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질은 영혼인데 땅위에 살면서 땅과 하늘의 적당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땅쪽으로 기울어진 물질문명의 극대화를 치달으면 늘상 말세(末世)가 되곤 하였다.

물질적 요소가 정신적 본질을 압박하고 존재의 이유로 환치(換置)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도 밥과 빵이 우리 모두의 필요충분조건을 넘어

우리의 존재자체를 규정하고 삶의 목적내지 굴레로서 작용한지 오래되었다.

이런 상황하에선 우리모두 앞못보는 맹인이 되고, 그리하여 한치앞의 재앙도 못피하는,

짐승만도 못한 신세로들 전락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먼 옛적 하늘의 자손들임을 까맣게 잊어버렸고, 하늘,

하느님의 육성과 말씀을 어떻게 들어야하는 지도 접해본지 이미 오래 되었다.

모든 존재와 생명체의 핵심에 하느님이 깃들여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 그 수신(受信)을 포기하고 망각해버렸던 것이다.

역사상의 말세마다 출현하셨던 성인들의 말씀의 공통적 화두(話頭)는 늘상

'인간은 빵과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곧 사람의 삶이 영(靈)과 육(肉)의 조화에 달려있다는 것이며,

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칠 때 삶 또한 제가치를 상실한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21세기 벽두 역시 성인들이 제시한 삶의, 영육(靈肉)의,

천지간(天地間)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채 물질문명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인류의 희망적 미래보다는 절망적 비관론이 세상에 팽배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이 틈을 이용한 혹세무민(惑世誣民)의 거짓 선지자들이 백주의 도깨비들 모양,

온갖 형태로 대로상(大路上)에서 활개를 치고 다닌다.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한계를,

그 능력과 지혜의 모자람을 절실히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우리모두 인간의 그 끝없는 욕심, 금력(金力)과 무력(武力)과 지력(知力)에 대한

환상과 자만심을 접어야만 저 창창한 하늘이 진면목을 내보이는 것이다.

우리 뭇존재는 하늘과 땅의 조화속에서 그 삶이 가능하다.

이것이 고성(古聖)들이 전해준 만고불변의 우주철칙(宇宙鐵則)인바

특히 하늘의 존재가 모든 존재에 선행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하늘이 먼저이고 땅과 사람, 뭇생명들은 그 다음인 것이다.

이것이 전제된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조화야말로 우주의 평화,

생명의 자유를 낳는 모태(母胎)랄  수 있다.

지난 20세기 우리민족의 선지자중 한 분인 봉우(鳳宇)선생이 갈파한 인류의 제시도 역시

이러한 천지인(天地人) 불가분(不可分)의 대조화(大調和)를 바탕으로 하여 전개된다.

전해내려오는 정신계(精神界:道界)의 얘기로는

우리의 성조(聖祖) 단군(檀君)께서 단기 4286년(서기 1953년)에

보통사람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신다는 것과

대순(大舜)이 단기4234년(서기1901년)에 다시 화(華:중국?)에 오겠다는 것과,

석가모니불이 입멸(入滅:죽음)후 삼천년뒤에 용화세계(龍華世界:지상천국)가 되며,
이때 대도인 미륵불이 하강하여 다스린다는 것과

주문왕(周文王)의 선후천변괘론(先後天變卦論)이 있고,

예수의 사후 이천년 뒤(대략 서기 2030년경) 부활재림론(復活再臨論)등이 있다.

이러한 전설적 예언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각각 상이점들이 보이긴 하지만

대개 21세기인 지금에 대도인 내지 대성인(大聖人)이 출현하리라는 대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21세기에 대도인이 출현하여 지상에 천국과 극락,

태평한 장춘세계(長春世界)를 건설한다는 것이 예언의 주된 골자임을 알 수 있다.

봉우선생의 대도인론(大道人論)도 이러한 전설에 기인(起因)하나 자신의 투철한

정신수련으로 얻어진 혜안으로 보다 정밀히 투시하여 대도인의 실체를 규명한 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