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인들에게 동정과 용서를 받고 살아가며 그들을 무시하는 한국인들...


* 베트남인들에게 동정과 용서를 받고 살아가며 그들을 무시하는 한국인들...






엊그제 3.1절이 지났다.


3.1 절만 되면 각 언론에서는 제암리 학살사건등 일제의 만행과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방송을 하기에 바쁜데 필자는 그런 것을 보면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왠 일 일까?






필자는 지금 보통 상식으로는 믿기 어려운 참혹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인간은 어느 인종, 어느 국가인을 막론하고 그렇게 악랄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려 한다. 일제가 위 제암리 학살사건을 이르킨것이 비단 일제가 악독했기때문일까? 우리 한국인은 그렇지 않다는 말인가?




어제저녁 KBS 에서 사극 대조영을 보고 곧 이어진 " 랍스터를 먹는시간" 이란 특별기획 드라마를 보고 40 년전 필자가 들었던, 믿기 어려웠던 파월 한국군의 잔혹한 살육행위가 거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쓴다.






요즘 농촌 총각이 장가를 못가자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는 사람이 많다. 또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회사에서는 베트남인 알기를 시종 알듯하고 40 년전 월남전때 파병장병들이나 현지에 진출했던 사람들이 현지처를 데리고 살며 라이따이한 이라는 혼혈아를 수도 없이 만들었고 월남이 망하자 소위 뽀트 피플이 되어 죽음을 무릅쓰고 아버지의 나라 한국을 찾아온 그들을 모른다고 한 냉정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여성계에서는 베트남 처녀와 정식으로 국제 결혼하는것 조차 인신매매 라며 말썽을 피운적도 있었다.






필자는 작년에 친목계원들과 함께 베트남 하롱베이 관광여행을 가서 그 알량한 돈 몇 푼으로 베트남 인들을 하인 부려먹듯 부려먹으며 으시댄적이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관광뻐스로 시내 구경을 할 수도 있는 것을 우리 돈 기천원으로 그들이 만든 관광용 싸이카인지 리어카 인지를 타고 그들 보고 그 복잡한 거리를 밀고 다니라고 하면서 마치 제왕처럼 그들을 부리며 으시댄적이 있었다. 덕분에 그 유명한 베트남의 매연도 실컷 마셨지만....






필자는 동료들과 관광을 가서 일정이 끝이 나고 가이드가 호텔에 들어가 잠을 자던지 처 박혀 있으라면 말을 듣지 않고 혼자서라도 밤거리 뒷골목을 쏘다니며 뒷골목도 구경하고 그들 술과 안주를 사 먹고 현지인들과 농담이라도 하고 돌아와야 직성이 풀린다. 즉 관광이란 호텔에서 주는밥 먹고 가이드가 구경 시켜 주는것이 관광이 아니라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가이드는 혼자 다니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제발 말좀 들어달라고 했다. 필자는 물었다.


" 내가 알기로는 우리가 대략 40 년전에 이 월남에 파병되어 수많은 월남인들을 베트공이라고 죽였다.


그런데 혼자 낮선 밤거리를 다니며 그들 술집에서 술을 먹고 한국인이라고 떠들어 봐야 그들은 우리 한국인을 환영하면 했지 적대감은 없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은 배알도 없는 민족이라 그런가? 아니면 우리가 지금 그들보다 좀 더 잘 사니 우리를 동경해서 그런것인가?"




" 배알이 없는 것은 아니예요. 만약 배알이 없었다면 그 미국과 싸워서 이겼겠어요? 그들은 그때 우리 입장을 이해하고 용서한게애요."


" 거 말 안 되네. 그럼 우리가 지금 여기 와서 큰소리 치고 다니는 것은 모두 그들의 용서와 이해를 역이용 하는 것이네. 히히. 그런데 아무래도 그 당시 우리와 싸우다 살아남은 자나 유가족은 그렇지 않을 텐데..."


" 정부에서 그렇게 홍보하고 아이들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가르쳐요"


" 그러니까 여기 와서 그들에게 큰 소리 친다는 것은 참으로 챙피한 이야기군 "






지금 필자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참혹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대략 40 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는 그때 육군 헌병대에 근무를 했었다. 그때는 필자처럼 무식한 병사들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한글도 몰라 필자는 제 마무라한테 쓰는 편지조차 대필하 준 예가 참으로 많았다.



