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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마음으로 정약용 선생의 기다림을 받들며..    <  남해경님 글입니다. >

        
자찬묘지명에 다산의 새로운 호 사암이 등장하는 까닭

정약용, 그의 호는 일반적으로 다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산만이 그의 호인 것은 아니다. 그는 다산 외에도 열수(洌樵)‧철마산초부(鐵馬山樵夫)‧여유병옹(與猶病翁)‧다산초부(茶山樵夫)‧탁옹(籜翁) 등을 호로 사용하였다. 정약용 선생이 다산을 자신의 호로 삼게 된 까닭은 그의 유배지가 다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세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호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사암 (俟菴) 이다. 그럼 사암 (俟菴)이 그의 호로 된 사연은 무엇일까 ?


사암이 그의 호로서 소개되는 곳은 그의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에서 이다. 자찬묘지명이란 자신이 죽음에 대비해서 스스로 자신을 위해 미리 써 놓는 묘지명이다. 정약용선생이 남긴 묘지명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광중본이고, 다른 하나는 집중본이다. 전자는 자신의 관에 함께 넣기 위해 쓴 것이고, 후자는 보다 긴 것으로 자신의 문집에 포함시키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바로 이 자찬묘지명 서두에서 자신의 호로 다산이나 다른 호가 아닌 사암을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묘지명에 넣은 호라면 남달리 부여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무덤은 열수(洌水) 정약용(丁若鏞)의 묘이다. 본 이름은 약용(若鏞)이요, 자(字)는 미용(美庸), 또 다른 자는 용보(頌甫)라고도 했으며, 호는 사암(俟菴)1)이고 당호는 여유당(與猶堂)1)인데...”


사암이라는 말에서 사(俟)는 사전적 의미로 "기다린다", "크다"의 뜻이고, 菴은 "맑은 대쑥", "암자", "나무가 우거진 모양"을 뜻할 때 사용한다. 그러니 두 글자의 뜻을 조합하면 사암이란 “기다리는 암자”이거나 “크는 대쑥”이거나 하는 뜻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약용 선생이 모슨 옹翁이니 부夫니 하는 말이나 유배지가 아닌 말을 호로 사용할 때에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전통시대의 고전에 근거하여 그 뜻을 취했다고 봐야 맥락이 정확할 것이다.


그것은 논어의 “백세이사성인이불혹(百世以俟聖人而不惑)” 즉 “뒷날의 성인을 기다려도 미혹함이 없다” 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데, 바로 용례에서도 바로 ‘기다림’의 의미가 있다. 그렇다. 사암의 핵심적인 의미는 정약용이 암(菴)이라는 글자를 통하여 자신을 무엇으로 형상화하였건 간에 바로 “기다린다” 는데 있다.


그런데 기다린다면 무엇을 누구를 기다린다는 것인가 ? 그는 왜 기다려야 했나 ? 그리고 그것이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


정약용선생은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두가지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하나는 규장각 학사로서 다양한 벼슬을 거치며 정조임금의 총애를 받았지만 정적들의 견제를 받아 정치적으로 그 뜻을 펴지 못하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유당전서로 알려진 5백여권이 넘는 책을 썼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5백여권의 책이 모두 신변잡기용이 아니라 절반이상이 오늘날 철학 담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경학에 관한 책이어서 입을 딱 벌리지 않을 수 없게 하며, 그 나머지도 법정에 관한 서적이어서 여유당 전서 5백권은 단지 쓴 책의 양으로만 접근해서는 낭패를 보기가 십상이다.


그런데, 이 두가지 이미지는 하나로 연결되어 우리에게 어떤 정치적 상상을 가능하게 해 준다. 그는 정치적으로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였지만 자신의 이루지 못한 뜻을 학문과 시책의 양 수준에서 책으로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쯤되면 그가 자찬묘지명에서 써 넣은 호 '사암'의 의미까지 동시에 연결하여 해석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시대에서 가능한 최상의 모습을 학문적 수준에서 궁구하고, 시책으로 정리하여 책으로 집대성하였으며, 그리고 나서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존재로 자신을 자리매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그 기다림의 대상은 누구인가 ? 그것은 바로 사암의 뜻을 이어받을 후세가 아닐까. 그 후손은 아무러한 후손이 아니다. 앞서 인용한 100세 후의 성인을 기다려도 한 점 미혹됨이 없다는 말에서 보듯 사암이 기다리는 대상은 자신의 경학적 성취를 이해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역량과 뜻을 갖춘 후세일 것이다.


