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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너희 사회에서 말하는 식의 "일"이라면, 대다수 고도로 진화된 존재(고진재)의 문화들에는 그런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행하는 과제와 활동들은 오로지 각각의 존재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고, 무엇을 자신의 가장 고귀한 표현으로 보는 가에 좌우된다.

고진재에게는 "천한 일"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고도로 진화된 존재들의 세계에서는 너희 사회라면 "천하다"고 규정했을 일을 되려 가장 영예롭게 여긴다. 사회가 존재하고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되어져야 하는 일상 과제들을 수행하는 고진재들은, 전체에 대한 그들의 봉사로 가장 높은 보수를 받고, 최고의 호칭으로 불리는 "일꾼들"이다. 내가 여기서 "일꾼들"에 인용부호를 단 것은, 고진재들에게는 이것이 전혀 "일"이 아닌, 자기 성취의 최고 형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소위 일이라는 자기 표현을 둘러싸고 창조해낸 발상과 체험들은 고진재 문화의 일부가 아니다. 고도로 진화된 존재들은 "고역(苦役)"과 "초과근무", "압박감" 따위의, 스스로 만들어낸 체험들을 선택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들은 "앞서거나", "최고가 되거나" "성공하려" 하지 않는다.



고진재에게는 너희가 규정하는 식의 "성공"이라는 개념자체가 낯설다. 그것의 대립물인 실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이유로 인해.
그들은 "가치를 가져오는 일을 하는 것"을 성취로 규정한다. "가치 있든 아니든, '명성'과 '출세'를 가져오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그다지 예리한 관찰력을 발달시키지 못했다. 고진재들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what's so를 보고, "도움되는 것"what works을 한다. 인간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대단히 많다.

고진재들은 교사나 성직자들이 "도덕적으로 옳아서" 그들을 존경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 사회가 가기로 선택한 곳을 전제할 때, 그것이 "도움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그들은 너희 세계라면 공동체라고 불렀을, 그런 형태로 모여서 산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들은 소위 "도시"나 "국가" 같은 변형판들은 포기했다.
"도시들"이 너무 커져서 모여 사는 목적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목적을 손상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집단화된 공동체 대신에 "군집한 개인들"을 만들어냈다.

너희는 생존과 안전을 이유로 자신들을 여러 국가들로 나누었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다.
고도로 진화된 존재들은 국가별로 묶이길 거부한다. 그들은 그냥 한 국가만을 믿는다. 너희는 그들이 "신의 가호로 한 국가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종족과 모든 종들이 진화하기 마련이고, 진화―무엇이 자신에게 도움되는지를 관찰하고 그것에 행동을 맞추는 목적이 되는―는 한쪽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다른 쪽 방향에서는 멀어지기 마련이라는 데 있다. 그것은 합일을 향해 움직여가면서 분리에서 멀어진다.
이건 놀랄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합일은 궁극의 진리고, "진화"는 "진화를 향해 가는 운동"의 또 다른 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화"를 진화의 첫 번째 지도원리로 사용하지 않고, 순전히 관찰에만 근거해서 원리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그냥 자신들 모두가 '하나'임을 관찰하고 나서, 이 첫 번째 지도 원리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뒷받침하는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영적 메커니즘을 고안해냈다.

"수치"나 "수줍음" 따위의 개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진재로서는, 그럴 필요가 없을 때도 너희가 왜 몸 전체를 가리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더 멋있게"보이려고 가린다는 발상으로는 도저히 연결시키지 못할 것이다. 고진재에게는 알몸 자체보다 더 아름다운 건 없다. 따라서 고진재는 몸을 어쨌든 더 기쁘게 하거나 매력적으로 만들려고 그 위에 뭔가를 걸친다는 발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고진재들로서는 너희가 "건물"이나 "집"이라 부르는… 상자 속에서 산다는―인생의 많은 시간을 낭비하면서― 발상 역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고진재들은 자연환경 속에서 산다. 자신의 환경을 창조하고 조절하고 보살피는 고도로 진화된 문명들에서는 극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특별히 환경이 우호적이 아닐 때 상자 속에 머무는 경을 빼고는.

고진재들은 자신들이 환경과 '하나'고, 자신들이 환경과 공간 이상을 함께하고 있으며, 나아가 상호의존 관계까지도 함께 한다는 걸 이해한다. 따라서 고진재들은 너희가 자신을 부양해주는 것을 왜 해치고 파괴하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환경이 자신을 부양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너희는 관찰 기술이 대단히 한정된 존재라는 것이다.

