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초대칼럼> 미국은 유태교 전수받은 프리메이슨이 만든 나라 !

[연재] 네오콘과 프리메이슨, 세계를 지배한다. / 네오콘의 정체와 금융지배세력의 역사적 전개과정 (1)
  
국익수호연합  
  
[편집자주]

이 글은 달콤쌉싸름님이 그림자정부 토론방에 3회에 걸쳐 나누어 올린 글로, 본문 출처는 : http://cafe.daum.net/gookiksuho 국익수호연합 카페 입니다. 이 글은 네오콘과 프리메이슨이 어디서 기원하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세계지배책략을 펼치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용 가운데 마키아벨리, 하이데거, 레오 스트라우스 등에 대한 사상적 평가는 매우 부분적인 것이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꾸로 장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사상가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므로 사상의 이면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어찌되었든 이 부분은 다른 중요한 부분에 비하면 훨씬 덜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글 속에서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유대교의 본질을 다루는 부분이고, 이후 기독교와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그동안 시대소리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 뿐만 아니라 한민족과의 관계에 대한 글을 지속적으로 올려 왔습니다. 이 글은 그러한 글을 통한 유태인과 한민족, 유대교와 기독교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에 있어 폭넓은 배경적 이해를 도모하는데 의미있는 참고자료를 제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일독을 바랍니다. <끝>

-------------------------------------------------------

[원제] 네오콘과 프리메이슨, 세계를 지배한다.

본 내용은 현재 대전일보에 유럽 기행을 현재 연재 하고 계시는 오동석 Thru Guide 회장님께서 유럽에서 직접 찍은 사진과 자료들을 바탕으로 ppt로 직접 강의하신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아래 글에 실린 내용과 사진, 파워포인트 자료는 두루가이드 오동석 회장님께 모든 저작권이 있음을 밝힙니다.

<본문>

몸 안의 DNA 가 두개의 나선축으로 되어 있듯이 서양역사의 두개의 중심 축은 로마 교황청 카톨릭을 비롯한 기독교 중심으로 된 역사와 유대교 까발리스트 신비주의 사상인 까발라학을 전수 받은 프리메이슨과 네오콘들이 주도해 온 세계의 역사 이렇게 둘로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현재 세계 정치 질서를 이끌어 가는 나라는 로마 교황청의 기독교 문화가 아닌 유대교 까발라학을 전수 받은 프리메이슨이 만든 미국이라는 나라 입니다. 미국의 정치계를 좌지우지 하면서 뒤에서 조정하는 거대한 세력들이 프리메이슨이고, 네어콘으로 불리는 집단입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 대전 전쟁도 이들에 의해서 벌어졌었고 이들은 마지막 전쟁이라 할 수 있는 3차 세계 대전은 오래 전부터 준비 되어 왔었습니다. 네오콘을 알지 않고는 과거의 역사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전개 되는 세상의 역사에 대한 개념을 잡을 수 없습니다.  


  
현재 미 행정부의 부시 체니 부통령, 라이스 미 국무부 장관, 측근 중에 측근이지요. 흑인 여자인데 이 사람들은 네오콘은 아닙니다. 네오콘에 동조 하고 일루미네이트와 같이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네오콘이라는 것은 네오 스트라우스에 의해서 만든 것은 아니고 주동적인 정치 철학 사상적 조류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네오 스트라우스가 미국에서 최고로 많은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네오 스트라우스를 네오콘의 대부라고 합니다.

하지만 네오콘이 최고의 기구는 아닙니다. 미국의 네오콘의 위에는 은행, 방송국들을 포함해서 연구소와 UN과 같은 모든 세력들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 300인 위원회 있습니다. 300인 위원회가 네오콘의 뿌리이며 근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300인 위원회에 대해서 간단하게 보면 기원은 중세 때 베니스 지중해 상권을 지배하던 상인들 집단으로 아메리카 발견을 한 유럽 내에서 힘 겨루기를 할 때 돈을 많이 벌었던 곳입니다. 돈을 많이 벌면서 전 세계를 점령하려고 지배할 꿈을 꾸고 신대륙 발견 후에는 영국으로 가서 활동을 하면서 미국까지 세력을 뻗어서 최첨부에 네오콘을 만든 사람들이 이들입니다.
    


