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의 비전과 MD는 양립할 수 없다
[긴급제언]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상)

정욱식 기자    

북한 핵문제를 틈타 미국이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참여 여부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국방부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국방부가 은밀히 MD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는 증거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MD 참여가 노무현 '정부' 차원에서 결정된 것은 아니다. 정책적 결단을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MD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패트리어트 최신형인
PAC-3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SAM-X 사업, MD체제의 정보자산으로 이용될 E-X 사업, KDX-Ⅲ
구축함에 장착될 요격미사일 도입 등을 담고 있는 국방중기계획에 대한 전면 재검토 지시가 되어야 한다.

즉, 국방중기계획 가운데 '진정한' 자주국방 비전을 담고 있는 사업은 승인하되, MD체제 편입을
가속화할 사업은 불허·유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노후한 나이키 미사일 등 방공망의 보완이 불가피하다면, PAC-3를 도입하는 대신에
한국형중거리대공미사일 개발 사업인 KM-SAM 사업을 본격 추진하는 것도 검토가 가능하다.
조기경보통제기(AWACS) 도입 사업인 E-X 역시 이 사업이 한미 합동 MD 작전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사전에 검토한 이후에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정부가 그리고 있는 21세기의 국가 비전과 MD 참여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치밀하게 분석하는 일이다. 부시 행정부 스스로 MD를 21세기 외교안보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MD 참여 여부는 단순히 전력증강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국가전략' 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 정부의 비전과 MD 참여는 양립할 수 없어

노무현 정부가 주창하고 있는 국가비전의 핵심적인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면, 최대 현안이 되고 있는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본격적인 평화·번영의 시대를 열고, 그동안 군사안보에
초점에 맞춰진 협소한 안보관을 확장해 경제안보까지 고려하는 '포괄 안보'를 지향하는 동시에
자주국방 역량을 강화하며, 이를 바탕으로 경제, 안보, 문화 등에서 한국이 동북아에서 주도적,
중심적 역할을 하는 '동북아 신구상'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책 '목표'만을 놓고 볼 때, 가히 21세기 한국, 아니 통일시대에 대비한 한반도의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적, 민족적 비전이 공허한 정치적 구호로 끝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책 목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의 개발 및 '곤혹스러운 문제'를 정책 목표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21세기 동북아 질서의 가장 큰 변수들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MD에 대한 선택은 우리의 미래를 가늠할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치밀한 전략적 사고의 부재를 드러내면서 속절없이 MD에 편입되는 것은 한미동맹 강화라는
'성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한미동맹이 부시 행정부의 군사패권주의를 강화시키는 도구로 전락시키면서,
MD망을 중심으로 한 사실상의(virtual) 한-미-일 삼각동맹체제의 출현에 복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더욱 중요하게는 앞서 언급한 노무현 정부의 '화려한' 정책 목표들을 '공허한'
정치적 구호로 전락시키고 말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군사적 자신감을
뒷받침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출범하자마자 클린턴 행정부 때 상당한 성과가 있었던
대북협상을 중단하고 MD 구축을 선언한 부시 행정부는 북한 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이를 명분으로
삼아 MD 조기 구축 및 한국, 일본 등 동맹국 포섭에 나서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MD 배치를 받아들이고 이에 참여한다는 것은,
부시 행정부로 하여금 '북한위협론' 카드에 더욱 집착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대북한 무력사용 옵션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MD를 '방어용', 혹은 '억제력'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표면적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부시 독트린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핵·비핵 공격 능력의 강화, MD 구축, 방위산업 인프라의 활성화로 구성된 새로운 삼중점(new triad)의
가장 큰 목적은 미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선제공격을 할 수 있는 힘을 갖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MD는 미국의 선제공격시 상대방의 보복공격을 무력화겠다는 의도를 깔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갖춘 미국이 상대방의 보복공격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어력까지 보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의 무력사용이 수월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부시 행정부가 공언하고 있듯이 북한도 선제공격 대상에서 결코 예외가 아니다.

미국 주도의 MD 구축과 정밀타격 능력이 강화돼 북한의 미사일 전력이 상당 부분
무력화(無力化)된다고 해서 결코 우리가 안전해질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북한의 남침 가능성보다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의 선제공격에 의해 발발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MD의 위험성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부담 높이고 자주 국방 낮추고

노무현 정부가 MD 참여를 추진하면 안되는 두 번째 이유는 정부가 새로운 안보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는 '포괄 안보'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군사 중심의 안보관에서 탈피해 경제까지 포괄한 새로운 안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MD 참여는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야기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 예측할 수 있는 MD 참여 비용만도 엄청나다. PAC-3, 이지스 전투체계 및 스탠다드 미사일, AWACS 등 관련 무기체계 도입 비용만도 5-6조원에 달할 뿐만 아니라
대개 무기체계의 운영유지비가 구매가의 3-4배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MD 관련 무기 획득 및
운영·유지비만 해도 20조원 안팎이 쓰일 것이다.

또한 미국이 동북아 MD의 허브 기지로 삼으려고 하는 오산 등에 추가로 제공될 공여지 토지 비용도
수조원대에 달할 것이다. 우리 안보에 하등의 도움이 안되는 MD에 수십조원을 날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돈먹는 하마'가 될 것이 확실한 MD 참여는 경제 발전 및 교육·사회복지 등을 위해
사용될 예산을 갉아먹는 한편, 진정으로 자주국방에 필요한 재원을 고갈시킴으로써,
경제, 복지, 교육, 국방 등을 포괄한 21세기형 안보 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자주국방의 맥락에서 볼 때도, MD 참여에 따른 문제점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노무현 정부는 자주국방이 돈과 무기로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주국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위협 인식의 자주성과 전략 및 작전 기획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즉, 미국이 갖고 있는 무기를 우리도 갖고, 미국이 사용하던 무기를 우리가 대신 사용한다고 해서
자주국방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위협이고 그 위협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군사력 건설이 필요하다면 어떤 무기체계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한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자주국방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MD 참여가 자주국방은 고사하고 미국과의 군사적 종속관계를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북한을 선제공격하겠다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고 MD를 통해 이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전략이 '강력한 억제력'에 기반을 둔
우리의 안보전략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없다.

부시 행정부가 중국을 21세기의 사실상의 주적으로 보고 사전에 중국을 제압하겠다며 MD를 중심에
둔 한-미-일 삼각동맹체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 미래의 우리의 안보전략과 부합할 수는 없다.
요격 미사일이라는 팔과 다리를 갖더라도 눈과 귀, 그리고
두뇌를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MD의 독자적 운용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발상이다.

한마디로 위협의 정의, MD의 필요성, MD를 중심으로 한 신군사전략 및 작전계획 등이 전적으로
미국으로부터 비롯된 상황에서 MD 참여와 자주국방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짜'가 아니라 수십조원대의 예산 지출이 따른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자주국방 비전 및 비용 대(對) 효과를 고려할 때, 국방비를 엄청나게 늘리지 않는 한 정작 필요한
전력증강 사업이 'MD의 희생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MD 참여는 노무현 정부가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켜 내놓은 평화번영 정책은 물론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 신구상'을 공염불로 만들 것이다.
이는 정부 차원은 물론 국가와 민족, 더나가 동북아의 비전과도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중장기적인 여파까지 고려해 치밀하게 분석·전망해야 할 부분이다.
국가와 민족의 백년대계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