제대 말년에 맹호부대가 파병되었으니 헌병대도 따라 가지 않을수 없었다. 이것은 형식상 지원이었다. 그러나 사실 한 중대에서 어떤 중대가 더 많이 지원하는가에 따라 중대장의 성과가 올라가니 지원하는 병사들은 이밥에 고기국만 먹이고 놀게 했으며 지원하지 않는 병사는 보리밥 한술에 하루 종일 훈련을 시키며 공갈과 회유가 심했다. 그 공갈과 회유에 넘어가 지원한 동료들이나 후배들에게 필자는 말했다.




" 이 비영신들아! 왜 우리가 남의 나라 명분없는 싸움터에가서 목숨을 바쳐야 하냐? 그 이밥 한사발, 고깃국 한사발이 그렇게 탐이 나냐? 당장 지원 취소해!"




지원을 하겠다는 놈들이 내 말을 듣고 취소하러 갔다가 그 원인이 내 한테 있음을 안 중대장은 당장 나를 불러 귀빰부터 후려 갈겼다.


" 야 이 샤끼야! 너 네나 가기 싫으면 너나 가지 말것이지 왜 군 업무 방해를 하냐? 너 당장 콩밥 먹을래?"


" 지원이라는 것은 친구들과 상의 하고 할 수도 있는것 입니다. 이것이 군 업무 방해라면 한번 그 업무방해죄로 저를 콩밥좀 먹여 보세요. 헌병감실에 제 아저씨있으는것 아시지요?"






물론 필자한테 헌병감실에 아저씨 따위는 없다. 그러나 필자도 제대가 얼만 남지 않았으니 이 중대장의 공갈 협박에 속아 넘어가지는 않는다.


하여간 그때 필자는 개 터지듯 터졌고 제대 말년에 고단한 군 생활을 하긴 했었다.


그리고 제대증을 받아들고 일년후, 그리고 이년후인가 두 차례 당시 증평에 있던 예비군 훈련소에서 2 주씩 예비훈련만 마치면 군 생활 끝 이었다. 물론 나중에 김신조 일당의 사건만 없었다면 말이다.






그런데 2 년후인가 평상복 차림에 농립을 쓰고 예비군 훈련소에 입소했다.


그러나 여긴 군대생활이 아니다. 기간 사병이 모두 군번이 늦은 후배이고 복장도 운통화 짝에 헌 작업복으로 초창기 예비군 옷 차림이었으니 이런 犬 판 복장으로 무슨 훈련을 한단 말인가? 우리는 그저 병과 끼리 모여 주는밥 먹고 몰래 영내를 빠져나가 술이나 사다 먹으며 잡담 하는게 일이었다.






필자가 헌병대 출신이니 우리 내무반에는 모두 헌병대 출신인데 여기서 필자는 참으로 반가운 친구들을 만났다. 즉 제대할 때 월남으로 파병됬던 동기생과 후배들이 모두 돌아온 것이다. 그들은  헌병이니 감옥에 있던 죄수들을 취조 심문한 것과 또 감옥에서 그들한테 주어들은 이야를 했다.




우리는 모두 그들의 월남 군 생활을 듣느라고 밤 새우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그 내용이란 하나같이 글로 쓰기조차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 다음에 전개되는 그들의 말이 사실이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쓴다.


그들의 말을 모두 쓰려면 책 한권 이상이 되니 그중 몇 가지만 쓴다.






1. 한 보병 병사가 헌병대에 걸려 들어왔단다. 그의 죄명은 강간죄, 군법으로 당장 총살감이다. 그런데 그 동기가 매우 재미? 있다.


그 보병 병사는 현지인들의 집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곳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단다. 무더운 날씨, 뜨거운 햇살, 땀이 비 오듯 했으니 점심때가 되자 수통의 물은 바닥이 났단다. 그래서 주위에 있는 민가로 물을 얻으러 갔단다.




싸립문도 없는 집 앞에 가서 주인을 찾는데 주인 부부는 금방 일이라도 하고 돌아왔는지 그야말로 안방문도 열어 놓은채 남녀 모두 빤스 바람에 누어서 쉬고 있더란다. 이 병사는 그것을 보자 갑자기 작난기가 생겼단다. 그래서 손짓 발짓으로 둘이 거시기 해 보라라는 시늉을 을 했더란다. 그러나 주인 남자가 시키는 대로 뭘 하려 해도 안 된다고 역시 손짓 발짓을 하자 이놈은 총으로 위협해가며 계속 독촉을 했더란다. 그러자 주인 남자는 아래쪽을 가리키고 검지 손가락을 꼬부려 가며 나는 서질 않아 안 되니 당신이 나 대신 하라는 시늉을 했더란다.






