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하는 힘은 내가 진화적인 힘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을 더 큰 복합체로 나아가게 하지만, 단지 어떤 단계 혹은 범위 내에서만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혁신적인 도약을 통해, 척추동물이 창조되고 나면, 진화적인 힘은 그러한 동물들을 점점 더 복잡한 형태로 진화해갈 수 있도록 하며, 결국에는 인간과 아주 유사한 형태를 지닌 영장류들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명이 인간의 수준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또 다른 혁신적인 도약이 필요했으며, 그러한 혁신적인 도약은 영(Spirit)으로부터만 나올 수가 있습니다. 물질세계에 내재되어 있는 확장하는 힘은 진화적인 것이며, 그 자체만으로는 혁신적인 도약을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혁신적인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영적 세계로부터의 영향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 단계의 주기로 진입하고 난 이후에도, 혁신적인 도약을 하지 않는 모든 구조물은 물질 속에 내재된 수축하는 힘이 이러한 구조물들을 확실하게 해체함으로써, 물질의 빛이 불완전한 형태 속에 영원히 갇히지 않고, 원래의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혁신적인 도약이 일어났을 때, 진화적인 힘은 일정한 주기, 즉 날숨의 기간 동안, 작용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주기, 즉 들숨이 시작될 때, 다음번의 혁신적인 도약이 이루어질 때까지 상승하지 못한 모든 구조물들은 수축하는 힘의 지배를 받게 됨으로써, 붕괴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지구에서 (그리고 상승하지 못한 모든 구체 내에서),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육화하는 존재들이 지구를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존재들은 반-그리스도의 마음에 기초하여 구조물들을 만들 수가 있으며, 주기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그러한 구조물들이 존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복잡한 형태로 진화해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주기가 끝날 때, 그러한 구조물들을 만들어냈던 존재들은 원칙적으로 자신들이 지닌 제한된 의식 상태를 초월해야 하며, 따라서 더 좋은 구조물들, 즉 그리스도의 마음과 일치하는 구조물들을 창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존재들은 자발적으로 자신들이 창조했던 불완전한 구조물들을 없애고, 더 좋은 것들을 창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존재들이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창조한 구조물들은 수축하는 힘의 지배를 받게 되며, 결국에는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시공간이라는 속성, 즉 물질이 지닌 밀도로 인해, 이렇게 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게 되며, 존재들은 이러한 과정을 지연시킬 수가 있으며,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다루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최종적인 결과는 피해 갈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창조되었으며, 그 근원은 시작이며, 또한 끝입니다. 이 말은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기 마련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생명의 강이 전체(Allness)라는 바다에 도달함에 따라, 생명의 강과 함께 하지 않는 모든 것들은 결국에는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새로운 공동 창조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들이 지닌 창조력을 실험하게 되지만, 결국에는 우주의 학습장에서 마지막의 시험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실험의 단계는 공동 창조자가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실험해볼 수 있는 자유를 가진 날숨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의 시험은 공동 창조자가 자신의 상위 존재와 하나가 되어야 하는 들숨의 시작을 나타낸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구체가 창조될 때, 그 구체 속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실험할 수가 있으며, 이것이 바로 날숨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체가 상승하게 될 때, 들숨이 시작되고, 이때 구체와 관련된 모든 존재들은 무욕(selflessness:利他心)이라는 입문과정을 맞이하게 됩니다.

 