네오 스트라우스는 독일계 유태인인데 이차 세계 대전때 독일의 법학자로 히틀러의 나찌 구도를 같이 계획을 하고 같이 일했던 칼 수미트의 친구입니다. 네오 스트라우스는 독일이 망하고 난 뒤에 미국에 망명 하는 식으로 해서 들어옵니다.  

시카고에서 정치학을 가르쳤고 군주론과 태극도설과 비슷한 유형의 그림을 가지면서 무의 사상 연구하는 까발로학을 강의 했습니다. 동양의 음양론을 맛을 볼 수 있는 사상이 까발라 학인데 굉장히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학문입니다. (까발라학에서 가르치는 책 중에는 Secrete og the golden flowe라고 변역이 되어 있는 “태을금화종지” 라는 책도 있습니다.)  

네오 스트라우스의 정치 철학을 물려 받고 부시 행정부에서 새로운 구도로 해 나가는 사람들을 네오콘이라 부릅니다. 네오 스트라우스는 100명 이상의 박사를 키워 냈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니체, 하이델 베르그, 헤겔, 마르크스의 철학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영향력은 실로 지대 해서 어떤 곳에서는 “21세기의 철학은 스트라우스의 철학이다.”라는 말 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굉장히 많은 자금을 지원 받고 있고 있습니다. (이들을 지원하는 록 펠러도 역시 300인 위원회에 직속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1994년 미국 공화당이 참패 할려고 하는데 류트 하원 의원이 미국과의 계약을 작성을 합니다. 네오콘의 일원인데 공화당 중간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게 되면서 부상을 하고 나오게 됩니다. 여기 보면 엘란 블룸 아메리칸 마인드의 종언에서 20세기 하이데커 시대, 히틀러 시대때 히틀러와 같이 독일의 철학을 주도 하던 대표적인 인물인데, 하이데커 시대는 종말 되었고 스트라우스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스트라우스의 신념은 곧 지속적인 전쟁입니다. 지속적인 전쟁으로 항상 적을 만들고 정치 권력자는 국민을 편안히 두면 안되고 지배자가 무조건 다 가진다는 생각입니다.  


  
플라톤은 지배자는 최고의 도덕가(성직자)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스트라우스는 지배자는 도덕이 필요없고 또한 무슨 짓을 해도 상관 없다고 주장을 합니다. 네오콘이 이런 영향을 받아서 전쟁을 부축이고 있습니다.

  

스트라우스의 원천이 군주론입니다. 군주론을 쓴 마케오벨리는 이태리 피렌체 사람인데 법률가 가문의 메디치가 등장하기전 까지 괜찮은 인생을 걸어 오다가 메디치가 등장하면서 할 일이 없어져 버리게 됩니다. 할 일 없는 동안에 15년 동안 군주론을 썼습니다. 16세기 지리상의 아메리카를 발견한 콜롬부스가 괴팍하고 기발한 사고 방식을 가진 돌출형 사람이었는데 마케오 벨리도 돌출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을 통치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이 군주론인데 진짜 선동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조정을 해야 한다는 내용부터 시작 해서 끝까지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군주론에서는 성서 속에 나오는 야훼의 모습 을 가장 잘 이용 했습니다. 못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당시에는 금서였습니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프로테스탄트에게는 읽혔는데 로마 카톨릭에서는 금서였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서 3000명 대량 학살하고 비밀 공작 집단에 대한 내용과 수렵계의 다신론에서 일신교 성서로의 전환에 대한 내용들로서 그 당시에는 아주 황당 무개 한 내용이었습니다. 많은 신을 섬기던 사람이 일신교를 가진 다면 이상했다는 내용입니다. 교황청에서는 반발이 아주 심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성서에 나오는 야훼가 마케오 벨리 사상에 많이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헤겔이라는 사람은 마케오 벨리 이태리판 서문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정신 현상학에 나오는 이야기 인데……

군주론의 일부 내용에 보면 선량한 군주는 정복 당하기 쉽기 때문에 군주는 온화하며 교활하고 또한 무서워야 한다. 군주는 어떠한 못된 짓을 해도 좋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이 내용은 2000년 전에 동양 사람들에게서 인기 있었던 법가 사상과 비슷합니다.  
  