그때까지 오직 작난기에 차 있던 그 병사는 그것을 보자 생각이 180 도로 바뀌어 흥분이 되고 방에 들어가 총을 옆에 세워놓고 남편 대신 정말 그짓을 했더란다.


그때 땀이 나자 남편은 부채로 부채질 까지 해 주었단다. 일을 마친 병사는 물 까지 얻어가지고 제 자리에 돌아와 근무를 끝낸 것까지는 좋은데 다음날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즉 그 남편이 헌병대에 자기 아내를 강간했다며 고소를 한 것이다.




결국 그 병사의 중대에서는 당시 한국 돈으로 쌀 열 가마 값에 해당하는 돈으로 무마 해 주긴 했어도 당시 헌병대에 구금되어 있던 다른 병사나 또 상관과 동료들로부터 엄청난 구타와 병신 소리를 들었단다.   즉 강간을 왜 했느냐고 질책한 것이 아니라 강간을 했으면 강간한 여자나 그것을 본 남편을 모두 죽여 버려야 뒷탈이 나지 않는데 왜 살려 두었느냐는것 이었단다.

그러나 이것은 약과에 불과하다.



2. 역시 강간을 하다가 걸려든 소대원들이 모두 잡혀왔단다.


그들은 대나무 숲이 우거진 그늘에서 보초인지 휴식을 취하는데 한 가족,즉 여자들끼리 피난인지 어디를 가더란다.


그 소대원들은 그들을 불러 세워가지고는 혹 베트공에게 무기를 운반하는가 를 확인한다며 옷까지 홀랑 벗기고 심문 했더란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무런 무기가 없자 생각이 달라진 소대원들은 하나씩 잡고 이쪽 저쪽으로 끌고가서 강간을 했는데 심지어 임신부 까지 강간을 했단다.






그런데 그 무식하던 소대원들 중에는 그때 그래도 소위 먹물은 먹은 대학생이 하나 있었고 그는 영어를 씨부릴줄을 알았는데 그 에게는 15 세쯤 먹어 보이는 소녀가 배당 되었더란다. 이 소녀도 학생인지 영어가 통하니 둘은 영어로 대화를 했는데 이 소녀는 강간 하는것 까지는 좋은데 제발 목숨만을 살려달라고 눈물로 하소연을 하더라는것 이었다. 즉 그들은 강간을 당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이 대학생 소대원은 강간을 하고 나서 그 소녀에게 죽은 체 하고 누어 있으라고 하고 그 옆 땅에 총을 쐈단다.






그런데 다른 무식한 소대원들은 강간을 하고나서 죽이는데 총으로 사살 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난 구경거리를 만든다면 그녀를 묶어 땅에 뉘인 다음 말뚝을 만들어 사지를 묶어 놓고 대나무를 잘라 창을 만들고 자신이 금방 강간했던 그 음부에 땅 까지 들어가게 깊숙이 꽃아 놓고 그 옆에서 캔 맥주를 마시며 히히덕거리다가 대나무가 흔들리지 않으면 죽은것으로 간주, 다시 확인 사살을 했는가 하면 임부를 차지했던 놈은 그 뱃속에 무기를 감추었는지 확인한다며 그녀를 나무에 묶어 놓은 다음 대검으로 배까지 갈라 보았다는 것이다.

이런 천인공노할 악랄한 만행이 인류역사에서 있었다는 말을 필자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살아남은 소녀가 결국 그들을 경찰서에 고발 함으로써 이들의 만행이 들통이 났고 월남 신문에도 났으니 그들은 살아날 방법이 없었고 총살형을 받고 본국 육군형무소로 송환되었다 하는데 정말 사형을 다했는지는 모른단다.


물론 그때 이 학생 병사는 여기가나 저기가나 병신 짓을 해서 동료들을 죽게 했다며 개 터지듯 터져 결국 골병이 들어 죽었다는 것이다.






3. 한국군은 어느 전투에서도 희생자는 별로 없이 전승을 했단다.