물질 속에 내재된 진화적인 힘이 모든 것을 팽창시킨다는 독특한 계획을 알 수 있나요? 나는 앞에서 재능을 증식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바가 있으며, 이것은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공동 창조의 능력을 그리스도의 진리에 맞게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여러분의 상위 존재와 영적 계보에 속해 있는 존재들은 여러분이 창조한 것을 증식시킬 수가 있는 것이며, 이에 따른 영향으로 인해, 여러분의 의식도 상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러한 증식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예전보다 더 큰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이용하여 공동 창조함으로써, 이원성으로 인해 여러분은 눈이 멀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영적인 스승과 접촉할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하고 있는 행위로 인해 모든 생명이 제약을 받게 된다는 사실도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의지 때문에, 여러분은 이것을 보도록 강요받지는 않겠지만, 물질 속에 내재된 팽창시키는 힘은 여러분이 창조한 것을 증식시키게 될 것이며, 따라서 여러분이 창조한 것도 더 커지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은 더 큰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예전의 자신이 더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여러분이 만들어낸 제약적인 결과가 보다 두드러지게 되고, 보다 쉽게 볼 수 있게 됨에 따라, 다행히도 여러분은 마음의 능력을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바람을 심는다면, 회오리바람을 거두게 될 것(호세아 8:7)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위에서 설명한 4개의 항목 혹은 힘들은 아버지, 아들, 어머니와 성령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제 반-그리스도의 마음에 사로잡혔던 첫 번째 그룹의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기로 합시다. 자유의지의 법칙으로 인해, 이러한 존재들은 분리된 정체성을 창조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이 살고 있는 구체에 상당량의 어둠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며, 이러한 어둠으로 인해, 이러한 존재들은 자신들이 구체와 관련된 나머지의 존재들과 분리되어 있다는 환상을 유지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원성적인 마음이 지닌 속성으로 인해, 이러한 존재들은 - 그 구체 속에 있던 공동 창조자들과 그 구체와 더불어 일하고 있던 천사들 모두 - 다른 존재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중요한 인물이라고 느끼고 싶어 했으며, 따라서 이들은 강력한 지위를 유지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부분적으로는, 우월해지고 싶은 욕망에 따라 살 수 있는 기회를 이들에게 제공해주기 위해서였으며, 따라서 결과적으로 이들은 그러한 기회를 충분히 누리고 난 후, 하나가 되는 길로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존재들은 구체 내에서 자신들이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러한 존재들은 수적인 면에서 보면, 극소수에 불과했으며, 이들이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통해 공동으로 창조하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이 지닌 실질적인 힘은 다소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 수가 없었지만,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닌 존재들은 분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있으면, 어떤 것에도 절대로 겁을 먹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도 하나님의 법칙과 권능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길을 잘못 들은 존재들은 자신들을 끌어올리려는 추진력에 의해 연소되었지만, 그 구체 속에 있던 대다수의 존재들은 구체 전체를 끌어올리는데 몰두했었습니다. 따라서 구체가 임계점(한계점)에 도달하여, 영적 세계의 진동으로 상승할 준비가 갖추어지게 되는 시점이 필연적으로 찾아올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이원성적인 의식이 더 이상 존재할 여지가 없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원성으로부터 생겨난 환상은 어둠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따라서 구체가 상승하게 되면, 빛의 강도가 너무 강해져서, 어떠한 어둠도 남아 있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전히 이원성적인 의식 속에 남아 있던 존재들에게는 이제 이원성을 버리고, 생명의 강에 합류할 수 있는 마지막의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자기 이익이라고 정의했던 것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유의지의 법칙에 따라, 그들이 지닌 환상이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강제로 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존재에게는 자신이 지닌 환상과 고차원적인 이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언제나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더 이상 진리를 부정하지 않고, 더 이상 환상에 집착하지 않는 진동 속으로, 어떤 존재를 강제로 데리고 갈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구체가 상승함에 따라, 이원성에 눈이 먼 존재들은 더 높이 상승하도록 강요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이원성적인 환상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직 두 가지의 선택만이 가능했습니다. 하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들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었으며, 또 다른 하나는 최근에 창조된 구체로 내려가는 것이었으며, 그 구체 속에는 충분한 어둠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환상을 유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사랑스러우며, 자비로운 하나님이시므로, 후자의 옵션이 효과가 있었으며, 이러한 존재들은 낮은 구체로 추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추락한 존재들은 홀로 추락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만들어냈던 의식도 - 독립된 실체(entity) - 그들과 함께 추락했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사용해서 이들이 창조했던 상부 구조(superstructure), 마음, 분리된 정체성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존재들이 추락해 있는 구체는 이제 독특한 상황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구체들에서는,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느 누구도 선택하지 않았던 선택사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통해, 어떤 것도 창조된 적이 없었습니다.

천사들은 균형 잡힌 방식으로 봉사를 계속했으며, 반면에 새로운 공동 창조자들은 스승과 고의적으로 분리되지 않은 채, 순수한 무지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반-그리스도의 마음에 기초한 어떠한 구조물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각각의 새로운 구체는 말하자면, 백지상태에서 새 출발을 했던 것입니다.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표현되지 않은 선택사항으로 남았으며, 새로운 존재들이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선택하도록 끌어당길 수 있는 어떠한 힘도 지니지 못 했습니다.

고의적인 무지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무지에 기초하여, 공동으로 창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순수한 무지는 어느 정도의 참된 지식은 지니고 있지만, 지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분야가 많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의적인 무지는 마음속에 있는 모든 지식이 이원성에 의해 왜곡되어 있으며, 따라서 참된 지식은 전혀 지니고 있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 악마는 “그 속에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요한복음 8:44)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첫 번째 존재들이 추락하고 난 이후, 새로 창조된 구체 속의 상황은 이전의 구체들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첫 번째 추락한 존재들은 새로 창조된 구체로 내려갔으며, 이원성적인 의식을 사용하여 그들이 창조했던 마음도 그들과 함께 추락했습니다. 이러한 마음은 이것을 창조했던 모든 개인들보다도 더 커지게 되었으며, 어떠한 자력적인 혹은 중력적인 끌어당기는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새로운 독립된 실체가 창조되었던 것이며, 생존본능의 표현으로써, 이 실체는 존재들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공격적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세력권 속으로 끌어당기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