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 라는 책 중에 ,
삼성 그룹의 故 이병철 회장과 허경영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한국의 첫째 재벌 회장인 나의 양아버지인 이병철 회장은 심각하게 말을 이었다. "각하! 제 자신도 전문지식이 부족합니다. 저는 얼마 전의 양아들을 하나 두었습니다. 온 집안식구가 반대를 해서 은밀히 제가 돕고 있는데 그 녀석이 너무나 선견지명과 지식이 뛰어납니다. 그룹에서 박사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을 간단하게 해결하며 그 아이가 예견하는 것을 항상 맞아 떨어집니다.

김해 허 씨인데 이름은 허경영이라고 하는 20세 밖에 안되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그 애가 사실상 저희 그룹의 모든 중요한 현안을 학교공부를 하면서 그늘에서 진두지휘를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꼭  거짓말 같은 일이지요"

박정희 대통령은 약간의 취기마저 잊은 듯이 심각하게 이 회장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 회장 , 그 허경영이란 아이가 지금 스물살이란 말입니까?"

"예, 6.25때 태어난 1950년 1월 1일생으로 기축생 소띠생이니 금년에 스무살입니다. 그때 저는 저희 집사람과 함께 어디 출타할 데가 있어서 평소보다 조금 늦은 아침에 기사에게 차를 대기시키도록 하고 차를 타려고 할 때였습니다. 제가 차를 막 오르려고 하는데 저만치에서 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저를 향해 황급히 달려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자동차 뒷좌석의 문을 연채 그 학생을 물끄러미 쳐다 보았지요, 그런데 그 학생은 내 앞에 오더니 즉시 책가방에서 슬리퍼 한 켤레를 꺼낸 뒤 제 얼굴 앞에 갖다 내밀면서 "선생님! 저는 이 슬리퍼 열 켤레를 빨리 팔아야 숙제도 하고 학교를 갈 수 있습니다. 저에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좀 주실수 없겠습니까? 꼭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라며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 녀석이 바로 허경영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일생을 통하여 그렇게 영롱하고 초연하고 의미있는 눈동자를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 학생의 얼굴 앞에서 저는 도저허ㅣ 거부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압도 당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좀 달라며 반드시 은혜를 꼭 갚겠다는 그 학생의 맑고 밝게 미소짓는 모습이야말로 저의 한평생 동안 그토록 내 가슴에 뭉클한 감동과 진실을 맛보게 하고 신념을 토해내는 듯한 그 학생의 음성과 눈동자는 참으로 저의 일생을 통하여 처음 맛보는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순식간에 그 학생의 팔목을 나도 모르게 꽉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운전기사에게 차를 넣게 하고 그 학생을 안방으로 데리고 가서 밥을 한상 차려오게 해 밥을 먹였습니다.

밥을 먹이고 난 다음 어떻게 해서 고학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6.25때 서울에서 태어나 부모를 잃고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의 됨됨이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무조건으 양아들로 해서 공부시켜 주겠다며 붙들었지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듣는 순간 저는 또 한번 놀랐습니다.

"아니 또 한번 놀라다니요, 참 그 이야기가 들을수록 재미있군요 그래서 그 학생이 무어라고 하던가요?

박정희 대통령 역시 이 회장의 이야기에 약간 흥분되어 있었다. 그동안 오고가던 술잔도 더 이상 들지 않은채 심각하게 듣기만 하고 있었다.

"제가 계속해서 아들로 삼겠다고 하자 그 학생은"저는 부모님이 비록 돌아가셨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제 마음속에 모시고 있습니다. 한번도 뵌적이 없고 사진 한 장이 없지만 분명 저의 부모님은 저를 지켜보고 계실 것입니다.

저는 남에게 기대어서 배우지 않아도 얼마든지 제 노력으로 공부할 수 있으며, 그렇게 고생을 해서 성공하지않는다면, 저는 그런성공은 성공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저의 부모님도 그러할 것입니다. 남의 힘으로 쉽게 성공하는 것은 결코 저의 갈 길이 아닙니다.

저는 이 샌달 한 개만 팔아주신다면 빨리 돌아가겠습니다."라며 완곡하게 반대했습니다. 저는 그 때 두번째로 그의 진지한 모습을 보며 또 한번 놀랐습니다. 물론 그 학생이 제가 누군지는 잘 몰랐겠지만 그 학생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래 그렇다면 일단 내가 그 슬리퍼 열개를 몽땅 사줄테니 이야기를 좀 더 시간을 가지고 하자"며 저는 한 켤레에 500원 하는 샌달을 5.000원을 주고 몽땅 샀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좀 벌어 놓은 다음 저는 진지하게 학생에게 접근했습니다. "학생은 내가 만약 길에 쓰러져 있으면 남의 부모라고 하여 돌보아 주지 않겠나?"라고 묻자 그 학생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아저씨 그럼 저는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기만 하겠습니다. 그대신 저의 부모님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저의 모든 행동은 그대로 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저의 부탁을 수락해 주었습니다.

참으로 저와 허경은 극적으로 부자지간의 인연을 맺었습니다. 내일 정오까지 천막과 책들을 가지고 우리집으로 오도록 서로 약속을 한 뒤 허경영은 즉시 저에게 제가 슬리퍼 열 켤레 갑으로 준 5,000원을 내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꼼짝없이 그 돈을 받았습니다.

허경영은 나에게 "이제 내일부터 아저씨께서 공부시켜주고 먹여 주고 재워주실테니 저는 돈이 필요없습니다. 내일 짐을 싣고 버스를 타고 오면 되니까 그 차비는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또 다시 세번 놀랐습니다. 저의 아이들과 정반대였습니다. 6남매나 되는 나의 자식들이 용돈 타령을 한 두번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허경영의 그 순간적이고 용이주도하고 시기적절한 대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또 다시 나는 네 번째 놀랐습니다. 허경영에게 어디에서 사느냐고 하니까 홍제동 꼭대기에 군용천막을 치고 산다고 해서 그것을 어떻게 버스에 싣고 올 수 있겠느냐며 다시 택시를 타고 오라며 5,000원을 돌려주려고 하니까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소지품은 한 개도 버리지 말고 우리 집으로 가지고 오라고 당부하는데  그 학생은 얼마든지 버스로 올수 있다며 그 돈을 사양했습니다.솔직히 나는 허경영이 오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저를 의심한다면 저는 없는 일로 하겠습니다."라며 끝까지 혼자 갔다오겠다고 했습니다 한 시간이 넘게 설득하여 운전기사의 차를 타고 홍제동 꼭대기에 기사와 올라가 천막을 사진으로 찍고 기사가 돌아온 뒤 그 다음날 허경은 텐트와 라면 몇개, 책과 이불과 기타 소지품을 몽땅 천막에 싸서 이불보따리처럼 둘러메고 저히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유,불,기독교와 주역을 달관한 그의 지혜는 막힘이 없었습니다. 저희 그룹의 주요 난제들을 거의 대부분 막힘없이 그 어린 자식이 다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그 애의 비방으로 우리 그룹에는 노동조합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우리 그룹만이 노동조합이 없는 것도 그 애의 아이디어입니다.

너무나 마음이 든든하고 하루하루가 놀라움의연속입니다. 요즘 대통령 각하의 고뇌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식놈을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