주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특히 어떠한 의식 상태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고안된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전체적인 목표를 이해하게 될 때, 동일한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다른 그룹의 영혼들은 다른 지침들을 받게 된다는 사실에 어떠한 모순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서로 다른 장소, 아니 차라리 서로 다른 의식 상태에서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다른 장소에서 출발한 사람들은 그들 모두가 동일한 목적지로 가고 있다 하더라도, 이들에게는 서로 다른 지도가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상승한 호스트들은 인류의 의식이 상승함에 따라, 과거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가르침을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이러한 까닭에 내가 이 책을 펴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이 오류가 전혀 없다거나, 다른 책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책은 순수한 계시(啓示)의 결과물이지만, 다른 모든 형태의 계시들처럼, - 주요 종교들의 경전에 기록된 모든 계시들을 포함하여 - 육화해 있는 한 개인의 의식을 통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메신저와 당시의 인류가 지닌 의식에 의해 어느 정도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진리의 영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외적인 가르침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사실, 어느 정도의 영향은 제약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가르침을 도로 표시판으로 인식하고, 최종 목적지를 향해 계속 나아가는 한, 어떠한 가르침도 여러분을 가로막지 못할 것입니다. 종교적인 갈등이 시작되는 시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둘러싸고 춤을 추었던 것처럼, 도로 표지판을 둘러싸고 춤을 추기 시작할 때입니다. 외적인 종교를 우상으로 바꾸어놓으려는 성향은 에고가 진리의 영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에고로 인해, 눈이 멀게 된 사람들은 모든 형태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초월적인 창조주를 섬기는 것보다는, 보이는 것을 섬기고 싶어 합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영적인 사람들이 진실로 알아야 하는 것은 다양한 종교들 간에 이원성적인 싸움을 계속하는 것은 전혀 무의미한 것입니다. 악마에게는 두 그룹의 종교인들이 똑같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로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영적인 사람들이 싸워야 할 적이 필요하다면, 이들이 싸워야 할 적은 이원성적인 의식과 인간 사회의 모든 방면에, 특히 종교에 이원성적인 의식이 미치고 있는 영향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 즉 다른 사람의 눈 속에 들어 있는 가시를 꺼내려고 하기에 앞서, 자신의 눈에서 들보, 즉 이원성적인 의식을 꺼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이원성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언젠가는 사람들이 모든 이원성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며, 따라서 누군가 혹은 어떤 것과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 대신에, 이들은 자신들의 영적인 자아들이 지닌 빛을 비추게 하는데 모든 관심을 집중해야 하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빛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어둠을 태우게 될 것입니다. 충분한 숫자의 영성인들이 자신들이 지닌 빛을 비추게 될 때, 이원성적인 세력들이 숨을 수 있는 어둠은 전혀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지구 행성에서 여러분이 해야 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