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신선이 들려준 우리 민족 이야기


정재형(동국대교수,선도학인)


1. 우리들은 누구이며 왜 사는가

혹시 여러분들이 아무 생각없이 살고있거나 아니면 우리들은 누구이고 왜 사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지만 도저히 알수 없었다고 평소 생각했었다면 이 책을 읽고 그 해답을 얻기 바란다.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해 시원한 대답을 해주기 때문이다.  

봉우 권태훈선생은 작고하기 전까지 선도 혹은 단학(丹學)이라는 이름의 도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우리 곁을 사라졌다. 그 첫 육성이 나온 것은  소설 [단]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에서 단지 실존 인물처럼 그려졌던 권선생의 일화들은 이땅에서 어쩌면 마지막 도인이었다는 점 때문에 그 희소성이 대단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젊은 사람들이 공부해서 도에 대해 써놓은 책들은 많이 있었지만 한 세기 전 사람으로서 말로만 들어왔던 신선의 세계를 직접 육성으로 들려주는 바로 “옆집 할아버지 신선”은 여태껏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이가 사라지고 난 지금 그 육성이 더욱 더 그리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신선을 한분 뵈을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그이가 신선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지만 말이다.

과거에 예수도 그랬고 석가도 그랬고 마호멧도 소크라테스도 공자도 노자도 그랬을 것이다. 평범한 가정생활을 하고 아내에게 부지깽이로 얻어맞으며 돈도 못벌어오는 무능력한 남편들로 손가락질 받으며 학당에 가서는 정열적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대화를 즐기던 그런 선비들의 이미지가 바로 신선이다. 하늘을 나르고 거북이나 호랑이를 타고 산에서 호젓하게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시거나 바둑을 두고 수염이 석자나 길며 머리가 하얗고 흰 도복을 입고 근사한 지팡이를 짚은 그런 신선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설적으로 미화되었던 신선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그 말과 정신으로서 존재했음을 봉우선생의 증언으로 알게 되었다. 봉우선생의 말이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가? 신선술에 관한 책은 너무나 많이 돌아다니지만 이처럼 확신을 갖는 책은 아직껏 보지 못했다. 다 그럴 것이다라는 추측성 서술이지 내가 해보니까 그게 이렇더라는 체험의 글은 없었던 것이다. 난 봉우라는 신선의 계제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이가 신선이었다는 사실은 믿을수 있다. 바로 그 확신이 선생의 말속에는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전설처럼 내려오던 신선의 실체는 봉우선생을 통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음을 증명한 셈이 되었다.

선도의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태어나서 사는 이유가 무엇이며 결국 인간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다. 봉우 선생의 가르침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타고난 제 성품을 알아야 하며 알고난 다음엔  뭇생명들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신선의 길이다. 모든 종교의 지도자들, 즉 성인들이 한 말이 그대로 같은 것이다. 유교든 불교든 도교든 기독교든 마호멧이든 모든 종교의 가르침과 원리는 하나이다. 봉우선생의 가르침은 유교경전인 [대학]의 해석에서 남다른 선도(仙道)적 주석을 하고 있다.    

“대학지도(大學之道)는 [대학]이라는 데서 도를 가르치려고 하면, 도(道)라는 거는 재명명(在明明)하며 선천적으로 타고나 하느님한테 타고나서 어린애 응아하고 나올 적에 선천에 밝았던 것을 다시 밝히는 데에 있으며, 덕(德)이라는 것은 도는 형이상(形而上)이요 덕은 형이하(形而下)이므로 덕은 재신(在新)하며, 새롭게 자꾸 새롭게 하는데 있으며, 재신민(在新民)이 아니다“ (선도공부, p.399)

백성은 지극한 선에 머무르는 것이다.(民在止於至善). 이건 불교의 교리인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이념과 다르지 않다. 모든 성인의 가르침은 깨닫고 그것을 통해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다.  


