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

정약용과 주역(周易)

희대의 천재였던 이가환(李家煥)은
정약용(丁若鏞)이 ‘주역(周易)’에 대해서 묻자 “역학(易學)이란 반드시 흐릿한 사람이 하는 건데, 자네는 명쾌한 사람이니 결코 역학은 할 수 없을 걸세”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윤영희(尹永僖)에게 보낸 편지에서 “오로지 주역 한 부만을 가져다 책상 위에 놓고 마음을 가다듬고 깊이 생각하며 밤을 낮으로 삼아 보냈습니다”라고 쓸 정도로 주역에 몰두했다.

‘주역’은 흔히 점치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약용은 문왕(文王)·주공(周公)·공자(孔子) 같은 성인(聖人)들이 개인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미리 알게 하기 위해 주역을 지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주역에 몰두한 정약용은 그 해설서인 ‘주역사전(周易四箋)’을 지었다.
그는 ‘두 아들에게 내려주는 가계(示二子家誡)’에서 “주역사전은 내가 하늘의 도움으로 얻은 문자들이다.
결코 사람의 힘으로 통하고 지혜로 도달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라며 주역에 통달했다고 자부했다.


정약용의 결론은 “성인이 천명(天命)에 청하여 그의 뜻에 순응하고자 하기 위해서 성인들이 주역을 지었다”는 것이다.
천명에 청할 일이란 국사(國事)를 뜻하는데, 어떤 정책이 공정한 선의에서 나왔고, 그 결과도 좋을 일은 천명에 청하지 않으며, 선의에서 나왔지만 시세가 불리하여 실패로 끝날 일도 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약용은 “오직 일은 공정한 선의에서 나왔지만 그 일의 성패 화복은 역도(逆睹·사물의 결말을 미리 내다봄)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이에 비로소 천명에 청하는 것
[‘역론(易論)’]”이라고 보았다. 선의의 정책이지만 그 성패가 불분명할 때 천명에 청해 하늘의 뜻에 부합하면 비로소 추진토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역’을 저술했다는 뜻이다.
주역은 점복서(占卜書)가 아니라 국가정책 결정 참고서라는 말이다.


선의의 정책도 결과가 우려될 경우 천명에 청한다는 정약용의 정치관인데, 결과가 우려되는 정책일수록 밀어붙이기 일쑤인 현 정권에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시작 자체가 선의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서 나왔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