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이기적인 행위 혹은 악한 행위를 저지르는 이유와 더 높은 선을 이루기 위해, 혹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옵션으로써, 그러한 행위들이 정당화될 수 있으며, 또한 실제로 필요한 것이며, 도움이 된다고 믿게 되는 이유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이 행성에 알려진 이래로, 이것은 인간이 생존하는데 있어, 참으로 핵심적인 수수께끼입니다.

따라서 이 수수께끼를 이해하는 것은 영적인 자유를 성취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악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 여러분이 지닌 영적인 자유를 명백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한 채, 그러한 행위를 범하도록 강요받고 있거나, 내몰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필요한 열쇠를 이미 여러분에게 제공해 주었습니다.


모든 것은 물질의 빛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물질의 빛은 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아니 차라리 의식입니다.


자각을 지닌 존재는 마음속으로 이미지나 믿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런 다음 마음의 힘을 이용하여, 그러한 이미지를 물질의 빛 위해 겹쳐 놓을 수가 있습니다. 물질의 빛은 의식을 지니고 있으므로, 물질의 빛 위에 올려진 것은 어떠한 형태든, 형태를 취할 수가 있습니다.


▶ 자각을 지닌 존재는 그리스도의 의식을 사용하여, 아니면 반-그리스도의 의식을 사용하여, 정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의식에 기초한 이미지는 모든 생명을 더 큰 것이 되게 함으로써, 모든 생명을 고양시키게 될 것이며, 이것은 삶 자체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이미지는 삶의 전진 운동, 즉 생명의 강과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에, 계속 유지될 수가 있습니다. 반-그리스도의 의식에 기초한 이미지는 모든 생명을 더 적어지게 함으로써, 기본적인 생명의 힘에 역행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러한 이미지는 결국 물질의 빛 속에 내재된 수축하는 어머니의 힘에 의해 산산조각 나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이미지가 이원성적인 의식을 통해 물질의 빛 위에 겹쳐지게 되면, 그러한 이미지가 곧바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이미지는 당분간 계속 존속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창조적인 노력에 따르는 결과들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존재들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려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것을 공동으로 창조하든, 여러분은 필연적으로 창조한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창조한 것에 대해, 한 단계 더 나아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의 빛이 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존재들이 창조하는 것은 자기만의 고유한 삶의 형태를 취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내가 앞에서 설명한 창조의 과정을 다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둠과 악이 존재할 여지가 전혀 없는 영적 세계가 존재하며, 허공과는 분리되어 있지만, 빛과 어둠이 혼합되어 있는 구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보다 낮은 구체는 영적 세계의 일부가 되기 위해, 상승의 과정에 돌입하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현재는 영적 세계가 되어 있는 일부의 구체들도 과거에는 오늘날 여러분이 살고 있는 구체와 아주 유사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구체들 속에 빛의 강도가 증가하게 되면서, 그러한 구체들 속에 있던 존재들은 내가 앞에서 설명했던 입문의 과정, 즉 순수한 무지를 극복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에 기초하여, 의식적으로 보다 높은 정체성을 창조해야 하는 입문의 과정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존재들 가운데 일부는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 대신에 고의적인 무지의 상태로 들어가, 반-그리스도의 마음이 지닌 이원성을 사용하여, 이것을 정당화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존재들은 삶의 목적과 하나가 되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 대신에 내가 생명의 강이라고 불렀던 생명 그 자체의 과정에서 벗어나, 분리된 정체성을 고집스럽게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창조의 초기부터, 자의식을 지닌 존재들은 항상 자유의지를 지녔으며, 따라서 그들은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비전에 따르지 않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몇 개의 구체들은 이러한 옵션을 사용하지 않은 채, 상승했지만, 일부의 존재들이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처음으로 선택했던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났을 때,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한 번도 표현된 적이 없었으며, 단지 어떠한 선택사항에 불과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통해 어떤 것도 공동 창조된 적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최초의 존재들이 그러한 선택을 함에 따라,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통해 어떤 것들이 창조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존재들이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보다 더 큰 것을 창조하게 되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전체는 개별적인 부분의 합보다 커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을까요?