의사전달communication과 관련해서 고진재는 너희라면 감정이라 불렀을 측면을 의사전달의 으뜸차원으로 사용한다. 고진재들은 자기 감정은 물론이고 남의 감정까지 안다. 누구도 감정을 숨기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자기 배신으로 보는 고진재들로서는, 감정을 숨기고 나서는 아무도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감정은 영혼의 언어다. 고도로 진화된 존재들은 이것을 이해한다. 고진재들의 사회에서는 서로를 진실되게 아는 것이 의사교류의 목적이다. 따라서 고진재들은 너희 인간들이 "거짓말"이라 부르는 개념을 이해하지도, 이해할 수도 없다.
진실 아닌 것을 전달함으로써 바라던 것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하는 건, 고진재에게 껍데기뿐인 승리여서, 그것을 전혀 승리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고진재에게는 그것이 패배를 질질 끄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 문화와 고도로 진화된 문화의 차이는, 고도로 진화된 존재들은.
   1. 충분히 관찰하고
   2. 진실되게 교류한다는 데 있다.
그들은 "도움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 이것은 너희 행성의 삶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개선시켜줄, 작지만 심오한 변화다.

그런데 이것은 도덕 문제가 아니다. 고진재 사회에는 어떤 "도덕적 의무"도 없다. 이것 역시 거짓말이 그러하듯, 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개념의 하나다. 그것은 그냥 기능의 문제, 무엇이 이로운가의 문제다.

고진재들에게는 너희가 이해하는 식의 도덕 같은 건 없다. 어떤 집단이 고안한 일련의 가치들에 순응해서 개인들이 살아야 한다는 식의 발상은 "도움되는 것"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무너뜨릴 것이다. 자신에게 적절한 행동방식과 적절하지 않은 행동방식을 심판하는 궁극의 유일한 주체는 개개인이라는 그들의 이해를.
고진재 사회에서는 언제나 무엇이 도움되는가, 무엇이 제 기능을 하고, 모두를 이롭게 하는가를 중심으로 논의된다. 인간들이 말하는 "옳고 그른" 것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인간 사회는 자기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을 "그르다"고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고진재라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결론이다. 왜냐하면 어떤 공동체 속에 있든, 어떤 무리 속에 있든, 감정의 엄밀한 자각이야말로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에서 말했듯이, 고진재라면 절대 감정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 차원에서도 옳음"을 안다.

사실 고진재로서는 어떤 경우에도 감정을 숨길 수 없다. 고진재는 다른 존재들에게서 그들의 감정이 뚜렷이 실려 있는 "진동"―사실상의 파장―을 읽는다. 너희가 방안에 들어섰을 때 이따금 "공기를 느낄" 수 있듯이, 고진재는 다른 고진재가 무엇을 생각하고 체험하는지 느낄 수 있다.

고진재 사회에는 "소유"나 "상실"의 개념이 없다. 그들은 자신이 물질 존재가 아니라 물질로 있는 존재임을 이해한다. 또한 그들은 모든 존재가 같은 근원에서 나왔고, 따라서 '우리 모두는 하나'임을 이해한다.

고진재들은 너희 문화가 "죽음"이라 부르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진재들은 자신들이 영원히 산다는 것과, 그건 자신이 어떤 형상을 취하는가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안다.


몸과 환경을 보살피는 법을 배운 고진재들은 보통 한 신체로 무한히 오래 살 수 있다. 하지만 물질 법칙과 관련된 어떤 이유로 고진재의 몸이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고진재는 그냥 기꺼이 몸에서 떠나는 것으로 그것의 물질 요소를 '전부의 전부'에게로 되돌려 "재활용"할 수 있게 한다. (너희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이해하는 것이 이것이다.)

고진재 사회에는 "학교제도"가 없다. 단지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와 "도움되는 것"을 일깨워주는 교육과정이 있을 뿐이다. 아이들은 자신을 낳은 사람이 아니라 노인들에 의해 길러진다. 그렇다고 그 과정 동안에 아이들이 굳이 자기 "부모"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부모"는 원할 때마다 얼마든지 함께 있을 수 있고, 선택하는 시간만큼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다.

너희라면 "학교"라고 불렀을 것(사실 "학습 시간"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에서, 이이들은 자신들이 배워야한다고 듣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습득하고 싶어하는 기술들을 골라 자기 나름의 "교육과정"을 설정한다. 따라서 동기부여를 최고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어서, 삶의 기술들을 쉽고 빠르고 즐겁게 습득한다.

삼각률(사실 이것들은 명문화된 "규율들"로 있는 게 아니지만, 너희 언어에서 찾아낼 수 있는 최상의 용어가 이것이다)은 어린 고진재들에게 "주입되지" 않고,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어른들"의 행실을 통해서 거의 삼투방식으로 습득된다.

고진재 문화의 어른들은, 아이들이란 다른 사람들에게서 본 대로 행동하기 마련임을 이해한다.