동시에 그 말은 자신의 시대에 실행하지 못한다 해서 슬퍼할 것도 없다는 위안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짐작된다. 물론 후대의 성인이 있어 자신의 저작들을 조명된다 하더라도 그 타당성을 의심치 않는다는 확신의 표시로도 충분히 읽힐 수 있지만 당시대에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는 현실에 직면하여 자신의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학문으로써 자신과 시대의 절망을 극복하고자 하였던 다산의 인간적 고뇌와 초인적 의지를 함께 감지할 수 있다.  


다산이 <자찬묘지명>을 지은 때는 선생의 60세 되던 해로서 정조임금과 이별한 지 20여년이 지난 뒤였다. 선생은 무엇보다도 지난 60평생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시작의 관점에서 이 묘지명을 지었는데, 그가 '사암'이라는 호를 자신의 묘지명에 사용하기로 정한 것은 이러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여 행한 특별한 결정과 의미부여에 따른 것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 나는 건륭(乾隆) 임오년(1762)에 태어나 지금 도광(道光)의 임오(1822)를 만났으니 갑자(甲子)가 한 바퀴 돈 60년의 돌이다. 뭐로 보더라도 죄를 회개할 햇수다. 수습하여 결론을 맺고 한평생을 다시 돌려 내가 금년부터 정밀하게 몸을 닦아 실천한다면 명명(明命)을 살펴서 나머지 인생을 끝마칠 것이다. 그리고는 집 뒤란의 자(子)의 방향 쪽에다 널 들어갈 구덩이의 모형을 그어놓고 나의 평생의 언행(言行)을 대략 기록하여 무덤 속에 넣을 묘지(墓誌)로 삼겠다. ”


그러나 정약용 선생인들 어찌 자신의 고독한 작업을 탄식조차 없이 이겨낼 수 있었겠는가. 다산이 유배에서 해제된 후 3년째인 해에 정언(正言) 한익상(韓益相)에게 보낸 편지에 “저술한 책들을 가지고 돌아왔건만 3년이 지나도 누구 함께 읽어 줄 사람은 없다”라고 탄식한 바 있는데, 이는 바로 자신의 시대를 개혁적으로 집대성하는 대작업에 나선 선생의 외로움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자신 자찬묘지명에서 자신의 작업의 뜻을 “육경사서(六經四書)로써 자기 몸을 닦게 하고 일표이서(一表二書)로써 천하 국가를 다스릴 수 있게 하고자 함이었으니, 본(本)과 말(末)이 구비되었다고 하겠다”고 하였지만 “알아주는 사람은 적고, 꾸짖는 사람만 많다면 천명(天命)이 허락해 주지를 않는 것으로 여겨 한 무더기 불 속에 처넣어 태워버려도 괜찮다”고 한 바도 있다.


이런 정약용선생에게 남인의 정적인 노론의 직각(直閣) 김매순(金邁淳)의 다산의 매씨상서평(梅氏尙書平)에 대한 평가는 다산의 작업이 얼마나 혼신의 힘을 기울인 역작이었는가를 증거해 준다.

“...한편으로는 공벽(孔壁)1)의 어지러움을 올바르게 밝혀낸 원훈(元勳)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주자(朱子)를 업신여기는 일을 막아낸 경신(勁臣)이다. 유림(儒林)의 대업(大業)이 이보다 더 클 수가 없도다. 아득하게 먼 천년의 뒤에 와서 온갖 잡초가 우거져 있는 구이(九夷)의 가운데서 이처럼의 뛰어나고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지 않으랴”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나 20세기 초엽 정인보 선생은 정약용선생의 대업적을 “정치적 유서”를 의미있게 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이해하면서 경학적 담론과 법정적 실천학에 대한 궁구를 통하여 학문에서부터 바른 정치의 기초를 세우고자 한 것이라 통찰하고,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가망히 없음을 통감한 까닭이라 깊이 헤아린 바 있다.