이미 설명한 것처럼, 물질의 빛 속에는 모든 조직화된 구조물을 끌어당기며, 더 큰 것이 되게 하는 진화적인 힘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로 일어났던 것은 첫 번째 그룹의 존재들이 반-그리스도의 의식으로부터 어떠한 구조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구조물이 지닌 복잡성이 한계에 이르게 되자, 물질의 빛 속에 내재된 진화적인 힘이 그러한 구조물을 분리된 의식 상태, 즉 그 구조물을 창조한 존재들이 정의한 어떠한 속성들을 지니고 있는 별도의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존재들은 실질적으로 새로운 의식 상태,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개체(entity)를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이 새로운 형태의 “마음의 단위(mind unit)”는 필연적으로 진화적인 힘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마음의 단위는 기본적으로 어떠한 의식 단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새로운 개체가 자의식을 지닌 존재가 되었다는 뜻은 아니며, 단지 생존 본능을 지닌 기초적인 정체성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존 본능에는 번식하려는 힘, 즉 성장하고, 진화하려는 힘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보다 지각 있는 학생들은 내가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어머니의 수축하는 힘은 그리스도의 마음에 기초하지 않은 모든 구조물을 산산조각 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빛 속에 내재된 진화적인 힘은 모든 복잡한 구조물들이, 심지어 반-그리스도의 마음에 기초한 구조물들조차 진화하도록 만들게 됩니다. 따라서 이제 기본적인 생명력에 대해 보다 더 면밀하게 살펴보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한 명의 영적 존재로서, 여러분이 지구에서 해야 하는 참된 역할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창조주께서 허공 속에 어떠한 경계를 정하고 난 후, 허공의 중심부에 있는 특이점(singularity) 속으로 물러났을 때, 여러분이 살고 있는 형태의 세계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러한 특이점 속에는 표현된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떠한 구별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삶의 목적이 자의식을 지닌 존재들에게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 자의식을 지닌 존재들은 반드시 분리된 존재들로 출발해야 하며, 그런 다음 성장하여, 근원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어떤 것이 분리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차별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자기 자신을 두 개의 서로 다르지만, 보완적인 힘, 즉 확장하고 수축하는 힘,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으로 투사함으로써, 이러한 차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 시작과 끝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 - 이 두 개의 힘들이 상호 영향을 미침으로써 창조된 것입니다.


이 두 개의 힘들은 영과 물질이라는 극성으로 나타나며, 나는 이것을 전통적인 종교 용어와 결부시키기 위해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영은 물질의 빛 위에 여러 이미지들을 올려놓은 후, 여러 형태들로 표현하게 하는 자의식을 지닌 존재들로 상징됩니다. 이것을 직선적으로 - 따라서 부정확한 -  설명하자면, 숫자 8로 나타낼 수가 있으며, 숫자 8의 윗부분은 영을 그리고 숫자 8의 아랫부분은 물질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은 영적 세계를, 물질은 영적인 세계로 상승하지 못한 세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극성들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각각의 극성 속에도 또 다시 두 개의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각각의 극성은 기본적인 힘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영(Spirit)은 확장하는 힘을 상징합니다. 왜냐하면 이 힘은 영의 세계에서 근원적이며, 가장 강력한 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Spirit) 역시도 수축하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두 개의 힘은 다음과 같이 상호 작용하게 됩니다.


영의 확장하는 힘은 자기 스스로를 초월하는 힘으로, 모든 생명을 더 큰 것이 되게 합니다. 더 큰 것이 되게 하는 추진력으로 인해, 차별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추진력은 공동 창조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지닌 개체성을 표현하도록 내몰기 때문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러한 개체성은 더 복잡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 힘이 유일한 추진력이라면, 모든 생명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고, 차별도 곧바로 사라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공동 창조자들은 각자가 지닌 개체성을 서로 간에 모순되는 것으로 정의할 수가 있으며, 이렇게 되면 모두가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영의 수축하는 힘은 생명이 다양해지게 하는 한편, 이와 동시에 모든 생명을 끌어당겨 창조주의 목적과 하나가 되게 합니다.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똑같아지게 한다는 말은 아니며, 모든 생명이 동일한 방향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차별성은 서로를 상쇄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고양시키게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확장하는 힘은 생명에게 더 큰 것이 되게 하는 추진력을 제공해주며, 수축하는 힘은 생명의 운동이 내가 생명의 강이라고 불렀던 일관된 흐름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추진력을 한 곳으로 모으고, 조정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모든 생명을 더 적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크게 되는 방향으로 움직여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두 개의 힘이 상호 작용을 하게 됨으로써, 순환운동, 즉 어떤 영적 가르침에서는 하나님의 들숨과 날숨이라고 부르는 운동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 말이 창조주께서 날숨에서 세상을 창조하시며,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후, 들숨에서 그 세상을 없애버리는, 그러한 순환을 조금도 진전되지 않은 채, 영원히 반복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창조와 파괴 사이를 오락가락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께서는 끝없이 확장하는 운동, 즉 생명의 강을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은 들숨 속에서 파괴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전의 상태를 초월하기 위해, 세상은 더 높은 단계로 빠르게 올라서게 됩니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 위해, 다음 그림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이 그림은 지그재그 라인으로, 날숨과 들숨, 창조와 파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게 되면, 이것은 오락가락하는, 즉 세상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삶은 2차원적인 선이 아닙니다. 지그재그 라인은 옆면을 통해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나선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그림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전후(前後)의 움직임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상향 나선 속의 코일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전후의 움직임은 이제 상승 운동을 이루게 되며, 들숨 속에서 더 높은 단계로 상승하기 위한 토대를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어떤 것도 낭비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주기(cycle:고리)는 더 높은 주기를 위해 준비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마음에 새겨두고, 확장하고 수축하는 힘이 어떻게 물질세계에 작용하게 되는지 살펴보기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