2. 공부의 방법론 - 호흡법

성인의 가르침대로 깨달음을 얻으려면 공부하는 방법론이 있어야 한다. 흔히 욕심을 비우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 참선공부를 쉽게 연상할수 있는데 그 공부의 요체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정리하는 방법론이 있다. 그게 바로 호흡법이다.

"호흡법에 100가지 문서가 있더라도 조식(調息)이 제일 꼭대기에요. 이게 뭔고 하니, 물자리에 파문이 나면 아무 것도 안됩니다. 물이 고요하면 비치는 것이 다 비쳐요. 그 파문이 없으면 되는데 이 심파도, 마음의 파문도 이 호흡이 똑 고르게 나가면 고르게 되니까, 이 머리에 박히는게 불변색으로 박혀요.“ (선도공부, p.594)

이 책에 보면 호흡법에 관한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이처럼 마음을 가라앉히는 가장 중요한 공부가 호흡법이란 말로 간단히 정리하자. 만일 이러한 호흡법을 체득하지 못하고 명상을 하거나 참선을 할때 생기는 문제는 실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잡념이 사라지지 않아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역효과가 나거나 짜증이 생겨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혹은 머리로 기가 올라와서 상기병을 앓아 머리가 지끈거리는 병을 얻어 고생을 할수도 있다. 선가에서는 흔히 석가모니 역시 호흡법을 통해 대각에 도달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달마대사가 면벽을 할수 있었던 것도 오직 호흡법읕 터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호흡법이란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명상법을 초월하고 있다. 그건 명상으로 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체득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인 것이다.

호흡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인도 요가식의 참는 호흡법과 무술에서 흔히 하는 단전에 힘을 주는 호흡법이 있다. 이 두가지 모두 우리식의 호흡법이 아니다. 호흡법은 끊이지 않아야 하며 과도하게 힘을 줘서 힘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기를 고르게 순환시키기 위한 끊어지지 않는 호흡법이 되어야 한다. 그 자세한 방식은 봉우선생이 가르쳐 주신다. 이 방법론은 역대 선인들이 하던 방식이며 진실한 길이다. 봉우선생의 정신적 스승일수 있는 조선 명종조의 신선 북창(北窓) 정염(鄭磏)선생의 표현대로 정확한 호흡법이야말로 “진짜 경지이며 길이다. 이것 외에는 다 허황된 말이며 거짓된 행동일 뿐이다(此所謂眞境界며 眞道路오 外此난 皆邪說妄行耳니라).”  (북창 정염, 용호비결(龍虎秘訣) 중 [閉氣]장)



3. 이제는 국학이다

호흡법을 터득하여 신선의 영체를 얻으면 그 다음 무엇을 할 것인가. 널리 백성을 돌봐야 한다. 신선이란 것이 단지 자기 한몸 위하고자 수련한 결과가 아니다. 자기가 깨달은 다음에는 아직 깨닫지 못한 백성들을 도와줘야 한다. 모든 종교의 성인들이 한 말이다. 봉우선생의 가르침은 우리 민족의 조상들이 이미 신선의 도를 간직하고 있었음을 말하고 그것을 계승하기를 바란다. 역사속에 나오는 단군의 이야기들은 바로 단군이 우리 민족의 시조이며 더 나아가 세계 인류의 시조이며 민족이 분파되기 이전의 하느님이었음을 말하고 그 하느님의 가르침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弘益人間) 평화의 메시지였다는 것이다.