(참고 :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이 당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아랍, 그리고 중국 까지 연결된 거대한 상권에 중간 지점에 있으면서 이들 아프리카-아랍-중국 상권에 중매자 역할을 하면서 경쟁력을 키워 왔고 이러한 상황에서 아랍의 문화와 중국의 문화를 받아 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적 내용들은 프리메이슨의 정식적 이론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참고 서적 : 서양은 동양에서 시작 되었다.)
  
마케아벨리는 아베로이라는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베로이라는 사람은 12세기 스페인 출신인 아랍인인데 이 사람은 개인의 종교를 부정하고 보편적인 심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신이 불멸하다. 계시 종교에 대한 어떠한 승인도 거부 했습니다. 종교는 하늘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 것이다. 이게 마케오벨리에게 영향을 주고, 그래서 네오콘의 종교 사상적 배경은 카톨릭하고 배치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아베로이 -> 이것을... 마케오 벨리 -> 스트라우스

"종교는 인간을 위한 군주의 통치 수단일 뿐 특별한 이유가 없다"... "신은 죽었다" "종교는 국가 통치 수단일 뿐이다"... 그리스도를 위시한 모든 종교는 인간에게 유리한 것이지 하늘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이론을 펼칩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이사람들 베니치아에서 유대인은 상권과 과두금융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원래 유대교는 기독교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은 종교입니다. 세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에 보면 유대인 샬롯이 나옵니다. 이렇듯 베니스의 상권은 샬롯으로 상징되는 유대인들이 다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와 까발라학의 유대교와의 갈등 문제는 비단 16세기 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둘 다 근원은 유대교 문화에서 나왔지만 정통성의 문제로 항상 부딛혀 왔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문제는 비단 종교의 정통성의 문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있기 전  고대 그리스때 부터 있어 왔던 과두권력자와 노예인간에 대한 개념이었습니다.

이 개념은 유대교가 나오기 이전 문명인 수메르문명권때 에도 있던 문제로 수메르신화에도 나오는 문제 입니다. 더 발전된 문명을 갖고 동방으로 부터 이주해온 환인시대의 이주민들과 문명이 없어서 노예 신분으로 몰락한 토착민 사이의 문제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스의 스파르타는 최근에 와서 유대민족국가였음이 하나 둘씩 밝혀 지고 있습니다. 또한 뒤에 나오는 알렉산더의 경우에도 유대인 거주촌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다가 도시를 세우고 도서관을 만들 정도로 유대인 자본과 정경유착이 되어 있었고 세계 역사의 주도권 또한 유대인들의 손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철학계는 이러한 유태인 중심의 역사에 제지를 가해 왔었고, 이러한 갈등 문제는 로마 시대에 까지 연결이 됩니다. 그러던 것이 예수에 의한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가 나오기 전 까지 유대인의 로마 정치권에 갖는 영향권은 아주 컸습니다. 케사르의 경우 유대인 자본을 받아서 유대 친화적인 정책을 써 왔는데 반 유대 정서가 강했던 부르투스와 다른 로마 원로들이 유대 친화정책에 반대하여 케사르를 암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예수가 나오면서 완전히 다른 판도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로마의 정치 주도권이 유대인들의 손에서 예수를 믿는 다른 이민족 지배계층으로 넘어가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급기야 콘스탄티노플은 유대민족과 유착된 서로마를 포기하고 유대민족의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동로마로 이주를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 틈을 타서 훈족이 로마로 쳐들어 오면서 서로마는 망하고 훈족의 공격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을 찾는 ":베네치아?" (누구 살은 사람 없소?)가 도시 이름이 된 베니스가 형성이 됩니다.

그 이후로는 야만족이라 할 수 있는 게르만 프랑크 족에 의해서 서로마의 정통성을 계승한 프랑크 제국이 형성이 되었고, 유대인들을 극도로 싫어 하는 동로마 비잔틴 제국에 형성이 되면서 유대인들은 발 붙일 곳이 없어지게 되자 갈곳을 잃은 유대인 상인들은 베니스와 피렌체 중심으로 모이게 되어서 도시 국가를 형성 하게 됩니다.  