  “ 선생의 경학(經學:六經四書)과 법정(法政:一表二書)을 맞달아 보면, 그래도 법정(法政)이 더 센 듯하니 ‘以之修己’의 수기(修己)도 기(己)를 수(修)함보다 기(己)를 수(修)하게 한다 함이 전부를 통하여 더욱 나타나는 바이다. 그러므로 선생의 경학을 곧 법정으로 보는 것이 실로 선생의 진수에 가장 가까울 것이요, 또 선생으로서 이같이 경학상의 대저(大著)를 남김이 그 미의(微意) 있는 곳이 있으니, 대개 조선(朝鮮)의 수백년간 안이나 밖이나 부란(腐爛)하여 어찌할 수 없음은 전혀 실(實)을 알지 못함에 인(因)함이요 그 실(實)을 알지 못함은 그 연유―또 학문상 착오에 있음일새 이같이 학문에서부터 발란반정(撥亂反正)의 실(實)을 거(擧)하자 함이었다. ······ 경학으로써 학문상 발란(撥亂)을 희망함은 이는 또 정치(政治)에 대한 유서(遺書)나마 이 시대의 심지(心地)를 환성(喚醒)하지 아니하고 그조차 가망(可望)이 없음을 통감(痛感)한 까닭인 줄 안다 ”


정약용선생의 기다림의 맥락에서는 정인보 선생은 바로 기다림의 대상이지만 정인보 선생 뿐만 아니라 “멀리 백마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린 이 육사 모두 일제하의 암흑기를 거쳐오고 있었다는 점에서 다산선생처럼 후세를 기 다리는 입장에 있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탁월한 역량에도 불구하고 다산의 뜻은 국가나 사회전체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헤아려 진 바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국가적 국민적 역량으로 표출될 수가 없었다.  


이제 다시 정인보 선생 이후 긴 세월이 흘렀으며, 일제로부터의 광복후 60 년째를 맞이하였다. 그간 민족은 전쟁을 치렀고,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으며, 근대화는 이룩하였지만 그나마도 IMF사태를 통하여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재식민지화의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과연 지금은 소수이나마 일제시대 정인보 선생이나 이육사 선생과 같은 선각자들의 존재 조차 의문시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특히 전통과의 괴리가 심각하고, 자신의 학문이 있는 지 조차 의심스러운 현 상황에서 과연 누가 있어 정약용 선생의 ‘뿌리학문’과 ‘기다림’이라는 그의 최후의 정치적 행위를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어 줄 것인가 ?


사암선생이 후세의 성인을 기다린다고 할 때에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있 었다면 바로 세상의 개벽 그 자체일 것이다. 그 시대와 지금 이 시대의 차이는 너무도 커서 사암의 혼신의 노력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게 되어 버린 점을 유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다산의 시대와 오늘의 시대간의 격차에 대한 평가와 해석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사암의 시대에 서구는 조선에 다가와 있었으며, 사암의 집대성은 이미 서구와 조선 혹은 동양과의 첫 만남의 종합이 라 평가할 수 있다. 이미 사암선생은 자찬묘지명에서 자신은 두마음을 먹지않았다고 하였지만 적어도 마테오릿치의 <천주실의>를 알고 있었고, 주자학을 초월론적 이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호(嗜好)개념을 통하여 인간본성에 대한 궁구를 경험적인 수준으로까지 확장시키는데 성공했다.


사암의 시대가 조선이 서구와 조우한 첫 물결이었다면 소위 세계화의 맥락 에서 IMF이후의 지금 이 시대는 제2의 물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암은그 첫 물결을 주체적이고 창조적으로 소화내 내었지만 그것을 자신의 시대에 펼 수는 없었다. 이제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종합의 마지막 기회일 것으로 보이는 제2의 서세동점의 시대에 과연 우리는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하여 다산의 삶과 기다림을 이어받아 비록 사암의 시대 보다는 행위할 수 있는 능력은 구비하고 있어 보이지만 그러한 능력의 지침이 되어 줄 제2의 종합을 이룰 수 있는 지적인 역량과 결의를 갖추고 있을까 ?


이제 새로이 출발하고자 하는 시대소리가 사암선생의 오랜 “기다림”의 의미 를 이어받아 이러한 공백을 채우는데 있어 작지만 의미있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완전을 기다리기에는 우리의 형편이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은 생각도 하고 동시에 행동도 해야 할 때이지 넋놓고 준비만 해야 할 때가 아닌 것이며, 큰 준비를 위한 기회의 확보를 위해서도 어느정도의 희생을 치르더라도 당장에 실천할 것은 실천해야 하는 상황에 와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정약용선생의 호 사암을 되새겨보는 뜻이 있을 것이며, 시대소리가 온 필진과 독자 여러분의 마음을 모아 그 지원 속에 우리의 미래를 담아 있는 의미있는 터전이 될 수 있기를 갈구하는 바이다.



남해경, 시대소리 편집인

남해경님 감사드림니다...     빛의 지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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