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앞장에서 살펴보았던 몇 개의 개념들을 하나로 합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스승과 분리되었던 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해 보다 명확한 그림을 그릴 수가 있습니다. 새로운 학생은 지구의 어린아이들처럼, 제한된 자의식과 정체성을 지니고 시작하게 됩니다. 학생이 성장하게 됨에 따라, 정체성을 쌓아가게 되지만, 그 정체성 역시도 지구의 아이들처럼, 환경에 따른 영향을 심하게 받게 됩니다.

 

지구의 아이들이 주로 두 가지의 요소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듯이, 학습장에 있던 학생들도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가지 요소란 부모와 동료들입니다. 에덴동산의 학생들에게는 내가 부모의 역할을 했었다는 것은 이미 설명한 바가 있으며, 동료란 물론 다른 학생들이었습니다. 학생은 두 가지의 방향 중에서 한 방향으로 정체성을 개발할 수가 있습니다. 학생이 성장하면서, 스승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고, 아니면 성장하면서, 스승으로부터 더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지구의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부모에게 더 가까워질 수도 있으며, 반면에 또 다른 학생은 동료들과 더 가까워질 수도 있는 것과 아주 흡사합니다.

 

우리는 이제 미묘하지만, 중요한 지점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말했던 것처럼,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것은 하나됨의 길이었으며, 그럼으로써 학생들은 나와 하나가 되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지구인들에게는 이것이 마치 학생들이 나의 노예나 로봇이 되거나, 아니면 내 뜻에 복종해야만 한다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가 된다는 것이 똑같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꼭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설명한 것처럼, 새로운 공동 창조자는 하나님의 존재가 개체화한 분신이며, 이 존재는 분리된 정체성을 지니고 시작하여, 그다음 하나님의 완전 의식으로 성장해갈 목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동 창조자는 창조주의 존재와 다시 뒤섞이지 않고, 창조주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독특한 개별적인 존재인 공동 창조자가 창조주와 똑같아진다면, 개별적인 존재는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공동 창조자는 단지 자신이 나왔던 창조주의 존재 속으로 다시 섞이게 될 것이며, 이것은 마치 태풍이 잠잠해지면, 파도가 바닷속으로 섞이는 것과 아주 흡사합니다.

 

하지만 창조의 진정한 목적은 오랜 투쟁을 거치면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고차원의 의식 상태에 도달한 후에도 개별적인 영혼은 그냥 단순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창조의 목적은 개체성이 불멸이 될 때까지 성장하는 것이며, 이 말은 개체성이 계속해서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창조주의 존재로부터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식으로 향해 가는 길은 여러분을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도록 인도해주는 발자취를 따라가야 합니다.

 

자의식을 지닌 존재가 자신의 개체성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근원과 하나라는 의식을 성취한다면, 그 존재는 하나님의 의식을 성취한 것입니다. 그 존재는 혼자의 힘으로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창조주에게 돌아가도록 인도해주는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 영혼은 자신의 상위 존재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여 창조주에게까지 이르는 영적인 계층구조와도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공동 창조자에게는 이것이 어려울 수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새로운 공동 창조자들은 스승과 하나라는 중간단계를 거치게 되는 것입니다.

 