베니스를 이야기 하면서 카롤 대제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의 전신인 프랑크 왕국의 황제이며 신성로마제국 게르만의 수장 카롤 대제. 9세기 말 그의 아들 피핀이 베니스라고 하는 훌륭한 도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카롤 대제의 군대를 베니스로 출정 시킵니다.



베니스는 지도상 100개의 섬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가운데 에사자로운하 한가운데에서 한노파가 카롤 대제의 군대를 유인해서 사람들을 조수 간만의 차를 모르는 사람을 여기에 가두고 베니스판 살수대첩을 거행했다고 합니다. 베네치아는 뒤에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복수하기 위해 박살을 내기 전 까지 엄청난 도시였거든요. 카롤 대제의 아들 피핀이 베네치아에게 대패한 후 프랑스와 베니스의 과두금융과 대립이 항상 있어 왔습니다.

그 뒤 500년 동안 전쟁을 많이 하는데 프랑스 르네상스 최초의 국가인 프랑스와 베니치아 전쟁을 많이 합니다. 프랑스가 걸림돌이 많이 되었습니다. 전쟁 하면서 해상 세력을 많이 죽였나 봅니다.

뒤에 유럽의 주도권 문제를 쟁취 하기 위해서 역사의 정통성을 주장할 필요가 생겼던 로마 교황청은 서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손을 잡고 십자군 전쟁을 벌리게 되었고 이때 피렌체, 베니스는 이들과 손을 잡고 4차 십자군 전쟁때 유대교를 극도로 싫어하는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킵니다. 적과의 동침을 한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온 것이 템플 기사단입니다.

교황청과 유대 자본이 손 잡아서 생긴 사생아 템플 기사단. 교황청을 위해서 일을 해 주고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교황청의 가르침에 역하는 템플 기사단. 목적을 달성한 교황청의 입장에서는 교황청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딛히고 있는 템플 기사단을 그냥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템플 기사단이 프랑스에 돈을 빌려 주었다가 빚을 갚을 능력이 없던 프랑스에서 결국 1306년 템플 기사단을 죽이게 되고 그래서 프리메이슨과 관련된 템플 기사단 죽여서 프랑스는 베니스와 또 한번 앙숙이 됩니다.  

급기야 14세기 유럽에서 페스트가 오기 전에 두개의 대결 구도가 생깁니다. 카톨릭 교황청과 밀라노 프로렌스의 대결 구도 싸움을 많이 합니다. 비잔틴이라는 공동의 적이 없어지고 난 뒤에 더이상의 적과의 동침이 필요 없게된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세력과 밀라노, 피렌체, 그리고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한 과거의 중심 세력이었던 유대인들의 도시 국가 연맹과의 대결은 막을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페스트 이후에 구도가 와해 되면서 베니스 있는 사람이 우세승을 하게 되고, 훗날 압승을 하게 된 것은 지리상의 발견 이후입니다. 독점 무역을 하면서 카톨릭 교황청이 밀라노를 거쳐서 베니스의 프리메이슨 조직에게 꼼짝 못하게 된 것입니다.


  
군주론 쓴 마케오벨리는 최고의 부자 은행가였고, 르네상스를 열은 돈이 많던 메디치 가문에 군주론을 바쳤다고 합니다. (이테리 중심의 르네상스를 남방 르네상스라 하고, 네델란드 벨기에 중심의 르네상스를 북방 르네상스라 합니다.)

이전에 카돌릭 하고 피렌체 메디치 가문하고 베니스에 사람들이 사고 방식이 달랐습니다.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메디치는 세계 최초의 은행 환전상으로 돈을 많이 벌은 사람으로 가문은 돈으로 로마 교황직을 사기도 합니다. 아들 중 2명을 로마 교황으로 만들었는데 그 사람이 레오 10세와 프리멘스 7세 였습니다.

레오 10세는 무능 하지만 돈에 뛰어났던 사람입니다. 베드로 성당을 만들기 위한 역할로 면죄론까지 팔게 되었는데 독일 후거 가문이 이때 레오 10세를 잘 밀어줍니다. 레오 10세는 그 당시 돈세탁을 잘 하기로 유명했던 사람입니다. 피렌체는 교황청과는 친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결국 절손이 되고 북부 이태리에서 금융권을 가지고 세력 키운 것이 베니스였습니다.