심지어 미군이 점령하지 못한 지역도 한국군이 맡으면 별 힘 들이지 않고 빼앗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 파월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은 미군으로 부터 엄청난 돈으로 어느 지역을 청부 받아 작전을 성공하고는 그 딸러를 특별기로 실어와 정부에 바쳤다는 것이다.






그럼 왜 한국군은 그렇게 잘 싸우고 또 한국군은 술 먹고 어느 월남인 마을을 가던 무사 한가?


애초 한국군이 파월 됐을 때 어누느 무식한 놈이 술이 엄청 취해서 월남인들 마을로 들어가 그들 부녀자를 폭행하고 깡 폼을 부리다기 결국 목이 잘려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동료 부대원들이 그 마을로 처 들어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조리 살육했다는 것이다. 즉 한국군 한명이 죽으면 그 보복으로 무고한 양민들을 무참히 살육하자 감히 한국군을 상대하는 베트콩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 40 여년전에 주어들은 이야기가 거짓말 인줄 알았다.


그런데 어제저녁 KBS 에서 방영한 " 랍스터를 먹는 시간" 이란 특별기획 드라마를 보고 먼저 필자 동료들이 했던 말이 전연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서 이 글을 쓴다.




그 내용은 이렇다.




요즘 한국에서 파견한 어느 조선회사가 있었다. 물론 인건비등이 싸니 현지인을 많이 고용해 쓴다. 여기에 베트남 어를 공부한 한 청녕이 있었다. 그는 물론 현지 예뿐 아기씨를 현지처 처럼 데리고 살았다.




그런데 그 회사에는 필자 동기생 연배의 파월장병 출신이 있었고 그는 일이 끝나면 현지인 주민들 술집으로 들어가 술이 엉망이 되도록 마신다음


" 야이 베트콩 샤키들아, 야이 빨갱이 샤키들아" 해가며 행패를 부린다. 결국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과 치고 패고 싸움이 붙고 그는 현지 경찰서인에 끌려갔다.






청년은 통역을 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취조하는 경찰서에서 조차도 계속 " 야이 베트콩 샤키들아! 빨갱이 샤키들아 내가 파월 장병으로 왔을 때 너그덜 종자를 말리지 못한 것이 내 실수다"


하며 기물까지 파괴 시켰다.






경찰서에는 그를 기물 파괴 죄와 보안 사범으로 추가 기소했다.


그 통역하는 청년은 현지 경찰서인 들과는 해결이 되지 않자 자신과 회사일로 그래도 안면이 있는 공안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파괴한 기물은 다 물어 줄 것이고 그가 벤트남을 모욕한 증거가 없으니  공안사범은 아니다. 그러니 석방해 달라고...


그러나 공안국장은 경찰서에서 녹음한 녹음테프 까지 제시하며 일이 매우 난처하게 됐다고 했다.






다음날부터 베트남 근로자들은 파업에 들어갔다. 일주일동안 일을 안했다.


그러자 회사에서 머리깨나 쓰는 간부가 그들집으로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한국 회사에서는 당신네들 수입보다 더 많은 돈을 주어 우리 회사에 들어오지 못해 안달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당신 남편은 일은 안하고 월급만 받으려 하니 이게 도둑놈 심뽀 아니냐며 한번 회사에 와 보라고 했다.






가정 통신문을 보내자 아내들 등살인지 파업은 중지되고 다시 일을 한 것은 좋은데 그중 주동자 한명이 사표를 쓰며 그만 두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앓던 이가 빠지는 것은 좋은데 그 사람 사퇴로 말미암아 근로자들이 또 파업이 일어날 것이고 또 그나마 그 사람 주도하에 아직까지 일을 잘 해 왔는데 그 사람이 사퇴를 하면 다른 직원들 통솔 하기가 어려워진다.






청년 통역관은 현지인들이 사는 처참한 뒷골목을 뒤지며 그 집을 찾아 간다. 그러나 그는 고향에 내려 갔다는 것이다.


청년은 다시 공안 국장에게 전화를 건다. 공안국장은 내일 그 고향집을 찾아 가잔다. 왜 하필 내일이냐니까 내일 꼭 가야 한단다.






다음날 공안국장과 청년은 하루 종일 험한길인 그의 고향집을 찾아 가는데 공안국장은 제 고향집 찾아가듯한다.


드디어 마을에 도착, 공안국장은 아무 집에서나 그 주동자 이름만 대면 다 아니 혼자 물어 찾아 가 보라며 내일 만나자며 헤여진다.




