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예전에 여기서 '관점의 선택'이라는 글을 연재(?)했었고,
   최근에는 '스타시스가 상징하는 것'에 대한 글을 썼으며 그 외에 몇 개의 글을 더 썼습니다.
   어떤 표현하는 것의 즐거움에 의해 쓴 것이며, 익명성이 필요했습니다.
   몇 년 동안 관심을 가졌던 웹 사이트 중 하나였으나 이제는 어떤 시기가 되어
   더 이상 올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제는 웹 사이트나 단체의 활동이
   필요가 없음을 느끼는데,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동안 어느 단체에 속한 적도 없습니다.
  
   마지막 글을 쓰며, 여러분 앞으로의 여정에 '인간을 크게(널리) 이롭게 하리라'는 한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차원이란 주어지는 환경의 차이이지 마치 계급 사회의 상하 구분과 같은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4차원이든, 3차원이든, 100차원이든 그것은 여러분 인식의 문제이며
   유일한 사실은 그러한 자유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는 근원의 아이디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주관과 해석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 역시 창조의 아이디어 덕분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으려고 답을 얻기 위해 고생을 합니다.
   그러나 답을 얻기 위해 매달리는 것은 잘 하지만, 그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나 사고 패턴을
   바꿀 생각은 잘 하지 않지요. 창조의 가장 빠른 움직임과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은
   결국은 같습니다. 이것은 사고 방식에는 정답이란 없다는 것이며, 또 매달려서 얻어내는 유일한
   정답은 없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이란 정답이 아닙니다.

   그러니 어느 누가 여러분의 스승이 될 수 있고, 여러분에게 답을 줄 수가 있겠습니까?

   우주관이나 세계관은 취향과 선호의 문제입니다.
   종교관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그런데 "내가 정답이다!"의 주의에 의해
   우주는 시끄러워진 것입니다.

   우주는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일 뿐이며,
   이것은 사고 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무엇인 진실인가, 하고 쫓아다니고 답을 구하려고 하지만,
   그 사고의 패턴을 바꾸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정답이 좋으면, 이렇게 한번 바꿔 보세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곧 정답이라고 말이지요.
   이 보다 더 완벽하고 명료한 정답이 어디있습니까?
   여러분이 구해야 하는 것은 이 정답을 위한 질문들입니다.
   그것이 우리 여행의 목적인 게죠.

   진리는 정답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정답의 존재를 어디서 배웠습니까?
   여러분의 사고 체계는 어디서 배웠습니까?  

   고행하지 마세요. 어렵게 매달리려고 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충분히 고생스러웠습니다.
  
   천부경 같은 것을 "정답이다!"하고 내 놓는 사람이
   얼마나 유아스럽게 보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정말로 그렇게 봐야 합니다.
   정답이라고 하는 사람을 가장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바보같아 보이는 사람이
   의식의 대기권을 벗어나서 바라보면
   정말로 훌륭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벗어나야 할 곳은 -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
   문장의 세계입니다. 단어와 단어가 이어져 뜻을 만들어내는
   문장은 여러분을 가두기 쉽습니다.

   깨달은 자는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말이나 글이 아닌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과 글이 진리를 표현하는 데에 한계를 지닌다고 하지만
   진리가 어떤 도구로 하여금 표현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겠지요.

   다만, 말과 글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새로운 환경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문화의 정체성이 지금보다 더 길어지면 우리는 확실한 권태기에 이를 것입니다.
   외계 존재들 중엔 그래서 지구를 찾는 존재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 깨달은 자가 벗어난 것은 문장화 된 사고의 틀이며
   지금 우리 환경에서 그 사람은 확실히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깨달은 자든, 외계인이든,
   여러분 바깥에 있는 것은 아무도 없습니다.
   상위 하위, 뭐 이런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한 높고 낮음, 구분과 차별의 이미지는
   그렇게 이루어진 사회상들을 끄집어내거나 상상해 내기 바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가야할 곳은 마음의 근원입니다.
   창조의 근원이란 언제든지 이를 수 있는 곳이며,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해서 그렇지요.

   '전쟁'하면 무엇이 생각납니까?
   바로 어떤 단어가 떠오르고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내용이 불러와지는 것이지요.

   왜 그래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절대로 사고의 유일한 방식이 아닙니다.

   *

   채널링 메시지들을 읽고 여러분 중에 예술가들이있다면
   소설이나 영화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응용을 하면 저작권 문제에서 자유로울 것입니다.  
   채널링 자체가 그만큼 모호한 것이니까요.

   실로 베스트셀러 작가 중엔 채널링 메시지를 응용해서
   스토리를 짜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 사람 깨달은 사람입니다.

   이 얘기를 하는 것은 그것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해서
   받아들여야 할 지 거부해야 할 지의 문제로 다루는 것은
   쓸모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존재하는 것은 저마다의 가치가 있잖아요?
   그 가치를 건져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흥미로운 것이지요.
   채널링 메시지가 허구의 옷을 입고 소설처럼 전해졌다면
   그 가치를 쉽게 건져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허구에서 더욱 더 많은 것을 건지니까요.
   그것의 진실유무가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앞이 가려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괴롭히고 있는 문제의 유일한 해결법은 사랑 밖에 없습니다.
   또한 외계 존재들을 사랑해 주시고 서로 존경하는 관계가 되었으면 합니다.
   많은 메시지들이 존재에 대한 평가자료를 담고 있는데,
   모두가 우리와 같다고 생각하세요.
   우주선 같은 건 그냥 4호선 전철과 같은 것입니다.
   과학은 어떤 수준의 것이라도 놀라게는 하지만 감동을 주지는 않습니다.
   영성이 그 안을 채우고 감정을 자극하고 표현하는 것들이 제대로 어울릴 때
   그것은 완성이 되는 것이지요.
   기술만 앞서는 존재들은 실로 우리에게 존경심을 가질 수 밖에 없지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창조의 방향은 여러분 인식과 사고 환경으로 결정됩니다.
   전환기 이후에는 바로 이것이 여러분 삶을 결정할 것입니다.

   되도록이면, 문장화된 사고 패턴에서 벗어나
   자상함과 너그러움, 밝음을 조금이라도 이루셨으면 합니다.

  
   기억하세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그리느냐
   이것이 여러분의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