베니스라는 곳은 피렌체와 다르게 경찰국가 였습니다. 말 안 들으면 죽이는 국가로 이러한 공포 정치로 1000년 유지 했던 것입니다. 총통이 말을 안들으면 가차 없이 죽였어요. 씨에나 중요 합니다. 뒤에 시간이 되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기가 베니스 총통 살던 탑,.. 탑이 높으면 부자 동내 입니다. 종탑이 중세에 가장 큰 곳입니다.




성 마르크 광장이고 마르코 성당 비잔틴 양식입니다. 지중해 비잔틴 이라고 하는데 동로마 제국을 이전에 비잔틴이라고 불렀고 오스만 투르크에 점령 당하면서 이스탐불로 변하는데 처음에는 베니스도 비잔틴의 영향권에 있었는데 뒤에 카톨릭으로 변하게 됩니다. 마가복음을 지은 마가의 사자, 부활을 의미하는 사자가 여기서 와서 전도하다가 죽었다 해서 세웠는데 다 거짓말입니다. 매일 물이 차 오르는 동내이고 10년 내로 물이 찰 것이다라고 합니다.

베니치아의 금융 과두 정권은 전 세계 지배 하기 위해서는 전체주의 악마주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사람을 두 분류로 나누는데 전 세계 지배 하는 초인과 노예 보다 훨씬 떨어진 가축만 있어야 한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베니스 였습니다. 전통적인 유대인 까발라학의 사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상은 국민이 주인인 국가, 데모를 가장 잘 하는 국가인 프랑스와는 정면 배치 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프랑스와 전쟁을 많이 일어납니다. 국민국가냐 독재 국가냐의 싸움이었습니다.  

지리상의 발견 이후에 베네치아의 과두 권력이 15세기에 베네치아의 역할이 약해지면서 동방에 대한 독점권이 없어지게 됩니다.



베니치아 지도입니다. 여기 보시며는 지중해 가장 깊숙히 있어서 활동 하기 힘들어서 뒤에 네델란드로 해상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본거지를 네델란드 암스트라담으로 옮김니다.



네델란드 암스트라담은 은행으로 유명 합니다. 많은 국가 재정보다 훨씬 큰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모든 왕가는 은행에 빛을 지고 있었습니다.


  
17세기가 되면서 영국으로 기지를 완전히 옮기게 됩니다. 지리상의 발견 이후에 미국을 자신들의 요구대로 원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한 전초기지로 영국을 선택 합니다. 암스트라담과 영국은 굉장히 가깝습니다. 영국에서 베니치아 과도 권력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돈으로 사면서 영국을 사게 되면서 영국을 브리티시 대 영 제국이 됩니다.


  
이들은 영국에서 카톨릭을 전면 부정하는 시나키즘 (합치다.) 마나키 (무정부) 모나키 (군주)을 만듭니다. 시나키즘, 전체주의, 하나로 통합해서 다스린다는 이념입니다. 전 세계에 이런 사상을 넣어 주게 됩니다.



그리고 난 뒤 런던에서 미국으로 사람을 보내서, 선점을 하기 위해서 척후병을 미리 보내서 다 파악하게 됩니다 . 그리고는 태평양을 넘어가요. 새로운 지역으로 넘어가면서 미국에 전해 지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이 그런 사상을 가지고 된 것 입니다.  

영국으로 건너간 베니스의 금융 과도 정부는 독점 무역을 하면서 세력을 많이 키웠습니다. 17세기 초 1600년도 동인도 회사는 영국, 서인도 회사는 네델란드와 영국에 동시에 있었습니다. 이들이 차를 이용 해서 독점 무역을 하면서 스리랑카, 실론 섬을 개창 중국의 차를 미국에 갔다 팔면서 막대한 이익을 남깁니다. 그런데 미국은 세금을 주고 차를 자꾸 사야 되니까 태평양 함로를 개척을 해서 직접 중국과 무역을 합니다. 그러면서 보스턴 차 사건이 나게 됩니다. 보스톤 전쟁 이후 독립 전쟁이 나고. (계속)


시대소리뉴스
http://news.sidaesor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