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그리스도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극성을 형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자 합니다. 이 둘은 서로 보완적인 힘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아버지의 유일한 아들이며, 반대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며, 우주 전체를 완성하는데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창조주께서 자신의 후손들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셨을 때, 선택사항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근원적으로,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이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자의식을 지닌 존재들이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사용하고자 선택할 때에만, 일시적으로 실체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그러한 존재들에 의한 선택을 통해서만 힘을 얻게 됩니다.

여기에 미묘한 점이 있으며,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려울 수가 있습니다. 형태의 세계에 존재하는 어떠한 것도 어머니의 빛을 사용하지 않고는 창조될 수가 없으며, 이 어머니의 빛은 창조주 자신의 존재로부터 창조된 것입니다. 하지만 물질의 빛은 공동 창조의 능력을 지닌 존재가 부여하는 형태는, 어떤 형태든지, 취하게 될 것입니다. 자유의지 때문에, 존재는 어머니의 빛을 이용하여, 창조주의 목적과 법칙에 맞지 않는 것들을 구현할 수가 있습니다.

그 존재는 오로지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이용함으로써만, 이렇게 할 수가 있으며, 이러한 반-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인해, 그 존재는 하나님의 법칙과 어울리지 않는 옵션들을 상상하고,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이러한 것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통해서는 행할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나요? 존재는 마음을 이용하여, 정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런 다음 이러한 이미지를 물질의 빛 위에 중첩시켜 놓음으로써 창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적인 이미지를 그리스도의 마음이 지닌 비전에 따라 창조한다면, 자기 자신과 다른 형태의 생명을 해치게 될 이미지는 만들어낼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로지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으며, 이러한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전체와의 분리로부터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제약적인 구현물들은 확장하고 수축하는 힘들을 균형 잡히지 방식으로 사용할 때에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두 개의 힘들을 불균형한 방식으로 사용하게 될 때, 이 두 개의 힘들은 반대되는 것이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통해, 두 개의 기본적인 힘들은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바뀌게 되며, 서로를 상쇄시키게 됩니다. 하지만 두 개의 힘들이 서로 반대된다 할지라도, 물질 우주에서 어떤 것을 창조해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는 아직도 어둠이 남아 있기 때문에, 불균형한 구현물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균형 잡히지 않은 모든 구현물들 속에는 긴장감이 내재될 것이며, 이로 인해 그러한 구현물들은 결국 분해되고 말 것입니다.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통해 창조된 것들은 일시적이며,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을 해야 하는 구현물들은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불균형한 구현물들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재창조가 있어야 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며, 이렇게 되면 여러분은 자신이 창조한 창조물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불균형한 방법으로 돈을 모을 수가 있으며, 돈을 모았던 방법과 동일한 수단을 사용하여 그 돈을 강탈하려고 하는 사람들로부터 그 돈을 지키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모든 시간을 사용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 말은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통해 창조된 모든 것들은 단지 겉으로만 보일 뿐, 환상이나,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 자신의 실체, 즉 어머니의 빛으로 창조되었지만, 그것들이 비록 어떠한 모습을 지니고는 있지만, 하나님의 완벽한 비전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빛은 진실로 하나님의 실체이므로, 당초의 순수한 어머니의 빛으로 돌아가, 창조계와 조화를 이루는 형태를 취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무리 불완전하고, 추하거나, 혹은 악하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잠재력은 결코 사라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악과 관련된 가장 나쁜 거짓말은 악은 영원하며, 상황이 너무 안 좋아, 어떠한 힘도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상황이 아무리 나쁘다 할지라도, 그러한 상황은 언제나 초월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존재는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분리된, 즉 하나님과 반대되는 정체성을 창조할 수가 있습니다. 의식적인 자아는 창조주께서 확장하신 것이므로, 여러분은 언제나 제한된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존재가 아무리 악해 보인다 하더라도, 어둠 속에도 창조주의 핵심, 불꽃(spark of light)이 존재하며, 따라서 근원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은 결코 사라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스승으로서, 반-그리스도의 의식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내 입장을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반-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인해, 지구 행성과 인류가 지닌 집단적인 세계관이 아주 심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반-그리스도의 마음에 대한 대안(代案)을 결코 체험한 적이 없으며, 설사 이러한 체험을 했다 하더라도, 체험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 의식을 이해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려울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반-그리스도의 마음속에 내재된 모순을 본다는 것이 어려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반-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필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 있으며, 이것이 정상적이며,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지구에 진리를 가져오고자 하는 영적 스승들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진짜 진리를 대개는 거부하게 됩니다.

불가능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나는 시도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에 마음이 끌린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직관적인 재능들을 사용하는 법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능들을 계속 사용하게 된다면, 내가 설명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내 말을 뛰어넘는 미묘한 진리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두 개의 기본적인 힘들을 두 개의 분리된 힘들로 표현해왔습니다. 이 두 개의 힘들은 서로 보완적이며, 전체를 형성한다고 설명했지만, 이것이 뜻하는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됨보다는 오히려 분리에 기초한 세계관을 통해, 모든 것을 바라보는데 여러분이 아주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불멸의 존재들은 깨달음을 성취했으며, 이것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투명함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두 개의 기본적인 힘들을 분리된 힘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실체, 즉 창조주의 보완적인 발현(complementary manifestations)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속에는, 두 개의 힘들이 반대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가능성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 자신과 반대되는 것일 수가 있겠습니까?

