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류시화


  오래 전, 인간이 순수하고 대지가 순결했던 시절에는 동물들과 새, 물고기, 곤충, 식물들이 모두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주위 만물과 평화롭게 지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나 그들의 거주 지역이 대지 전체로 넓어져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련한 동물들은 점점 좁은 공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인간들은 활과 창, 칼, 낚싯바늘, 입으로 불어서 쏘는 독화살 등을 발명했으며, 고기와 가죽을 얻기 위해 몸집이 큰 동물들과 새 물고기들을 마구 잡기 시작했다. 또한 개구리와 곤충들처럼 몸집이 작은 생명체들을 아무 생각 없이 짓밟아 나갔다. 마침내 동물들은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대회의를 열었다.
  맨 먼저 회의를 연 것은 덩치가 큰 곰들이었다. 늙은 흰곰이 회의를 이끌었다. 인간들이 어떤 식으로 자기들의 친구를 죽이고, 살을 먹고, 가죽을 벗겼는가를 각자 이야기한 뒤 곰들은 당장에 인간들과 전쟁을 치르기로 결의했다. 인간들이 무슨 종류의 무기를 사용하느냐고 누군가 묻자, 모든 곰이 외쳤다.
  
'그야 활과 화살이지!'
'그럼 그것들은 무엇으로 만들었지?'
곰들은 대답했다.
'구부린 나무와 우리의 힘줄을 뽑아 만들었지.'
  곰들은 자신들도 똑같은 무기를 만들어 인간들에 대항해서 싸울 수 있는가 시험해 보기로 했다. 한 곰이 아카시아 나뭇가지를 구해 오고, 다른 곰은 나머지 동료들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시켜 자신의 힘줄을 내 놓았다.
활과 화살이 완성된 뒤, 첫 번째 곰이 일어나 화살을 쏘았다가 뜻밖의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한 영리한 곰이 발톱을 깎자고 제의했다. 그래서 한 곰이 두 발의 발톱을 깎은 뒤 두 번째로 활을 당기자 활은 정확히 목표물을 꿰뚫었다. 모든 곰이 기쁨의 환성을 내질렀다. 이때 늙은 흰곰 추장이 일어나 말했다.
'나무를 오르기 위해서 우리에겐 긴 발톱이 필요하다. 이미 우리 중 한명이 활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는데, 우리 모두 발톱을 깎아 버리면 결국 굶어죽고 말 것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준 발톱과 이빨을 믿는 것이 더 옳은 일이다. 게다가 세상의 곰이 모두 활과 화살을 들도 거세게 나서면 우리 역시 불필요하게 많은 인간들을 죽이게 될 것이다. 인간들이 발명한 무기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곰들뿐 아니라 대지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동물들이 이처럼 대회의를 열었으나 결국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자연이 준 것에 만족하는 것이 더 옮은 방식이며, 인간들의 무기는 자신들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동물들은 흰눈을 머리에 인 할아버지 산 아래 모여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인간들도 생존을 위해 식량과 옷이 필요하다. 그들도 때론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죽여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간 이후부터는, 우리의 동료를 죽이기 전에 그들은 먼저 우리에게 진심으로 양해를 구해야만 한다. 그러면 우리가 순서를 정해 그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 기꺼이 우리 자신을 내어줄 것이다. 또한 자신들의 필요를 위해 우리를 죽인 뒤에는 인간들은 반드시 감사의 기도를 올려야 한다.'
그러면서 동물들은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만일 인간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이 동물을 하나씩 죽일 때마다 우리가 그들에게 한 가지씩 질병을 퍼뜨리자.'
그전까지는 인간들에게는 전혀 질병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동물들의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 이후부터, 사냥꾼이 활을 들고 나타나 사슴 한 마리를 죽이고 떠나면, 사슴 부족은 일제히 그 장소로 달려가 칫자국이 얼룩진 땅에 쫑긋한 귀를 대고 물었다.
