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지 내던 여동생 미숙이는

늘 비슷한 남성이 자신에게 꼬인다고 늘 괴로워 했다.

최근에 알게 된 남성도 그 비슷한 인간이었는데

미숙이의말을 빌리자면
" 내가 사귄
그애는 자신이 엄청 잘생긴줄 알아요. 예를들어 뭐 찻집만 가면 사람들이 다 자기만 쳐다본다나? 황당스러버서 참. ㅋㅋㅋ

그리고 여자랑 있었던 치부스러운 과거 행위에 대해 발설하면서 얼굴이 새빨개 지면서 스스로 흥분하고
사진으로 캡쳐를 다 해놓지 않나.

너무 끔찍스러운데 혼자는 도치흥분해서 내게 보여준다는 소리나 하구요.

자기를 괴롭힌 사람에 대해서는 십년동안 못잊고 어린애 같이 굴구요.

못견디겠어요; 진짜;

그어린애 스럽고 황당한 잘난척과 이분법적인 의식과 논리적으로 되도 안한 주장이 과연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줄지를 모르는거 같아요. 그런데 더욱 재밌는것은

섬세한척 하는 모습에서는 과히 스스로에게 감정으로 사무쳐 있었어요.

(중략)"

미숙의 상태를 알기 위해서 정신과의사를 찾아가고 심리학자와 명상가에게 문의한 결과
미숙에 대한 상태를 여러가지 가설과 추측으로 결론내리게 되었다.

이것은 고양이와 쥐의 동시성원리로 미숙이의 상태가 설명되기도 했는데,
.......
미숙이는 자학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소박한 여성으로
정반대로 자부적인 면이 다분해서 왕자병적인 남성들이 꼬여들고 (끼리끼리 몰린다지 아마. )
그런 남성들은 거의다
자학하는 여성이 다분히 순진하거나, 어린애 같거나, 어딘지 틈이 많이 보인다는 점에서 다가오는데 알고보면 저야말로 누구보다 이용당하기 쉬운 어눌한 나르시즘적인 멍청이에너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마조히즘과 새디즘의 극한의 경계에서 서로 역할을 분담하기도 하며,
그래서 늘 외롭고
상처를 잘받으며
사회성이 소심하게 한정되 있음도 알수 있었다.

나르시즘은 오히려 "멍청이 에너지"로 승화되어 비추어 지며
누구보다 자신을 닮은 사람을 혐오하기도 하며
나르시즘이 연장될수 있는 시기는 아직 사회성과 책임감을 키우지 않아도 될 시기의 청소년이나
자신의 광신도들을 거느릴수 있는 힘이 있는 시기로 한정되며

나르시즘이 나르시즘화 되지 않기 위해서
핑계될 대상에 대한 논리적인 반박이나 책임회피대상확보로
도피할수 있을때는 더욱더 쥐를 만난 고양이마냥 행복해 하기도 한다.

겉으로 평온한척 천사흉내를 내지만
누구보다 약하고 틈이 많은 존재를 통해 힘을 얻고
자기 닮은 존재를 괴롭히면서 "저 인간보다는 내가 낫다" 라는 생각을 하고자 ,
결국 그런기회가
반드시 오고야 말며, 나이가 젊을때에는 그 나르시즘을 왼만하게 순수함으로 꾸밀수도 있으나
나이가 들어서 나중에 그 병적증후군들이 들어나게 될때에는 그들에게 잡혀 있는 가족들이나 주변사람들은 거의 꼼짝없이 그의 병변에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나르시즘이 심해졌을때의 병적인 행동으로
아들이 아버지를 혐오하고 자신이 그보다 훨씬더 낫다고 생각하는 외디퍼스 컴플렉스나
딸이 엄마를  혐오하면서 질투하는 그런 컴플렉스도 생길수 있다.
또한 구체적인 성적인 이상증후군으로 이성관계나 결혼생활들에도 확연한 문제를 들어내게 되는데...

공부하는 구도자들 사이에서도
나르시즘이 병처럼 만연해 있는 상황들을 볼수가 있다.

아래는 참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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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침을 말해주는 스승을 고대부터 인도에서는 ‘구루’라 불렀다.
구루는 옛날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사례로 말하면, 승려가 단연코 지식층에 속했던 시절, 재가불자들에게 단골 중이나 마찬가지 역할을 했단다. 당시에는 아무래도 중이 지식계층이며 민초들의 정신적 리더 노릇을 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오고 있다. 그런 스승(스님)이 가진 마음을 ‘구루마인드’라 한다.

샘이 이 단어를 접한 것은 오쇼 산야신으로부터였고, 누가 구루마인드를 가졌다고 할 때, 그것은 그가 자신을 구루로 착각하고 남으로부터 스승으로 떠받들리기를 바라는 탐욕을 가졌다고 지적하는 의미였다. 그러므로 누가 구루마인드를 가졌다는 것은 그를 아주 신랄하게 비평하는 말이다.