청년은 운전기사와 함께 그 집을 찾아간다. 그 주동자는 깜짝 놀라고 하필 왜 오늘 왔느냐며 당장 가란다.


그리고 그 주동자는 제물을 차리더니 누군가에게 제사를 지내고 징 같은걸 치며 동네 거리로 나섰다.


동네 사람들도 모두 징 같은걸 쳐 가며 어디론지 갔다.


거기에는 비석같은게 서 있는데 거기에는 40 여 년 전 한국군에게 몰살당한 그 동네 사람들의 묘비석이 있었고  그 수는 무려 137 명이었다,




즉 숫자가 문제가 아니지만 우리는 제암리 학살사건에서 23 명이 학살된 일제의 만행에 지금까지 이를 가는데 여기에는 무려 137 명이 한국군에 의해 학살된 것이다.






처음에 한국군은 그 마을에 가 토굴 속에 있던 주민을 나오라고 했단다. 그러나 겁에 질린 부녀자들이 나오지 못하자 그 토굴 속에 수류탄을 까 던지고 이것을 본 나머지 주민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조리 논 가운데로 집합시킨 다음 무차별 사격을 가했고 그들의 시체를 끌어다가 휘발유로 소각했으니 외지에 나갔던 유족들이 나중에 누구 시신인지 알 수가 없자 그 재를 수습하여 137 등분으로 나눈 다음 두 사람이 희생된 집에서는 두몫, 세사람이 희생된 집에서는 세 몫을 나누어 주어 제사를 지내게 했고 그래서 그날이 바로 " 따이한 제삿날" 이라는 것이다.






이때 그 참혹한 살육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꼭 둘이 있었단다.


한국병사는 무차별 사격을 하고 확인사살 까지 했는데 그때 한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부등켜 않고 마지막으로 손을 가로저으며 이 아이 만은...하고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며 이 소년마져 확인하살 하려든 병사는 참아 그 소년을 죽이지 못하고 땅에다가 총을 쏘았다.




그러자 저쪽에서 또 하나의 소년이 뛰어 도망가는데 그 소년을 조준 사살하려던 병사의 총을 쳐 그 소년이 무시히 도망가게 했다.


그 소년들은 산속 베트공 소굴로 들어가 부모의 원수를 갑기위해 얼마나 열심이 다람쥐 처럼 정보를 잘 입수해 오고 얼마나 잘 싸웠는지 모른다.


결국 그들은 그 강대국 미국을 물리치고 그들만의 국가와 자유를 찾았는데 당 에서는 그들에게 소년 영웅 칭호를 주고 유학까지 시켜 주려 했단다.






그런데 한 소년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당의 명령을 무시하고 한국군과 어울렸던 여자들이나 특히 거기서 난 라이따이한 즉 혼혈아들 까지 죽이러 다니다가 영웅 칭호까지 박탈당했단다.


여기서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 소년은 공안국장이고 반항아는 바로 데모 주동자였던 것이다.






이 피눈물 나는 사연을 안 청년은 그들에게 묻는다.


" 어떻게 해야 우리 한국에서 당신네들에게 사죄 하게 됩니까?"


" 우리는 지금 당신네 한국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베트남과 당신네 한국은 역사적으로 원수가 되었던 일은 없습니다. 국민소득이 불과 7 백불 밖에 되자 않던 시절, 여자들 머리까지 깎아 가발로 팔아먹던 당신네 박정희 대통령은 오죽해야 청년들의 피를 팔아먹는 용병노릇을 하며 미국의 개가 되었겠습니까? 오직 국민을 굶주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우리가 듣기로 당신네 역사에서 그 간난을 없앤 통치자는 오직 박정희 대통령이라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박대통령이 비록 우리를 죽였지만 그를 존경하고 그의 정책을 따라가려 합니다.




지금 당신이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우리 베트남에 졌던 당신네의 죄를 사죄 하느냐고 물었으니 답 합니다. 지금 당신네는 이제 부자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미국의 개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왜 또 명분 없는 싸움인 이락크에 파병을 해서 그 죄 없는 백성들을 죽이려 합니까? 당신네 국민들이 말려서 이를 제지 시키는 것만이 당신네가 우리 베트남에 지었던 죄를 사죄 하는 길이 됩니다."