성경에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오로지 그리스도의 의식을 의미하는 독생자 (요한복음 1:18)를 통해서만, 아버지, 즉 창조주를 알 수가 있습니다. 반-그리스도의 마음으로는 형태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인 창조주를 알 수가 없습니다.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확장하고, 수축하는 힘을 벗어나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이 두 개의 힘들을 반대되는 것으로 보게 되며, 이들 뒤에 숨어 있는 일관된 원리를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그리스도의 마음에서 보면, 두 개의 반대되는 것들에 의해 모든 것이 정해지게 되며, 이 반대되는 것들은 서로와 관련하여 상반되는 것으로 정해지게 되며, 고차원적인 실체나 이러한 실체의 표현과 관련하여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반대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며, 하나는 다른 하나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모든 것들이 반대되는 것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반-그리스도의 마음이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대할 수는 있지만, 이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반드시 반대되는 것을 가져야 하는 상대적인 이원성 가운데, 하나님을 단지 하나의 측면으로 보게 되고, 자기 자신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측면으로 보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선의 반대되는 것은 반드시 악마와 악이 되어야 하며, 이 말의 의미는 그 둘이 전체를 완성하는데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반-그리스도의 마음에게는 악이 하나님처럼 실재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파생되는 직접적인 결과는 반-그리스도의 마음속에는 절대적인 진리, 혹은 나뉠 수 없는 진리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리라는 개념은 반드시 반대되는 것을 가져야 합니다. 이 말은 진리란 진리 아닌 것과 관련하여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미묘한 내용으로, 직관적인 숙고를 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속에서는, 진리는 하나이며,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나님의 법칙들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법칙들이 실재하며, 일관되고, 절대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개념이 하나님의 실체와 일치한다면, 그것은 진실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실체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실하지 않은 것입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잘못 해석될 여지도 없으며, 불분명한 데가 없으므로, 무지의 베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나님의 실체를 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나이며, 절대적이고, 나뉠 수 없는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진리가 나누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실체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정의되느냐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반드시 반대되는 것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진리는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상대적인 진리를 의미하는 것이며, 절대적인 진리는 반대되는 것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있는 진리는 하나님의 실체에 따라 정의되지만, 반-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있는 “진리”는 하나님의 실체로부터 벗어난, 즉 하나님의 실체와 단절된 세계관에 기초하여 정의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나님의 실체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에, 진리를 정의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단지 하나님의 실체를 체험하며, 이것과 하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정신적인 이미지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나님의 실체를 체험할 수 없으므로, 모든 것들에 대해 정신적인 이미지를 반드시 만들어내야 합니다.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나님의 실체를 볼 수 없으므로, 진리와 비-진리를 정의하게 됩니다. 반-그리스도의 마음이 “진리”라고 보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물에 대한 상대적인 진리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절대적인 진리를 인식하지만, 반면에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진리”를 상대적으로 정의하며, 그런 다음 그 진리를 절대적이고, 전혀 오류가 없는 상태로 격상시키게 됩니다.

이것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나요? 일부의 학생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바꾸려고 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더 이상 순수한 무지에 기초하여 정당화시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이야기했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고의적인 무지에 기초하여 그렇게 하려고 했으며, 고의적인 무지로 인해, 그들은 그러한 행동을 계속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속에서는 그러한 변명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위가 삶에 도움이 되느냐, 도움이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의적인 무지는 반-그리스도의 마음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진리와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구심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은 진리가 상대적인 개념, 즉 정해진 조건들 내에서 반-그리스도의 마음에 의해 정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실체를 체험할 수 없는 중간지대가 존재하며, 따라서 불확실, 무지, 속임수 그리고 거짓말이 존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실체를 체험할 수 없다면, “실체”는 정신적인 이미지에 불과하며, 마음은 이러한 이미지를 왜곡시켜, 믿고자 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떠한 정신적인 이미지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실체를 직접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직접적인 체험을 하지 못하므로, 정신적인 이미지 외에는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순수한 무지의 상태에 있을 때에는, 다소의 그리스도의 진리를 보지만, 많은 “무지(no knowledge)”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어느 정도의 정신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들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으며, 그것들을 진정한 지식으로 대체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고의적인 무지 상태에 있을 때에는, 알지 못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그 대신에, 체험하지 못한 실체에 대해 정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게 되며, 그것들을 실체 그 자체보다도 더 실재하는 상태로 격상시키게 되며, 따라서 하나님의 실체를 직접 체험하려고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순수하게 무지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자신들의 지식을 확장하려고 노력하게 되며, 이러한 사람들은 가르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순수한 무지 속에 있는 사람들은 작은 상자 속에 살지만, 그 상자는 열려 있습니다. 고의적인 무지 속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매우 큰 상자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상자는 닫혀 있습니다. 닫힌 상자는 무한한 하나님의 실체를 담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