구루마인드를 읽어내는 시각으로 보면, 명상 사이트(자유게시판)에 글줄이나 쓴다고 자부하는 사람의 구루마인드를 엿보기는 아주 쉬웠다. 누구의 자기 투사적인 말마따나 그런 족속은 ‘구루 노릇을 해 보지 못해서 안달을 부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무도 그를 구로로 대접해주지 않는데, 자기는 깨달을 만큼 깨달았으니, 제발 좀 자기를 스승으로 모셔 달라고 떼를 쓰듯 당위론은 펼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구루마인드는 결코 순진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구루마인드는 걸핏하면 시비를 걸고 분노하는 마인드였다. 안하무인이 되어, 경쟁자로 간주되는 인사를 단독으로, 또는 합세하여 폄하 내지 망신시키려는 의도를 들어내기도 하였다. 그래서 구루마인드란 구루킬러의 마인드로 노출되곤 했다.

‘도토리 키 재기’라는 말이 있듯이 그저 그만그만한 명상이론을 구사하며 구루마인드로써 서로 잘난 체 하는 논쟁형식의 글이 웬만한 ‘자유게시판’을 문란하게 매질하는 자칭 구루의 수효가 꽤 있었다.

번역된 명상 서적 몇 권을 탐독했거나 인도에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다녀왔다고 해서, 명상계의 스타가 되고 패잡은 우두머리 행세를 하고 싶어 안달 난 사례가 난무했다. 더구나 명상서적을 약간 번역 했노라 하는 사람은 자기를 원저자와 동일시 해 달라는 듯 이만저만 대가연하는 것이 아니었다.

새천년이 날 밝기 직전, 샘은 이 나라를 대표한다고 자부하는 ‘대가 산야신’ 몇으로부터 마스터로 추대 받았다.
그리하여 샘은 평상시 글로써 ‘명상 문답’하는 사이버 마스터로 출발하여, 명상 캠프가 열리는 밤이면, 참가자 수십 명과 얼굴을 마주하고 그들의 질문을 받고 응답 하는 시간을 보냈다.

오쇼의 명상 강의록을 그대로 길게 인용하거나 비디오테이프를 돌려주는 방식 외로, 샘이 구비한 조건들과 기능을 절대적 필요로 한 젊은이의 청이 간절하였기 때문에, 샘은 수염을 길러달라는 요청을 수락하는 일을 비롯하여 다양한 기행을 시작했던 것이다.

샘을 추대하여 마스터의 자리에 받들어 앉혀놓고 곰처럼 재주부리게 조종하려던 경영 마인드, 그러한 의존 및 추대를 수락한 샘의 마음, 그리고 마스터를 링 위에 끌어 올려놓고 여 보란 듯이 공개적으로 맞장 떠 보려던 여석들의 영웅심, 이들을 ‘구루마인드’라는 도매금으로 싸잡아 넘길 수 있을까?

적어도 샘은 거의 그들이 먹은 나이만큼의 세월을,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심리학 내지 정신의학 서적을 정독 독파 내지 임상 경험을 쌓고 있었다. 그리고 샘은 현실에 부적응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어서, 소위 ‘명상 사업’이란 것으로써 푼돈을 얻어 쓴다거나 생계를 유지하려 들 필요가 없는 생활 기반을 닦아놓고 있었다.
소위 명상(사업)이란 아주 풍요롭고 사치스러우며, 예술보다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풍요의 논리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삶의 꽃일진대, 백수들의 생계유지 책으로써는 결국 부작용만 초래하게 마련인 길이었다.
그래서 샘은 실제 정신장애에 시달리는 약간 명의 산야신에게 지지와 도움을 보내주고 있었다.

오쇼의 업적 중의 하나는, 산야신이라도 되지 못했다면, 무명의 현실 도피자에 지나지 못할 젊은이에게 ‘명상가입네’ 하고 낯을 들 수 있는 명분을 준 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 흔한 산야스가 구루 행세를 할 수 있는 자격증이나 무슨 면허증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떤 산야신은 잠간 인도에 다녀와, 소위 ‘명상사업’이라는 것을 벌여 명상센터를 개설하거나 서적 번역에 손을 대보았지만, 그 일과 겨우 단조로운 형식을 익힌 명상기법 몇 가지가 생계유지 책이 될 수는 없었다.

한 때만 반짝하는 이슈를 기치로 삼고 사회적으로 초연한 특수신분이라도 얻은 양 ‘산야신’으로서 어떻게든 비대고 살다보니, 한 10 여년이 지나도 인생이 끝나지 않는 것, 즉 구차하게 계속 살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산야신의 구루마인드가 만신창이 된 것, 그리고 그 심리의 투사가 적나라하게 표출된 사례도 있다.
그런 병리의 수혜자가 오쇼와 명상과 구루마인드를 일거에 걷어차 버렸다고 선언하지만, 그 좌절과 적개심과 저주라는 결핍논리의 소산(악마화)을 풍요논리의 목표로 돌연 회개하기는 절대 불가능하다.

구루마인드란 소위 ‘자기애적 성격 장애자’의 마음이다.
구루마인드란 신드롬은 정신 발달의 미숙성에서 빚어진 장애인 고로, 사람의 마음을 조종함으로써 자기애적 영웅심을 만끽하려는 사람에게는 어김없이 도사리고 있는 음험한 그림자다.
구루마인드는 그것의 정체를 주시할 수 없을 때, 까딱하면 누구에게서나 부주의한 틈새를 타고 나타난다.
‘내노라.’ 하는 선사나 승려에게서도 숨길 수 없이 노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