지금 작통 권을 우리가 인수 해 오자고 하자 우리 한국에는 작통권 하나 행사할 장군이 나나도 없는지 아예 미국에 반납 하자던 보수 야당들과 보수 언론들, 그리고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을 당장 철수 하고 북한에 핵이라도 쏘자던 보수 야당들과 보수 언론들, 다른 이락크 파병국에서는 부시의 살인정책이 망하자 이미 철수를 하는데 아직도 미국의 눈치를 보고있는 사람들 ... 특히 이같이 철딱서니 없는 보수 야당들과 보수 언론들의 말만믿고 이에 동조하는 우리 국민 80% 는 참으로 이들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위 참혹한 내용은 물론 필자가 근무했던 40 여전 이야기이고 그때 한국군은 일제한테 세습된 그대로 였다. 즉 군이 창설될 때부터 장교는 물론 하사관까지 모두 일본군 출신이었고 그래서 필자 때만 하다라도 부하들을 개 패듯 해 가며 " 조센징은 매로 때려야 말을 듣는다" 는 말을 공공연히 했으니 그런 잔인한 행위가 일본군으로 부터 세습된 것은 사실일 것이다.

또 이같은 만행을 저지른 한국 병사는 전 파월 병사의 다가 아니고 일부 영창에 왔던 자 들이고 또 그들중에는 범죄자가 파월에 지원만 하면 무기형도 석방 한다 했으니 혹 범죄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범죄자라도 그들이 한국 종자가 아닌 다른 종자는 아니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것은 인간이란 인공위성을 만들며 이 우주를 창조할 수도, 딮 임팩트로 지구로 날라오는 혜성, 즉 우주를 파괴 할 수도 있는 지성이 있지만 그 지성을 가지고 얼마나 잔혹한 인간이 될 수 있느냐는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인디언을 모조리 학살하고 나라를 세운 미국인이나 또 평화롭게 살던 마야에 처 들어가 마야 왕을 배 에서 잔치를 하니 오라고 사기를 쳐 오게 한 다음 왕을 납치하고 궁궐을 점령한 다음 그 궁궐에 황금으로 가득 채우라 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그의 신하의 부인을 꼭 그 남편이 보는 앞에서 강간하거나 그래도 심심하면 부녀자의 옷을 벗기고 말뚝에 매어 놓은 다음 사흘 굶은 개들로 하여금 잡아먹게 하고 그 비명소리를 들으며 낄낄대고 술잔을 기우리던 스페인 병사들...




즉 인간이란 어느 종족 어느 민족이던 간에 그렇게 잔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걸 생각하게 했다.




정말로 우리는 그 베남인들에게 부끄러운 짓을 하고 그들로 부터 용서를 받고 사는 주제에 그들을 무시 하고 그들을 시종 과 같이 취급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것인가?

만약 한국어를 아는 그들이 23명을 학살한 제암리 사건을 계속 들먹이며 계속 일제의 만행만을 방영하고 그들을 원수와 같이 아는 우리 방송을 들었다면 137 명을 학살당하고도 우리를 용서한  그들은 우리가 얼마나 가증 스러울까?






우리 하느님 천부경은 하늘의 정신을 땅인 물질이 둘러서 사내를 만들고 겨집을 만들어 땅에 세워 번성케 했다는것이다.

즉 옷과 같은 우리의 육신은 언젠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주인인 영혼은 왔던 하늘로 돌아가 영생 한다는것이다. 여기까지는 신의 섭리이니 인간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일곱, 여덟은 처자식의 집을 일구는 것이고 아홉은 국가를 완성하는것인데 이는 모두 자신을 위하는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는것이라 했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이 아홉이라는 국가의 울타리 까지 열고나가 전 세계 인류가 한 가족이 되란말이 바로 천부경이다.

이는 정말로 현재도 계속되고있는 피의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인간을 위한 마지막 경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우리 한울님의 소리를 모르고 오직 물질문명인 서양문물에 미처 돌고있는것이다.



  우리가 지난 역사를 가지고 일본을 계속 증오하면 할 수록 저들은 뉘우치는게 아니라 점점 더 맞 대응을 하려 할것이다.

정말 베트남인 들 처럼 지난것은 다 용서하고 화해하며 포용할 수는 없는가?

그리하여 우리의 위대한 하느님의 경문을 물질만이 자신인줄 아는 인본인은 물론 저 세계인 들에게 전파 할 수는 없는가?

그 위대한 홍익인간의 정신을 전 세계인에게 전파 할 수는 없는가?

베트남인 대하기가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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