길의 메커니즘(작용 원리)은 단순합니다. 길의 목적은 자기 자신보다 더 크다고 여기는 어떤 것과 하나가 되게 함으로써, 여러분이 지닌 아주 좁고, 자기중심적인 정체성에서 벗어나, 성장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에 따라, 결국에는 자기감의 경계를 넓힐 수 있게 될 것이며, 마침내 하나님이 여러분보다 더 크지 않으며, 혹은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 자신(Self)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에덴동산의 학생들에게 이 하나됨의 길을 전해주었습니다. 새로운 학생이 창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은 거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먼저 창조주와 하나가 되기에 앞서, 그들이 상호 교류할 수 있는 창조주의 대리인과 하나가 되도록 했습니다. 먼저, 나와 하나가 됨으로써, 학생은 자신의 상위 존재와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 영적 세계의 여러 단계들을 거쳐, 마침내 창조주와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학생이 분리된 존재로 출발했기 때문에, 학생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분명히 스승과 먼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더 큰 존재와 하나가 되는 것을 체험하고 나면, 심지어 그 보다 더 큰 존재와,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면서 창조주와 하나가 되는 것도 훨씬 더 쉬워지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나요? 많은 학생들은 - 현재의 의식 상태에서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 자신들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분리된 존재로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바로 이것 때문에, 학생이 자기 자신을 분리된 존재로 여기게 되는 것이며,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자신의 근원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여러분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부터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설명했던 것처럼, 창조주께서는 첫 번째의 구체 속으로 자의식을 지닌 존재들의 형태로 자기 자신을 투사하셨습니다. 그 후 이 존재들은 두 번째의 구체 속으로 자신들의 분신들을 투사했으며,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어 물질 우주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나타난 분리된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물질 우주 위에 존재하는 영적인 존재가 확장한 분신입니다. 하지만 이 존재 역시 더 높은 세계의 존재가 확장한 분신이며,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지게 됨으로써, 마침내 창조주 자체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모든 생명은 이러한 존재의 고리의 일부이며, 하나가 되는 길은 여러분의 자기감을 점진적으로 확장하여, 여러분을 창조한 존재와 하나가 되고, 계속 그렇게 함으로써, 마침내 창조주에게까지 이르게 되며, 마침내 하나님의 의식을 성취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존재들의 고리, 즉 자신의 분신들을 하위의 구체 속으로 투사했던 영적인 계층구조의 마지막 고리로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최고의 가능성은 궁극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이러한 존재의 고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의미감과 목적의식을 성취하는 것이며, 또한 외로움과 버렸다는 느낌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더 큰 전체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렇게 될 수가 있으며, 여러분은 그러한 전체 속에서 진실로 보람과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창조주를 포함하여, 존재의 고리 상에서 여러분의 위에 있는 모든 영적인 존재들은 여러분이 그러한 느낌을 가지기를 바라며, 지속적인 고통만을 가져다주는 분리의 상태에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부모”는 여러분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여러분을 자신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될 때에만, 여러분은 자신이 사랑으로 온전히 봉인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 자신이며, 여러분의 상위 자아(Higher Self)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 있던 학생들에게, 나 마이트레야는 존재의 고리 상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던 대리인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존재의 고리 자체를 볼 수가 없었으며, 따라서 그들의 가진 기회는 첫 번째 단계로서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이었으며, 그리고 난 후, 다음 단계의 존재와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구에 존재하는 보다 성숙한 많은 영적인 구도자들이 이 행성에서 보게 되는 불완전한 영적인 스승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을 보면서, 이러한 사람들은 그러한 참된 스승들과 하나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추론하게 될 거라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해할만하지만, 이 책이 가진 목표가 여러분에게 대안, 즉 자신의 그리스도 자아와 하나가 되고, 반-그리스도 의식을 초월해 있는 상승한 스승들과 하나가 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외적인 스승과 메신저를 뛰어넘어, 에고가 지닌 이원성을 벗어난 영적인 스승과 직접적으로, 내면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접촉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존재의 고리에서 여러분 위에 있는 존재와 하나가 되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면, 마음이 내키지 않게 하는 그것은 틀림없이 에고라는 사실을 말해주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에고는 의식적인 자아가 분리를 이겨내고, 하나가 되면, 자신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육체적인 스승이나 메신저가 여러분이 직접적이고 내적인 관계를 구축하도록 도와줄 수가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스승으로부터 배우고, 하나가 되는 길에서 산증인이 되어주는 이러한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도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점을 숙고해보기 바랍니다. 따라서 스승에게 주의를 기울이기 바라며, 심지어 이러한 스승은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에고의 과제는 여러분의 마음 둘레에 닫힌 상자를 만들어내게 하는 것이며, 이 상자를 부수기 위해, 여러분은 반드시 관념의 틀에서 벗어난 어떤 것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관념의 틀 속에 존재하는 한, 그 너머의 세계를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상자 밖에 존재하는 다른 사람이 여러분의 스승이 될 수도 있으며,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영적 공동체가 추구하는 주요한 가치들 중의 하나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지구의 아이들이 성장할 때, 아이들은 하나의 정체성에서 다음의 정체성으로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이렇게 되면, 이전의 정체성은 죽고, 새로운 정체성이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정체성이 죽고, 또 다른 정체성이 태어나는, 분명히 인식할 수 있는 사건이지만, 아이들은 지속적인 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변화를 좀처럼 눈치채기조차 힘이 드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있던 어린 학생들도 이와 아주 유사했으며, 아주 제한된 정체성에서 훨씬 더 정교한 정체성으로 점진적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하지만 지구의 아이는 결국에는 어떠한 정체성의 단계에 이르게 되며, 이 단계에서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이 외적인 요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기의 정체성을 의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자신이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한 이것을 의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점이 바로 아이가 자기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게 되는 시점이며, 또한 어른이 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이상적인 시나리오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며, 많은 지구인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또한 자기 스스로를 의식적으로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아도,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에덴동산에 있던 학생들이 성숙해짐에 따라, 의식적으로 낡은 정체성을 죽게 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지구에서 십 대의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변화처럼, 극적인 변화를 보이기에 충분했으며, 학생들은 광범위한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일부의 학생들은 어린 시절의 정체성을 고수하려고 함으로써, 변화를 늦추려고 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어떠한 변화도 일어날 필요가 없는 체하면서, 변화에 역행하고, 낡은 정체성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에덴동산은 매우 사랑스러운 환경이었으며, 나는 학생들의 자유의지를 충분히 존중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쌓아갈 정체성의 종류에서뿐만 아니라 우주 학교에서의 최종 시험을 치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나는 그들에게 많은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의 법칙에 따라, 학생은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자립하게 되는 지점에 도달하는데 무한한 시간이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이 점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해왔으며, 따라서 우리는 다음 장에서 이것에 대해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요지는 책임을 맡고 있는 스승으로서, 내가 학생들과 대면해서, 더 이상 중요한 선택을 미룰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어야 했던 시점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택은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극에서 햄릿에 의해 표현되었듯이, 사느냐 아니면 죽느냐의 선택입니다.

 

결국 학생은 삶의 길과 죽음의 길, 즉 더 커지게 되는 길 혹은 더 적어지게 되는 길, 하나됨의 길과 분리의 길, 참된 길과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그 길의 끝은 죽음에 이르는 길 사이에 하나의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책임을 맡고 있는 교사로서, 그러한 선택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나는 학생들과 대면해야만 했으며, 일부의 학생들이 선택을 거역하게 되는 위험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 대신, 학생들은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을 수는 있었으며, 그렇게 됨으로써 그 학생들은 나와 분리되었으며,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지만, 우리는 먼저 자유의지에 대해 일반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 오해들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