봉우선생에 의하면, “중국에 가면 장천사(張天使)의 자손들이 도관을 지키고 있다. 강서성 용호산 도관에서 모시는 도인들은 주나라 문왕과 무왕이 은나라의 폭군 주를 칠적에 주의 신하로 있던 영신들이다. 은나라는 백두산족으로서 그 마지막 임금이 주였던 것이다. 따라서 장천사 역시 백두산족의 도맥을 잇고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으며 중국 도교의 시조가 되었던 것이다.” (선도공부, p.421)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공부라는 것은 잘못된 역사적 기록을 바로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기록들을 바로 잡는 일은 후손들에 의해 부단이 행해져야 할 몫이다. 일제 강점기의 단재 및 국학자들은 우리 민족의 역사가 중국이나 일본에 의해 왜곡되어 간 것을 바로 잡기 위해 열심히 투쟁적으로 살다 가셨다. 그랬기에 민족은 보전되었고 그나마 이 나라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 작업은 미진한채 남아있다. 아니 오히려 그 시기보다 역사의식은 더 상실되었다. 이제는 중국이나 일본이 아닌 미국 및 유럽의 선진국들이 우리 민족의 역사를 왜곡하여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짓밟고 있다. 모든 문명이 서구에서 온 것이며 우리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도 다 그 이유인 것처럼 이해시킨다. 현재 우리 민족 누구가 우리 선조가 미국이나 유럽인들의 선조보다도 위대했고 따라서 지금도 그들에게 뒤질 이유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민족의 흥망성쇠는 우주론적으로 순환하는 것이다. 봉우선생은 1984년 이래로 우리가 빼앗겼던 3000년 대운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고 예언하셨다. 주역이나 선계의 지식이 전무한 우리로서는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수는 없지만 역사의 주인공으로 다음 세기를 이끌어가려면 우리 민족이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고 그대로 한다고 손해볼게 뭐 있으랴. 그럼 예수는 왜 믿고 부처는 왜 믿는단 말인가. 우리가 꼭 증명을 해야 믿는단 말인가. 그저 하나의 신앙으로 믿는 것 아닌가. 우리의 무지로 인해 증명하지 못할 뿐이다. 봉우선생의 예언이나 덕담들이 단지 빗나가고 허황되다 할지라도 우리는 신앙으로써 받아들이며 수양의 목표로서만 받아들이면 된다.

봉우선생은 서구 학문과 사대주의사상에 밀려 잃어버린 우리식 선도 공부를 부활시킨 장본인이다. 서양식 학문공부로는 머리로서만 지식을 깨우치는 것일뿐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능력을 배양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신선공부란 초능력을 키우는 공부다. 천재처럼 타고난 초능력자가 아니라 공부해서 초능력을 키워놔야 큰일을 해낼수 있다. 봉우선생이 원하는 것은 우리 민족에 장차 여러 방면에 걸쳐 초능력자들이 나와 세계적인 업적을 내고 결과적으로 민족의 운명을 가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봉우선생의 가르침은 일제시기에 나라를 잃었던 선각자들이 민족과 나라를 되찿기 위하여 국학운동에 매진했던 그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국학은 유교도 불교도 아니라 그 모든 걸 아우르는 선도공부다. 단군이래 우리 민족이 보유했던 가르침이 곧 국학이다. 나라가 위기에 몰릴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민족을 구원해준 하느님의 가르침이다. 이번엔 잃었던 나라를 되찿자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3000년 대운이 찿아왔고 그것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위하여 민족이 떨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메시아 운동과 같다.

2000년 전 세례자 요한이 메시아가 곧 온다고 외친후 예수가 나타났고 기독교 사상과 서구가 전세계를 뒤덮었다. 봉우선생은 한국의 세례요한처럼 80년대에 문득 입을 열어 백두산족의 3000년 대운을 외치고 사라지셨다. 물론 그 이전 이땅에 미륵과 용화세계를 예언하고 사라지신 예언자가 있었다. 최수운과 강증산이 그 대표적 위인들이다. 선도의 나라 한국, 그리고 이제 그 시기에 이미 와있음을 직감할수 있는 여러 징후들. 그 중의 한 분인 봉우 선생.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선도공부의 길이 가까이 와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 이상 얼마나 더 많은 말이 필요하랴. 이제는 국학을 실행하는 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