고진재라면 자기 아이들이 하지 말았으면 하는 행동들을 되려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 장치 앞에 아이들을 여러 시간 동안 앉혀놓지 않을 것이다. 고진재로서는 그런 식의 결정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설사 한 고진재가 이렇게 했다해도, 그런 다음 그 사진들이 자기 자식들의 갑작스런 탈선 행동과 관계가 있음을 부정하는 것 또한 그들로서는 똑같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고진재들은 자신들이 보는 모든 것을 인정한다. 반면에 다수의 인간들은 자신들이 보는 것을 부정한다.

인간들은 텔레비전이 자기 아이들을 망치고 있음을 보면서도 그것을 무시한다.

그들은 몇천 년 넘게 자신들의 종교가 대중의 행동방식을 바꾸는 데 완전히 실패했음을 관찰하면서도, 이 또한 부정한다.

그들은 정부들이 도와주기보다는 억압한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그것을 무시한다.

그들은 질병을 예방하는 데 재원의 10분의 1을, 질병을 관리하는 데 재원의 10분의 9를 소모하는 건강보장 제도―실제로는 질병보장 제도인―를 보면서도, 건강하게 행동하고 먹고 살 수 있게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문제에서 어떤 그럴듯한 진전도 이루지 못하는 게 이윤동기 때문임을 부정한다.

그들은 화학약품이 든 사료를 억지로 먹여 길러진 뒤 도살당한 짐승 고기를 먹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보면서도, 자신들이 보는 것을 부정한다.

너희 종족들 다수가 부정 속에 살고 있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 모두가 관찰한, 눈이 시릴 만큼 명백한 사실들을 부정할 뿐 아니라, 자기 눈으로 관찰한 것들까지도 부정한다. 나아가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고, 결국에는 신의 진실까지 부정한다.

반면에 고도로 진화된 존재들―너희 중 일부는 이렇게 되어가고 있다―은 아무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고, "도움되는 것"을 확실히 안다. 이런 단순한 도구들을 사용할 때, 삶은 단순해지고, "과정"은 칭송된다.

너희는 실현의 시간을 눈앞에 둔, 깨어나는 종이다.

여기서 들은 이야기들 때문에 너희가 낙담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체험, 더 큰 현실을 위한 토대는 이미 놓여졌고, 이 모든 것이 그냥 그것을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이제 문을 지나 걸어갈 준바가 되었다.
   이 대화는 무엇보다 그 문을 열어 젖히기 위한 것이었다. 우선 그것을 가리키기 위해서.

보이는가? 저기 있다!
진리의 빛이 그 길을 영원히 비춰줄 것이기에. 여기서 너희가 받은 것이 바로 그 진리의 빛이다.

   이제 이 진리를 집어들고 그것에 따라 살아라.
   이제 이 진리를 부여잡고 남들과 함께하라.
   이제 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한없이 더 귀히 여겨라.


자료출처 : 신과 나눈 이야기 3
저자 : 닐 도달드 월시
역자 : 조경숙
출판사 : 아름드리
정가 : 15,000원
조회 수 :
1569
등록일 :
2002.08.29
15:10:01 (*.43.131.168)
엮인글 :
http://www.lightearth.net/free0/30337/9b0/track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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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ung

2002.08.29
16:13:49
(*.215.233.151)
+++++++++

+ 고진재 ---그이상 의 참생명환경 시스템--

++스무이셩 시티++

+고진재--그이상의 참존재---극참셩존---

++곧 현실화 됩니다+++

++스무이셩 틀판++의 참세상-프로젝트++로써--
셩.합.존.

++++++++++++++

lightworker

2002.08.29
16:37:49
(*.207.21.79)
셩님! 덕분에 오랜만에 웃고 갑니다. =]

감사해요. 나마스떼 =]

홍성룡

2002.08.29
17:19:33
(*.55.43.23)
인간의 의식이나 문명체계에 있어서 만큼은 진화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차라리 이에 대한 대안으로 "더 낫다" 라는 말을 쓰기를 저는 여러분들에게 권유합니다.

스승

2002.08.29
17:20:29
(*.217.141.137)
아이고 제자야
내 너를 찾아 여기저기 쫒아다니는데

여기서 또 보는구나!

이제 그만 도망다니고

내가 마련해둔 병원에 가자꾸나

내 널 지극정성으로 보살필터

걱정말고 가자꾸나!

에이 하늘은 저런 syoung같은
훌륭한 제자를 내게 주고
왜 다시 저지경으로 만들었는지

통탄을 금치 못할지경이다!
애석하구나!

노상만

2002.08.30
04:29:09
(*.51.17.156)
나마스떼 ㅋㅋ 모두에게 축복이 진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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