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심상복 특파원]

지난 5월 말 영국 BBC방송은 이라크군에 포로로 잡혔던 미 여군 제시카 린치 일병 구출작전은 연출된 혐의가 짙다고 보도했다.

린치가 치료받고 있던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병원 의사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 병원에는 이라크군이 전혀 없었는데도 중무장한 미군 특공대가 야간에 병원을 급습, 린치를 데리고 간 것은 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었다.

AP통신도 이 병원 의사 약 20명을 인터뷰한 결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당시 미 국방부는 병원 밖에서는 언제든지 전투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최근 자서전 '나도 군인이다'를 내놓으면서 린치가 입을 열었다.

"나의 시련을 군 당국이 조작한 것은 잘못이다.

" 특히 당국이 자신의 구출과정을 필름에 담아 TV에 여러 차례 내보낸 게 잘못이었다고 비판했다.

진짜 교전상황이었다면 그걸 비디오로 찍을 여유가 과연 있었을까. 그녀는 TV에 나와 "군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만들어 알리는 바람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녀의 '배반'을 접했을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부 장관의 심정은 어땠을까. 린치가 포로로 잡히기 전 탄약이 다 떨어지고 부상할 때까지 적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고 전했던 미 언론들은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렸을까. 그녀가 "총 한발도 못 쏘고 엎드려 기도했었다"고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군과 국민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한 미국 정부의 필요에 의해 전혀 다른 인물로 조작된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씌워주는 명예를 내 것이 아니라며 과감하게 벗어던지는 용기는 신선했다.


심상복 특파원 simsb@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