'그 사냥꾼이 우리의 친구 '잘 뛰는 사슴'을 죽일 때 먼저 양해를 구했는가? 자신의 가족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냥을 해야만 하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청했는가? '잘 뛰는 사슴'을 죽인 뒤, 인간의 필요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주는 우리 동물 부족에게 감사의 표시를 했는가?'
만일 대지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사슴들은 만족하고 아무 일 없이 숲 속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대지가 '아니다!'라고 대답하면 사슴 부족의 뿔 달린 추장 '고상한 코'가 그 사냥꾼의 발자국을 뒤따라가 한밤중에 몰래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에게 관절염이라는 병을 안겨 주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걸을 때마다 팔과 무릎의 통증을 호소하게 되었다.
물고기들 역시 그렇게 했다. 자신들을 죽이기 전에 양해를 구하지 않고, 또한 감사해 하지 않는 인간들에게 물고기들은 두통이라는 병을 안겨 주었다. 파충류들은 식욕을 감퇴시키는 병을 전파시켰고, 오소리는 위장병을, 멧돼지와 토끼는 당뇨병과 눈병을 퍼뜨렸다.
새들과 곤충, 더 작은 동물들도 회의를 열었다. 모두가 인간의 잔인성과 무분별한 욕심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먼저 붉은 반점 개구리가 말했다.
'인간들의 숫자가 더 불어나기 전에 우리가 뭔가를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땅 전체를 그들이 차지하고 우린 아무 데도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인간들이 나한테 어떻게 했는가를 보라. 나를 추하게 생겼다고 놀리면서 수없이 발길질 해댔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들의 발에 채여 피멍이 든 몸의 붉은 반점들을 보여 주었다. 인간이 악성 피부염에 시달리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그 다음은 새들 차례였다. 새들은 작은 입을 벌려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인간들은 잔인하게도 우리를 꼬챙이에 꿰어 불로 구우면서, 우리의 발가락이 오그라드는 걸 보고 즐거워한다.'
이때부터 인간들은 중풍과 사지마비라는 병을 앓게 되었다. 어떤 사냥꾼은 감사의 기도를 배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하여 이름을 셀 수조차 없는 수많은 병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대지는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삶을 공유하는 행복한 장소이며, 유형무형의 존재들이 꿈을 통해 만나고 영혼의 성장을 돕는 아름다운 터전이라는 사실을 인간들이 망각한 결과였다.
체로키 족 인디언들 사이에서 전해져 오는 이 이야기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동물과 인간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풀과 식물들이 어느 날 대회의를 열었다. '키 큰 참나무' 추장이 이끈 이 회의에서 식물들은 말했다.
'이대로 두면 인간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이기적이고 감사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대지 위에서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은 아름답다. 뛰노는 아이들과 수다스런 아줌마와 묵상에 잠긴 노인을 보는 것은 아름답다. 이제 우리가 나서서 그들의 병을 치료할 약을 주자.'
어린 나무, 야트막한 덤불, 약초, 심지어 초록 얼굴을 한 풀과 이끼까지도 인간을 위해 한 가지씩 각각의 병에 대한 약이 되어 주기로 결의했다. 그들은 말했다.
'우리의 약이 필요하다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스스로 우리 모습을 나타내 주자.'
그렇게 해서 세상에 약이 생겨나게 되었다. 어떤 풀들은 스스로 병든 자의 꿈속에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알려 주기도 했다. 세상에 잡초가 존재하는 것은 인간들이 그 가치를 모르고 '쓸모없는 잡초'하고 부르기 때문이라고 체로키 족 어른들은 말한다.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며, 우리 모두는 이 대지의 품안에서 살아가는 자식들이다.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을 위협하는 온갖 질병과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비결은 간단하다. 필요한 것만을 자연으로부터 휘하고, 그 나머지는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일이다. 함께 꿈을 나누며 성장하고 생명을 이어가는 일이다.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  2004년 시샘달(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